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인의 성경 보기/야고보서' + 31

야고보서를 마치며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야고보서 Date : 2017. 3. 27. 07:33 Writer : 김홍덕

‘야고보서’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것이 떠오릅니다. 그리고는 ‘<행함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로마서와 상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야고보서나 로마서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심령에 거하시는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믿음, 곧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있어야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이지, 믿음이 없는데 행함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야고보서는 행함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그 행함을 이끌어내는 혹은 표현하는 하나님의 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표현하시기 위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고, 생명이 되시니, 그 생명이 육신의 삶으로 표현되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내용)가 되시고 사람은 그 의를 표현하는 형식 곧 행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선한 행동을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의롭게 여기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인데 바울 사도는 이것을 경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행동하게 하는 의로움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반대로 야고보 사도는 행동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 행동을 이끄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므로 행함이 없는 것은 영혼 없는 것과 같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면 상충되게 보이는 로마서나 야고보서는 같은 의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관점, 자기의 의와 주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니 이 두 성경이 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본질이고 내용이 되시고, 사람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창조된 존재라는 이것만 분명하게 알면, 행함으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맞고,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것 역시 맞을 뿐 아니라 그 둘은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가 시험이나, 또 말에 대하여, 또한 간음이나 서로 비방하는 것과 같은 것에 대하여 다양한 말씀을 하였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너희 안에 온전한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며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의가 자기 안에 있으면 성경의 모든 것이 다 자기 행동으로 또한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은 단적으로 자기 안에 온전한 하나님의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그 예수님의 모습이 자기 안에 이미지로 들어와서 마음에 심기고 그것이 생명이 되어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많은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있으니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어떻게 믿음만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나, ‘그러면 예수만 믿으면 세상 막 살아도 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는 것은 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심령이 없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을 대할 때에, ‘이렇게 하라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성경을 잘못본 것입니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는 부모가 바라는 것은 아이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도 그 행함이 목적이 아닙니다. 육신의 모든 삶이 그런 행동으로 관철되게 하는 심령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지혜고 믿음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는 것이 간음과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짝이 아닌 것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그 안에 있어 그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내는 것이 그 존재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대로 살면 성경의 모든 것이 다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가 아닌 다른 것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짝이 아닌 것과 하나 되니 간음이고, 자기 존재 목적의 자리를 떠났기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자신을 불사른다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 야고보서는 행동이 있어야 온전한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밥 퍼주고 봉사하고 기부하라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럴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를 대한다는 것은 행함이 중요하다 여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을 이끌어내는 내용이 있는, 즉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질과 내용과 목적이 되는 삶이되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After completing the book of James


When we say "James," we generally come up with the idea that faith without work is dead. And I think that 'can not be justified by doing' conflicts with Romans? ' But James and Romans are telling the same story.


Every Bible tells us what life is like in God's spirit. Romans says that faith, the righteousness of God, must be in man, that God is righteous, not faithful, but that it is not justified by works, and that James is acting is the righteousness of God, It is said that it is because.


This means that the being of man is created by God to express that character, that God dwells in man and is life, and that life is represented by the life of the flesh. It is God's righteousness, and man is the form of his righteousness.


But some people think that if they do good in front of God, God will take them for granted. This is legalism, but Paul apologized. He emphasized that what God considers righteous is righteousness, not action. On the contrary, the apostle James said that the act is, of course, the belief that leads to the act, so that without practice, it is dead like a soul.


Therefore, Romans and James, which seem to be contradictory, convey the same righteousness. However, when people are living a faith life with the view that they think is right, their righteousness and their claim, they think that these two Bibles are different. Not only is it true that all the words of the Bible are not justified by works if God is the essence and content of man, and that man is created to express it, that righteousness is dead, Is the same word.


James has spoken a variety of things about temptation, words, and adultery, and vice verses, but all that is saying is, "There is a whole spirit of Christ in you." This is the same today. When the righteousness of God is in Himself, everything in the Bible is manifested in His actions and lives. To be suspicious of this is simply that there is no perfect righteousness in God.


