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성경 보기/예수님의 비유와 기적' + 23

(마 13) 가라지 비유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예수님의 비유와 기적 Date : 2017. 6. 26. 14:59 Writer : 김홍덕

마태복음 13장은 장 전체가 비유의 말씀들로만 가득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 흔히들 <가라지 비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비유는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내용은 마태복음 13:24-30절에 나옵니다. 주인이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싹이 날 때 보니 가라지가 보이기에 종들이 그것을 뽑을까 하였더니 주인이 추수할 때 까지 두면 추수할 때에 가라지를 따로 불태우면 된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가라지는 ‘독보리’라고도 하는 일종의 잡초입니다. 이 비유에서 가라지는 주인이 의도하지 않은 소산을 말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라는 측면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의도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교인들, 아니면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말씀을 교회라는 단위를 기반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에는 꼭 가라지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도 교회가 품고 가야한다는 식의 설교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나마 그렇게 가라지와 같은 사람을 잘 품고 가야한다고 설교하고 이끌려고 한다면 그 교회는 나름 괜찮은 교회라 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라는 것이 단 하나의 해석으로만 봐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위험합니다. 그것은 밀가루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 국수뿐이어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오직 하나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면 제자들이 그렇게 많을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느 누구하나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은 사람의 수만큼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시겠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의 모양과 관습이 다 다르지만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듯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 역시 같은 말씀으로 다르게 풀어가도 그것이 같은 생명을 가진 것이라는 것을 다 압니다. 그것이 다르게 보인다면 그것은 생명이 다른 것입니다.


오늘은 이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 각 개인의 심령 안의 일로 한 번 볼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심으시고 그 생명이 본성이 되어 삶으로 나타나는 것을 기대하시고 사람에게 말씀을 심으셨는데,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가라지와 같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는 것이 심겨서 그런 본성도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만 섬기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행동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라지와 같은 것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그것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여깁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안에서 가라지를 뽑아 내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생각과 방법이 성공사례도 있을 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본성을 인위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본성이 잘못된 것이기에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선한 것이고 성공이라는 사람들의 생각 범주 안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라지를 인위적으로 뽑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알곡이 다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가라지를 뽑는 것으로 알곡에게 유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곡이 상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는 목적이 손상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생각으로 보면 사람이 가진 가라지와 같은 모습들,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것인데 사람들이 자는 동안 즉 깨어있지 않는 동안에 사람 안에 들어온 것을 인위적으로 뽑아내어야 하나님이 뜻하신 알곡의 본성이 온전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알곡, 즉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목적이 다치게 되어 사람이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사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 안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본성은 그냥 두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히 인위적으로 가라지를 제거하려는 것을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추수할 때가 되면 추수하는 이가 알곡과 가라지를 자연스럽게 구분하여 알곡은 곳간에 가라지는 불에 던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가라지의 본성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 그 사람 안에서 추수할 정도로 장성해지면 자연스럽게 구분이 되고 또한 자연스럽게 심판과 제거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수고와 노력 그리고 인위적으로 사람 안에 있는 가라지의 본성을 제거하려 하지 않아도 그 생명이 추수할 정도로 장성하게 자라면 다 알아서 제거될 것은 제거되고, 또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알곡으로 거두어질 것은 거두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본성을 제거하는 것이 마치 신앙의 목적인 것과 같이 여기면서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생명과 본성이 되어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와 같은 삶과 생활이 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못하는 것을 제거하려하지 말고 해야 할 것을 온전하게 하면 구분될 것 구분되고, 심판 받을 것은 심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뜻이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게 되면, 그렇게 우리가 떨치고 싶었던 가라지와 같은 본성들을 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신앙의 목표를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을 뽑아 버리는 것이 하나님 믿는 본질이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의가 손상당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것이 아닌데 그렇게 믿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의 곧 농부의 목적이 아닌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바라시는 바 하나님의 의와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이 바로 생명이 장성하면 모든 것이 다 구분되고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걱정하고, 자기 행동으로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진 삶의 모습을 흉내 냅니다. 그렇게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노력합니다. 그게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라지를 인위적으로 뽑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곧 알곡의 생명력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고 그 생명이 자라면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성경대로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이라고 말하면 ‘어림없는 소리’라고 합니다. 말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다 해결 되냐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나 한 번도 말씀을 들었을 뿐인데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으려 자기 행동을 규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래서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볼 때 가라지와 같은 것이 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어떤 인위적인 행동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마음만 상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알곡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본성은 그렇게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농부 곧 하나님께서 뜻하신 알곡이 자라서 추수할 때가 될 정도로 자라면 자연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알곡의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 가라지 비유의 말씀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Matthew 13) The Tares


Matthew 13 is full of chapters full of parables. Among them, there are things called "Tares". This parable does not appear in any other Gospels. The content is found in Matthew 13: 24-30. The master sowed good seed in the field, and when the people slept, the enemy came and planted the taro. So when the buds were seen, the servants saw that the tares were to be found, and when the master set the harvest until the harvest, they would burn the tares separately.


