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인의 성경 보기/로마서' + 114

로마서가 후반부로 가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변화라기보다는 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품(그리스도의 성품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그 공동체 안에서 율법을 행위로 지키지 않는 안목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말씀들로 확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장된 말씀을 기록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자기 생명이 된 사람들은 같은 생명을 가진 이를 찾고 그렇게 모여서 공동체가 되는 본성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생명을 가진 거의 모든 존재들의 습성이기도 합니다.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그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기를 소망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 공동체에 대한 본질을 로마의 교회 안에 있는 문제와 연관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로마 교회에 한정된 문제인 것 같지만 교회라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가장 본질적인 것만 분명하면 나머지는 다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표준이 제시되면 의로운 것은 의로운 것으로 심판 받을 것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니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의로운 자와 심판받을 자가 자동적으로 정해진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고 하면 일단 목사나 전도사와 같이 신앙을 세상과 같이 공부한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사람이 모일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의가 삶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공동체가 생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로마 교회에 들어온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관습이나 혈통이나 성경의 지식과 같은 것을 공동체의 근간으로 삼지 말고, 그것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12장에서부터 형제와 우애하고 사랑하며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고 하고, 또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하여 수고하라고 하는 이 말씀들은 “자 우리가 로마서를 읽었으니 오늘부터 서로 화평하고, 믿음이 약한 사람을 잘 돌봅시다.”라고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고 독려하는 것이 아이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해서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독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아이의 삶이 사람답고, 풍족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성경의 모든 말씀도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셨다고 우리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는 믿음이 약한 자를 책망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로마서에 그러지 말라고 했으니 억지로 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합니다. 그런 행위가 바로 선지자 노릇이고 회 칠한 무덤이라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바리새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이런 모습입니다. 사람이 아닐 것 같지만 사람의 마음은 다 느끼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행동으로 내용이나 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렇고 교회 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행동으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이란 속사람과 무관하게 행동만 성경대로 하면 의로워진다고 여기는 것이니, 믿음 약한 사람을 책망하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겉으로만 비판하지 않는 것이나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 이후에 많은 행위 규범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 규범을 제시하기에 앞서 먼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12장 이후에 제시된 많은 행위 규범은 결국 그 육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무엇입니다. 그런 행위규범들을 지키라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나머지는 다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서를 마감하는 16장에서도 드러납니다. 많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동역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의도한 것은 바울이 호명한 사람들이 로마 교회에 오거든 잘 대접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 로마서를 마치면서 수상소감에서 관련자를 호명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게 다양한 신분과 혈통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문안하라는 것은 로마의 성도들이 사람의 외모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의가 그 심령 안에 있기만 하면 존경하고 또 같은 의로 불러 서로 화평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부지불식중에 그 모든 사람을 문안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로마서의 모든 말씀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가 심령 안에 있으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되며, 형제를 용납하고, 사람의 외모가 어떠하든 그리스도의 의만 있으면 같이 화평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전하고자 한 신령한 은사고 믿음이며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로마서를 읽는 이유가 되고, 묵상함으로 깨다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읽고 그 말씀을 행위규범으로 보고 육신을 그렇게 다스리려 하면 거꾸로 읽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로마서 뿐 아니라 모든 성경과 말씀을 대함에 있어,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육신이 행동하는 것이 성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이유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을 지키는 것이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며, 로마서가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이상으로 로마서에 대한 글을 마치고 다음부터는 야고보서가 이어집니다.)



(Translation by Google)


Why we should read and meditate on Romans 3


There is a slight change as Romans move to the second half. Exactly, rather than change, it can be called expansion. Extensions to the words of Christians who have a community of people with Christ's character (God's character for God's purposes), and Christians who have an eye for keeping the law in their community It is.


There is a reason why I have written these extended words. It is because the righteousness of God is the self-life of those who have the same life, and the fact that they are gathered together and become a community is in it. It is also the habit of almost all beings with life. It is because there is a nature that desires the beings of the same life to enjoy the abundance of life.


The Apostle Paul speaks about the fundamental identity of the church community, which seems to be limited to the Roman church because it explains the nature of this community in relation to the problems in the Roman church. If it is clear that the most essential thing is whatever it is, everything else is cleaned up. When a standard is presented, the righteous will be judged to be righteous. Jesus came to this earth, just as the righteous and the judge of God's righteousness were automatically determined.


Many people think of the church as having a person who has studied faith like the world, like a pastor or evangelist, and that there should be space for people to gather. But Paul's thoughts are different. If the righteousness of God is manifest in life, then it is God's community. So the Jews who came to the Roman church are not talking about the Jewish customs, pedigree, or knowledge of the Bible.


