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으로 마무리되는 사무엘 하는 다윗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7만명이 죽게 된다. 이는 압살롬의 반란 때 죽인 반란군 20,000명의 3.5배나 되는 엄청난 수다. 압살롬의 반란도 밧세바와의 일이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결국 죄는 다윗이 범했는데 피해는 백성들이 당하는 모양새다. 물론 ‘백성이 모두 선량한 사람이었을까?’라는 반문이 있을지 모르지만 왕인 다윗이 죄를 범하고 벌은 백성이 받은 모양새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런 구조도 다윗의 일을 역사, 정치적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이라는 세계와 나라의 일로, 개인의 인생이라는 왕국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각 사람의 자아라는 왕의 일로 봐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지속적으로 사울과 다윗의 일을 내 개인의 삶을 주관하는 왕 같은 가치관과 신앙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윗의 범죄로 인하여 죽은 백성은 내 인생의 손해 혹은 죄로 인하여 상실한 삶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다는 건 자기 신앙의 공적을 가늠한 일로 보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신앙적 공로를 스스로 정리하면서 자부심을 가지며 더 나아가서 그걸 자랑하거나 심지어 그 공로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심판하는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과 같은 모습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받으면 이 말씀을 반성과 은혜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빚을 받으려다 오히려 옥에 갇히게 되었듯 우리가 신앙의 공적을 가늠하고 측량하는 건 지극히 위험한 자만과 교만이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다윗이 그랬다고?’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이 상황은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는 관점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신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그걸 공로로 여기거나 때로는 하나님께 구하는 소망의 대가로 지불하려고 한다. 가장 좋지 않은 건 앞서 언급한 대로 자기 공로를 가지고 다른 신앙과 비교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이스라엘 백성 7만명의 목숨보다 더한 값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공로는 행함의 축적이다. 우리가 어느 날 내 신앙의 공로를 기웃거리게 된다면 그건 내 신앙을 행함으로 의로워지는 신앙으로 오염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만한 게 있을 거 같고, 지금 뭔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퇴적된 기억 속에서 주님을 위한 일을 찾아내어 제물로 바치려 한다면 신앙 자체를 오염시키는 일이 된다. 이게 당연히 그러면 안 되는 줄은 알지만 사실 쉽지 않다. 심지어는 지금 간절한 것을 주시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미래의 공로까지 담보로 제시하며 하나님과 장사를 하려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의 선진으로, 모범으로 삼는 다윗도 공로의 교만으로 인하여 큰 대가를 치렀다. 그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우리가 쉽게 다윗보다 나은 사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 흐름에서 이야기를 더 해 본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라고 타산지석을 삼으려고 하지만 우리 중 누구라도 베드로보다 더 큰 신앙을 가지기는 어렵다. 베드로가 부인한 것은 ‘매 맞고, 십자가에 달리는 메시아’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지 예수님 자체를 부인한 게 아니다.
우리는 공로에 대해 엄격하면 좋다. 모호하면 공로로 분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넓게 보면 간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반대급부로 하나님께 제시하거나 다짐하는 모든 게 공로의 범주에 속한다. 하나님께서 알아 주길 바라며 행하는 모든 게 공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거래하거나 장사하는 존재가 아니라 순종하는 존재이므로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려서 의롭게 될 수 없다. 우리 육신의 수고나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삼성그룹 회장에게 갤럭시를 뇌물로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짓을 하면 왕으로서 7만명의 목숨을 잃는 것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할 수 있다. 그게 다윗의 인구조사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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