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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7일간의) 낯선 그리스도 Date : 2020. 9. 19. 04:00 Writer : 김홍덕

(마 24장, 막 13장, 눅 21장)


종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가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때, 그리고 세상의 멸망도 다르지 않다. 성경 속 종말론은 물리적 세상의 멸망과 새 하늘, 새 땅이 본질이 아니다. 이 물리적 세상이 망하기 전이라도 누구라도 맞게 되는 죽음은 어차피 세상의 종말 그 자체다. 이 블로그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과 같이 창세기가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듯 종말론 역시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기 가치관이 망하고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종말을 말씀하시는 이유다. 하나님께서 종말을 말씀하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와 생명으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를 바라심이다.


예수님 오신 때를 기준으로 BC(Before Christ), AD(Anno Domini)로 나눈다. 예수님이 있는 세상과 아닌 세상으로 나누었다. 그와 같이 한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 자기 세계가 망하는 것이 종말이고, 거듭난 새 삶이 새 하늘 새 땅이다. 자기 가치관이 삶과 세상의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판단하는 세계와 시간이 종말을 맞이하고 폐기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의 본질이란 말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이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성경은 이를 거듭남이라고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자기 힘으로 세상에서 성공하려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서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사람으로 바뀐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듭난다는 것은 생명이 바뀐다는 것인데 생명이 바뀌면서 본성은 바뀌지 않을 수는 없다. 이전에 좋던 것, 세상에서의 성공과 육신의 평안이 더 이상 추구할 것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어야 본성이 바뀐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본성이 바뀌면 당연히 하늘 곧 자신의 의가 바뀐다. 그것이 하늘이 바뀌는 것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오는 것이고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의와 목적과 의미가 하늘의 뜻, 곧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이 모든 세계가 달라진 새로운 날들이고, 이전 것은 지나고 맞이한 새 세계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예수님이 종말을 말씀하심은 바로 이런 새로운 것을 목적으로 하심이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 생각하는 하늘과 땅에 살다가 십자가를 지고 죄인이 되고 낮아지며 ‘너 옳다’하므로 육신의 수고를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사는 새로운 삶을 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는 삶을 맞이하기 위한 종말을 말씀하심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중에 종말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사람이 왜 하나님 아들인지를 보이시면 그것을 보고 거듭난 사람은 이전의 모든 가치관이 종말을 맞은 것임을 말씀하심이다. 그리스도는 세상과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라 믿는 세계를 살던 가치관이 흔들리고 땅에 떨어지며 이때까지 알고 믿었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겪게 되는 심령의 상태가 마지막 때의 징조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이것이 그리스도의 온전한 정의”라며 말하고 있다는 것이 들린다. ‘예수를 이렇게 믿어야 벌 받지 않고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외침들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혼돈스러울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이전에 자신이 알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천지가 창조되기 전 흑암이 혼돈하고 땅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한 말씀과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외치는 많은 신앙의 외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외치는 소리라는 것이 들리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지 않은 멸망의 가증한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거룩한 것으로 둔갑해 있다는 것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장면의 전환이 아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가 되면 보인다고 하셨다. 그것은 상태의 변화다. 


그렇게 자기 안에 가치관의 변화가 온다면 다른 것을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다. 집이나 겉옷과 같이 자기가 이전에 사랑했던 것을 챙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심과 같다. 늑대가 양으로 거듭나기로 했다면 고기에 대하여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은 굳이 의지를 가지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거듭났다는 것은 생명의 세계를 이야기함이고 생명이 거듭났다면 본성이 바뀌었다는 것이니 본성은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면 인자가 오는 것을 볼 것이라는 말씀은 이러한 과정이 지나면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심은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문 밖에서 두드리기만 하지 강도처럼 침범하시는 분이 아니므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순종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람이 육신의 정욕과 희망대로 조각한 육신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히어로 같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이 자기 마음으로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온전히 순종했다는 의미다. 그 순종이 가치관을 바꾸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때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우라고 하심이 그것이다. 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또한 그리스도를 자기 육신의 문제와 세상의 일을 해결하는 분으로 믿으며 살다 보면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능을 앞두고 기독교인들이 기도한다. 심지어 시험 시간표에 맞추어 기도한다. 하나님이 그런 정성을 보신다면 해마다 기독교인들만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교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신앙이 좋은 학생, 혹은 집안의 아이라고 무조건 시험을 잘 보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일은 이상하게 여겨야 한다. 평소에 그리스도는 그런 일을 관장하시는 분이라 믿었는데 그 믿음대로 되지 않으면 이상히 여겨야 한다. 


그런 일이 쌓이는 것이 바로 무화과나무가 잎이 무성해지고 있는 것이다. 곧 여름이 오듯 마지막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징조에도 자기 가치관이 마지막을 맞이하지 못하면 그 인생 자체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나는 종말을 맞이한다. 그것이 심판이다. 그 때가 이르기 전에 자신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에서 이긴 자로 만들어 주는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