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디모데와 디도는 사도 바울의 대표적인 영적 아들들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성향 면에서 매우 대조적인 인물이다. 디모데가 섬세하고 신중한 성품으로 공동체의 내실을 기하는 관리형 지도자였다면, 디도는 강단 있는 추진력으로 난제를 정면 돌파하는 해결사 혹은 야전 사령관 같은 기질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개성 차이는 할례를 대하는 바울의 태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바울은 신중한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받게 한 반면, 강직한 디도에게는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성격 차이만을 고려한 결정은 아니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었기에 유대인 선교를 위한 전략적 배려가 필요했고, 디도는 완전한 이방인이었기에 복음의 자유를 수호해야 할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은 바울의 사역 안에서 각기 적재적소의 역할을 담당하는 근거가 되었다.

 

우리가 살펴볼 디도서는 바로 그 영적인 아들 디도가 그레데에 세워진 교회를 맡았을 때 전달된 서신이다. 그레데는 지중해의 섬으로 현재는 그리스의 크레타섬이다. 이곳의 교회는 바울의 공식적인 1~3차 전도 여행 중에 설립된 것이 아니라, 1차 투옥 이후 석방된 시기인 이른바 '4차 전도 여행' 중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적 배경보다 당시 그레데라는 지역과 거주민들의 성향이다. 바울은 그레데인들을 가리켜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고 여과 없이 직설적으로 평가한다. 디도서 전반에 걸쳐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인의 이러한 기질을 고려하여 강한 어조로 복음을 전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한다면 바울이 강단 있는 디도에게 그레데 교회를 맡겼는지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디도서는 한마디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 그레데'를 감독하는 디도에게 보낸 목양 지침서다. 그 내용은 성도들에게 거룩하고 신실한 삶을 가르치라는 것인데, 그레데의 사회적 기질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시의적절한 요청이었다. 이러한 디도서의 성격은 야고보서와 그 궤를 같이한다. 대개 야고보서만이 '행함'을 강조하며 고군분투하는 성경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디도서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거룩하고 신실한 삶, '경건의 실천'을 강력하게 역설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행함으로 얻을 수 없으며, 사람은 행위로 의로워질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믿음만 있으면 행실이 무절제하고 부도덕해도 되는 듯한 신앙을 용납할 수도 없다. 이는 얼핏 딜레마처럼 보일 수 있으나, 생명의 본성과 방향성을 이해하면 매우 명확하고 당연한 이치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만, 행함은 그 믿음으로 얻은 새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의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 생명의 본성에서 나오는 의로운 행함과 행동을 통해 의로워지려는 시도는 그 근본적인 방향이 반대다.

 

많은 이가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구원받으면 죄를 지어도 되느냐"고 반문하거나, 사람에게 지은 죄를 하나님께만 회개하는 행동으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는 믿는 우리가 복음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삶으로 증명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극이다.

 

바울은 믿음의 경건한 삶을 위해 디도에게 그레데 교회에 장로를 세우라고 권면하며 그 자격 요건을 제시한다. 여기서 우리는 직분자의 존재 이유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특히 그레데처럼 불의한 이들이 많은 곳에서 장로의 정체성은 그들 사이에서 '의의 모범'이 되는 데 있다. 바울이 제시한 방법은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경건한 지도자를 세워, 공동체가 그를 보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원리와 맥을 같이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바울 사도가 권면한 '경건한 삶'의 본질을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이들의 사례를 더 빈번하게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의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사회적 성취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복음을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는 신앙으로 포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려는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간증이 욥기가 말하는 인고의 과정은 생략한 채, 오직 마지막 장의 '축복과 보상'만 부각시키려는 노력도 이와 같은 기복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이러한 서사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경건한 삶의 목적과 목표를 여기에 두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성공을 약속하지 않으며, 교회 또한 성공 비결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어떤 믿음이 세속적 성취를 가져오는지 전하는 곳도 아니며, 결코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른 성공 매뉴얼이 아니다. 만약 그게 복음이고 성경이라면 예수님과 바울, 베드로는 모두 실패한 인생들이다.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도, 평생을 핍박받으며 살다 결국 순교한 사도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앙망하는 세속적 성공과는 아득히 먼 지점에 있다.

 

이처럼 복음의 고귀한 가치를 세속적 성공의 도구로 치환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당연히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다. 경건한 삶의 공적을 통해 세상의 성공을 얻으려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의 진정한 지향점은 외적인 성공이 아닌, 성도의 '경건한 삶' 그 자체에 있다. 디도서는 이 경건한 삶에 관한 강한 웅변적 서신이다.

 

세상 속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며 그 경건의 향기에 이끌린 사람들이 모여 주님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며, 그 안에서 나누는 생명의 말씀이 곧 복음이다. 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그 결과로 평안한 삶을 누릴 수도 있고, 때로는 복음에 매진하느라 결핍의 자리에 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환경과 결과가 어떠하든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다. 디도서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든다.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른 이익 추구에 매진하는 거친 세상 한복판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견지해야 할 경건의 모습이 무엇인지, 매우 구체적이고도 준엄한 지침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