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2:8-16) 룻을 배려하는 보아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룻기 Date : 2019.11.14 06:31 Writer : 김홍덕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게 된 룻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게 되고 이를 인하여 보아스의 눈에 들게 된다. 그러자 보아스는 룻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룻에 대하여 알게 된 보아스는 룻이 편하고 풍족하게 이삭을 주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 책이 성경이 아니라고 한다면 분명 보아스가 지위를 이용하여 룻에게 사심 가득한 작업을 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룻기는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방 곧 세상의 형식으로 규정한 자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서 진정한 하나님의 의, 곧 자신의 존재 목적을 하나님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지를 룻을 통하여 설명하시는 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가 룻을 배려하는 것은 사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모습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룻기는 1장의 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나오미의 남편이자, 룻의 남편의 아버지인 엘리멜렉이 자기 고향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 흉년이 들자 자기 힘으로 하나님 주신 인생을 풍족하게 해 보겠다고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걱정하고 도모하는 세계인 모압 땅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 그 자신과 아들들이 모두 죽게 되어 아들을 낳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이 믿는 신앙에 열매 곧 생명이 없음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 후에 다시 고향 땅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족함을 들었을 때 이제 더 이상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고, 이를 본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 돌아가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의탁한 결정을 한 것이다. 즉 자기 고향, 그리고 그 고향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남편으로 맞았지만 얻지 못한 생명을 얻으려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 나오미를 따른 것이다.


이 룻의 모습은 하나님을 믿노라하면서 자기 행위를 성경대로 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신앙 안에서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을 향하여 자기 인생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날 때부터 교회에 다니지만 늘 그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성경에 있는 것을 자기 육신으로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과부의 신앙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자리를 떠나 은혜가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룻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서의 성공이라는 이방인의 가치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신앙에서는 언제까지 해야 신앙이 평안에 이르는지도 알 수 없고, 그렇게 노력해도 자신이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 진정한 신앙의 목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불경스럽고 이단이 되는 세계에서 떠나 온전한 신앙으로 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관심과 은혜를 베푸시는지를 보아스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먼저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그 일은 사실 보아스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삭을 줍는 것은 자기 것이 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하여 성실함이 보아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찾기까지 성실하게 사는 것은 사실 자신을 위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하여 사람을 만드셨으므로 그 모습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룻과 보아스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아스는 룻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에 감동했다. 그래서 룻에게 직접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일할 뿐 아니라 소녀 곧 여자들이 아니라 소년들(남자들)과 함께 먹을 수 있게 배려했다. 즉 형식만 있는 신앙이 아니라 내용이 있는 신앙의 세계의 양식을 먹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도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인정받아 세상의 기준으로 가치 있는 것을 얻을까 궁리하는 신앙의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먹고 마시는 세계의 양식을 주신다는 의미이다. 이는 룻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런 세계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룻의 모습에서, 형식만 남은 신앙의 세계에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남편 같은 하나님의 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 곧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 진정 살아있고 생명 있는 삶을 하나님께 찾는 자에게는 형식을 양식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과 내용을 양식으로 주신다는 것을 룻을 향한 보아스의 배려로 말씀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