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인의 성경 보기/사사기' + 34

사사기를 마치며...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사사기 Date : 2017. 12. 18. 06:53 Writer : 김홍덕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부터 레위인의 첩의 일로 베냐민족속과 나머지 족속의 전쟁 이야기까지 모든 말씀이 사사기 안에 있어서 사람들이 왕이 없고,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가 없을 때에 각기 자기가 올하고 여기는 대로 사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사사기를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일면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사기의 구조와 내용의 특이성 등을 주목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여기를 보라’며 가리킬 때에 손가락 끝을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사기 전반에 걸쳐서 많은 이방인들이 쳐들어 온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타락한 탓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사사기를 대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 했더니 이방인들이 쳐들어와서 큰 환난을 당하는구나!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겠다.’라고만 읽으면 사사기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무엇인지, 그 죄가 오늘날에는 어떤 죄인지, 나는 왜 오늘 이 사사기를 읽는지, 지금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데 내가 범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행한 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오늘 내가 우상에 머리 숙여 절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우상을 섬기지 않은 것인지 그 모든 것을 생각해보지 않을 것이라면 사사기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방민족이라는 것, 이방의 신과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종교에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 것이 아닌 것을 믿는 모든 것이 다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 그것뿐인데 여기에 과학을 더하거나, 인문학을 더하는 것도 이방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그런 것이 있으면 좋다고 말하는 그것이 바로 이방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섬기는 가장 보편적인 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방신을 섬긴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것을 본질로 여기거나 삶을 기대는 것입니다. 교회를 크고 화려하게 지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크고 화려한 것=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생각이 바로 세상이 크고 위대한 것을 흠모하고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바로 이런 것이 이방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본다면 세상에서 자기가 뜻한 대로 성공하는 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여기는 그것이 바로 이방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개인이 바라고 뜻하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해지는 것이어야 하는데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의 성공>이라는 세상의 가치관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접목하고 합한 것, 곧 이방신을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서 크고 화려한 교회, 많은 수가 모이는 교회, 헌금이 많이 나오는 교회,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은 교회나 또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다툼과 분쟁과 시기와 분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세상적인 기준에 의한 것입니다.


교회가 돈 문제, 성적인 문제, 교회나 교파 안에서의 권력의 문제 그리고 그런 문제와 연루되어 정치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 그 모든 것이 다 사사기가 말씀하고 있는 이방 족속이 쳐들어와서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개인도 자기가 하는 일이 잘 안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방인의 신, 곧 세상적인 가치관이 신앙과 결합되고 그것과 간음함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교회의 문제들 중에서 세상적인 가치관과 연루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모든 갈등들,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모든 것들은 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연루된 것들입니다. 사사기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개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있어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신 예수님과 같이 자기 육신을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일에 쓰느라 힘들고 지치는 어려움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하여 억지로 신념을 동원하고 의지를 북돋우면서 노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기준에서 일정 수준이 되지 못하고, 육신이 평안에 이르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는 그 모든 한탄과 애절함은 다 세상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인함인 것입니다. 다 이방인의 침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망하는 것이 세상적인 기준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사기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사기를 대함에 있어 이스라엘의 실패한 역사를 읽듯 하거나 동화 같은 이야기로 읽거나 아니면 타락하면 벌주시고 회개하면 복 주신다는 것으로 읽는다면 이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사기의 진정한 핵심은 사람이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의가 아닌 세상의 가치관과 신앙을 접목하거나, 세상에서 성공을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면 그 세상적인 기준으로 인하여 끊임없는 갈등을 겪으며 살 것이란 경고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사와 같이 그 심령 안에 하나님의 의가 생명의 본성으로 있어 그 본성으로 인하여 살아가게 되면 사사기에 나오는 그 모든 갈등을 이기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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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 첩의 사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사사기 Date : 2017. 12. 7. 10:31 Writer : 김홍덕

사사기 19장 이하에는 레위인이 행음한 첩을 먼 곳까지 찾아가서 데리고 왔으나, 오는 중에 묶고 있는 집이 있는 베냐민 지파의 땅에서 첩이 윤간을 당하여 죽게 되고, 이 레위인이 죽은 첩의 시신을 12개로 토막을 내어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 보내므로 사연을 알게 된 모든 지파들이 일어나서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하게 되는 사건이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사건 자체로도 참 아리송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의문스러운 것은 이것이 사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사들의 이야기일 것만 같은 사사기에 앞서 나온 미가의 제사장의 일과 이 레위인의 첩과 관련된 이야기는 사사들의 이야기도 아니기도 하고, 또 특별히 이방 족속이 쳐들어와서 전쟁을 하는 이야기도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족속끼리 싸우는 이야기인데 왜 사사기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가의 제사장에 대한 이야기와 이 레위인 첩과 관련된 이야기에 동일하게 나오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사사기 전반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의,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하였더니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것이 되고, 그래서 사사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본문의 말씀을 깔끔하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우리가 가진 사회 일반적인 지식을 접목하면 결코 쉽지 않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첩은 행음했다고 되어 있지만 내용적으로나 또 해당하는 단어의 사용법 중에 ‘반항’과 같은 의미도 있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단순한 부부싸움 정도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기본 주제가 하나님의 의를 떠난 사람들이 아들의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 안으로 사람이 회복되어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이 첩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예표하는 존재와 같습니다. 더구나 그 남편이 레위사람이라는 것이 더 그렇습니다. 레위사람이라면 제사장의 혈통이니 말입니다.