The righteousness of God is in him, the apostles and believers of the faith who have come into the image of Jesus in the image of Jesus from the coming of Jesus into the flesh, Even if you testify that you have lived a life like Christ, you are asking, 'How can it be that you have faith alone?' Or 'Are you saying that if you believe in Jesus, you can live in the world?' It is to confess things.


Therefore, when you deal with all the words of the Bible, those who regard it as 'to do this' have mistaken the Bible. Parents who tell their child to study are not looking for a child to sit at a desk, but to be a good person. Not every word of the Bible is the purpose of that act. It is to be a person with a spirit that allows all life in the body to be carried out by such action.


It is wisdom and faith to be such a person. On the contrary, if not, it is adultery and sin. It is because it is united with what is not a partner. In other words, ma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m, and the righteousness of his God is the purpose of his being in the flesh. If you live according to that purpose, everything in the Bible is kept.


But what is not in God's righteousness is in him because God is not the purpose of man. That is why one is not one's partner, one is adultery, and sinful because he has left his place of purpose. The words of those who are in such a state are that they are burning themselves, and they are slandering another person.


This James says that action requires complete faith. It is not the essence of serving and giving donations. This is to be a person with a life that can be. And I am talking about those who have life and what they are not. Therefore, acceptance of the book of James is not to be considered to be important in practice, but to know that there is content that leads to action, that is, the righteousness of God becomes a life of self-essence, content and purpose.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므로 바리새인들이 크게 비난한 일이 있습니다.(마 9장) 그때 바리새인들이 분노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죄를 사한다고 말을 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받으라고 설교하고 전하지만 전하고 있는 자신이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사하여진다고 할 뿐입니다.


물론 천주교에서는 고해성사를 할 때 죄 사함 받는 조건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가서 주기도문을 몇 번 외우시오!”와 같은 해법을 준다는 것이 그것인데, 이것은 아예 사람이 죄를 사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보다 더 큰 오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위를 보고 죄를 사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하나님, 즉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를 보시지 ‘무엇을 했느냐’나 ‘무엇을 드렸느냐’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형제가 미혹한 중에서 돌이키게 하면 그것은 구원하고 죄를 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 5:20)

야고보 사도가 형제라고 말한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가 진리에서 떠난 다른 사람을 돌이키게 하면 그것은 곧 진리에서 떠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고 또 죄를 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떠났다고 하는 것은 진리 가운데 있다가 떠났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찾아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 혹은 진리를 찾는 것에 실수(잘 찾지 못하는)를 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을 주는 것이고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찾는 진리는 결국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입니다. 사람에게 자기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이 구원이고 죄를 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죄라는 것이 자기 자리를 떠난 것인데 그 자리를 회복시키는 것이 죄를 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를 떠났다는 것은 그 자리를 정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은 자리이기에 그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진리를 알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를 기록한 이유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행함 없이 말로만 진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몸소 지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이신 것과 같이 육신의 행함으로 진리를 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사람의 죄를 사하고 구원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함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아픈 사람 간호해주는 것과 같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기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어서 그 의가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이 내재된 육신이 그 생명대로 사는 행함, 즉 본능으로 인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행동)이 되어 살아갈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서 ‘저것이 인생의 존재 목적이구나!’, ‘저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신 모습이구나!’, ‘저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 나타난 아들의 모습이구나!’라고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본 사람 안에 들어간 하나님 아들의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시 생명이 되어서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의 목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죄 사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다보니 그 육신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데 드려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렸더니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고, 십자가에 달라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인하여 자기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사함이고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말로서 성경 말씀을 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함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도들이 자기 방에 앉아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육신이 수고하는 행함이 있었기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한 행함은 어떤 상급 때문이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니 그 본성에 이끌린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의와 말씀을 육신으로 살아내는 것이 자기 본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시는 행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는 믿음의 행함은 사람을 구원하고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이 믿음의 본질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사람이 행위로 죄를 범하는 것, 즉 하나님의 의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부족함을 돌이키는 것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잘못을 보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잘못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돌이킬 수 있는 본이 되는 것은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믿음의 행함은 또한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James 5: 19-20) The act of faith to forgive sin


When Jesus healed the paralytic, he spoke highly of the Pharisees, saying, "Your sins are forgiven" (Matthew 9). The Pharisees at that time were not angry but said that man bought his sin It was because. In other words, one can not forgive man's sin. This is still the case today. I preach to people to receive forgiveness of sins, but I am telling them that if they believe in Jesus, they will forgive their sins.


