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성경 보기/예수님의 비유와 기적' + 23

(마 13) 가라지 비유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예수님의 비유와 기적 Date : 2017. 6. 26. 14:59 Writer : 김홍덕

마태복음 13장은 장 전체가 비유의 말씀들로만 가득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 흔히들 <가라지 비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비유는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내용은 마태복음 13:24-30절에 나옵니다. 주인이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싹이 날 때 보니 가라지가 보이기에 종들이 그것을 뽑을까 하였더니 주인이 추수할 때 까지 두면 추수할 때에 가라지를 따로 불태우면 된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가라지는 ‘독보리’라고도 하는 일종의 잡초입니다. 이 비유에서 가라지는 주인이 의도하지 않은 소산을 말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라는 측면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의도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교인들, 아니면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말씀을 교회라는 단위를 기반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에는 꼭 가라지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도 교회가 품고 가야한다는 식의 설교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나마 그렇게 가라지와 같은 사람을 잘 품고 가야한다고 설교하고 이끌려고 한다면 그 교회는 나름 괜찮은 교회라 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라는 것이 단 하나의 해석으로만 봐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위험합니다. 그것은 밀가루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 국수뿐이어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오직 하나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면 제자들이 그렇게 많을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느 누구하나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은 사람의 수만큼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시겠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의 모양과 관습이 다 다르지만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듯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 역시 같은 말씀으로 다르게 풀어가도 그것이 같은 생명을 가진 것이라는 것을 다 압니다. 그것이 다르게 보인다면 그것은 생명이 다른 것입니다.


오늘은 이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 각 개인의 심령 안의 일로 한 번 볼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심으시고 그 생명이 본성이 되어 삶으로 나타나는 것을 기대하시고 사람에게 말씀을 심으셨는데,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가라지와 같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는 것이 심겨서 그런 본성도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만 섬기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행동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라지와 같은 것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그것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여깁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안에서 가라지를 뽑아 내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생각과 방법이 성공사례도 있을 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본성을 인위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본성이 잘못된 것이기에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선한 것이고 성공이라는 사람들의 생각 범주 안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라지를 인위적으로 뽑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알곡이 다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가라지를 뽑는 것으로 알곡에게 유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곡이 상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는 목적이 손상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생각으로 보면 사람이 가진 가라지와 같은 모습들,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것인데 사람들이 자는 동안 즉 깨어있지 않는 동안에 사람 안에 들어온 것을 인위적으로 뽑아내어야 하나님이 뜻하신 알곡의 본성이 온전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알곡, 즉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목적이 다치게 되어 사람이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사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 안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본성은 그냥 두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히 인위적으로 가라지를 제거하려는 것을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추수할 때가 되면 추수하는 이가 알곡과 가라지를 자연스럽게 구분하여 알곡은 곳간에 가라지는 불에 던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가라지의 본성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 그 사람 안에서 추수할 정도로 장성해지면 자연스럽게 구분이 되고 또한 자연스럽게 심판과 제거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수고와 노력 그리고 인위적으로 사람 안에 있는 가라지의 본성을 제거하려 하지 않아도 그 생명이 추수할 정도로 장성하게 자라면 다 알아서 제거될 것은 제거되고, 또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알곡으로 거두어질 것은 거두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본성을 제거하는 것이 마치 신앙의 목적인 것과 같이 여기면서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생명과 본성이 되어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와 같은 삶과 생활이 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못하는 것을 제거하려하지 말고 해야 할 것을 온전하게 하면 구분될 것 구분되고, 심판 받을 것은 심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뜻이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게 되면, 그렇게 우리가 떨치고 싶었던 가라지와 같은 본성들을 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신앙의 목표를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을 뽑아 버리는 것이 하나님 믿는 본질이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의가 손상당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것이 아닌데 그렇게 믿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의 곧 농부의 목적이 아닌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바라시는 바 하나님의 의와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이 바로 생명이 장성하면 모든 것이 다 구분되고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걱정하고, 자기 행동으로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진 삶의 모습을 흉내 냅니다. 그렇게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며 노력합니다. 그게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라지를 인위적으로 뽑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곧 알곡의 생명력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고 그 생명이 자라면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성경대로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이라고 말하면 ‘어림없는 소리’라고 합니다. 말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다 해결 되냐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나 한 번도 말씀을 들었을 뿐인데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으려 자기 행동을 규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래서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볼 때 가라지와 같은 것이 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어떤 인위적인 행동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마음만 상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알곡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본성은 그렇게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농부 곧 하나님께서 뜻하신 알곡이 자라서 추수할 때가 될 정도로 자라면 자연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알곡의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 가라지 비유의 말씀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Matthew 13) The Tares


