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모든 은혜의 상징이다. 그리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몸소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형벌을 대신 받은 대속의 상징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시간과 순간 십자가는 눈물 짓게 하고, 몸서리칠 정도로 감사하고 감격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차비를 대신 내주듯 우리가 지은 죄의 형벌을 대신 받은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결론적으로 그런 결과를 가져왔을 뿐 십자가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는 전편의 글에서 이야기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동력을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니까 우리 대신 형벌을 받았다는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사랑과 신념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잔을 피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이기에, 또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을 참고 견디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드러난 형식이고 본질적 의미는 더 깊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라는 아들의 생명 본성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신 사건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삶이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 있고, 십자가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지, 우리가 받을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았기에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드러난 것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가?’라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육신 가진 사람의 모습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하나님 아들이라는 기준에 부적합하다고 하여 십자가를 지라고 하자 자기 육신을 내어 주셨다.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는 모습과 <본성>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성품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를 보여주시므로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 표상이 되신 것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게 본질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대가의 형벌을 다 받으신 것이라는 사고 구조는 “그럼 이제 맘껏 죄를 지어도 되나?”, “예수님 이전 시대 사람의 죄는?”, ”미래에 내가 지을 죄도 이미 다 포함되나?”와 같은 질문 앞에 헤매게 된다. 이런 질문들은 충분히 어리석지만, 십자가가 형벌을 대신 받은 것이라는 전도가 화를 키운 셈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틀(Mold)이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목적을 가진 존재로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해야 했던 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스스로 결정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순종을 하라고 주신 선택의 자유와 권한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추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선악과를 먹은 사건이다. 자기 존재 목적도 모르는 피조물이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그게 바로 선과 악을 먹은 선악과 사건이다.
이렇게 자기 자리를 떠나 인생의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정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을 보여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셔서 이 육신을 어떻게 사용하고, 이 육신으로 무엇을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정한 대로 사는 육신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표현하시고자 한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이 무엇인지를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다.
십자가 사건은 갈보리 언덕 위의 일이 전부가 아니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부터다. 물론 따지고 보면 탄생에서 부활까지 전부가 해당하지만 십자가만 정의한다고 해도 갈보리 언덕 위의 십자가가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이시려 한 하나님의 뜻, 사람에겐 존재의 목적은 십자가를 지는 과정에서부터 드러나 있다. 우리는 이걸 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자 진리이며 빛이다. 그런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빛이며 그리스도다’라고 말씀하신 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기준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자 세리, 창녀와 먹고 마시는 예수님은 절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선악과를 먹은, 그러니까 자기가 옳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의 관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신성모독과 반란(유대인의 왕이라 함)의 수괴일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심판했다. 거지 꼴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신성모독에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반역죄를 적용하여 십자가 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걸 수용하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죄인이 자기 의를 주장하는 주장 앞에 나의 육신을 내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진 사람을 통해 표현하시고자 한 하나님의 성품이다. 이 의가 육신으로 표현될 때 하나님의 의를 육신으로 표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그냥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 구원의 표상인 십자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십자가는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은 게 아니라 우리가 상실하고 버린 하나님 아들의 모습,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의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시므로 우리가 놋뱀처럼 들린 그 모습을 보고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 보이고 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때 십자가가 나의 구원이 된다. 내가 그렇게 수용하고 순종하고 깨닫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내 죄를 사하는 게 아니다. 그건 낭비지 은혜가 아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나보다 죄인, 세상 가치에 찌든 사람의 주장 앞에 나를 내어 주는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 본성의 회복은 거듭남으로만 가능하다. 본성은 생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더 의로울수록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하며 가르치려 하는데 그건 십자가 섭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진정한 의인이 죄인들의 주장에 죄인이 되어 자기 육신을 내어준 사건이라는 걸 바로 봐야 한다. 그래야 구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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