These words, which the apostle Paul says to love and love with his brother and to make peace with everyone as he can, and to labor for those who are weak in faith, as in Romans 12, said, "Now that we have read the Romans, Let's take good care of a weak person. " This means to be a person with a nature that can not live without it.


It is not that we encourage our children to "study" and encourage them to study because they want to see the child sitting at the desk and studying. We ask our children to study because it is hoped that the life of the child will be humane and affluent in the future. Likewise, all the words of the Bible are not what God wants us to see on our knees praying that God has asked us to pray.


A man is filled with a desire to reprove a weak man in his heart, but he said not to do it in Romans; No, I do not. This is the very nature of the Pharisee who Jesus reproved because he was a prophet and a grave. And unfortunately most of the churches and Christians we know are like this. It is not a person but a person's heart.


Everything that the apostle Paul says is not a change of content or righteousness by action. This is the way the law works and how we treat people in the church. This is so natural. A person who wants to be justified by action is to act unrelated to the inner self, but to act according to the Bible, because it is the same thing that does not criticize outwardly while enduring what he wants to reprove a weak person.


The Apostle Paul offers many codes of conduct after Romans 12. However, before presenting all of these rules of conduct, he first said, "Give your body as a holy mountain priest pleasing to God." Therefore, many of the rules of conduct presented in Chapters 12 and later are the images of the lives of those who gave the flesh to God as holy Buddha. So what is this? Do you mean to keep those codes of conduct? That's not it. It is to be offered as a sacred mountain priest. If it is, the rest is done.


This is also revealed in chapter 16, which concludes Romans. It is that many of the Saints in the Roman Church asked to salute Paul's co-workers. Paul's intention was not to say that Paul's callers should come to the Roman church to serve him well. It is not much to call the people involved in the award testimony after completing the Romans.


It is to be greeted by those who have so many different identities, pedigrees, and values, that the saints of Rome should be honored, justified in the same righteousness, and peaceed with one another, as long as the righteousness of Christ is in his heart, regardless of the person's appearance. If you become such a person, you will greet all of them in the land.


Thus, all the words of Romans agree with the words of Jesus that we should seek the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first. First of all, if the righteousness of God is in the soul, you will be a person who keeps the law, a righteous man before God, a brother who will tolerate his brother, and a man of peace with Christ's righteousness. This is the spiritual gift, faith, and gospel that the apostle Paul would like to present.


Therefore, this is the reason we read Romans today, and that we should be meditating. If you read Romans and see the word as a code of conduct, and you want to rule the flesh, you read it upside down. It is a person who lives in opposition to God. In today's world, not only in the Romans, but in all Scripture and in the Scriptures, reading the Bible and acting in the flesh as it says does not keep the Bible, but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in the Bible is the purpose and reason of his life, To live according to the Word, and is the lesson that Romans gives us.


(This is the end of the writing on the Romans, and the following on the pages of James.)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율법은 단지 십계명이나 유대인들의 관습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율법은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된 사람이 살아가는 생명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생명들이 가진 고유한 습성과 같은 것입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는 것은 그 본성 때문이듯,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되면 그 살아가는 모습이 안식이고 살인하지 않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의로움이 생명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은 그것과는 반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행동을 바꾸면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이란 존재를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한 존재로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지만,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야 하는 부끄러운 존재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선 사람이란 존재 그 자체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고 단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셨지만, 사람은 그와는 반대로 ‘이 꼴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의롭지 못한 것을 어떻게 가릴까 생각하던 사람(아담)은 율법의 옷(이스라엘의 나라나무인 무화과 나뭇잎)을 입습니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여기다보니 하나님 앞에 가기 위하여 그 부정함을 어떻게 감출지 고민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는 ‘옳거니 이것을 지키면 사람이 가진 부정함을 감출 수 있겠구나!’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이 주신 이 육신의 삶이 온전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꾸로 죄인입니다. 사람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율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표현되신 분이기 때문에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육신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율법의 의가 드러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볼 때 예수님은 신을 모독하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기준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로 인하여 율법으로 나타나기도 한 하나님의 의가 만 천하에 다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바야흐로 율법이 완성된 것입니다. 율법을 행위로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른다는 사람들의 안목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의가 심령 안에서 본성이 되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보이는 사람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7장에서 8장으로 넘어가면서 보여준 극적 반적이 있는 고백이 이것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는데 이상하게 자신은 늘 죄인이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치 않는데 자꾸 죄인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고, 그래서 누가 좀 건져 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일이 자신의 모습과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백이 자기 안에 있어서 밖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모습, 또 자신과 같은 사람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정죄함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생명, 같은 본성을 가졌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정죄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같이 사람이란 존재가 부정하기에 율법과 성경을 육체로 지켜내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죄하는 이가 없는데 육신이 무엇을 지켜내어야 할 일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7장과 8장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본성을 가진 사람은 예수 안에서 끊을 방법도 없다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한번 나면 죽어도 고양이듯이,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거듭나서 그 본성이 생명이 되면 그것을 세상의 어떤 것이 부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로마서를 대할 때에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는 말씀을 육신의 삶에 필요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게 할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바보가 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로마서를 읽고서도 하나님 앞에 뭔가 자꾸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야…’, ‘성경을 봐야…’, ‘십일조를 해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아니면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 “좋은 믿음이다.”라고 가르치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성경의 노른자라고 하면서.