Of course, Catholicism also suggests the conditions for the remission of sins when doing confession. That is to say, "Go and memorize the Lord's Prayer a few times!", Which is a bigger mistake than to think that man can not sin. God is not the one who sees man's deeds and forgives sins. This is because God is not the one who judges the God of existence, what is the relationship, what he has done, what he has given. In other words, we know God wrongly.


But the apostle James tells us that if a brother turns away from his deceit, it saves and forgives sins.

let him know that he who turns a sinner from the error of his way will save a soul from death and cover a multitude of sins. (James 5:20)

James says that if one of the people who said that the apostle was a brother turned away from another who had left the truth, it would save the person who had left the truth and that he would forgive sin.


To leave the truth is not the fact that it has been left in the truth, but that it means a person who wanders around searching for the truth, or who made a mistake (not sure) in finding the truth. In other words, it is salvation and forgiveness for those who seek to find truth to know what truth is.


And the truth that people seek is ultimately the purpose and meaning of their lives. It is salvation for man to know the purpose and meaning of self-existence, and to buy sins. If you look at it, it means that sin has left your place, and restoring the place is a reasonable reason to buy sins. It is the salvation that restores the place because it is a dead place when God who sees the place sees that it has left his place.


The question is how to know the truth. There may be a reason why James wrote the account of James. It is to say that it is not merely conveying truth in words without action. In other words, Jesus must show the truth through the works of the flesh, just as He showed that He is the Son of God with the cross. When you do that, you will save people's sins and get salvation.


And the act is not the act of giving food to the hungry person, nursing the sick, but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mself, so that the righteousness of Him is the life in which the body is born, It is living a life. He is the only one who lives the Word of God as a flesh, and when others see it, "That is the purpose of life!", "That is the way God wanted a man!", It is the appearance of the Son of the Spirit of God! '


So the image of a person who lives in the life of the Son of God who has entered into the person who saw it, becomes a life again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restoring the identity of his being and returning to the purpose of his life I will. That is salvation and forgiveness of sins. And that was the cross of Jesus.


The Lord who is crucified, the Word of God being flesh, is that the flesh is revealed to show the righteousness of God. So, when they saw the image of the cross, they saw that the Son of God was there, and those who saw Him who was crucified showed Himself the purpose of His life, God's character and glory And that they are in a state of being. That is forgiveness of sins and salvation.


Therefore, anyone can forgive another's sins. It is not just to say the Bible in words. It is nothing without action. Many apostles did not sit in their rooms and preach the gospel. The gospel was delivered because there was a practice of their flesh. The way they preached the gospel is not due to any reward, but a sense of duty to do so, but the Word of God is life in itself and is drawn to its nature. In other words, it is self-nature to spread the gospel and live the righteousness and the Word of God in the flesh. That is what the apostle James says. Therefore, the works of faith, as James's apostle speaks, can save man and save sins. No, it is also the essence of faith.


And it is equally applicable not only to the identity of a person, but also to the reversal of the shortcomings of man sinning by works, that is, not expressing God's righteousness. It is easy for a person to say, "You should not do it" when you see a person's fault, but it is very difficult for a person who has been wronged to become an example of how you can turn your own mistakes. But the act of faith, as James's apostle speaks, is also speaking of it.