Matthew 13 is full of chapters full of parables. Among them, there are things called "Tares". This parable does not appear in any other Gospels. The content is found in Matthew 13: 24-30. The master sowed good seed in the field, and when the people slept, the enemy came and planted the taro. So when the buds were seen, the servants saw that the tares were to be found, and when the master set the harvest until the harvest, they would burn the tares separately.


Garage is a sort of weed, also known as a 'tarpaulin'. In this parable, tares refers to the unintended output of the master. That would be a collective term for many things God did not expect from people. Of course, it can also be in terms of the church. It can also be said to refer to church members who appear unintentionally, or people who attend church.


We generally think of this as a unit based on the Church. There are people in the church who are like Tares, who interfere with other people 's religious life, and they can hear a lot of sermons that the church should carry. If you want to preach and lead a good person like Tares, then the church may be a good church.


Of course, that is not wrong. But the Bible does not have to be seen as a single interpretation. Rather it is more dangerous. It is like saying that food made from flour should be only noodles. If we had to look at the Bible from only one point of view, there would be no reason why so many disciples. The fact that there is no man or man is the same as the number of men, that God will express His character.


And we know that the shape and customs of a man are different, but we know that when we meet a person we are a person, we know that even a person who has the life of God will have the same life, If it looks different, it's life is different.


Today, I would like to see the parable of this Tares as one of our individual minds. God created man and planted the life of God in it, expecting it to appear as life and nature, and he planted the words to men. While people were sleeping, God's intention was not as intentional as the tares, It is coming out. That is to say, God only serves God, but God also acts unexpectedly.


Many people who believe in God are trying to live according to God's will by imitating the character of Christ. But that's not what I want. There are things like tares in us. It is everyone knows. So they do not want to stimulate each other. So people think that solving it is a life of faith. In other words, I think that it is the life of faith to pull out the tares in itself.


The problem is not only that thoughts and methods have success stories, but if anyone can do that, that's a good way. We may be able to live a very successful life if we can artificially extract the nature of the tares in us. It is a good thing to overcome it because God's nature is wrong, and in the category of thought of those who are successful.


But Jesus does not articulate the tares. If you do that, you will be hurt. In a word, it is something we can not artificially do. It is not artificially profitable to harvest by pulling tares. To be hurt is to impair God's purpose for man.


In simple thoughts, the things like the tares of man, which God did not sow, were to be artificially drawn out of the man while he was sleeping, while he was sleeping, so that the nature of the grain he meant would be perfect. It is not. Rather, it means that God's purpose for man is hurt, and it is difficult for man to live in Christ's nature.


But this is not to say that Jesus' words should be set aside in the man's nature. Jesus' words clearly artificially told us to stop trying to eliminate the tares. When it is time to harvest, the harvester will naturally separate the wheat and the tares, and the wheat will be thrown into the fire that falls in the barns.


In other words, the nature of the tares is that if God's will is harvested enough to grow in the person, it will naturally be separated and naturally judged and eliminated. Even if a person does not try to eliminate the nature of labor and effort and artificial Tares in man, if the life grows to such an extent as to harvest it, it will be removed and the reaping of the harvest will be redeemed Is to do.


Therefore, this is not to take away the nature of the tares in us, but to live a life of faith as though it were the purpose of faith. Rather, the righteousness of God is his life and nature, and his life must be focused on becoming a life and life like Christ. Do not try to get rid of what you can not do, but if you do what you need to do, you will be identified and your judgments will be judged.


This is truly believing in God. When the righteousness and will of God become life in us and the life presides over our lives, we can overcome all the natures like the tares that we wanted to share. However, if the object of faith is the essence of believing in God, which is to take away the nature in itself, then the righteousness of God is impaired. Because it is not that it is believing in God, but it is true that God's righteousness, not the purpose of the farmer, arises.