오늘 우리가 로마서를 읽고 묵상해야 하는 것은 말로만 예수님을 믿노라 하고 정작 교회에 가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신앙을 버려야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란 십계명과 유대인의 율법이 아니라, 신약성경이라도 그것을 지켜야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육신의 삶이 복 받고 험한 꼴을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믿는 사람이 조롱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세상이 선하게 여기는 가치관과 반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므로 세상이 그것을 조롱하고 심판하여 죄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 여기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로마서는 개밥보다 못한 것입니다.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말씀은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우리 육신이 되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방향이 먼저 하나님의 의가 있고 말씀을 지키는 삶으로 나타난 행동이 있는 것이지 행동으로 성경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반대방향의 가치관과 안목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로마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의 그 모든 것에 대하여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Translation by Google)


Why we should read and meditate on Romans 2


The law the Bible is speaking is not just about the Ten Commandments or the customs of the Jews. From God's point of view, the law is a characteristic of the life in which the righteousness of God is born. It is like the unique habits of many lives we know. When a bird is flying, and a fish swims, it is because of its nature, that when God's righteousness becomes life, his life is rest and not murder.


However, the view of those who see a person who lives the life of God's righteousness is the opposite of that. People think that if they change their behavior, God will be righteous. People think so because the point of view of being a person is different from God. He said that God saw man as a perfect being, and that he was very good at seeing it, but he who ate of the tree of good and evil saw man's appearance as a shameful thing to avoid God.


People are predicting that being a person can not be just before God in itself. God created man and liked it very much, but he thought that, contrary to this, man could not be righteous before God. In the meantime, the man (Adam) who wondered how to cover ashamed and unrighteous things before God is wearing the clothes of the law (fig tree and leaves). When a person contemplates the existence of a man as unclean, he is thinking of how to hide his uncleanness to go before God, while he contemplates the word of God and says, 'If you keep this, you can conceal the uncertainty of a man!' I will.


Those who think that the life of this flesh that God has given is perfect is a sinner upside down. If a person believes that he is not perfect, he must obey the law and gain righteousness before God, but if the law is not to keep it, he becomes a sinner. Jesus did it. Jesus is the Word of the flesh. And because God's Word was expressed in the flesh, he was the Lord of the Sabbath and came to complete the law. This is because the life of the flesh, in which Jesus is seen, is itself manifested in the righteousness of the law.


But those who think that they should keep the law were only a blasphemer. So they crucified on their own standards, ironically, because of it,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was revealed by the law, has been revealed all over the world. The law is now complete. In the eyes of those who keep the law by works and reach the righteousness of God, those who show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natures in the heart and manifest in the flesh is to become a sinner.


This is about the dramatic confession that the Apostle Paul showed in Romans 7 through 8. There is God's righteousness in Himself. Strangely, Himself is always a sinner. I do not want you to be a sinner. So it was so hard, so I wanted you to rescue somebody, but when I saw Jesus, Jesus' crossing was like his own.


The apostle Paul, who discovered it, confessed that he was in Jesus, so he confessed to thank God. And that such a confession is manifested in himself, and that the same man as himself is a man in Jesus, so he was not condemned before God. To be in Jesus means to have the same life, the same nature as Jesus, and there is no condemnation of God.


In other words, it is not that just as Jesus showed, man's being is denied and justified by keeping the law and the Bible in the flesh. There is no one to condemn, but where is the body to protect it? This is the words of Romans 7 and 8. And a person with such a nature has no way to stop in Jesus. Once a cat is born, even if it is dead, it is like a cat. If the nature is born into the nature of Christ, then there is no way to deny anything in the world.


Therefore, when we treat this Romans today, there is no need to break the love of Christ in the life of the flesh, so that if we ask God in the name of Jesus, there is nothing that will not make it happen. It is not to be.


What is really troubling is that many members of the church today try to keep something in front of God even after reading the book of Romans. 'I have to pray ... ',' The Bible ... ',' The tithe should be ... "God blesses," or "I do not have bad things." "Good faith." It is said that Romans is the yolk of the Bible.


Today we must read and meditate on the Romans because we believe in Jesus only by words and we must go to the church and do something to discard the belief that God is pleased. The law is not the Ten Commandments and the Law of the Jews, but the New Testament, if it is guarded, it will be made righteous before God, and God will be pleased, and the life of the flesh will be blessed and unworthy.


