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계시록' + 1

요한계시록을 보는 올바른 관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계시록 Date : 2021. 11. 9. 11:58 Writer : 김홍덕

성경은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들에게는 65+1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계시록 이전 65권의 성경은 이미 이루어진 성경, 이전에 다 이루어진 사실을 보고 자신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성경으로 여기고 요한계시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성경으로 본다는 뜻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비단 기독교인들이 아니어도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특히 영화와 같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경우 단골 소재가 된다. 그것은 아마도 아직 미지의 세계라고 여기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미지의 세계라는 특성은 어떤 전개라도 검증이 어렵다는 점과 또 같은 맥락에서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각색이나 전개가 가능한 세계라는 말이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엄연히 성경일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예언자와 사도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서로 교차히기 때문에 마음대로 각색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고 같은 이유로 완전히 독립된 성경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요한계시록은 달력, 즉 크로노스의 시간 관념 안에서 이루어진 일과 이루어질 미래의 일로 나눌 때 다른 65권의 성경과 달리 단 하나의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에 관한 말씀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단 계시록 뿐 아니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오늘 나에게 이루어진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계시록을 봐야 한다. 즉 계시록의 말씀이 의도한 바는 거듭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안에 이루어져야 하는 말씀이다.

 

계시록은 자기 안에 이루어져야 하는 말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말과 의미를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2,000여년 전에 오셨다 승천하셨기에 예수님을 직접 육신으로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불과 한 두 세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 안에서는 쉽게 예수님을 만났다.”라고 말한다. 즉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육신으로 만나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계시록의 말씀 역시 눈으로 볼 수 있는 물리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계시와 예언이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계시록의 예언들이 물리적인 현상에 관한 말씀이라면 어느 한 시대의 사람들만 체험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을 향해서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하신 말씀은 거짓말이 된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막 9:1)

 

계시록을 비롯한 모든 성경은 행간을 보고 그 내용이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알 때 비로소 성경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읽고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반드시 성경을 기록한 의와 뜻이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성경이다.

 

따라서 계시록 뿐 아니라 모든 성경이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크로노스의 시간과 물리적 현상으로 나타났는지 여부로 성경이 이루어졌다고 가늠할 수 없다. 만약 그런 관점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은 알 수 없는 기묘한 말씀이거나, 소설, 아니면 다른 나라 역사일 뿐이다.(아쉽게도 이 관점이 일반적인 기독교의 관점이다.)

 

계시록은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열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본질로 보는 사람은 계시록을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재앙으로 정화하고 새롭고 순결한 세상을 만드시겠다는 뜻을 요한 사도를 통해 예언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믿는다.

 

하지만 이 생각과 믿음을 정신차리고 살펴보면 계시록이 말씀하시는 심판의 대상이 되는 하늘과 땅도 물리적인 세상으로 보는 생각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록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도 물리적인 것으로 여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본질로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계시록을 바로 보려면 이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사람이 계시록을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예언과 크로노스의 시간 개념 하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로 보고 현재의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물리적 재앙의 거쳐 유토피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자기 삶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옳지 않은 삶이지만 세상의 가치로 편하고 부유한 사람에게 계시록의 재앙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계시록을 물리적 세상의 멸망과 재창조로만 보는 것은 이 세상을 정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자기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죄인이 가진 관점일 뿐

 

그리고 삶을 불만족스럽게 여기거나,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해서 멸망 혹은 정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아주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선은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의미가 만족의 동산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람이 죄를 범하여 만족의 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은 죄인이라는 의미다. 즉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여긴다고 해도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만족 곧 에덴에서 쫓겨난 죄인의 상태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여기나 저기 있는 물리적인 나라가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계시록이 말씀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 역시 물리적인 나라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새 하늘과 새 땅이 물리적인 하늘과 땅이라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어느 때가 될지 모르지만 특정한 한 시대, 한 시점의 사람들만 보는 사건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 오고 간 모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오심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도 예수님이 자기 심령에 다시 오시지 않았다면 구원이 없는 사람이다. 구원이 없으면 계시록도 당연히 의미가 없다. 그것에 심취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관심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났다면 이미 그 사람에게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것이 자기 안에 없다면 계시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구원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물리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보거나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미래의 일로 보는 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그런 관점은 영화 만드는 사람이나 가지는 관점이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의 관점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이단이 형성되고 이단에 빠지게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을 불안해하는 사람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만남은 이단의 개설과 매몰이란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이단을 만들고 빠지는 것 역시 육신이 잘 되는 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여기는 사람, 육신과 물리적인 현상을 성경이 말씀하시는 본질로 보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구원 받은 사람, 그리스도라는 새 생명으로 났다면 이미 분명하게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을 것!!

 

계시록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에 관한 말씀이다. 성경 모든 말씀의 주제와 맥락과 동일하게 한 사람이 이전과 다르게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났다면 그 생명이 주는 안목과 가치관과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는 그리스도로 났다면 당연히 이전과 다르게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전과 다른 생명이 되어 보는 세상이 바로 새 하늘이고 새 땅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의를 땅은 육신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더 분명히 알 것이다. 즉 사람이 거듭나서 보는 세상이 새로운 세상이란 뜻이다. 따라서 거듭난 생명이 되어 세상과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계시록도 자기 안에 이루어진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 괜히 우리 마음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당연히 미래의 일도 아니고 물리적인 일도 아니다. 집을 설계한 것이 먼저고 집의 실체가 나타나듯 물리적으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그 본질이 선행된 다음에 나타난다. 즉 각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 거듭남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는 일이 넘쳐나면 어느 때 있을지도 모른다.

 

계시록을 크로노스의 시간 아래 미래에 일어날 물리적으로 사건으로만 보는 것은 구원이 없는 것!! 

 

하지만 핵심은 우리 각 개인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는 사람이 되느냐의 문제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그리스도가 있다면 즉 거듭났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도 다시 자기 안에 왔고 새 하늘과 새 땅도 본 사람이다. 그러나 계시록의 일을 미래의 물리적 일로 보고 있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은 사람이다. 즉 구원이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