(야고보서 5:13-18) 육신을 가진 의인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야고보서 Date : 2017. 3. 25. 07:53 Writer : 김홍덕

성경은 우리가 다 알고 인정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의로움과 의 그리고 선과 악은 모두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무엇을 의로운 것으로 보는지,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 모두 하나님의 기준이 그 기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람과 세상이 가진 기준으로 성경을 보고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의롭다는 것은 재물에 대한 청렴성, 이성에 대한 순결함, 권력을 가졌을 때의 공의로움과 같은 것을 의로 여기고, 선하다고 하면 도덕적이고 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청렴성이나 도덕성이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의와 선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고 뜻하신 것이 사람 안에 있느냐 아니냐가 기준입니다. 그것이 있고 그 다음에 사람이 가진 의와 선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사람에게 뜻하신 것이 사람 안에 있으면 세상 사람들은 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가진 의와 선에 대한 기준도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이 먼저 있으면 그것이 모든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는 없는데 세상의 선과 의로움을 보인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고, 그렇기에 모든 의와 선은 하나님께서 의와 선으로 여길 때 의롭고 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예수)으로 무엇을 구하면 다 주실 것’이라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속에 본성으로 거하시고 그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이름, 곧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구하면 모든 것을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육신으로 표현되는)을 사는데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을 리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의인>의 청렴하고 순결하며 공의롭고 도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교회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아닙니다. 물론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도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의인은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육신을 가진 사람의 온전한 정체성(하나님께서 정한 정체성)을 회복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의인의 기도가 역사하는 것은 산을 옮기거나 불치병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를 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보였다고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육신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이라고 겉만 보듯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과 삶은 결국 사람의 죄를 사하는 것이었듯,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 곧 하나님 앞에서 의인 역시 사람의 죄를 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고보 사도가 장로를 청하라고 한 병든 자는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시는 죄는 원죄적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표현되지 않은 육신의 죄 곧 행위적인 죄를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죄에 관한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습니다. Debt(빚), Sin(죄)와 같은 단어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그 존재 목적을 상실한 원죄적 상태에 대한 표현들로 주로 사용되고, sins(죄의 복수형, ‘죄들’)나 faults(결함), trespasses(잘못)과 같은 단어들은 주로 복수로 사용되면서 행위적인 죄를 말하는 단어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죄’는 존재상태의 죄가 아니라 행위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에 관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란 그 속에 있는 것이 표현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5장의 말씀은 세상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형제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형제 곧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형제들은 이미 목욕한 자와 같이 그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회복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행위적인 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표현되는 것에 있어 결함이 있거니 잘못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있으나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있는 것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시는 병든 것입니다. 병이 들면 행동에 제약을 받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 표현하는 것이 온전치 않아서 말로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병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고서 스스로 깨우칠 삶은 없는데 말로만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병든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병에 든 사람들은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회에 가면 우선 강단에 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강단에 선 사람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삶(목사가 누리는 대접과 세상적 영화가 아닌)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살아내는 것은 없는데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교인들이 목사의 삶을 보고서 자기 안에 있는 죄를 스스로 고백할 때 목사의 삶이 행함 있는 믿음인데, 그 삶과 행함은 없이 말로만, 신학적 견해만 쏟아내는 것이 바로 병든 자라는 것입니다.(사실 지금의 목사들은 그 존재 정체성도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 병든 자는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집으로 청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을 본받으려는 마음이 들도록 마음 안에 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장로 곧 의인은 사람들이 그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는 행함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의로운 행함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그 사람 안에 있어서 그 의가 나타나는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의인의 기도와 간구, 그 의인이 늘 그리스도의 성품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과 행함이 바로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하는 힘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서 자기의 죄를 고백할 수 있도록 역사하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너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구하는 삶(의인의 간구)을 살아가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스스로 죄를 고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자기의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서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각 개인이 하나님의 의를 늘 구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 모습을 서로 보면서 미처 자신이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서로 고백하고,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 자기 모습을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고, 공동체고, 하나님의 나라며 의인들의 역사가 있는 것이며, 주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교회인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의인과 장로가 있고 죄를 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James 5: 13-18) The righteous with flesh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as we all know and admit it. If so, the righteousness and good and evil that the Bible speaks are all God's standards. It is the standard of God, both of what is righteous, what is good and what is evil. But people see and interpret the Bible on the basis of man and the world. For example, to be righteous is to be honest about wealth, pureness to reason, righteousness when we have power, righteousness, and good, moral and good.