It is not that the believer in the Bible is taunted by the Bible, but because the world contemplates and lives in opposition to the values ​​that are good for the world, the world makes mockery and judgments to make sinners. However, for those who have faith in God's glory to be successful in the world, Romans is worse than dog food. I do not eat. It is not your own.


The righteousness and the Word of God that the Bible speaks is that the righteousness and the Word of God become our flesh and appear in the flesh. The direction is firstly God's righteousness and the act of preserving the Word, but there is no law to keep the Bible in action and reach God's righteousness. How can you come to the righteousness of God with the values ​​and perspectives of God's law and the opposite direction? This is why we should read Romans today. It is implicitly expressing all that in the Bible.


(Continue)



로마서는 흔희들 <성경의 노른자>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핵심적인 책이라는 말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로마서가 그렇게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사람이 가진 육신의 조건이나 행위나 다른 어떤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워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로마서는 바울 사도가 로마에 있는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편지를 쓴 목적은 이방인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로마 교회에 유대인들이 들어가면서 유대인만이 가진 것들이 있어야 더 좋은 복음이 된다고 말하였고 이에 많은 로마의 성도들이 이런 부분을 힘들어 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나, 또 자신들이 선민(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것들을 이야기하므로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경계하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믿음에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앞부분에서는 율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관습으로(행위로) 지키는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 한 것을 인함입니다. 이러한 풍조는 사실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일 대예배는 꼭 참여하여야 한다.”, “십일조 해야 한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이나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신앙의 어떤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욱이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이유, 즉 십일조와 기도와 성경읽기와 같은 것을 지켜내므로 얻는 것이 바로 육신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풍요와 안정이기에 더더욱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육신의 삶의 풍요와 안정을 주는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이방신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신들이 그것을 주관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이 시대 역시 바울 사도의 때와 같이 육신의 어떠함이 신앙의 조건이 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로마서 성경을 주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무도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로마서가 성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지금 이 시대 교회의 신앙은 로마 교회를 혼돈스럽게 한 유대인과 같은 신앙을 좋은 신앙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율법에 대하여 단호하게 이야기 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는 없다고 말합니다.(롬 3장) 그렇다는 것은 지금 이 시대도 성경을 읽고 그것을 행동으로 지켜낸다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읽을 것이 아니면 로마서를 읽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읽지 않는 사람에게 로마서는 성경의 노른자는커녕 휴지조각보다 못합니다. 성경책 종이로는 물도 닦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금은 신약시대이고 신약성경은 율법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합니다만 그것이야 말로 바보 중의 바보들의 소리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동으로 지키는 것과 신약성경을 행동으로 지키는 것이 어떻게 다릅니까? 빵을 훔치면 도둑이 되고, 성경을 훔치면 성자가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면 그런 말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이든 신약이든 그것을 육체로 지킬 때 의로워지고 성경을 지키고 성경대로 사는 것이라고 여기면 율법이나 신약 성경이나 심지어 복음조차 다 율법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로마서를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의 어떤 부분, 어떤 계시에 관한 것이라도 사람에게 그것을 먼저 행하게 하므로 하나님께 의로워진다고 생각하거나 가르치거나 강요하거나 훈계하는 모든 것은 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겠다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서가 말씀하고 있는 핵심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육체로서 그것을 지켜 행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보기에 행위 규범으로 보이는 그 율법과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사람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사람 안에 심겨서 그것이 성령의 잉태하심을 따라 생명이 되면, 그 생명이 살아가는 모양에 관한 것입니다. 즉 성경은 육신으로 지켜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면 그 육신이 사는 모양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처럼 생각합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육체로 지켜내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들에 대하여 증거하는 책이지 아들이 되는 법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니 성경과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이든 성경이든 그 무엇이라도 그것을 지키고 행하여 성경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성경이고 율법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하라”, “지키라”라고 하신 말씀들은 그렇게 사는 본성을 가진 생명이 되라는 것이지 그것을 지켜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의 전반부에서 바울 사도는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인들,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 의로워진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는 그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되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할례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시고 할례가 있었다고.


따라서 사람은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자기의 존재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것이 순종될 때 그 사람 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의이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은 목적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이 가진 본성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이 성경이 말씀하신대로인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고서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행동이 먼저가 아니라 의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 의에 사람이 순종하여 자기 심령 안에 땅에 씨가 심기듯 받아들이면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그것이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이치입니다.


