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회고록, 다윗의 승전가
사무엘 하 22장에는 다윗의 위대한 승전가가 기록되어 있다. 시간과 정황상 이 노래는 다윗이 자신의 일생을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신의 전 생애가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했음을 고백하고 선언하는 인생의 회고록이라 할 수 있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내용 대부분이 시편 18편과 중복되는데, 사실 다윗의 신앙과 믿음의 본질은 사무엘서와 같은 역사서보다 그의 영혼이 담긴 고백인 시편을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다윗의 승전가는 매우 거시적이고 개론적인 성격을 띤다. 노래 속에서 다윗은 사울이나 블레셋과 같은 구체적인 적의 실명을 언급하는 대신, 그들을 '대적' 혹은 '원수'라는 집합적인 용어로 총칭한다. 즉, 일생동안 마주했던 수많은 적을 하나의 거대한 대적의 무리로 정의하고, 그들과의 모든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승전가는 인생의 모든 고비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넘어서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소망의 노래가 된다.
기구한 삶과 '승리'라는 고백 사이의 역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다윗의 삶은 기쁜 날보다 슬픈 날이 훨씬 더 많았다. 사무엘서와 같은 역사서를 통해 들여다본 그의 삶은 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에 너무나 기구하고 처절했다. 밧세바와의 간음처럼 뼈아픈 실수가 있었고, 아들이 딸을 강간하거나 아들들끼리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비극이 가정 내에서 반복되었다. 충성스러운 부하 요압의 손에, 비록 반란군이었을지언정 사랑하는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등 다윗의 생애는 참담한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통과한 다윗이 어떻게 스스로를 향해 '하나님으로 인하여 승리한 인생'이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었을까?
원론적으로 전쟁의 승패는 패자에 의해 결정된다. 패자가 괴멸되거나 스스로 패배를 인정할 때 비로소 승리가 확정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은 어느 한쪽이 끝내 이겼다고 주장하는 소모적인 상태로 남게 된다. 다윗의 경우, 사울은 죽었으니 승리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블레셋과 같은 이방 족속은 여전히 완전히 괴멸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평생을 이방인과 싸운 다윗이 승리를 선언한 이유는, 그가 싸운 대적의 본질이 단순히 사울이나 이방 족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적 전쟁의 진짜 주적(主敵), ‘나’라는 자아
표면적으로 보면 다윗의 적은 사울과 대외적인 블레셋, 그리고 내부적으로 갈등을 빚었던 이스라엘의 지파들과 반란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상들은 다윗의 '주적'이 아니다. 다윗이 수 많은 곤고한 일생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승리로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표면적인 적과 삶의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즉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영적 전쟁의 정체와 승리의 조건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의도 속에 담긴 대적은 우리 삶의 형편이나 어려움이 아니다. 어쩌면 사탄 마귀도 아니다. 우리 영적 전쟁의 진정한 주적은 바로 '나', 곧 나의 '자아'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자기 옳음과 의로움으로 관철시키려는 생각 그것이야 말로 사탄과 마귀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개역한글판)
사무엘 상·하와 같은 역사서는 '나'라는 한 개인의 세계와 왕국을 무엇으로 다스리고, 누가 주관할 것인지에 관한 엄중한 기록이다. 성경 속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내가 주관하는 내 인생이라는 세계의 모델이다. 하나님은 이 모델을 통해 나의 자아라는 왕국을 사울처럼 세상의 기준으로 좋다는 것들로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실 것인지를 묻고 계신다.
우리는 일생동안 자아와 싸운다.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인생은 '자아실현'을 향해 달려가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아는 가장 무서운 대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는 단순한 정체성이 아니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생각, 그것을 관철하려는 신념과 노력을 의미한다. 자아의 존엄을 지키려 애쓰고, 인생을 온전히 자신의 소유로 간주하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그 모든 행위가 바로 자아다. 한마디로 내 인생을 내 힘으로 성취하겠다는 독선적인 신념이다.
인생을 훔친 도적의 마음에서 돌이키는 것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인생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잠시 맡기신 것이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인간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진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뜻이지, 자기가 주인 노릇 하라는 뜻이 아니다. 피조물이자 청지기인 인간이 인생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것은 인생을 '훔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생을 도둑질하여 자기 의를 성취하려는 자아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영적 전쟁의 주적이다.
우리가 다윗을 표상 삼아 일생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주적의 정체를 선명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위치조차 모른 채 무작정 출정한 제1차 십자군처럼,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무엇을 이겨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승리를 얻을 수는 없다. 우리가 겪는 환난의 모양은 제각각 달라도 그 뿌리는 늘 하나다. 세상을 창조하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충돌하는 나의 '자아'가 그것이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 보이지 않는 허상과 싸우게 되고, 당연히 승리할 수도 없다.
승리를 위한 첫걸음: 시인(是認)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다윗의 모든 전쟁은 결국 '내가 다스리는 나의 삶'이라는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반란은 내가 옳다고 믿는 의로움이 하나님의 의와 충돌할 때 일어나며, 외적인 괴로움은 내 자아를 틈타 침범한 세상의 가치관들이다. 다윗이 정의한 대적과 원수의 근원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내 것으로 여겨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투사하는 것, 이것이 곧 선악과의 본질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기고 싶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은 주적인 나의 자아, 즉 내가 옳다고 믿는 고집과 내 인생을 내 소유로 여기는 '도적의 마음'을 직시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욕심'이라 부르며 죄의 뿌리로 정의한다. 오늘 우리가 다윗과 이스라엘이라는 모델을 통해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우리 내면에 도사린 사울과 같은 마음, 이방인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시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정직한 시인이 있을 때, 우리에게도 비로소 다윗과 같은 진정한 승리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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