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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교인의 성경 보기/베드로전서' + 108

(베드로전서 5:12-14) 끝 인사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베드로전서 Date : 2018. 6. 23. 13:37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이 흔히 베드로전서는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한 위로라고 말합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것은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아니 성경이 말씀하시는 고난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난은 사뭇 다릅니다. 먼저 사람들은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마치 자신이 이 인생을 설계한 것인 양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생은 자신이 설계한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만히 있는 것도 자기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겪는 모든 갈등을 고난이라고 하고, 그래서 <인생은 고(苦)>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고난은 앞서 아주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는 것은 인생이 자기의 기획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알고 뜻하시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겠다는 것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 고난입니다. 이것이 고난인 이유는 앞서 너무 많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성경은 단 한 가지 맥락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한 가지는 육신을 가진 인생은 그 육신의 삶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같이 우리 모든 인생도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인생이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살 때 구원이고 하나님의 아들이고, 무엇보다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순종하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사람들의 의지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을 로봇이나 아바타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강제할 수 없어서 자유 의지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강제된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사람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선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사람들이 선택할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그 본을 보이신 예수님께서 자신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표면적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힘을 빌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고,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삶을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고난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자기 안에 있어서 자신들도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기 위하여 종과 같이 섬기고 죄인이 되어 육신을 소비하고 드리는 삶을 사는 그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가치관에서 보면 어이없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런 삶에서 벗어나 보라고 조롱을 받는 것입니다. 모두들 성공이라는 크고 넓은 문을 향하여 달려서 피라미드의 꼭대로 가면서 그 다툼에서 이겨내는 것을 성공이며 복이며 은혜로 여기는데, 그 반대로 가는 모습이야 말로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삶이 영광과 권세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베드로 사도만의 관점이 아닙니다. 모든 사도들의 관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생명이 큰 문을 행해 달려가는 자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다르기에 영광도 권세도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회들이 세상에서의 권세를 얻어서 교회를 영화롭게 하고, 그 권세를 자랑하며 전도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채색한 일들을 잘 추진할 수 있게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 다른 생명의 세계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지막에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신데, 그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권력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히려 그 세상의 권력에 의하여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죄인으로 처형된 분인데 이 권력이 세상의 권력일 리가 없는 것입니다.(그럼에도 이 시대의 교회들이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참 어이없는 일) 그러므로 예수님이 권력으로 또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면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지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권력으로 아는 생명을 가지지 않고서는 그것을 은혜로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아무리 증거를 해도 그 증거가 자기 심령에서 생명이 되지 않았다면 이 또한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그저 자신들이 사업이나 자녀나 건강에 대하여 기도하는 입장에서 그것들이 무난히 흘러가는 것을 보거나 아니면 바람대로 될 때 그것을 은혜로 여기고 감사하는 안목으로는 세상의 기준으로 죄인이 되는 것(십자가)을 은혜로, 권력으로, 또 감사로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생을 고난 자체로 여기는 것에 출발해서 그것을 감하여 주시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안목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고난은 인생은 정말로 감사하고 또 예수님께서 보이신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 육신의 삶을 삶에 있어 육신을 좀 더 수고하고, 넘쳐나는 자기가 옳다는 주장들 앞에서 죄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그 애매하고 괜스런 삶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고난입니다.


베드로전서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까지 많은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체계적인 준비가 없었던 탓도 있을 것이지만 그 내용의 깊음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다들 고달프게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고난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글을 통하여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곤고하게 여기는 것은 단지, 축구를 제 아무리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축구하는 동안 숨이 차는 것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인생은 정말로 감사하고 또 예수님께서 보이신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 육신의 삶을 삶에 있어 육신을 좀 더 수고하고, 넘쳐나는 자기가 옳다는 주장들 앞에서 죄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그 애매하고 괜스런 삶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자기 삶으로 여기는 모든 이들이 그 삶에 숨겨진 영광을 발견하기 바라고, 그것이 진정한 권세임을 또한 알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입맞춤으로 문안하는, 즉 그 삶을 나누어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참교회가 이 글들을 통하여 세워지기를 바라며, 저 또한 베드로 사도의 바람과 같이 이 고난을 짊어진 모든 분들에게 평강과 삶의 안식과 삶이 감사한 생활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