따라서 그 시대가 어느 때고, 성경의 어느 부분을 읽더라도 이 법과는 반대 방향으로 읽고 지키려고 하면 다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약시대 아니라 서기 10,000년의 시대에 요한 계시록을 읽고 있다고 해도 그는 아직 예수님이 자기 안에 초림도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율법을 행위로 지키려는 유대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로마서를 읽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기 위하여 하던 모든 행함을 그치고 먼저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생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기 위하여 읽고 묵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심오한 말로 신학 논문을 밥 먹듯이 쓰고, 신약성경과 복음을 알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계속)




(Translation by Google)


Why we should read and meditate on Romans 1


Romans says, "The yolk of the Bible." It seems to be the core book of the Bible. This is why the Romans have such a core meaning because faith in God is not the condition or act of the flesh of man, or anything else, but of God's grace.


This is the letter of the apostle Paul to the church in Rome. The purpose of writing the letter was to say that the Gentiles entered the Roman church, where the Gentiles were the main subjects, and that having the Jews alone would be a better gospel because many Roman saints had difficulties in doing this. It was to warn the Jews of circumcision and the fact that they told them that they were the chosen people (the people whom God chose) because it blurred the essence of the gospel, and to tell the Gentiles that God's grace was only in faith.


Especially in the beginning, we talk about the law. Because the Jews were people who kept the law by custom, they believed that to believe Jesus was to keep the law. This trend remains true today. Those who go to church say, "Sunday worship is a must," "I must pay tithing," and "I must pray and read the Bible." The act itself is not a bad thing, but it is a problem that it is presented as a condition of faith.


Moreover, the reason for fulfilling that condition, that is to say, to pay tithing, prayer, and reading the Bible, is the question of the abundance and stability of life in the flesh. Because it is not believing in God. Of course, people with such beliefs may believe that they believe in God, but God is not god but gentile gods like Baal and Asherah. Moreover, the gods do not control it either.


It is also the reason why we are given the Romans Bible to us today, as in the days of Paul the Apostle, in this age, what the flesh is as a condition of faith. If no one had such faith today, Romans would not have become a Bible. It is not the reason why, but the faith of the church in this age is said to be good faith like the Jews who confused the Roman church.


But the apostle Paul speaks firmly about the law. The law says that it is to convince sin, and that there is no body to be justified by the act of keeping the law. (Romans 3) This means that now in this age, the Bible is not read in the sight of God. There is no reason to read Romans unless I read it. For those who do not read so much, Romans is not as good as a piece of toilet paper, rather than the yolk of the Bible. This is because Bible paper can not clean water.


Then people say that they are now New Testament and the New Testament is different from the law, but it is the voice of idiots in the idiot. What is the word of the Apostle Paul? You can not be saved by doing. How is it different from keeping the law in action and keeping the New Testament in action? If you steal bread, you become a thief, and if you steal the Bible, you are not a saint. Whether it is law or the New Testament, it is the law, the New Testament, or even the gospel, all of which are laws when they are kept in the flesh, guarded the Bible, and live according to the Bible.


That is why we must read and meditate on the Romans today.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whatever part of the Bible, whatever the revelation, is to be done first to man, it is to think that everything that thinks, teaches, enforces, or disciplines righteousness to God is righteous by law. That is what the Romans are saying.


The law that God has given me is not to keep it as a flesh. The law and all the Scriptures that are seen as norms of conduct are about God's way of life when he is sowing in man and life according to the conception of the Holy Spirit. That is to say, the Bible does not live by the word of the flesh, but by the flesh when the Word becomes flesh.


Many who read the Bible and believe in God think of the Bible as "the law of being the Son of God." I believe that if I keep the Bible in the flesh, I will be the Son of God. However, the Bible is a book of witness to the Son, not a book about being a son. The Bible witnesses Jesus and witnesses to Christ is like the Bible in Jesus Christ.


It is the Bible and the Law that demonstrate how a person with the nature of Christ, the Bible speaks, lives, not by keeping and doing anything, whether it be the law or the Bible, according to the Bible. Therefore, the words "to do" and "to keep" in the Bible are not to be a life with such a living nature, but to keep it and reach God's righteousness.


In the first half of Romans, the apostle Paul speaks this. To all those who believe that the law must be obeyed, and that the act is righteous before God, God's righteousness is not that, but that God's righteousness is his nature. We talked about Abraham to prove this. Circumcision was not the first, but God had Abraham righteous and circumcised.


Therefore, first of all, man first accepts God's purpose of man as his destiny. When it is obeyed, it is God's righteousness that came into the person, and God's purpose for Himself is to become life throug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and to live according to the nature of that life. If you live like that, you will know that you are living as you say it is. And not only that, but others see it and know what the Son of God is.


That is why Jesus said, "Seek first the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The act is not the first, but the first. If a man obeys his righteousness and accepts his seed as seed in his spirit, it will be life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This is the Biblical truth.


Therefore, at any time of the day, whichever part of the Bible you read, you are the one who wants to be readjusted in the opposite direction and to be justified by the act. In other words, even if he reads the book of Revelation in the time of the millennium AD, not the New Testament, he is still a Jew who is like a person who did not even have an incarnation in him and who kept the law as an act.