Of course, people's thoughts are not wrong, but God's standards are different. However, the integrity and morality of God is not different from that of man. The righteousness and goodness God expects from man is no different. It is a standard whether or not God is expecting and willing to be in a person. That is the standard of righteousness and goodness that man has. And most of all, when God created man, when he was in a person, he said that the world knew that they were a son of God and a disciple.


In other words, if the righteousness of God is in man, we are satisfied with the standards of righteousness and goodness of the world. If God first has what is righteous, then it appears to be all. But there is no righteousness of God, and to show the goodness and righteousness of the world is worthless. This is because God created the world, so all righteousness and goodness are righteous and good when He sees God as righteous and good. So, first of all, you asked him to save his country and righteousness.


It is in the same context that Jesus said, 'If you ask me for my name (Jesus), I will give it to you.' Jesus is the flesh of God's Word. The righteousness of God i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dwelling in nature, and whose righteousness manifests in the flesh. That is the name of Jesus, the identity. Therefore, asking in the name of Jesus means to give everything by asking God with the same identity as Jesus. It means that God does not have to give the world he wants to have the identity he desires in order to live the life God wants to live (expressed in the flesh).


Therefore, it is not the integrity, the pure, the just and the moral person of the <righteous person> whom the apostle James speaks. Nor is he a person who has done many good things in the church. Of course, he is not a miracle. James the Apostle speaks of a person who has restored the full identity of a man of Christ's nature, a man of the body of Jesus Christ (God-determined identity). That person's prayer has a lot of power to work.


This prayer of the righteous does not move the mountains or heal the incurable disease. It says that it is forgiveness of sins. I think Jesus is a miracle that he has seen miracles, and he is saying that he can not see it as if he were looking at the sickness of the body. As all the miracles and lives of Jesus were to forgive man's sins, a person with the same identity as Jesus, the righteous person before God, is also buying man's sin.


Here we can see that the sick that James the Apostle told to call elders was in sin. And the sin that we speak here is not original sin but sinful sin of the flesh which is not fully expressed in the righteousness of God. In the English Bible there are various expressions of sin. Words such as Debt and Sin are used primarily as expressions of original sinful condition in which a person has lost his purpose for existence before God and are called sins (plural of sins, sins, faults), trespasses (Wrong) are mainly used as plural words and active words. However, the "sin" that this James apostle speaks is not an act of existence, but an act of sin.


James tells about <Acts>. The apostle James tells us that what is done is expressed in it. And now these five words do not speak to the people of the world, but to the brothers of the church. Brothers who have a brother, God's Father, have been restored before God, like those who have already bathed. To have such an actual sin is to say that there is a defect in the expression of God's righteousness and the wrong thing.


The righteousness of God is in man, but how to heal what is in expressing it. That is the sickness of James the Apostle. If you are sick, you are being sick, as you are restricted in your actions, and it is not easy for you to act and express God's righteousness. There is no life that others will enlighten themselves, but those who speak God's righteousness are sick.


There are a lot of people in these sicknesses. When we go to a church that we usually know, there are people who stand on the pulpit. Looking at a man in the pulpit, I do not live to live like that, but I want to live a life like this (not the hospitality of the pastor and the world film). It is a belief that pastors live their lives when they see the pastor's life and confess their sins in themselves, and it is the sickness that pours out the theological view only without words and actions. The identity of the being is mostly unjust before God,


The sick person is to ask the elders of the church. This is not to ask for home. It is in your heart to ask for your heart to be imitated. That is to say, the elder, the righteous, is a person who has a faith in deeds that people can accept with his heart. That righteous act is not another, bu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in the man, and the man whose righteousness is revealed.


The prayer and supplication of the righteous, the righteousness of the righteous, and the way in which we live and pray so that we can express Christ's character always have the power to act right now. And the power to work is not the other, but the power to work so that people can confess their sins. It is not to say, 'You can not do this!' But when you live in the life of seeking Christ (the petition of the righteous), you will see it and confess your sins on your own.