그것에 더하여 성경 전반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떠난 것을 행음한 것으로 늘 말씀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여자인 것을 접목하면 레위인을 떠난 여인은 그 자체로 행음한 것이며 하나님의 의를 떠난 사람의 모습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게다가 레위인이 그 여인을 찾으러 갔다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신 마음까지 나타내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 레위인이 묶을 곳이 없었다는 것에서 말구유에 나신 예수님을 연상케 하지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레위인이 묶고 있는 곳에 비류(깡패)들이 와서 나그네인 레위인을 상관하겠다고 한 사건은, 남자인 레위인을 성적으로 상관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수 없이 많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상관하고 예수님 앞에서 자신들이 의롭다고 주장한 유대인들의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남녀의 성적 관계, 곧 남자의 유전자가 여자의 몸에서 잉태되어 남자의 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게 되는 이 법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와서 그것이 생명이 되는 것에 비유되는 것입니다. 즉 상관하겠다는 것, 내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겠다는 것은 나의 의를 주장하겠다는 것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소돔과 고모라의 때에도 있었고, 유다서에서는 육신에 대하여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다른 색을 좇는 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진 사회적인 관념으로 볼 때는 참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자신의 이야기로 분명하고 제대로 알고 보면 이 이야기가 다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볼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의 문자에 매몰되어서 본다면 이 말씀은 참 어려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더 이어가면, 그렇게 음행한 첩을 데리러 간 레위인은 하나님의 의를 떠난 사람들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나그네처럼 오신 예수님의 모습과도 같고 그의 첩은 그 의가 표현된 형식 곧 육신(성경에서 여자는 형식으로 나옴)인데 결국은 비류들이 레위인의 아내를 윤간하므로 그 여자를 죽게 만들기에 이릅니다. 즉 예수님의 육신을 십자가에 매달았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의를 주장한다고 예수님의 육신을 십자가에 단 것이나, 비류들이 자신들이 상관하겠다고 하므로 레위인의 형식이요 육신이라고 할 수 있는 첩을 윤간하여 죽게 만든 것은 같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레위인은 그 첩의 육신을 조각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내므로 만행을 저지른 베냐민 지파에 대하여 온 이스라엘이 전쟁을 선포하게 되고 결국 그 전쟁에서 이겼으나 전쟁에 나가기 전에 자신의 딸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겠다고 서원한 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게서 한 지파가 끊어질 상황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듯 자기 의를 주장한 사람들의 회복에 관한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A case of Levi concubine


In Leviticus chapter 19 and below, the Levites came and brought their concubines far away, but in the land of the tribe of Benjamin, where the house was bound, the concubine was gnanged and died, and this Levi It is written long that all the tribes who came to the tribe of Israel to take part in the tribe of the tribe of Israel, so that all the tribes who came to know the story would rise up to war with the tribe of Benjamin.


This event is also true in itself, but what is more questionable is what does this have to do with the judge. The story of the priest of Micah and the concubine of this Levi, which preceded the Judgment of Judges, is not the story of the judges, nor is it a story of the struggle of the Gentiles to come and fight; rather, It is a story, but why is it in judgment?


The story of Micah's priest and the story of this Levi concubine are the same,

"In those days there was no king in Israel, so they did what was right in their own eyes."

It is said. In fact, this word can be said to be the background of Judgment in general. I can see that people are in the context of having done what they think is right, doing evil in front of God, so that judges are in need.


In fact, it is not easy to explain this text neatly. If we do not look at the eyes of faith and grab our common knowledge, it is not easy. The concubine here is said to have been used for punishment, but it may have been a simple couples' fight because there is also the meaning like 'rebellion' in the content and how to use the corresponding word.


However, if the basic theme of the Bible is that people who have left the righteousness of God are restored to the fullness of God's purpose for the purpose of man's creation because of the love of God sent by the Son, The same. Moreover, the husband is a Levite. The Levites are the blood of the priests.


In addition to that, I have always said that through the whole Bible a man has committed punishment for leaving God's righteousness. When a man is a woman before God, a woman who has left the Levites is a prisoner of herself, It would be a reasonable approach to think that it is analogy. In addition, the fact that the Levites went to look for the woman revealed that God has sent us the Son.