Therefore, it is that we should read and meditate today to read this Romans to cease all the works which were done before God, and to have the heart of God's righteousness to be his life first. If it is not so, it is no use even if you know the New Testament and the Gospel by writing a profound note in a theological paper.


(Continue...)




(로마서 16:1-27) 바울 문안 인사의 본질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로마서 Date : 2017. 2. 14. 22:36 Writer : 김홍덕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에는 바울 사도의 동역자들 37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중에는 ‘마리아’와 같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구인지 가리기 힘든 사람도 있고, ‘디모데’, ‘브리스가’, ‘아굴라’와 같이 성경을 좀 대하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와 같이 사연 있는 사람도 있고, 아시아에서 바울 사도가 얻은 첫 열매인 ‘에배네도’(유럽에서의 첫 열매는 루디아)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이들 중에는 당시의 노예들이 주로 쓰던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노예였던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이 로마와 상관성이 있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만약에 성경을 지식으로 또 학문으로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본다면 여기에 나오는 각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실관계를 이해하는 것에 주목할지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이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 사도의 의도와 함께 이 로마서 16장을 본다면 이것은 분명히 인사지만 그 인사 안에 바울 사도가 로마서 전체를 통하여 말씀하고자 한 복음의 진수가 복선처럼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한 동역자라는 것은 그들 역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단순히 말로서 복음을 설명하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일컬을 정도라면 그 사람은 그 심령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어 그 사람의 삶을 보고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복음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사람이 그들의 삶으로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부분의 국가와는 달리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당시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임에도 이들의 삶이 사람들을 그렇게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면면이 너무 다양합니다. 유대인에서부터 헤롯왕의 친척이라 할 수 있는 ‘헤로디온’이라는 사람, ‘우르바노’와 같이 노예였을 것이 거의 확실한 사람까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즉 이 로마서 16장의 인사는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말씀한 복음이란 행위나 혈통이나 외모와 무관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안부의 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문안하라고 했다는 것은, 그렇게 다양한 사람에게 문안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즉 로마서 전반을 통하여 말씀한 것과 같이 사람의 혈통이나 행위나 육신의 어떤 조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문안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문안’의 원어는 ‘아스파사스데’라는 말로 ‘환영하다’, ‘환호하다’, ‘존경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문안 인사는 ‘샬롬’인데 이는 ‘평안하라’는 의미이고, 요 14:27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평안은 ‘에이레네’라는 말도 있는 이는 ‘같은 곳으로 부른다.’, ‘평안과 하나가 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이렇듯 다양한 사람, 이렇듯 다양한 배경과 신분의 사람들을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서 문안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문안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 그렇게 문안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은 결국 이 로마서를 수신하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말씀들이 자기의 본성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으면 이것을 지식적인 탐구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 유익한 것입니다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문장과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그렇게 기록한 목적을 아는 것이 본질입니다. 따라서 이 로마서 16장을 단순히 바울 사도가 로마로 보내는 서신서의 마지막에 자신과 함께 수고한 사람들을 수상 소감 때 일일이 호명하듯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이 문안 인사는 이 포스트에서 말씀 드리는 것과 같이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문안(환호하고 존경하는)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즉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이 이 편지를 수신하는 모든 사람의 본성과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그 시대가 언제이든 이 로마서를 읽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알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바울 사도가 문안 인사를 하는 본질이 자신의 본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Romans 16: 1-27) The essence of Paul's greeting


The last chapter of Romans chapter 16 contains the names of 37 co-workers of Paul's apostles. Some of them have a lot of people who use the same name, such as 'Maria', so hard to keep track of who they are, and anyone who has seen the Bible, like Timothy, Verizon, or Aquila, .


There are also people who have a story like Rufus, the son of Kuren Simon, who replaced Jesus' cross, and the first fruit of the Apostle Paul in Asia, the Eve Nod (the first fruit in Europe is Lydia) There are people. There are also many of them whose names have been used mainly by slaves of the time. So there are many people who were slaves. If so many people have something in common, most of them seem to be related to Rome.


If we look at the Bible as a knowledge and study of scholarship, we may focus on understanding the facts of each person who appears here. On the other hand, if you look at Romans 16 with this intention of the Apostle Paul, you will know that this is clearly a greeting, but in the greeting the apostle Paul spoke through the whole of Romans as a double line.


The apostle Paul is a co-worker in the work of preaching the gospel. They are also people who preach the gospel of God. And the work of preaching the gospel that the Apostle Paul speaks is not merely a level of explaining the gospel in words. At least the Apostle Paul is called the "person who preaches the gospel." He is the person who has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s heart and lives to live the life of the person who wants to receive Christ.


