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 2:11-14)
그레데라는 타락한 사회 한복판에 있는 교회를 향해 각 세대별 경건의 형식을 권면하던 바울 사도는, 2장 후반부에 이르러 분위기를 살짝 전환한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앞서 열거한 세대별 경건한 삶이란, 결국 구원받은 사람의 내부로부터 밀려 나오는 '하나님 은혜의 필연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 2:11)
구원의 은혜가 임하면 사람은 이 땅에서 경건한 삶의 형식을 취하게 되고, 마침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온 우주에 폭발하듯 나타나기를 갈망하며 기다리게 된다. (롬 8:19) 바울은 이 모든 영적 여정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대속물로 내어주신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 구원의 위대한 섭리는 우리를 단지 천국행 티켓을 쥔 낙원 대기자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 속에서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한 일'이 곧 거듭난 생명이 살아내는 '경건한 삶'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잠깐 ‘하나님의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막연히 도덕적이고 착한 걸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착하고 도덕적인 걸 배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의 본질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꼭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런 걸 부연 설명해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선 ‘선한 선생’이라고 불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선의 기준이자 본체라는 뜻이다. 즉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할 그때 비로소 선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결국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사는 걸 말한다. 그래서 경건은 하나님이 인생을 주신 목적대로 사는 삶이다.
그럼 여기서 바울 사도가 정리한 구원의 정체성을 살펴보자. 먼저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신다는 뜻이다. 너무 당연한 말씀인 것 같지만, 이 의미를 바로 알려면 역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해 주기를 바라신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사람은 하나님의 이 은혜를 등지고 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양육은 젖 먹이고 달래는 양육이라기 보다 독립된 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걸 말한다. (원어의 의미가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가 독립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라는 존재의 목적을 수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게 구원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독립적이라는 건 하나님의 아바타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선택하여 순종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독립적인 존재로 양육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간다. 어떤 상태가 양육된 상태인지 검증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과 같은 모양새다. 양육된 사람은 먼저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을 다 버리게 되고, 근신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복스러운 소망과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구원의 은혜는 우리를 불법에서 건져내어 선한 일에 열심인 백성이 되게 하려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은혜의 근거까지 상세히 설명한다. 이는 성경의 장절로 3개 정도의 절에 구원의 모든 섭리를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단어를 되새김질해 봄직하다. 먼저는 13절에 나오는 ‘복스러운 소망’에서의 ‘복’이다.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은 ‘복’이라고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세상에서의 복락을 먼저 떠올리지만 여기서 말씀하시는 복은 세상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인하여 즐겁고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데,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 역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을 인하여 행복하기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또 주목해야 하는 건 ‘영광’이다. 우리는 영광이라고 하면 번쩍이고, 찬란하며, 칭송을 받는 상태 같은 걸 생각하지만 사실 성경은 ‘나타나다’라는 의미의 ‘독사(δόξα)’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고전 10:31)’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표현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만으로 행복 삶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 만드신 목적을 드러나게 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복을 소망하게 한다는 말씀이 된다. 그리고 이런 삶이 곧 선한 일에 열심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정리한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선’ 역시 앞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기준으로 선악을 나눈 선이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하신 이가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이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를 선하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즉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 이것이다. 이 선하고 경건한 삶은 하나님만으로 행복한 한 삶이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 즉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한 자리로 회복된 경건하고 선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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