What is surprising is that the essence of God's righteousness and life, which God asks for our lives, is that when life is in full, everything is separated and communicated. People do not believe this. So I worry about God's work and imitate the life of the Bible with his own actions. I know that it does not work well even if I try so hard. I think that is a life of faith. But it is artificially drawn to the tares, which does not trust the power of God, the vital vitality of God.


Believing in God does not believe that the Word of God is in us and that life will be natural if we live according to the Scriptures that we want to be. Rather, the word of God says it is "a sound without a thought." It is said that it is solved if only the word is heard quietly. But those who say so have only heard the word, because they have not experienced it. That is to say, because we have never lived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That is why he regulates his actions to draw tares. However, as mentioned above, it is fortunate to do so, but not so much effort.


When we look at ourselves, there are always things like tares. So I hope it will disappear and do a lot of artificial actions. However, the more I feel, the more frustrated I become. The wheat is broken. The nature of the tares in us is not that way. It is this vernal parable that tells us that it is the noble faith that believes that if we grow up to become a farmer, the grain of God, which grows to the point of harvesting, it is time to harvest.

(마 5) 빛과 소금 – 마지막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예수님의 비유와 기적 Date : 2017. 6. 21. 08:59 Writer : 김홍덕

이 빛과 소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산상수훈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나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팔복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이어서 <너희는 빛과 소금> 이라고 하신 것은 결국 팔복에 나오는 사람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그 사람들이 바로 빛과 소금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 바로 <제자>입니다.


산상수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 5: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제자로서 듣는 이들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 혹은 제자들 중에서 팔복에 언급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빛과 소금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문장의 구조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파 프로스포츠 중의 하나인 배구에서 남자배구는 7개 팀이 있는데 그 중에 5개 팀의 감독인 같은 팀 출신입니다. 그 팀은 예전에 그냥 매년 우승했고, 어쩌다 가끔씩 지는 그런 팀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각 구단에서 감독을 찾을 때 그 팀 출신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승 DNA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팀 출신 선수들은 이기는 법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의 정체성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가 되는 것을 예수님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태도를 분명히 외식이라고 노릇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행동이 예수님과 같으면 제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예로 말씀드린 배구의 예에서 한 팀 출신인 감독들이 자신들이 선수시절에 배웠던 감독을 따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선수시절 자기 포지션과 또 자기 성격대로 감독으로서 팀을 운영할 뿐입니다. 그들은 선수시절 자기들의 감독을 따라 해서 제자가 아닙니다. 이기는 법을 그 감독에게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행동이 아닙니다. 의(도)인 것입니다. 즉 의가 자신들의 개성에 따라 표현되어서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예수님의 행동을 따라하거나 말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의로 삼을 때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의가 세상의 빛이기에 그 의를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로 삼은 사람이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의 의가 우리 인생의 의미이기에 그 의가 자기 의가 된 사람이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으로서 빛과 소금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빛과 소금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빛은 제 아무리 다른 짓을 해도 빛이고, 소금도 검정색으로 변장해 있어도 소금이지 설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전반에 걸쳐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 중의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그렇게 되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면 이미 되려는 것과 자신의 정체성이 다르다는 증거를 드러낸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날 때부터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듭나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노력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닌 이유가 생명의 법, 곧 날 때 이미 온전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소금과 빛도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 빛과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신앙을 떠나 훌륭한 삶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기를 빛과 소금과 역할을 하는 생명과 정체성을 가진 이로 나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이 자기 심령 안에 씨가 밭에 심기듯 심기고, 그것이 물(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잉태되고 거듭나므로 그 심령에 하나님의 의가 생명으로 자리하게 되고 그 생명의 본성대로 육신이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모습을 정리해 보니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더라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이 가진 영광스러움이 오늘 나의 것이 되려면 빛과 소금이 되려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되면 됩니다. 그 너희는 수고와 노력 혹은 인간의 어떤 조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 생명이 자기 삶을 이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본성이 된 사람이 바로 <너희>이고 <제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Matthew 5) Light and Salt - Last


Jesus' words about this light and salt are in the Sermon on the Mount. It is a word that comes after the ambassador who knows us so well. Following that, "You are light and salt," is the word of light and salt, the people in the aftermath, the people in whom the soul is poor and mourning. And the word collectively refers to them.