Therefore, all those who are here are those who do not know the Gospel and who do not know Christ will accept the gospel that they preach to their lives. This is not just a story. Unlike most nations that have freedom of religion at this time, Paul's apostle to be a believer in Christ at the time of preaching the gospel is a life-giving person whose lives can lead people so.


The apostle Paul is introducing such people. But their face is so diverse. From the Jews to Herodion, a relative of Herod's king, and to Urbano, almost certain to be slaves. In other words, the greetings of Romans 16 are a kind of greeting that directly shows that the apostle Paul is not related to the gospel act, the bloodline, or the appearance as mentioned in the Romans.


To say such a variety of people is to be a person who greets such a wide variety of people. That is to say, as I have spoken throughout the whole of Romans, to know that no bloodline, act, or condition of the flesh is righteous before God. This is because only those who can greet these various people.


The source language of the 'editorial' in Romans 16 says that it has the meaning of 'welcome', 'cheer', 'respect' with the word 'aspasasde'. In addition, the most commonly used greeting used in the Bible is 'Shalom', which means 'to be at peace', and in John 14:27, the peace given to Jesus by Jesus is called 'the same place' It is said to have the meaning 'to be one with peace.'


In other words, to be able to greet such diverse people, people of various backgrounds and identities as people with full beliefs, should be able to salute such people. And to be such a person, to be able to say so in the end, is that all those who receive this Romans will want the words of Paul to be their own.


If so many people are recorded, they will explore this intellectually. And it is beneficial for us, but what we need to know is that knowing the meaning of the sentences and words in the Bible is not essence, it is the essence of knowing the purpose. Therefore, this Romans 16 is not simply a record of the people who labored with him at the end of the Epistle to the apostle Paul to be called in the name of the Prime Minister.


This greeting is to be a person who can greet (cheer and respect) such a wide variety of people, as I said in this post. That the purpose of writing Romans is to be the nature and faith of all who receive this letter. And that means that anyone who wants to read the Romans and know the righteousness of God in it at any time of the day is saying that the essence of Paul's salutation must be his nature.


(로마서 15:14-33) 만민을 위한 복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로마서 Date : 2017. 2. 13. 20:21 Writer : 김홍덕

바울 사도는 로마서를 마무리해 가면서 자신이 로마에 가고자 하는 마음의 간절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면서 자신이 이방인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선지자로서의 은혜와 사명에 대하여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열방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모든 열방,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지리적으로 모든 땅에 있는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본질은 결국 <복음은 사람이기만 하면 누릴 수 있는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통하여 말씀한 것과 같이 혈통이나 육신의 어떠함이나 율법을 행동으로 지키거나 지키지 않거나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포괄적 관점에서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 동의하는 것에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살아가면서, 또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는 이것을 망각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과 같이 믿음이 약하고 의심이 있으면 배척당하기 일쑤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교회가 정한 어떤 방향에 함께 하지 않으면 구원도 못 받을 사람 같은 취급을 받기 일쑤입니다.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는 복음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순간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거룩함을 세우는 것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는 의사가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 오는 사람은 그 누구나 회복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 살아가는 그 삶이 세상의 가치관에 의해서 죄인이 되어 곤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다시 세상과 같이 믿음과 복음마저 기준을 통과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암울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교회들로 가득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기만 하면 되는 복음, 모든 열방과 민족이 다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사람이라는 그 기준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이 통과된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들은 그 습성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며, 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선하고 악한 것을 나누는 의의 기준이 모두 다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간음이 될 수 있지만 어떤 땅에서는 그것이 자기 민족의 유전적 열성을 보완하기 위한 관습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듯 사람의 외모에 관한 모든 것은 믿음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당연히 그런 것에 대하여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기독교가 세계화 되었다는 것이 본질적 의미가 아닙니다. 할례를 받았고, 성경을 행위와 관습으로 지켜야만 만날 수 있다고 여긴 하나님을 그저 사람이기만 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를 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혈통으로 이방인인 우리나라에서 먼저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 다시 유대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를 통하여 사람이 육신의 개성들이나 그 개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어떤 조건이나 관습과 같은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있어 살아가는 삶의 모양이라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렇게 살 때 그 모양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죄인 같은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 삶은 세상의 가치관과는 반대로, 더 알고 더 가졌고, 더 밝기에 죄인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되는 십자가의 도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열방들과 민족들이 가진 그 어떤 개성도 그것이 의의 기준이 되면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지만 세상의 어떤 민족, 어떤 사람이라도 낮아지는 것에 있어 기준은 없기에 복음은 사람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경쟁이 심화되며 살기 어려워지는 것은 세상에서 생겨난 각종 가치관과 의의 기준 위로 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간다면 세상은 언제나 화평합니다. 바울 사도가 교회에 대하여 말씀한 것과 같이 서로에게 걸림이 되지 않는 본성을 가졌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것과 같이 더 의로운 이가 더 의로운 유일한 목적이 의롭지 않은 자가 스스로 그 의를 깨달을 수 있도록 육신으로 섬기는 그 본성으로 살면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운전하고 보행할 때 얼마나 많은 신호등을 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통 혹은 도시 공학과 같은 학문이 생기고 어떻게 하면 교통을 원활하게 잘 통시킬 것인지를 연구하지만 아마 그 연구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 연구가 영원하다는 것은 그 문제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교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늦게 가도 괜찮은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남보다 빨리 갈 이유나 욕심이 없다면 신호등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신호들은 서로 빨리 가려는 마음을 신호로 제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성경에서 모든 열방들로 표현되는 것은 모든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그 모든 가치관은 항상 서로 다투어 이겨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 그 모든 열방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가치관에 있어 그 기준을 십자가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의인이 죄인을 위하여 죄인이 되는 세계이니 모든 것이 은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만민을 위한 복음인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Romans 15: 14-33) Gospel for the people


