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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무익함은 성경의 일관된 말씀이다. 문제는 무엇이 우상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같이 조각한 목상이나 석상 또는 나무와 돌 그리고 바위와 같은 것에 절하고 빌면 그 대상이 우상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우상의 본질은 아니다. 우상의 본질은 사실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이 자신의 문제나 소망을 이루어줄 대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우상의 뿌리고, 그 마음으로 기대는 모든 것이 다 우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형식과 도구로 육신을 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씀의 본질적 의미다. 형상은 image고 이는 육신 가진 사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표현하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사람의 존재 목적, 삶의 의미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신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인 하나님의 이미지 곧 성품을 표현하는 도구와 형식이지 인생의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목적을 버리고 도구이자 형식인 육신을 본질로 보고, 육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문제로, 그 육신의 평안과 안식을 도모하는 것을 소망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 마음과 소망을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그것이 우상이다.

 

그러므로 우상은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의 마음을 기대는 모든 대상이 우상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 아닌 것을 바라는 대상은 모두 우상이라는 의미다.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상대가 다 하나님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르는 것과 기대하는 것은 상호간 동일한 목적, 동일한 본성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훈련소 훈련을 마친 아들 면회를 간 부모가 아들 이름을 부르면 자기 아들만 부모의 부름에 화답하는 것과 같다. 설사 아들의 이름이 같아서 돌아볼 수는 있어도 서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이내 무의미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부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육신의 일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르면 여호와 하나님은 답하지 않으신다. 무엇보다 사람이 육신의 일, 곧 육신의 정욕을 좇아 부르는 하나님은 자기 생각에는 하나님 같지만 그 하나님이 사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우상이다. 사람이 이것을 모른다. 하박국에서 새겨 만든 우상에 관한 말씀에 여호와는 성전에 계신다는 말로 답하신 것도 여기에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육신의 일, 곧 육신의 정욕을 좇아 부르는 하나님이 진정한 우상

 

새겨 만든 우상이 무익하다고 말씀하시는 끝에 여호와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것은 눈에 띄는 말씀이다. 이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상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자 정체성을 자주 언급하신다는 것도 모를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존재의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이 육신의 정욕을 기대며 새겨서 만든 우상은 전혀 다르다. 존재의 하나님 여호와는 존재의 목적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하나님이고,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하려는 하나님은 육신의 정욕이 새겨 만든 무익한 우상이다.

 

여호와는 성전에 계시고 우상은 새겨서 만든다. 성전에 계신다는 것은 내용과 목적과 의미와 영으로 거하신다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며, 유언자가 가진 본성이 육신으로 표현되는 생명과 같이 속에서 밖으로 나타나는(영광 = 나타나다) 하나님이시다. 반면에 새겨 만든 우상은 기계와 같이 겉만 조각하여 만든 조각품이며, 속에서 밖으로 나올 것이 없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성전에 계신다는 것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바울 사도는 여호와께서 성전에 계신다고 했는데 바로 그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나타낼 형식으로 질그릇과 같은 사람을 지으시고 그 속에 거하신다는 것은 그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순종했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의미며, 무엇보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진정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그에게는 우상이란 없다는 의미는 덤이다.

 

너희 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야(고전 3:16)

 

하지만 하나님께서 육신을 주신 목적,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을 외면하고 육신이라는 겉모습을 본질로 보는 신앙을 가졌기에 육신의 일을 구하고, 육신의 일을 구하는 대상이자 신이다보니 조각한 것과 같이 겉모양만 새겨서 만들기에 우상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나 성당을 다니며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은 돌이나 나무로 하나님을 조각하지 않으니 자신들의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계속 설명한 것과 같이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기도하고 있다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생각으로 빚고 새긴 우상일 뿐이다.

 

육신의 일과 세상에서의 성공은 겉모습과 형식에 관한 것이고, 그것을 의탁하고 해결하는 신(해결하지도 못하지만)은 형상의 유무와 무관하게 개념 자체가 우상이다. 이것을 부인하면 안 된다. 조각상이 없다고 우상이 아닌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기도가 육신의 문제와 세상의 문제라면 자기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자기 하나님이란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전 안에 계시는데 그들은 오늘날 교회의 겉모습을 화려하게 건축하는 것과 같이 성전의 겉모습, 육신이라는 인생의 겉모습만 보기에 성전 안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이들의 하나님이 아니다. 따라서 당연히 응답하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