The Sermon on the Mount begins this way.

And seeing the multitudes, He went up on a mountain, and when He was seated His disciples came to Him. (Matthew 5: 1)

Jesus says that those who listen to the Word as disciples came out. And among the disciples or disciples, those who have the identities mentioned in the Beatitudes are those who are light and salt. This, as I mentioned earlier, can be understood only by the structure of the sentence.


In volleyball, one of our Napa professional sports, men's volleyball has seven teams, of which five are from the same team as the coaches. The team has just won every year in the past, and sometimes it was such a team. And now, when looking for a bishop in each club, they prefer to be from that team. It is said that it is because of winning DNA. The players from that team are naturally coming up with ideas, words and actions. That is the identity of the disciple.


People who go to church want to become disciples of Jesus. But I think that being a disciple is doing the same thing as Jesus. Jesus said that it is obviously to eat out, but I do not mind. If you are like Jesus, you think you are a disciple.


But in the volleyball example I mentioned earlier, the bosses who came from one team do not follow the bosses they learned during their athletes. Rather, they only run their team as a manager when they are athletes, as well as their own position. They are not disciples because they follow their bishops as a player. I learned from the director how to win. It is not an act. (Degrees) of That is, righteousness is expressed according to their personality and is a disciple.


Likewise, being a disciple of Jesus does not follow Jesus' actions or keep his words. When Jesus makes His righteousness of God's righteousness, he becomes a disciple. Because Jesus' righteousness is the light of the world, the person who has made it righteous and righteous is the light of the world, and the righteousness of God is the meaning of our life. It is.


Therefore, light and salt are not to be emphasized repeatedly. Trying to live with light and salt is also not an effort. Light is light, no matter what I do, and salt is disguised as black, but salt is not sugar. This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values ​​throughout the faith of God.


Most of all, if people are trying to read the Bible and try to be that way, it is clear that there is evidence that their identity is different from what they already are. A man does not try to be a man. It is because he is a man. So the Bible is born again and saved. This is because the reason for not being saved is saving the law of life;


Salt and light are the same. Being a person like the salt, light, light and salt of the world is a wonderful life apart from faith. But it is to be born out of those who have life and identity to play the role of light and salt.


To this end, the Word of Christ and life are planted in his own soul, planted in the field, and it is conceived and regenerated by life through water (Word) and by the Holy Spirit, We are living a life in which the body is attracted. And it is the same as recorded in the Bible when we summarize the way of life.


The glory of light and salt is not to be light and salt, but to become Jesus. It is not that you are made in labor, effort, or any condition of man, but that the word of Jesus becomes life in you, and that life is the person who leads your life. It is in this self that the life of Christ became the nature of <ye> and <disciples>. So we live in Christ in light and salt.

(마 5) 빛과 소금- 소금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예수님의 비유와 기적 Date : 2017. 6. 20. 13:01 Writer : 김홍덕

사람이란 존재는 스스로 인생을 시작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은 스스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돛단배 안에서 돛에다가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배가 가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이 자기 인생 전체를 통해서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산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한 자기 존재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각박하고, 또 물질만능주의라는 세상마저 터부시 하는 흐름 속에 살다보니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는 것이 인생의 참 의미라는 나름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영화나 책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나름 의미 있어 보이지만 자가발전일 뿐입니다. 자기가 시작하지 않은 인생이 그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그렇게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것에 불과합니다. 돛단배 안에서 돛에다 부채질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를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때로는 인류나 국가 혹은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으로 의미를 확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자기 이익에 매몰된 인간들에 비하면 너무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 곧 인생의 의미를 알고서 그것을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고전 13장)