Therefore, confessing one's sins is a living one. When each individual in the church asks for God's righteousness and lives in it, he confesses each other about the righteousness of God that he did not understand while seeing each other, confessing his selflessness. It is the church, the community, the kingdom of God, the work of the righteous, and the church of those gathered in the name of the Lord. Among them are the righteous and the elders, and there is a thing to forgive sins.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에는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기적과 같이 실제적인 사건들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그 보여주신 내용의 본질이 아닙니다. 심청전이 효도하려면 바다에 몸을 던지라는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성경도 기적을 보이신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어떤 의가 기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 야고보 사도의 말씀 역시 육신이 병든 경우에 적용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기름 부은 자’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름 부음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왕이거나 선지나 혹은 제사장이라는 의미입니다. 기름을 머리에 바른다는 것은 그런 존재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아픈 자’는 기름이 없는 자, 곧 기름을 발라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름을 발라서 그리스도와 같이 세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병든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는데, 그것이 우선은 육신의 병을 고치신 것 같습니다만 보여주고자 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온전함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상태를 그리스도와 같은 정체성으로 회복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기도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믿음은 늘 말씀 드리는 바와 같이 ‘수동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앞에 수동적이며, 또한 무엇을 수용하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의 삶이 자기 안에 심겨져서 결국 그렇게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되고 그 마음이 장성하여 그리스도로 사는 사람의 모습과 이미지(형상)대로 살게 되는 것이 바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를 청해서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을 때 뜻하신 온전한 사람의 모습과 기능(목적 안의 삶)에 이상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인생은 다 그런 모습에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예수님께서 고치신 중풍병자거나 앉은뱅이거나 소경이거나 귀머거리거나 귀신 들린 자였다는 것입니다.(본 블로그 <치유> 카테고리 참조)


장로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삶을 오래 산 사람이기에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많은 삶의 모습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결함이 있는 아픈 자를 치유하는데 가장 적합한 사람인 것입니다. 장로는 기름이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기름을 가진 사람을 청하므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의 온전한 모습을 자신의 것으로 순종하므로 회복되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시는 믿음의 기도는 육신의 병을 낫게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 존재 정체성을 건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고치시려 그리스도를 보내신 뜻이 육신의 병을 고치심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랬듯이. 그러나 그것도 잘 생각해보면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것이지 그것이 본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본질이라면 적어도 그렇게 고침을 받은 사람은 죽지 않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야고보서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고 한 것은 행함으로 나타날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몸과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병든 자가 있다는 것은 신앙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어떤 교회 공동체에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말로만 평안하라고 하고,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의 연약함과 온전치 못함은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함으로 인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 세계에 대하여 어둡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름을 발라 줄 수 있는 장로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장로, 기름을 발라 줄 수 있는 장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장로를 볼 때 자신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사람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삶의 모습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자신이 회복되어야 할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그 이미지(형상)가 병든 사람 안에 들어가면 성령께서 그것이 생명이 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즉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에 모자람이 있는 사람이 회복 수 있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장로)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과 그 모습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자기 것으로 받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장로를 청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병든 자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품을 가진 사람의 삶을 자기 안에, 자기 세계 안으로 청빙하라는 것입니다. 즉 그 모습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그 모습대로 살기를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집으로 초청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 안으로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순종이고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니 당연히 구원이고 죄를 사함 받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James 5: 13-18) The sick and the prayer of faith


When we deal with the Bible, we must read the lines. For example, actual events like Jesus' miracles are true, but they are not the essence of what you have shown. It is a miracle that the Bible has shown miracles as if Shim Chung-Jeong was not telling him to throw himself into the sea to do his works. What Jesus wants to say is miraculously expressed. As such, the words of this Apostle James are not the words that the flesh has given me to apply in case of sickness.


To be anointed is to be Christ. The meaning of the word Christ is 'anointed one'. Also, anointing is not something anyone receives. To be anointed means to be a king, a god or a priest. Applying oil to the hair makes it such a thing. The 'sick person' James the Apostle is talking about is someone who does not have oil, who needs oil.


