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1 1절에서 9절은 형식상 서론에 해당하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서신 전체의 결론이자 핵심을 담고 있다. 이어지는 10절 이하의 내용은 이러한 핵심 원리가 구체적인 사역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일종의 각론이다. 특히 1장 후반부에서 바울 사도는 할례당과 그레데인을 명확히 지목하며 매섭게 책망한다. 얼핏 두 개의 독립된 집단을 꾸짖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문맥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은 민족과 지역, 그리고 종교적 색채가 뒤섞인 '교집합적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할 '그레데인'이라는 명칭은 단순한 혈통적 구분을 넘어선다. 이는 당시 지중해 상업의 요충지였던 그레데 섬에 모여든 다양한 민족 전체를 일컫는 문화적 명칭에 가깝다. 당시 사회에는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그레데인"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였는데, 이는 어떤 특정 혈통의 기질이라기 보다 부를 좇아 상업적 중심지로 모여든 인간 본연의 탐욕을 반영한 표현이다.

 

이러한 구조적 배경 아래, 당시 소아시아 전역에서 복음을 위협하던 할례당의 유입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문제는 종교적 정통성을 내세우던 할례당이 그레데 지역 특유의 배금주의와 거짓말하는 기질에 젖어 들었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처럼 유대주의적 외식과 그레데적 탐욕이 결합한 변질된 집단이 교회를 심각하게 어지럽히고 있음을 간파하고, 디도에게 이들을 엄히 꾸짖을 것을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할례당은 복음에 유대교의 종교적 전통을 접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예수님께 외식으로 책망받기는 했으나 경건한 삶의 모양을 갖춘 이들이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경건한 삶을 권면하는 이 디도서에서 그들을 가장 책망하고 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강하게 책망하는 이유는 그냥 껍데기만 경건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딛 1:16)

 

디도서의 문맥을 보면 그레데 지역에 유입된 할례당은 유대인 특유의 외식적인 경건조차 찾아보기 힘든 집단이었음이 분명하다. 바울 사도는 이들을 향해 헛된 말로 사람을 속이고, 자기의 더러운 이득을 위해 가정을 망가뜨리는악한 짐승이라며 유례없는 독설을 퍼붓는다( 1:10-11).

 

이들이 주장한 핵심은 "구원을 얻으려면 그리스도를 믿되,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 유대교라는 문을 통과해야만 그리스도라는 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복음을 유대교의 한 하부 분파로 전락시킨 치명적인 오류였다. 그들이 이토록 율법을 고집한 이면에는 당시 유대교를 공인 종교로 인정하여 군 면제와 안식일 준수 등의 특권을 부여했던 로마의 정치적 상황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할례당은 이러한 법적 혜택을 미끼로 이방인들에게유대교인(할례) 인증서를 팔아치우며, 영혼의 구원이 아닌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챙기는 장사를 벌인 셈이다.

 

유대교 특히 할례당의 정체성은 철저히외식에 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이들을 책망하는 방식은 매우 원색적이다. 외식하는 자라면 겉으로라도 경건한 척 행동해야 할 텐데, 바울은 오히려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부정하는가증한 상태라고 폭로한다( 1:16). 그들의 행위조차 경건하지 않았거나, 행여 모양이 경건한 척했다고 해도 그건 가증한 것이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그렇게 원색적으로 책망했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분명 경건한 생활을 소망하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참된 경건이고 무엇이 가증한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행위는 생명 본성에 종속된표현

행위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영역이기에, 우리는 종종 행위 그 자체를 본질이자 전부로 오해하곤 한다. 성경이 특정한 행위를 책망할 때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는 그 행위 자체만이 가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행위는 결코 독립적이지 않으며 오직 생명의 본성에 종속된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생명의 본성과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며 가증스러운 것이 된다. 거듭난 생명을 소유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거듭난 자처럼 행동하고, 심지어 그것이 자신의 실제 생명인 양 착각하며 타인에게 인식시키려 애쓰는 상태,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가증함의 실체다. 이는 굳이 신앙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가증스럽게 여기는 보편적 이성과도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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