Here is a reminder of Jesus coming to the manger from the fact that the Levite had no place to tie, but even if it was not so, the case that the Leviticans came to the place where the Levites were tied and said that they would care for the Levite, the stranger, , Which literally represents Jesus, the Son of God, as many of the Jews as they have claimed to be righteous before Jesus and care for God's righteousness.


In the Bible, the sexual relationship between men and women, the male gene, is conceived in a woman's body, and a child with a male sex is born. This law is likened to the righteousness of God coming into the human heart and becoming a life. That is to say, I am to have sexual relations because it is a symbol of asserting my righteousness. This was also the time of Sodom and Gomorrah, and in Jude it is said that those who claim different opinions from God about the flesh come from different colors.


Therefore, it is hard to understand when we consider it as a social concept that we generally have, but it is our story to tell if we can understand clearly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us, how God treats people, I know. So, if you look at it in the character of the case itself, it is a difficult word.


As the story continues, the Levites who picked up such unfaithful concubines are like the appearance of Jesus who came to this earth as a stranger to restore those who have left the righteousness of God, and his concubine is the form expressed in his righteousness, In the form of a woman), but eventually the divorce broke down the Levite's wife and led her to die. In other words, Jesus' body was hanged on the cross. It is the same event that the Jews made the body of Jesus crucified because they claimed their righteousness, but the divorce made them die in the form of the Levites and the concubines of the flesh.


The Levites carved their concubines and sent them to all the tribes of Israel, so that all Israel would declare war against the tribe of Benjamin, who had made atrocities, and eventually won the war. But before they went to war, they brought their daughters to the tribe of Benjamin It is a word about the restoration of those who claim to be self-righteous, as they crucified Him to receive salvation in a situation where one tribe from Israel would be cut off because of vowing not to 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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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의 우상과 교리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사사기 Date : 2017. 11. 30. 07:36 Writer : 김홍덕

미가의 제사장의 일은 한 눈에 보기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이 아닌 자기들의 법으로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성경에 비일비재합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에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에서부터 롯의 두 딸이 모압과 벤암미(암몬)을 낳은 일 그리고 사울이 자기 맘대로 제사를 지낸 일 등등 두께가 좀 된다 싶은 성경 곳곳에 넘쳐납니다.


사람들의 이런 습관은 오늘 날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상을 만들 듯 자기 맘대로 규정하고 그 섬기는 법도 스스로 제사장을 세우듯 맘대로 하고 있습니다. 물로 겉으로 보면 티가 나지 않습니다. 다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합니다. 미가의 신상을 지은 미가의 어미도 여호와를 위하여 한 것이지 바알이나 아세라를 위하여 신상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아닌 종교단체의 지주회사격인 교단별로 헌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교단의 신앙 교리와 교회 운영에 대한 헌법이라는 것입니다. 그 헌법의 토대는 당연히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헌법은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이것은 틀린 것이 전혀 없는 온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액기스만 뽑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행정에 관한 것은 제외하고.


교리는 성경과 다르지 않지만 성경의 의도와는 다릅니다. 교리는 성경대로 사는 결과의 단면일 뿐입니다. 교리를 지킨다고 성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지키면 교리가 말하는 삶을 사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교리를 지킨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확한 방향성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개는 짖지만 개소리로 짖는다고 개가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알고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되어 살면 그 살아가는 모습이 의도하지 않아도 교리를 지키는 것이 되지만 교리를 지킨다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류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외치시던 것이지만 오늘날은 단지 달력의 시대로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산다는 것 하나 만으로 성경을 지키면서 사는 것은 복음이라는 교묘함에 다들 빠져 있는 것입니다.


교리의 이러한 면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것을 능동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하나님께 행위의 소산을 드리며, 의지를 가지고 교리를 지키는 신념과 열정이 곧 믿음이고 신앙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단지 하나님의 의를 자기 정체성으로 순종하는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것이며, 그 수동적인 순종으로 인하여 받아들인 하나님의 의가 자기 생명의 본성이 되므로 그 본성대로 살아보니 성경은 자연스레 지켜지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고 성경의 말씀입니다.


이런 역방향과 오류 속에서 사람들이 살다가 보니 이젠 너무 자연스러울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이 무엇을 드리는 것이며, 성경은 원래 사람이 지키기 어려운 것인데 그것을 얼마나 지켜내는지가 바로 믿음의 척도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고, 무엇을 어떻게 드리며, 무엇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학문으로 연구한 것이 신학이 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무형의 우상이 양산되는 것입니다. 미가의 신당이 양산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바로 미가의 어미가 ‘여호와를 위하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체성과 다르게 하나님을 믿는 모든 것이 다 우상입니다.