He who is anointed with oil to be established as Christ, who is the sick. Jesus healed many sicknesses, which seemed to have healed the sickness first, but what he wanted to show was that he restored the condition of a man who has not reached the perfection of the person who has to live with the identity of Christ, You have seen something.


It is also the prayer of faith. Faith is 'passive' as I always say. 'Then what is passive in front of you, and what does it accept?' That is Christ's anointing. It is anointed that the life of an anointed person is planted in him, and that he eventually wants to live that way, and that his heart grows and lives according to the image and image of a man who lives by Christ. That is faith. And it is prayer to save it.


Therefore, those who are called to an elder and anointed are no different, but those who are in an ideal state and function (life in purpose) of the perfect person whom God created when he created man. And all of our lives began in that way. At first, everyone was paralyzed, sick, blind, deaf or haunted by Jesus (see the blog <healing> category).


An elder is a person who has a long life of a Christian identity and therefore has many lives to restore Christ's identity. Therefore, he is the best person to heal a sick person who is defective in the identity of Christ. An elder is a lot of oil. He is asking people who have a lot of oil, so he is telling them to restore the whole picture of the identity of Christ by obeying Himself.


Therefore, the prayer of faith that James says is not in healing the sickness of the flesh. Of course, God sent Christ to remedy the fact that man can not express his or her identity in a healthy way can be expressed by healing the sickness of the body. As Jesus did. But if you think about it well, it is the expression of the righteousness of God that healing the sickness of the body, but it is not the essence. If it is the essence, at least the person who is so healed should not die.


This is the Bible now telling us that James believes in God and that faith without works is dead. The fact that faith without action is dead means that there is no righteousness to appear by works. It is like a body without a soul. The fact that there are sick people in the church means that there is a person whose faith is not complete. And such a person can be in any church community. It is said that it is said that it is not only to say to such a person peacefully, but to pray.


The apostle James tells us that the weakness of faith and the inability to see it are due to the inability to see it. That is because it is dark about the world. That is why you are asking for an elder who can give oil. Elders who can give elders and anointing elders have the appearance of a life where those who do not know Christ fully know when he sees the elders that he did not know the reason of God's will. It is that a person whose faith is not complete has his own appearance to be restored.


When you see the image and the image enters the sick person, the Holy Spirit makes it life. This is the prayer of faith. In other words, not kneeling and praying is not all but praying for a person who is lacking in the image of Christ to live a life that can be restored (elder). In other words, we are to accept the character of Christ in the image and life of the person who lives Christ's life. That is to ask the elders.


The sick person is to call the life of a man with the full character of Christ into himself and into his world. In other words, you want to take the picture as your own and hope to live as it is. It is not inviting you to come home, but inviting you into your own world. That is obedience and faith. And to have that faith is to restore Christ's character, of course, to salvation and forgiveness of sins.

