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7:24-29)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에 관한 말씀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이라는 전제 조건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에서 시작하여 이 말씀 전까지 말을 듣고 준행하면 폭풍에 대비하여 튼튼한 반석위에 집을 지은 것처럼 풍파를 겪는 세월로 비유되는 인생이 든든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이 말씀을 준행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 갈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지만, 성경말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는 말씀대로라면 사람은 누구나 성경의 모든 말씀을 준행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 “이 말을 듣고 준행하는 자”는 비단 산상수훈 뿐 아니라 성경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를 가볍게 여기고 자기가 지킬 수 있는 것만 지키고 다른 말씀은 적당한 타협으로 얼버무리고 하는 것과 같은 신앙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모두 모래 위에 자기 신앙을 지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행위로 다 지킬 수 없다 보니 여기서 엄청난 타협을 합니다. 특별히 신학은 그 타협의 도구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신학자들이, 성령이 오시면 모든 걸 알게 된다고 하신 말씀을 <공부>하는 게 신학입니다. 공부는 모르는 게 있을 때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다는 건 그 뜻을 모른다는 것이고, 그건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은 사람들의 탐구라는 분명한 의미입니다. 그들이 몰라서 공부하는 건 성경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그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행동으로 지켜낼 수 없습니다. 생명의 본성으로 지켜내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흔히 말하는 대로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인 우리는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생명이 되었다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물)이 우리 안에 있으면 성령께서 그 사람을 거듭난 생명으로 잉태케 하시는 게 우리의 구원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우리 구원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대로 사는 게 공부하거나 노력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오늘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생명의 본성이 성경대로 사는 본성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으려 해도 안 됩니다. 개가 아무리 고양이처럼 살려고 해도 안 되는 게 당연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생명이라고 믿는다면 거듭난 사람은 성경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도 믿어야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명으로 거듭났다면, 고양이를 원양어선에 태운다고 개나 상어가 되지 않듯이, 거듭난 생명은 세상의 풍파가 온다고 변하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로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씀인데, 거듭난 생명이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본성이 있다는 것처럼 쉬운데, 이 쉬운 상식마저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좋은 행실로 신앙생활을 하면 천국에 가고, 천국에서 더 큰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열매로 나무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포함한 모든 말씀은 행동으로 지켜서 좋은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다고 하는 나무인 생명으로 거듭나면 모든 삶이 선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준행한다는 경건한 생각으로 묵상하면서 나의 행위를 경건하게 하는 노력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는 신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말씀이 나의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여 내 심령에서 되새김질을 하면서 내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고백하면, 성령께서 나를 거듭난 생명으로 잉태케 하여 거듭나게 하실 것이고, 그렇게 거듭난 생명이 가진 본성대로 사는 게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또 성경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 곧 생명의 본성이 바뀌는 걸 말합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태풍 같은 바람과 홍수에도 굳건한 신앙이 됩니다. 생명은 죽일 수는 있어도 다른 생명으로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 정도로 굳건한 게 성경이 말씀하시는 반석 위에 지은 집에 거하는 평안함입니다. 결국 결론은 예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 되어 그 본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생명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세상을 사는 동안 내 존재 정체성에 대한 염려는 없게 됩니다. 이게 진정한 구원이고, 산상수훈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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