우리는 신상이나 우상(드라빔)이라고 하면 형상화 된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하나님을 믿으려면 이렇게 해야 해!’라고 하는 모든 것들도 사실 우상입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섬기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은 다른 신앙, 다른 종교, 또 세상의 가치관 안에서는 기특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구분)하시고, 사람들이 열심을 가지로 ‘이래야 해!’라고 하는 것은 이방인의 신앙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 이면에는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을 본질로 보고 육신이 풍요해지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이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교만함이 있습니다. 자신이 풍족해지는 것이 하나님께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놀라운 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만을 채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화를 면케 하신다.’는 기반을 행위에 둔 조건을 성경에서 찾아 정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오늘날 함축된 것이 바로 교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우리 육신이 복을 받는 것으로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나 순교자들은 다 벌 받은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에게 유일한 복은 지음 받은 목적대로 소비하는 것입니다. 망치는 못 박는데 사용되는 것이 가장 큰 복이지 잘 보관되는 것이 복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렇듯 우리 육신의 삶은 소비되는 것이고 점점 쇠약해 지는 존재인데 이것에 반하는 것을 복으로 여긴다면 이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듯 이 육신에 대한 생각이 모든 우상을 양산하는 근원입니다. 이 육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본성이 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에 소비되는 것이 진정한 복이고 우리 삶의 목적이며 정체성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 육신이 복을 받기 위하나 조건으로서 성경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리 같은 것은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므로 소비하는 삶의 모습이 바로 교리로 정리한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우상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지는데 왜 뭔가를 형상화하거나 자기 행위를 믿음의 근거로 삼겠습니까? 자기 안에 하나님의 의가 너무 확실하게 있고, 성경이 마치 자신의 일기 같이 여겨지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증거로서 우상이나 자기 행위나 신념과 같은 무형의 우상과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교리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그렇게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삶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그리스도와 같은데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것을 자기 몸 밖에 정리해서 기록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를 자꾸 하려는 것, 교리를 지켜야 된다고 하는 것은 모두 마음에 불확실성을 그것으로 채우려는 것일 뿐입니다. 자기 행위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 않기 때문에 원칙을 정해서 그렇게 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본성이 일찍 일어나는 사람, 그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알람 시계가 필요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위하여 지은 미가의 신당과 같이, 오늘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며 이것도 지키고 저것도 지키려는 그 무형의 모든 우상들은 모두 자신 안에 하나님의 본성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려는 몸부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런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노력으로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수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순종한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서 땅에 심긴 씨가 생명이 되듯 자기 본성이 되어 그 본성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에게 ‘이렇게 해야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는 문자가 왜 필요하며 교리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교리나 우상은 자기 속 심령에 하나님의 의가 없는 사람만 필요한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Micah's idols and doctrines


The work of the priest of Micah is at a glance, but it is an event that shows how people believe in God by their law, not the law of God. These events are in the Bible. From the birth of Ishmael in Hagar to Abraham, the two daughters of Lot flooded the Bible, where Moab, Ben Ami (Ammon) was bore, and Saul had made his own sacrifice.


This habit of people does not stop today. I have decided that God will set my soul as if I will make a statue, and I will do whatever I want to do as a priest himself. Water does not come out on the surface. It is from the Bible. The mother of Micah who made the image of Micah was also for the LORD, not for Baal or Asherah.


There is a constitution for each denomination, which is the holding company of the church and not the religious organization. It is the constitution of the denomination's doctrine of faith and the administration of the church. The foundation of the constitution is, of course, the Bible. So the Constitution is the standard for believing in God. From a formal point of view, this can be said to be complete without any mistakes. It is not an exaggeration to say that only the bloom was extracted from the Bible. Of course, except about administration.


Doctrine is not different from the Bible, but differs from the Bible's intent. Doctrine is only a cross section of the result of living the Bible. It is not to keep the Bible to keep the doctrine. By keeping the Bible, it is natural to live a life of doctrine, but it is not to believe in God that it keeps the doctrine. There is a clear directionality problem. This is the same as if a dog barks but does not bark as a dog.


If we know God's intention and live the righteousness of God in our own nature, we will keep our doctrine even if we do not intend to do so. This error is what Jesus had cried out about, but today it is only in the age of the calendar that living the age after Jesus is living in the cleverness of the Gospel to live by keeping the Bible alone.


This aspect of doctrine makes people think that believing in God is an active one. It is what makes you believe in God, faith, and faith in giving what you give to God, giving you a source of action, and keeping your doctrine with will. However, faith is essentially passive in obeying God's righteousness with his identity, and because the righteousness of God, accepted by his passive obedience, is the nature of his life, It is a law and the Word of the Bible.


In this reversal and error, people have lived and believed in God to be so natural that what he is giving to God is that it is difficult for the person to keep the Bible and how to protect it is a measure of faith It is the theology that studied how to give something, what to give, and how to keep it.


It is here that intangible idols are mass-produced. It means that the new party of Micah is mass-produced. This is because the belief that 'doing this is for God' is the same as what Micah's mother says 'for the Lord.' Idol is not different. Unlike God's identity, all things that believe in God are all idols.