  1. 빛과 소금 2018.01.29 19:50

    본문의 헬라어 원문을 보면 성령의 기름이 아니라 약용으로 사용하는 실제기름입니다
    세상의 약이나 기름도 하나님께서 주신것입니다
    야고보 당시의 교회 상황을 너무 비약하여 해석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도히 영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아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서포하는 것은 위험하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원전과 그 시대의 시대적 배경 역사적 문화저 상황 고고학정 증거를 두루 살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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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사도는 고난당한 자는 기도하라하고 즐거운 자는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이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같은 고난을 당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고, 그것은 죄인이나 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전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답답함이나 저항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의로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세상의 기준으로 죄인으로 규정하여 조롱하고 핍박함으로 나타나는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고난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정체성, 곧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의 삶 안에 거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의와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도록 살아내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십자가에서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이 의인(하나님의 의가 육신의 삶에서 생명이 된 사람)이 죄인(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을 상실하고 자기의 의와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이 의인이 될 수 있도록 자기 삶을 죄인과 같이 또 종과 같이 섬기는 삶을 육신으로 살아내는 것이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이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습으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것입니다. 아들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아버지의 존재와 성품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들’은 없습니다. ‘누구의 아들’은 있지만. 즉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심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즉 성경이 말씀하시는 고난은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을 나타내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고난 중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본분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정체성)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고, 그것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신다고 하신 약속의 세계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대로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기도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고난당한 자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그 고난은 하나님의 의에 속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어서 즐거워하는 자는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모든 것은 성경을 기록한 목적 안에서 봐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고난이 예수님이 보이신 고난이듯, 즐거움이라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실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을 아는 즐거움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즐거워하는 자는 찬양하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야고보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찬양의 대상이 누구이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 하나님의 놀라움과 위대함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가장 핵심적이고 놀라운 것은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즐거움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것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즐거움은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자기 존재의 목적은 상실한 체 즐거워하는 것은 암 환자가 감기 나은 것을 즐거워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지엽적적인 문제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말씀하시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즐거움은 다른 즐거움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즐거움입니다.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 기쁘고, 또한 그것이 자신의 즐거움이 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자기 존재의 목적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과, 그 존재 목적이 자신에게 놀라운 은혜며 감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으로 살게 된 그 자체가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즐거움임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즐거운 자의 찬양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James 5: 13-18) Pleasant Praise (hymn)


The apostle James tells us to pray for those who are afflicted and to praise those who are glad. The suffering is the suffering of the sufferings of Jesus, and it is not the stuffiness or resistance that we confront in the process of actively proclaiming God to sinners or people who do not know God, but those who do not know God live in the righteousness of God It was a hardship that appeared by mocking and persecuting the life of a person as a sinner on the basis of the world.


This is because the reason Jesus suffered was to know the identity of Christ, the Son of God. It is the righteousness of God that a man who dwells in the life of the flesh does not know God, but lives in his righteousness and in the values ​​of the world. It is the Son of God and the person of Christ It is seen on the cross.


Jesus also said that the righteous (God's righteous life) is a sinner (a person whose purpose is lost by God and whose righteousness and worldly values ​​live) We have also shown that it is Christ's life to live in a flesh like a servant.


And to have seen it is to have revealed God. It is in the appearance of Jesus that people came to know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To admit a son is to acknowledge the existence and character of the Father. There is no 'son' just. There is a "Son of Whom". In other words, Jesus showed Him by suffering. In other words, the suffering that the Bible speaks means a life that represents God's character and image.


Therefore, being in that affliction belongs to the nature of Christ's character. That is the name (identity) of Jesus. Therefore, it belongs to the world of the promise that Jesus is the one who has the name of Jesus, as he said, and that he will give us what we ask for. To such a person God is saying that He will give anything. For there is no reason for God not to give what he needs when man lives according to the purpose of man. This is a complete prayer. As the apostle James has said, the sufferer must pray because the suffering belongs to the righteousness of God, and God will give all that is necessary.


The apostle James says that those who rejoice should praise. When we look at the Bible, we must see everything in the purpose of writing the Bible. What is said is that the suffering is the suffering of Jesus, and the pleasure is also the thing that God will rejoice. That is, a person is pleased to know the purpose God has made for himself.


If James saw that the apostle delighted to praise him, who would be the object of the praise that James said? It is God of course. To praise God, to praise God's wonder and greatness means that God has done a wonderful thing to him. And the most important and surprising thing to man is to know the purpose of self existence. Knowing the purpose of self-existence is the ultimate joy and grace of all that exists.


People find pleasure and satisfaction in a variety of things. But all that joy is nothing before the question of why you live? The purpose of self-existence is merely to rejoice that the cancer patient is getting better when it is lost. The Bible is not a book about such a local problem. The Bible tells us that God is the most fundamental and essential thing to man.


Therefore, the pleasure of the Bible is not the other pleasures but the joy of being. I am happy to know why you live, and to say that it is your own pleasure. The praise of God is to praise God because he knows that God has given the purpose of His being and that His purpose is to be an amazing grace and thanksgiving to Him. In other words, living in life is a praise to God because he is a grateful person to God. It is also a person who knows that it is fun. It is a praise of the joyful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