이처럼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컴맹이라는 말이 그렇듯 어두움입니다. 이것을 밝히 알게 하신 예수님께서 빛이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소금’인 이유인 것입니다. 소금은 음식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이 맛이 없듯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없으면 인생에 의미가 없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무의미하고, 사람의 존재 목적이 그렇게 사는 것인데 그리스도가 없다면 맛 잃은 소금과 같으니 아무 짝에 쓸모없어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괜히 ‘사망 가운데 있는 인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빛이라고 했다면 그들도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렇게 보면 또한 그들이 소금이면 예수님도 소금이신 것입니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소금이 짠맛을 가지고 있듯, 그 안에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바로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알게 하는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시는 ‘너희’라는 대상이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하시는 이가 그리스도이시듯,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라고 하는 이들 역시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이라는 것이 짠 바닷물, 이미 소금기와 짠 맛을 가진 바닷물에서 물을 증발시켜 얻고, 이미 짠맛을 가진 소금을 광물처럼 얻는 것이지 어떤 물질에 짠맛을 더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도 소금과 같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이들은 다 삯꾼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어두움, 그것은 존재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밝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입니다. 사람이 자기 정체성을 그리스도와 같음을 인정하므로 자신도 그리스도와 같은 정체성을 회복하면 존재의 목적도, 삶의 의미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존재가 바로 빛과 소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기에 그 그리스도께서 너희도 나와 같이 빛과 같은 존재라고 하셨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이 빛과 소금에 관한 말씀은 너무 유명하니까 쉽게 그 의미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의 근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질 때 비로소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제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순종한 존재, 그들이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가르치시니 제자로서 나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제자가 바로 빛과 소금인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너희’인가 아닌가는 바로 자기 안에서 나오지 않은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그리스도로 인하여 알게 되었는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빛과 소금이 된 너희의 일원으로 사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Matthew 5) Light and Salt - Salt


A person is not a person who started life on its own. This means that a person can not know for himself the purpose of his existence. In a sail, no matter how fiercely it boils down to a sail, no matter how hard you try, labor and give meaning to your life throughout your life, it can not be the object of true self existence.


People live in a world where the world is vigorous, and the world of materialism is not so much influenced by the flow of the world, and it is a true story of life to find what they want to do. I also make books. If you see something like that, it may be meaningful, but it is self-development. It is only by hypnotizing itself that looking for the meaning of life as the life that has not begun comes out in it. This is because it is no more than fanning on the sails in the sail.


So, people are extending the meaning of life by sacrificing the family, loving people, sometimes humanity or country, or other people or organization. The Bible says that such people are so good compared to humans buried in their own interests, but even so, it is useless unless God knows the meaning of life, the meaning of life, and communicates it (1 Corinthians 13).


As such, people do not know the meaning of their lives on their own. What I do not know is darkness, just like the word comedian. This is why Jesus, who made it clear, is a light. In other words, if you meet Jesus like that, you will know the meaning of life. This is why the person who was born again into Jesus Christ is 'salt'. Because salt gives meaning to food.


Without salt there is no taste of food. If there is no identity of Jesus Christ, there is no meaning in life. If there is no such person, the world is meaningless and the purpose of existence of man is to live like that. Without Christ, it is like salt that has lost taste. It is natural to be thrown away. It is not that God is saying 'life in death'.


Jesus said to the disciples, "You are the light." If Jesus came to the light and said that it is light, they are also identities like Jesus. So, also, if they were salt, Jesus was also salt. It is a being that gives meaning to life. This means that a person must have Christ's identity in it, just as salt has salty taste. It is God's definition that it is dead if it is not there.


Jesus told his disciples, 'You are the salt to make people know the meaning of life.' It is Jesus' declaration that "the object of you" that you are saying,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is the being that makes people aware of the meaning of life. If so, it means that you have the same identity as Jesus Christ. Just as Christ is the person who makes people aware of the meaning of life, Jesus Christ is the same as Jesus Christ.


This is about identity. It is not an effort. Salt is called salty waters, it is obtained by evaporating water from salty and salty waters, and it is already a salty salt to get like minerals, not something salty. Therefore, in any case, those who preach "We must try to be like salt as Jesus said" are all hired. It is a false wheat.


The greatest darkness that man has is that he can not know the purpose of existence and the meaning of life. It is Christ's identity that makes it clear and meaningful. When a person recognizes that his identity is the same as Christ, he will also know the purpose of existence and the meaning of life if he restores his identity as Christ. That being is light and salt. It is a matter of course that Jesus Christ is Christ, and that Christ is also like a light like I am.


The words about light and salt are so famous that I think it is their own meaning. But this is the foundation of faith. It is because when we have the identity of Jesus, we become light and salt. A person with the same identity as Jesus is also a disciple. They are obedient to all of Jesus, because they are disciples.


