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일을 만난다. 기도가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나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는 달리 나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나의 능력 외에 다른 요소들에 결과가 많이 종속되어 있는 현실에 놓인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때로는 건강처럼 목숨이 걸린 중대한 경우도 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지만 대개는 기도하면서도 ‘이게 정말 기도한다고 해결이 될까?’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렇게 의심이 들 때 우리는 성경에 있는 여러 말씀들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먼저 바다 위를 걷다가 파도를 보고 두려워 바다에 빠진 베드로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직접 말씀하심에도 믿지 못하고 증거를 요구한 기드온도 생각이 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건 우리가 기도한다고 즉시 현실에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로 새벽에 기도한다고 은행이 6시에 문을 여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고 또 기도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간구하면 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그런 어려움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기도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도한다고 피부로 체감하듯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확신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설명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순간, 또 간절함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는 예수님을 보고 바다 위를 걸었던 베드로와 같은 마음이었다가 눈을 뜨고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은행은 아직 열지 않았다는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파도를 보고 두려워하여 바다에 빠진 베드로의 모습인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드온처럼 증거를 기대한다. 흔히들 기드온이 하나님을 시험한 일을 두고 믿음이 없다는 점만 부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드온은 어떻게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 것이다. 자기 안에 확신이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를 얻고 싶었다는 건 어떻게든 믿으려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몸과 삶에 베인 상식으로는 해결될 거 같지 않은 현실적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 작은 증거들을 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 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옵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명 땅에는 다 이승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삿 6:39)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믿음의 증거와 관련하여 선진들은 이런 증거가 없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믿음이라고 설명하고 우리를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증거, 내 몸에 익힌 상식으로는 어려워 보이는 일도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걸 확신하는 믿음을 얻기 위한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 그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고,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정말로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체휼한 증거,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삶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증거가 되는 약속과 언약을 성경으로 주셨고, 그렇게 주신 성경 안에는 그 믿음을 가진 선진들의 믿음과 그 믿음대로 행하신 하나님의 증거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니 그 증거들의 집합이 바로 성경이다. 어떨 때는 관용구처럼 사용하는 ‘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우리는 이게 쉽지 않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괴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는 우리가 베드로와 기드온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런 마음이 드는 자신을 믿음 없다고 자책만 하고 있을 건 아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하신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존재라는 걸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이 약함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다. 이 괴리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이자 우리 신앙의 구도라는 걸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건 생명이 자라듯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손바닥 뒤집듯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기적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 기적을 경험하기까지 자기 과정이 있었고, 그 경륜의 넘치게 하는 한 방울의 물로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뜬금없이 갑자기 하나님을 굳건히 믿는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므로 오늘 간구하면서도 믿음을 체감하지 못하는 자아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해야 하는 우리 참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 어려운 문제를 아뢰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수많은 증거가 성경으로 또 머리와 생각 속에 있지만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는 믿음이 다소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파도를 보고 물에 빠진 베드로처럼 아직 다 믿지 못하는 자아를 인정하고 고백하기도 하고, 기드온처럼 증거를 구하는 기도도 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사실 그것뿐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는 홍해 앞까지는 가야하고, 비를 기다리는 엘리야가 마련한 제단은 마련해야 한다. 그건 은행이나 병원에 가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 같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내 손에 증거가 될만한 게 없다고 해도,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죄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이미 손에 증거가 있다면 소망이나 믿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증거가 없을 때 믿는 믿음, 그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그런데 지난 날을 잘 생각해 보면 내게도 많은 증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정말로 ‘모든 것이 은혜’라는 고백과 감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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