We think of a figure or idol (Drabim) only when it is shaped. However, not all people are obedient to God's righteousness, but everything that they say, "If you believe in God, you must do this!" To do that means to serve. God is different, though I do not know if he is unique in other faiths, other religions, and world values. It is the belief of the Gentiles that God is holy, and that people should be enthusiastic about it.


It is arrogant to think that it is blessed by God to see the physical life of the human body and to see that the body is enriched under such a thought of people. There is an amazing pride that thinks that being rich is beneficial to God. And in order to fill that pride, the Bible determines the condition that puts the foundations of the act, 'This is God's blessing and anger'. It is the doctrine that the idea implies today.


Faith in God can not be measured as our bodies are blessed. Jesus and the martyrs on the cross will all be punished. The only blessing to our flesh is to consume it according to its purpose. It is the greatest blessing that is used to nail the hammer, and it is not a blessing to keep it. As such, our physical life is consumed and gradually weakened, and if we bless what is contrary to this, God who made this life becomes a fool.


As such, the idea of ​​the body is the source of all idols. If we know that this body is obedient to God's will and that it is the true blessing, the purpose of our lives, and identity, which is used to represent God's righteousness, we are naturally blessed by this body, I will not. Doctrine and the like do not need to be summarized. Because the form of life we ​​consume in obedience to the righteousness of God is the life of the saints as summarized in doctrine.


Then, of course, you do not need an idol. Why is it that the uncertainty of believing in God disappears, and why should we shape something or use it as a basis for our faith? There is so much righteousness in God that there is no need for idols, idols, or intangible idols, such as beliefs, as proof of faith in God to those who are considered Scripture as their diary. Doctrine is not necessary. It is precisely that you do not have to sort it out. It is like Christ, who expresses the righteousness of God, where his life needs to be recorded outside his body.


To do something for God, to keep the doctrine is all to fill the uncertainty with it. It is only because we have set our principles and do so because our actions are not the same as God's Word. People who have an early nature, and those who have become customs are like those who do not need an alarm clock.


Therefore, like the Micah of the New Testament, which is built for Jehovah, all the intangible idols that keep this, and keep it, are just struggles to supplement it because there is no God's nature in them. And unfortunately I can not go to heaven with such an effort. It is not a place to go for hard work.


Faith is passive. So faith comes from hearing. He who is obedient to God's righteousness is the righteousness of God, as the seed planted on earth is his life, becoming his own nature and being able to live according to its nature. Why do we need the letter "To believe in God so well" that we have to live according to the nature of God and why doctrine is needed? Doctrines and idols are necessary only for those who do not have the righteousness of God in their own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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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의 신상과 제사장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사사기 Date : 2017. 11. 25. 21:01 Writer : 김홍덕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은 1100을 잃어버렸다면서 아들을 저주했는데 아들이 그 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미가 그 은을 여호와께 드린다면서 은으로 신상을 부어 만들고 제사장의 옷 에봇과 드라빔(가족의 신상?)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가는 자기 아들 중에서 하나를 제사장으로 삼았다가 유대로부터 온 레위인 소년을 보고서 그를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땅을 구하는 단 지파가 미가가 세운 제사장을 데리고 가서 자기들의 제사장으로 삼기까지 번집니다. 그리고 성경은 미가가 이렇게 했던 것은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자기가 좋은 대로 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에 가진 기준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자기 만의 신상을 만들고 자기만의 제사를 만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좋은 대로 한다는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스림은 사람 밖에 있는 왕과 같은 권력이 대표적이겠지만 더 실질적인 것은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있어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자기 몸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알고 보면 그것이 바로 자기 좋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자제품이나 기계와 같은 것은 사서 사용하다가 자신이 뜻한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이것이 자기 맘대로 움직이네.’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도 많습니다. 컴퓨터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유도 모르게 작동하면 그야말로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듯 사람들은 그 본성 안에 어떤 것이든 존재하는 목적을 기대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사람이 자신이 만든 물건과 사용하는 것에 목적대로 작동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역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화론과 같이 사람이 스스로 진화했다면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진화는 원리를 떠나 존재의 목적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의 시대를 맞기 이전에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의 규례는 물론이고 십계명을 주시면서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일의 원인이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왕을 원할 때에 싫어하셨습니다. 왕이 없어서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데 왜 왕을 세우는 것을 싫어하셨을까요? 그것은 왕이라는 존재는 결국 사람이 자기 마음으로 왕으로 인정할 때 왕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왕이 있어도 사람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왕이 없어도 자기 마음에 순종하는 바가 있다면 왕이 있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는 것을 반대하셨던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왕이 필요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굳이 왕이 없어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 것이며, 그렇게 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정치적인 어떤 조직이나 기구가 없어도 충분히 평안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우상을 만드는 것은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마음에 믿는 어떤 신이 있어도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그 확신을 대변할 어떤 신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신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상은 약속어음과 같은 것입니다. 서로 믿는 것이 확실하다면 보증 같은 것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를 신용사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용사회라면서 갖가지 인증이나 보안을 얼마나 까다롭게 하는지 모릅니다. 믿는데, 신용사회인데 뭔 보안이 그리 필요하겠습니까? 결국 사람들이 말하는 신용 곧 믿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서로를 믿지 않는 것을 보장하는 보안과 인증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이나 신상이 바로 그 짝인 것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이 물체로서 하나님의 신상을 만들지 않는다고 미가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은 자기 행위를 우상으로 섬깁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 확신이 없으므로 자기 행위가 어떤 것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교회에, 예배에 피곤해서 깜박 잠들어 가지 못하면 신앙이 나태해졌다고 말합니다. 자기 신앙의 확신과 증거를 자기 행위에 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것도 다 우상입니다. 달리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지만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기에 지키는 것이라고 하신 것과 같이 오늘도 신상을 만들지 않아도, 또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척도를 자신의 행위나 습관에서 증거를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확실한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확실한 왕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자기 좋은 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이 뜻하시는대로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Micah's Priest and Priest