For they are the ones who came out of the mountain to teach Jesus. The disciple is light and salt. Because they are Christ-like beings, just like Jesus, they are people who know the purpose of life and the meaning of life. Whether we are "you" or not, we can see whether we have come to know the purpose of life and the meaning of life because of Christ, and whether it has the same meaning to other people. That is to live as a member of your true light and salt.

(마 5) 빛과 소금 - 빛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예수님의 비유와 기적 Date : 2017. 6. 16. 17:31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너희’가 누구인지는 앞선 두 개의 글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빛과 소금이라고 하신 이유에 대하여 한 번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빛은 성경에서 많이 나옵니다. 우선 익숙한 대로 천지창조의 시작이 빛으로 시작되었고,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빛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누군가에게 <너는 빛>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너는 나와 같은 존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건 언어 영역의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자체발광의 모습으로 다니셨거나 전구처럼 빛을 내시면서 다니셔서 빛이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변화산에서와 같이 빛난 모습으로 보이신 적도 있지만 그것을 두고 예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것은 어떤 어두움을 밝히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의 도움을 ‘한 줄기 빛’이라고 표현하는데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밝히신 어두움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사는지 모르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생을 미로와 같다고 하고 ‘암흑 같은 미래’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다가 나이가 든 어느 날 “왜 사는가?”, “이러려고 살았나?”는 질문 앞에 섰을 때, 그때 답을 알지 못하는 그 어두움, 그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밝히셨다는 것입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늘 ‘빛은 인식’이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인지하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빛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인생의 존재 목적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오셔야 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보이신 인생의 존재 목적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니 그때까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것이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몰라 ‘컴맹’이었는데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이를 만나서 컴퓨터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보고 <너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면 그 사람은 인생의 존재 이유를 알뿐 아니라 그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도 인생의 목적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보고 빛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한 목적이 인생에게 존재의 이유와 삶의 목적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고, 예수님께서 빛이신 이유가 그 목적 때문인데 예수님께서 다른 것을 빌미로 어떤 사람에게 <너는 빛>이라고 하실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인생의 어두움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수님께 가서 그것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생각은 인생의 목적을 삶 자체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현상과 형식이 본질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 빛과 소금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어두음의 빛으로 오시지도 않았고 그것은 어두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 육신이 살아가는 삶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분으로 믿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을 섬깁니다. 등경 위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런 문제의 빛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두움에 대한 개념이 틀렸지만 그래도 자신이 빛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높은 곳에 두고 그 빛이 비취는 아래에서 어두워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인식하고 다스리려 합니다. 그것이 빛에 대한 사람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빛이라고 여기는 것을 그렇게 등경 위에 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그런 본성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알고 예수님께서 자신이 스스로 알 수 없었던 인생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게 하시는 빛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역시 예수님을 등경 위에 둡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통해서 인생의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 곧 예수님께서 <너희>라고 하신 이들은 예수님께서 빛이시듯 그들도 빛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은 인생의 존재 목적을 찾는 나그네들에게는 예수님과 같은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빛이라고 하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게 하심과 같이 예수님처럼 같은 육신으로 살면서 그것을 밝혀주는 이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빛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역시 빛을 등경 위에 둠과 같이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인생의 목적, 그것을 설명하러 오신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빛과 같이 밝히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빛이고, 그들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빛인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Mt 5) Light and Salt -Light


Jesus said, "You are light and salt." I mentioned in the previous two articles about who you are. I will talk about why you called light and salt this time.


Light comes out of the Bible a lot. First, as you are accustomed to,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began with light, and what you can not forget is that Jesus came to the world. If Jesus came to light and said to somebody, "You are light," then it means that you are like me. This is a matter of language.


However, when Jesus was on earth, he did not walk in the form of self-luminosity or light as he lit a light bulb. Of course, you may have looked like a luminous figure in a mountain of change, but it is ridiculous to say that Jesus came into the world with light. The fact that Jesus came in the light means that He came to reveal some darkness. It is the same for people to express their help when they are in difficulty without knowing what to do with 'one-stem light'.


Then what is the darkness that Jesus revealed? It is not a difference, but a person's identity. I do not know why people live, and I do not know what life purpose is. So life is like a maze and it is also called 'the dark future.' One day when I was living very hard, when I stood in front of the question "Why do I live?" And "Did I live to do this?", Then the darkness that did not know the answer was that Jesus revealed it.


