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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이기에 다시 사는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다. 예수님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된 육신 가진 처음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듭나면 어떤 모습인지를 보이셨다. 그게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이다. 성경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고, 이 사람이 창조하신 목적대로의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날마다 죽는다. 그리스도라는 본성이 그렇다. 날마다 마주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또 자기 보다 어린 생명, 그들의 주장이 하나님의 의에 모자람이 있지만 그리스도라는 본성은 그 주장하는 대로 종과 같이 몸의 수고를 내어 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도 이 본능 때문이다. 인류의 죄를 위해 억지로 참으시고, 신념으로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이 그렇다. 그 본성이 우리 본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다는 건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생명이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이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자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가진 그리스도는 정작 그 의로 인해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어리석은 죄인의 주장에 자신을 매일 내어 준다. 이 모습이 성경의 모든 강령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이 그렇고, 종과 같이 섬기라는 게 그렇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났으니 어느 한 순간 이 본성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존재다. 마음과 목숨을 다하지 않을 레야 않을 수 없다. 생명이 본성을 거스를 수 없다.

 

이렇게 사니 매일 죽는다. 더 의로운데 의롭지 않은 자를 위해 육신의 수고를 내어 주고, 더 옳은데 옳지 않은 자가 되어 섬긴다. 이게 죽음이다. 이게 일상이니 매일 죽는다. 이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부활은 이 죽음으로 죽은 자에게만 있다. 부활은 이 본성을 가진 이들에게만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났기에 그리스도로 살수 밖에 없는 사람, 그래서 본성에 이끌려 자신을 내어주며 죽는 사람에게만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예수님은 이 그리스도, 그것도 첫 그리스도이시기에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설령 죽은 자는 그냥 있으려 해도 부활한다. 그리스도라서 더 옳음에도 자신을 내어 주는 본성을 가진 생명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고 유일하게 살았다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저 살리신다. 어쩌면 사람의 의지와 무관할 지경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이름, 유일한 생명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이루어진 유일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살리신다.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니 죽어 있을 방법이 없다. 이게 부활이다. 그리스도여야만 다시 사는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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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환난이 있을 것이라 예언하셨다. 매질을 당할 것인데 예수님이 매 맞는 증거가 될 거라고 하셨다. 예수님 때문에 매질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성령이 말하게 하실 것이므로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할 건 아니라고 하셨다. 또한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형제와 아비와 자식이 부모를 죽게 대적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어이없는 환난을 다 견뎌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고난은 당하는 자체로도 끔찍한데 제자들에겐 더 큰 낙심 요소가 있었다. 바로 제자들의 기대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고, 그 주변 좋은 자리에 앉아서 가난한 자 없는 나라를 다스리고 누리는 것을 기대하는 제자들에게 말 그대로 찬물을 제대로 끼얹은 것이다. 다시 한번 십자가를 지는 게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에둘러 하신 것이다. 제자들에겐 환난 이상으로 크게 실망스러운 일이다.

 

예수님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는 것, 세상이 추구하는 성공 아닌 것을 그리스도의 일이라고 믿는 이유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인하여'라고 하신 건 사람들이 예수님의 탓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매질 당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 생각해 볼 게 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신념으로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님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만약 오늘날 사람들이 믿는 대로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참고 십자가를 지셨고, 그와 같은 이유로 제자들과 다른 성도들도 매 맞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 예수님의 구속은 유효하지 않은 게 된다. 단번에 이룬 구원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그 이유로 매질을 당한다는 건 이래저래 모순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를 이유로' 속의 이유는 세상의 왕을 기대했으나 자기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낙심한 사람의 실망과 원망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가난과 독립 같은 세상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그리스도가 아닌데 그리스도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고,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예수님을 증거로 매질을 당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하소서"라며 엄청나게 환호했던 마음이 그렇게 갑자기 바라바를 선택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제자들과 같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공회에서, 지금 말로 공공연하게 비난받는 이유 역시 이것이다. 이것 아닌 이유로 받는 비난은 예수님을 이유로 받는 비난이 아니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개독교인' 같은 비난은 이것과 완전히 다른 이유의 비난이다. 세상 문제에 더 모범적인 척하다 결국 그것이 '하나님 찬스'로 세상 사람이 다 원하는 성공을 바라는 가식일 뿐 아니라, 그마저도 가식인 게 드러나서 받는 비난이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인함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비난받는 건 십자가를 지기 때문이 아니라 낮고 낮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이용해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하나님 찬스를 쓰려는 반칙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오히려 세상의 성공을 원하지 않고 낮아지는 삶이다. 이런 삶은 이를 보는 세상 사람들, 신의 능력이라도 빌려서 성공하는 게 진정한 가치라고 믿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실패이자 비난거리다. 그래서 비난한다. 세상에서 성공을 바라는 마음을 사랑이라 여기는 형제, 부모 가족이라면 더더욱.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비난이다. 그래서 당연히 대적한다. 그들, 곧 세상의 성공이 곧 삶의 성공이라 바라는 부모 형제에게 십자가를 지는 낮은 삶을 추구하는 마음은 반드시 응징하고 죽여야 하는 삶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환난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다만 끝까지 견디려면 생명 자체가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낮아지는 신념과 노력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생명이라면 다르다. 그런 생명으로 다시 났다면 원치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원을 그리스도로 거듭난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진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그리스도로 거듭나야만 성경이 자기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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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이기에 다시 사는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다. 예수님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된 육신 가진 처음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듭나면 어떤 모습인지를 보이셨다. 그게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이다. 성경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고, 이 사람이 창조하신 목적대로의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날마다 죽는다. 그리스도라는 본성이 그렇다. 날마다 마주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또 자기 보다 어린 생명, 그들의 주장이 하나님의 의에 모자람이 있지만 그리스도라는 본성은 그 주장하는 대로 종과 같이 몸의 수고를 내어 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도 이 본능 때문이다. 인류의 죄를 위해 억지로 참으시고, 신념으로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이 그렇다. 그 본성이 우리 본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다는 건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생명이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이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자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가진 그리스도는 정작 그 의로 인해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어리석은 죄인의 주장에 자신을 매일 내어 준다. 이 모습이 성경의 모든 강령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이 그렇고, 종과 같이 섬기라는 게 그렇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났으니 어느 한 순간 이 본성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존재다. 마음과 목숨을 다하지 않을 레야 않을 수 없다. 생명이 본성을 거스를 수 없다.

 

이렇게 사니 매일 죽는다. 더 의로운데 의롭지 않은 자를 위해 육신의 수고를 내어 주고, 더 옳은데 옳지 않은 자가 되어 섬긴다. 이게 죽음이다. 이게 일상이니 매일 죽는다. 이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부활은 이 죽음으로 죽은 자에게만 있다. 부활은 이 본성을 가진 이들에게만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났기에 그리스도로 살수 밖에 없는 사람, 그래서 본성에 이끌려 자신을 내어주며 죽는 사람에게만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예수님은 이 그리스도, 그것도 첫 그리스도이시기에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설령 죽은 자는 그냥 있으려 해도 부활한다. 그리스도라서 더 옳음에도 자신을 내어 주는 본성을 가진 생명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고 유일하게 살았다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저 살리신다. 어쩌면 사람의 의지와 무관할 지경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이름, 유일한 생명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이루어진 유일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살리신다.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니 죽어 있을 방법이 없다. 이게 부활이다. 그리스도여야만 다시 사는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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