The apostle Paul speaks of the heartfelt desire to go to Rome as he finishes the Romans. He also reveals his grace and mission as a prophet called to the Gentiles. And he says that he preaches the gospel for the Gentiles so that God may fulfill the word that all nations will be saved.


That the gospel is for all nations, for all nations, means that the gospel is preached to a person who is geographically all over the earth, but the essence of it is that it means grace that can only be enjoyed if the gospel is man. This is what the apostle Paul spoke through Romans, saying that it is not of God's grace to keep or obey the law or the law of the lineage or the flesh.


In this comprehensive sense, it is reasonable to agree that the Gospel is for all. But we forget this as we live and we live our faith in the church. As Paul's apostle says, if faith is weak and doubtful, it is apt to be rejected. In some cases, the church is often treated like a person who can not be saved unless it is in a certain direction. It is the moment when the identity of the gospel is destroyed that it is only a person, but it is rather to be made holy.


Jesus said, 'A healthy person does not need a doctor.' In other words, anyone who comes to church is a person who needs to be restored. And the life that lives in the righteousness of God is a man who is sinful by the value of the world. But if you can come to church and go back to faith and gospel just like the rest of the world, if you can get recognition, it is desolate. But we are living in an era full of such churches.


All that has been passed is that the gospel, all nations and nations can be enjoyed only by the standard of human being. Nations and nations have different habits, different appearances, and different standards for the sharing of good and evil in the way of living the world. In some countries it can be adultery, but in some lands it is a custom to supplement the genetic zeal of its people. As such, everything about a person's appearance is not a standard of faith. So the church, a community of faith in God, must, of course, not discriminate against it.


The fact that the Apostle Paul preached the Gospel to the Gentiles is not an essential meaning that Christianity has been globalized from a historical point of view. I have been circumcised, and I have met the Bible with my deeds and customs, so I opened up a world where I can meet God only if I am a man. However, it is a pity that those who have gone to church first in our country, where the Gospel is a pagan nation, are again Jewish.


The apostle Paul tells us that through Romans man is not righteous before God such as conditions or customs that are formed on the basis of the personalities of the flesh or on the personality. Not the law, but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a form of life that lives in him. When I was living like that, it was said to be a life like a sinner in terms of the world's values.


That life, contrary to the values ​​of the world, has become more and more aware, more brighter, a sinner and a servant of the cross. Any personality of the nations of the world and of the nations can become a person who does not pass by the standard of righteousness, but there is no standard for lowering any nation or any person in the world, so the gospel is only a person.


It is because the world becomes more and more intense, the competition becomes intensified, and it becomes difficult to live because it tries to go up to the various values ​​and the standards of justification that have emerged in the world. But if you go the other way, the world is always peaceful. As the Apostle Paul spoke of the Church, he had a nature unimpeded to each other, and as the Lord Jesus showed on the cross, the more righteous, the only righteous purpose of which is the righteousness of the unrighteous, If you live by nature, the world has no problems.


We do not know how many traffic lights we see when driving and walking. So even if you have a discipline like traffic or urban engineering and you want to know how to get traffic going smoothly, that research will probably be forever. The fact that the study is eternal means that the problem will not be solved forever. But there is a way to solve all traffic problems. It is a good idea to go later than others. If everyone does not have reason or greed to go faster than others, traffic lights are not needed. Signals are signals that control each other's heart to go fast.


As such, it is the values ​​of all the world that are expressed in all nations in the Bible. All of these values ​​are always justified and justified. To preach the gospel to such a world, to all nations, is to turn the standard into a cross in all values. The cross is a world in which the righteous becomes a sinner for sinners, and everything will be grace. That is the gospel for all 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