There was a man named Micah. Micah's mother cursed his son, saying that his son had lost 1100, and his son had the silver. Then he said that the mother gave the silver to the LORD, and poured out his statue with silver, and made the clothes of the priest, the ephod, and the drabam (family statue?). And Micah took one of his sons as priest, and he saw a Levite from Judaea, and set him up as a priest.


And this thing does not cease there, but the Dan tribe who saves the land takes it with the priest whom Micah set up to make it their priest. And the Bible explains that Micah did this because he did not have a king, so people did what he liked. It is said that what one thinks as a good standard in his mind makes his own image and makes his own sacrifice.


To be good is to have no control over yourself. The power is like a king outside a person, but the more practical thing is in a person. Every man is in himself because he does what he considers right in his own body. And if you know, that's what you do.


People buy things like electronics or machines, and if they do not move as they like, they say, 'This is what you want.' Sometimes it is better not to work at all. It's just computers. If it works without knowing why, there is no doubt that it will be frustrating.


As such, people can see that there is something in the nature that expects an existing purpose. Naturally, one expects a person to work in purpose with his own goods and uses because God has made man so. Therefore, people also need to know that there is a reason for their existence. If a person evolves by himself, like evolution, he can not know where his purpose is. Evolution can not explain the purpose of existence away from the principle.


God has already told the people not to make a statue of God by giving Moses the commandment of the priest and the Ten Commandments before the time of Judgment, but because there is no king, I have done. It is said that the cause of all this is because there was no king.


However, God hated when people wanted a king. Why did they hate to build a king because they did not have a king and people broke God's commandments at their own discretion? It is because the existence of a king eventually becomes a king when a man recognizes himself as a king with his own heart. No matter how a king is, it is useless if a man does not recognize him as a king. On the contrary, if there is a king who does not obey his heart, it is a person who exercises his power more than the king has.


God opposed setting up a king because he knew that if he obeyed God, he would not need a king. If a man is willing to obey the law of God in his heart, he will obey God's law and obey him without a king, and if there are people who obey God's law, .


To make a person idol is to secure certainty. If there is no god who believes in the heart, but there is no certainty about it, it is to create a certain image that will represent that conviction. People who believe in God also make a picture because they do not have confidence in God. So an idol is like a promissory note. If you are sure to trust each other, you do not need a guarantee.


Today's society is called credit society. However, credit society does not know how complicated it is to certify various security. I believe, credit society, but what security do you need? In the end, what people are saying is that trusting beliefs is a belief in each other, not a belief in security and authentication that guarantees that you do not trust each other. An idol or a statue is that pair.


It is no different from Micah that people today do not make God's image as an object. These days we serve our deeds with idols. He is not convinced of believing in God, so if his actions do anything he considers God to be good. So sometimes the church tells us that if we are tired of worship and can not sleep asleep, our faith has become lazy. It is proof that I am confident in my faith and put evidence in my act. It is all idol. It does not mean that man's actions can not be justified before God.