Garage is a sort of weed, also known as a 'tarpaulin'. In this parable, tares refers to the unintended output of the master. That would be a collective term for many things God did not expect from people. Of course, it can also be in terms of the church. It can also be said to refer to church members who appear unintentionally, or people who attend church.


We generally think of this as a unit based on the Church. There are people in the church who are like Tares, who interfere with other people 's religious life, and they can hear a lot of sermons that the church should carry. If you want to preach and lead a good person like Tares, then the church may be a good church.


Of course, that is not wrong. But the Bible does not have to be seen as a single interpretation. Rather it is more dangerous. It is like saying that food made from flour should be only noodles. If we had to look at the Bible from only one point of view, there would be no reason why so many disciples. The fact that there is no man or man is the same as the number of men, that God will express His character.


And we know that the shape and customs of a man are different, but we know that when we meet a person we are a person, we know that even a person who has the life of God will have the same life, If it looks different, it's life is different.


Today, I would like to see the parable of this Tares as one of our individual minds. God created man and planted the life of God in it, expecting it to appear as life and nature, and he planted the words to men. While people were sleeping, God's intention was not as intentional as the tares, It is coming out. That is to say, God only serves God, but God also acts unexpectedly.


Many people who believe in God are trying to live according to God's will by imitating the character of Christ. But that's not what I want. There are things like tares in us. It is everyone knows. So they do not want to stimulate each other. So people think that solving it is a life of faith. In other words, I think that it is the life of faith to pull out the tares in itself.


The problem is not only that thoughts and methods have success stories, but if anyone can do that, that's a good way. We may be able to live a very successful life if we can artificially extract the nature of the tares in us. It is a good thing to overcome it because God's nature is wrong, and in the category of thought of those who are successful.


But Jesus does not articulate the tares. If you do that, you will be hurt. In a word, it is something we can not artificially do. It is not artificially profitable to harvest by pulling tares. To be hurt is to impair God's purpose for man.


In simple thoughts, the things like the tares of man, which God did not sow, were to be artificially drawn out of the man while he was sleeping, while he was sleeping, so that the nature of the grain he meant would be perfect. It is not. Rather, it means that God's purpose for man is hurt, and it is difficult for man to live in Christ's nature.


But this is not to say that Jesus' words should be set aside in the man's nature. Jesus' words clearly artificially told us to stop trying to eliminate the tares. When it is time to harvest, the harvester will naturally separate the wheat and the tares, and the wheat will be thrown into the fire that falls in the barns.


In other words, the nature of the tares is that if God's will is harvested enough to grow in the person, it will naturally be separated and naturally judged and eliminated. Even if a person does not try to eliminate the nature of labor and effort and artificial Tares in man, if the life grows to such an extent as to harvest it, it will be removed and the reaping of the harvest will be redeemed Is to do.


Therefore, this is not to take away the nature of the tares in us, but to live a life of faith as though it were the purpose of faith. Rather, the righteousness of God is his life and nature, and his life must be focused on becoming a life and life like Christ. Do not try to get rid of what you can not do, but if you do what you need to do, you will be identified and your judgments will be judged.


This is truly believing in God. When the righteousness and will of God become life in us and the life presides over our lives, we can overcome all the natures like the tares that we wanted to share. However, if the object of faith is the essence of believing in God, which is to take away the nature in itself, then the righteousness of God is impaired. Because it is not that it is believing in God, but it is true that God's righteousness, not the purpose of the farmer, arises.


What is surprising is that the essence of God's righteousness and life, which God asks for our lives, is that when life is in full, everything is separated and communicated. People do not believe this. So I worry about God's work and imitate the life of the Bible with his own actions. I know that it does not work well even if I try so hard. I think that is a life of faith. But it is artificially drawn to the tares, which does not trust the power of God, the vital vitality of God.


Believing in God does not believe that the Word of God is in us and that life will be natural if we live according to the Scriptures that we want to be. Rather, the word of God says it is "a sound without a thought." It is said that it is solved if only the word is heard quietly. But those who say so have only heard the word, because they have not experienced it. That is to say, because we have never lived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That is why he regulates his actions to draw tares. However, as mentioned above, it is fortunate to do so, but not so much effort.


When we look at ourselves, there are always things like tares. So I hope it will disappear and do a lot of artificial actions. However, the more I feel, the more frustrated I become. The wheat is broken. The nature of the tares in us is not that way. It is this vernal parable that tells us that it is the noble faith that believes that if we grow up to become a farmer, the grain of God, which grows to the point of harvesting, it is time to harv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