I always say 'light is recognition' on this blog. It is to see that it is to meet the light. Jesus' purpose in this earth is to show the purpose of our life. The fact that Jesus had to come to this point means that people did not know the purpose of Jesus' existence. That is why Jesus came to this earth and now it is now known that what people did not know until then. I did not know my computer, but it was like 'Computer'. That is why Jesus is the light.


If Jesus then said, "When you see a man, you say, the light of the world," he means not only the reason of life but also the person who knows the purpose of life. Therefore, Jesus is looking at the man and calling it light.


Jesus came to this world to know the reason of existence and the purpose of life, and the reason why Jesus was the light was for his purpose. Jesus said to someone, "You are the light" There is no reason.


Some people think that the darkness of life is economically difficult, and many people regard their health as poor. If you pray to Jesus and ask for it, you are the one who thinks so. That is the purpose of life in life itself. The phenomenon and the form are the essence. When a person with such an idea reads the words about light and salt, he says that we, like Jesus, must be light and salt. But Jesus did not come in such a dark light, nor is it darkness.


Nevertheless, many people believe that Jesus is the one who solves the problem of the life itself. Then we serve Jesus. It is Jesus who is on the cross. It is because Jesus regards Jesus as the light of such a problem. The concept of light and darkness is wrong, but if I think of myself as a light, I will place it on a high place, and I will recognize and control it as I see the darkness below the light. It is the attitude of a person to light.


Jesus said that it was so on the surface of the earth that every man in the world regards himself as light. Man is basically having such a nature. One of those people who know the purpose of Jesus' coming and know that Jesus is the light that enables him to know the purpose of life and the meaning of life that he could not know for himself,


And those who live by knowing the purpose of life through Jesus, the people Jesus said, are living a life of light as Jesus is a light. And the life of the person becomes a light like Jesus to the stranger who seeks the purpose of existence of life. He is the one who said that Jesus is the Light.


Therefore, as Jesus gives people the purpose of life and the meaning of life, those who live in the same flesh like Jesus and light it are the light of the world Jesus said. And those who also want to know the purpose of life and the meaning of life, such as putting the light on the rim, are being exposed to the purpose of life, the identity of Jesus who came to explain it, is. They are the light of the world Jesus said, and only they are the light of the world Jesus said.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분명하게 그 말씀을 하시는 대상을 정해놓으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은 ‘나는 너를 애굽에서 건져낸 여호와’라고 선언하신 다음에 <너는> 이라고 십계명을 지키는 대상을 명시해 두었습니다. 그와 같이 빛과 소금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이 말씀에도 <너희는>이라는 대상이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대할 때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대상에 속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단지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당연히 그 대상에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대상에 속한다면 그 말씀이 자기 삶이 되거나 자신이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것은 다 이루어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어떤 대상에게 <너는 이것이다.>라든가, <너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면 아무런 저항 없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셨으니 그렇게 되기 위하여 신앙생활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식의 접근법은 착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조금만 양심적이면 그 말씀대로 자신이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설사 노력이 끝을 본다고 해도 개가 노력해서 고양이가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빛과 소금에 대한 말씀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빛과 소금이 된다거나, 누구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빛과 소금과 같은 이들에게 너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하면 빛과 소금이라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빛과 소금인 사람들을 <너희>라고 부르시고 그 너희가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건 성경 해석의 문제 이전에 문맥 자체가 그렇습니다. 