Even though Jesus did not keep the Sabbath, but he kept himself as the master of the Sabbath, and he did not make a picture of himself today, and when he had a certain faith that he did not have to find evidence in his act or habit, It is to believe in God. Because it is proof that there is a certain king who rules his mind. Then, of course, he will not do what is right, but will do what God w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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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은 성공한 사사인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사사기 Date : 2017. 11. 4. 09:31 Writer : 김홍덕

삼손은 장인이 그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준 일로 여우를 잡아서 둘씩 꼬리를 묶고 그 묶은 꼬리에 횃불을 꽂아서 추수할 때가 된 블레셋 사람들의 밀밭에 풀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분노한 블레셋 사람들이 그 일의 원인이 삼손의 아내와 장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을 불태워 죽였고 그러자 다시 삼손이 그 일을 이유로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도륙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를 침공하게 되고 유다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침공의 이유가 삼손에게 있다는 것을 듣고서는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삼손을 찾아가서 삼손을 적국인 블레셋에게 넘겨버립니다. 마치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넘긴 것과 같이. 물론 그럼에도 삼손은 결박당한 밧줄을 불 딴 삼과 같이 끊고 다시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삼손은 사사로의 삶을 사는 동안 처음에 얻었던 그 블레셋 사람 아내로 인한 일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 아내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힘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블레셋인 아내를 취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삼손이 이방인 아내와 다음에 나오는 기생 들릴라에 빠져 인생을 망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결국은 들릴라의 꾐에 빠져 자기 힘의 비밀인 머리를 밀리고서 힘없이 잡혀가서는 눈이 뽑힌 체 조롱당하는 모습에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 교회를 다녔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그런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렇게 실패한 사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삼손은 다른 사사들에 비하여 예수님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동족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하신 것처럼 블레셋 사람들을 나귀 턱뼈로 물리치다 목이 말라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심 같이 블레셋사람들의 성전 기둥에 묶여 있다 그것을 무너뜨림으로 죽으면서 많은 이방인을 죽이는 것 역시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이방인의 본성을 이기게 하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 늘 강조하는 바와 같이 <육신의 행위 – 그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 – 하나님의 판단에 따른 축복 혹은 심판의 벌>이라는 관점에 봐왔고 지금도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그렇습니다. 특히나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아예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학문으로 만들어 공부하고, 그 공부의 결과로 얻은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신분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반응이 달라지는 그런 가치관 위에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삼손은 참 간단한 사사로 보일 수 있지만 삼손은 사사기에서도 아주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그 행적을 전하고 있는 (대)사사입니다. 단순하게 하나님이 정한 법을 어겨서 혼나고 하나님이 다시 힘을 주신 그런 사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손과 예수님의 유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삼손 

예수님 

다른 사사들이 군사를 일으켜서 전쟁을 하였으나 삼손은 홀로 활동(삼손 이후에 더 이상 사사가 없음)

예수님 이전에는 선지자가 많았지만 예수님은 왕이요 제사장이시므로 선지자 활동이 끝남(세례요한이 잡히시자 복음을 전하셨다고 함)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인의 아내를 취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일이 생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죄인들을 구하러 세상에 보내심

 블레셋을 크게 물리치자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왔고 동족이 블레셋에게 삼손을 넘김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말씀을 전하였지만 제사장과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짐

사사로서 블레셋 사람을 물리치는 중에 목이 말라 부르짖음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상에서 목이 마르다고 하심

하나님의 신이 떠나심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힘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버리심

블레셋인들의 신전 기둥에 묶여 조롱을 당하였으나 기둥을 무너뜨려 많은 이방인을 죽임

십자가에 달려 조롱 받고 죽임을 당하였으나 그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됨(사람 안에 있는 이방인의 본성을 이기게 됨)



모든 사사들이 형식을 본질로 보는 이방인의 가치관을 물리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삼손도 그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셨고, 예수님의 그 말씀을 전한 사도들도 그것을 누누이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고 삽니다.


육신을 소비하려 하지 않고 보전하고 안위하는 것을 복이라 여기는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면서 오히려 그 관점으로 성경을 역으로 해석하여 신학을 만들고 교회에서는 세상에서의 성공이 하나님의 복이라며 자신들의 가치관과 같이 육신의 안위와 보전하는 것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의 육신과 재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인의 본성을 이겨내는 것에 소비했습니다. 삼손은 그렇듯 성공한 사사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Is Samson a successful judge?


Samson took the fox by his craftsman's wife to another man, tied his tail by two, and put a torch on his tied tail, and unpacked it into the wheat fields of the Philistines who were to be harvest time. As a result, the angry Philistines found that the cause of the matter was the wife of Samson and the craftsman, burned the two men and burned them, and Samson said that he had slaughtered the Philistines greatly because of his work.


And when the Philistines invaded Judah, and the people of Judah heard that the cause of the invasion of the Philistines was in Samson, three thousand people went to Samson and handed Samson to Philip, the enemy. Just as Judas Iscariot handed Jesus over. Of course, Samson cut off the rope that was bound, and he killed many Philistines again.


Samson was almost entirely the result of that first Philistine wife, while living the life of Sasaro. I have used the wonderful power God has given to me in connection with his wife. And that taking the Philistine wife is certainly from God.


We often think of Samson as the strangest wife and the next bride of the giants who ruined life. Especially in the end, I think that all of it is a violation of the commandment of God in the appearance of being pulled out of the eyes and pulled out of the power, the secret of his power, If I had attended church in my childhood, I would have listened to such a sermon at least once.