사소한 것 같으나 성경을 볼 때 이런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이것을 놓친다는 것은 성경을 기록한 하나님의 의도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맘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도 분명하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그리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되어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으니 빛과 소금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설교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정말로 자의적인 관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빛과 소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이해하고 듣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너희>에 우리가 속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알면 되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려할 것이 아니라 <너희>가 되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너희>가 되는 것이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나 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다릅니다. 이유가 갖추어지면 결과가 나오는 것인데 누구인지는 상관 않고 빛과 소금이 되려는 것은 양의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십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구해준 분이 여호와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너>입니다. 그 <너>, 하나님을 애굽에서 자신을 건져내신 존재의 신 여호와로 보지 않는 이가 십계명을 지킨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You)>는 독립된 정체성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너’는 ‘나’와 이인칭의 관계에 있는 대상에 대한 호칭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너>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 부르는 이와 불리는 이가 <너와 나>의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서로 어떤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그 관계는 둘이 동일하게 그 관계를 인정할 때 성립되는 것입니다. ‘너’ 없는 ‘나’가 있을 수 없고, ‘나’ 없는 ‘너’가 있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것은 서로가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무엇보다 예수님과 이인칭의 관계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의와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의가 다르면 원수가 되지 <너와 나>가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행위로 하나님의 아들이나 빛이 되신 분이 아니라, 성령으로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셨는데 그 정체성이 빛이신 분입니다. 어떤 노력으로 빛이 되신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빛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났다(born)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너와 나>의 관계, 예수님께서 <너희(You)>라고 부르시는 관계는 행위로 빛과 소금이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처음부터 빛과 소금으로 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인 것입니다. 존재로서 빛과 소금이 된 사람을 부르시는 호칭이라는 것입니다. 행위로 또 소유의 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한 이들은 하나님의 정체성에도 예수님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께 ‘너(You)’가 아닌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Mt 5) Light and Salt - You,


In the Bible, most of the time God has set a clear target for His Word when He speaks. For example, the Ten Commandments declared "I am the Lord who delivered you out of Egypt," and then I have specified an object to keep the Ten Commandments, "You." In this same saying, which speaks of light and salt, the object of "you are" is clearly defined.


However, when many people treat the Bible, they do not worry about whether they belong to the object God and Jesus say. I think that if I just go to church, it will be the object of course. But it is mistaken. Because if you belong to the object, it will not be difficult for you to live your life or to keep your word. Jesus' words do not fall on the earth. This is because everything you said is done.


Therefore, if Jesus said to an object, "This is this," or "You will be like this," then it should be without any resistance. But it is not an illusion, but the fruit of anything else can not be obtained. This will acknowledge that if a person is a little conscientious, he can not do what he says. Because it is not working yet, and even if the effort is over, the dog does not become a cat by endeavoring.


The word about light and salt does not mean that someone should be light and salt, and some must be light and salt. This is clearly what you say to those like light and salt. It is not how someone talked about light and salt. Those who are already light and salt are called "you," and they say that you are light and salt. This is the context itself before the problem of Bible interpretation.


It may seem trivial, but you should not miss it when you look at the Bible. Missing this is because you are looking at your own will, not according to God's intentions of Scripture. It is indeed self-evident to say or understand that this word must also be clear, saying, 'You are the salt of the world' and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nd 'You must believe in Jesus and be like light and salt' It is a perspective only.


Therefore, to best understand and hear Jesus' words about this light and salt is to know who Jesus is speaking of. If we know it, then we need to know whether we can belong to the <Jesus> Jesus said. It is not to be light and salt, but to be.


Is this not to be these things, to be light and salt, or to be all efforts? You can talk. That's what it is. But this is different. The reason is that the result comes out, but it does not matter who you are and what you want to be light and salt is like the one that has not come in through the door of Yang.


The same is true of the Ten Commandments. He is slain in Egypt, but the one who acknowledges that the one who rescued himself is Jehovah is the one God says. That is not to keep the commandment of God that the one who does not see God as God, the God of all who has rescued himself from Egypt, keeps the Ten Commandments. Jesus said to them, "Lord, Lord," you are not saved.


You do not have an independent identity. 'You' is the title of the object in the relationship of 'I' with the person. So when someone calls you, it means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you and me has been formed. That is, a relationship is formed when the two recognize the relationship equally. It is a relationship that can not have 'I' without 'you', and 'you' without 'I'. This means that they have the same identity.


And most of all, being a relationship of Jesus with Jesus is a being with the same righteousness and identity as Jesus. If the righteousness is different, it will not become the enemy. Jesus is not the Son or the Light of God in action, but the Holy Spirit, and the Word became flesh, whose identity is the Light. It is not born in the light of some efforts, but born from the beginning as a person with a light identity.


Therefore,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you and me", the relationship that Jesus calls You, is not a person who wants to be light and salt, but a name that calls people from the beginning who are made of light and salt. It is the title that calls the person who became light and salt as being. Those who seek to come to God by the act and by the dream of possession are not "You" to Jesus and God because they do not fit either God's identity or Jesus' ident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