But it is hard to see Samson as such a failed judge. Rather, Samson has much in common with Jesus' life than other judges. Like the betrayal of your own people, as Jesus said you were thirsty on the cross, defeat the Philistines with the jawbone of the donkey. They cried out to you for being thirsty, and crouched on the cross as you were tied to the pillars of the temple of the Philistines. Killing many Gentiles is also linked to the death of Jesus, which overcomes the nature of all the Gentiles in us.


As we always emphasize in the Bible, we have seen in the view that "the act of the flesh - the judgment of God on the act - the blessing or judging according to God 's judgment" and most believers still do. In particular, those who have studied theology have made the study of the Bible academically from this point of view, and because of their livelihoods based on the results of their studies and maintaining their own identity authority.


But the Bible is not such a story. It is not a book written on such values ​​that the response of God depends on what we do. From that point of view, Samson can be seen as a simple simple example, but Samson is a great judge who has spent a great deal of his time in the Judges. It is not simply the judge who is disgusted by the law that God has ordained, and who has given God strength again.


Let's look at the similarities between Samson and Jesus: Samson took a fox by his craftsman's wife to another man, tied his tail by two, and put a torch on his tied tail and unpacked it into the wheat fields of the Philistines who were to be harvest time. As a result, the angry Philistines found that the cause of the matter was that of Samson's wife and craftsman, and burned the two men and burned them, and Samson said that he had greatly slaughtered the Philistines because of his work.


And when the Philistines invaded Judah, and the people of Judah heard that the cause of the invasion of the Philistines was in Samson, three thousand people went to Samson and handed Samson to Philip, the enemy. Just as Judas Iscariot handed Jesus over. Of course, Samson cut off the rope that was bound, and he killed many Philistines again.


Samson was almost entirely the result of that first Philistine wife, while living the life of Sasaro. I have used the wonderful power God has given to me in connection with his wife. And that taking the Philistine wife is certainly from God.


We often think of Samson as the strangest wife and the next bride of the giants who ruined life. Especially in the end, I think that all of it is a violation of the commandment of God in the appearance of being pulled out of the eyes and pulled out of the power, the secret of his power, If I had attended church in my childhood, I would have listened to such a sermon at least once.


But it is hard to see Samson as such a failed judge. Rather, Samson has much in common with Jesus' life than other judges. Like the betrayal of your own people, as Jesus said you were thirsty on the cross, defeat the Philistines with the jawbone of the donkey. They cried out to you for being thirsty, and crouched on the cross as you were tied to the pillars of the temple of the Philistines. Killing many Gentiles is also linked to the death of Jesus, which overcomes the nature of all the Gentiles in us.


As we always emphasize in the Bible, we have seen in the view that "the act of the flesh - the judgment of God on the act - the blessing or judging according to God 's judgment" and most believers still do. In particular, those who have studied theology have made the study of the Bible academically from this point of view, and because of their livelihoods based on the results of their studies and maintaining their own identity authority.


But the Bible is not such a story. It is not a book written on such values ​​that the response of God depends on what we do. From that point of view, Samson can be seen as a simple simple example, but Samson is a great judge who has spent a great deal of his time in the Judges. It is not simply the judge who is disgusted by the law that God has ordained, and who has given God strength again.


Let's look at the similarities between Samson and Jesus.

 Samson

 Jesus

 The other judges caused the war to war, but Samson alone (after Samson no more judges)

 Before Jesus, there were many prophets, but since Jesus is the King and the priest, the work of the prophets is finished (John the Baptist was caught and told the gospel)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he became a wife of the Gentiles, and a lot of things happened to him.

 God sent the sinless Jesus to save the world in order to save the world

 The Philistines fought against the Philistines, and their brethren handed Samson over to Philistia.

 He raised many miracles and preached the word, but was handed over to priests and Roman soldiers.

 As a judge, I cry out as I am thirsty while defeating the Philistines

 He was thirsty on the cross to save people.

 The God of God is leaving the Philistines

 God on the cross discarded

 They were tied up by the pillars of the temple of the Philistines, but they destroyed the pillars and killed many Gentiles.

 He was ridiculed and slain on the cross, but because of that many people were saved (to overcome the nature of the Gentiles in man)



All the judges have done the work of rejecting the values ​​of the Gentiles who see the form as the essence. Samson was like him. And Jesus also told us that what we see in our eyes is not the essence, and the apostles who preached the word of Jesus stress it well. Today, however, we still know what we see in the nature.


Instead of consuming the body, we live in the hearts of the Gentiles who are blessed to preserve and reassure themselves, but rather interpret the Bible as a reverse view to make theology. In church, success in the world is God's blessing. I believe in God for comfort and preservation. But Samson consumed his body and talents to overcome the nature of the Gentile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Samson is as successful as h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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