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12)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이 말씀은 비단 신앙 안에서 간구의 의미를 넘어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는 격려의 의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는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약속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두 가지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말씀은 주기도문과 불가분의 관계이라는 점도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 먼저 생각해 볼 것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데 그 목적어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는데, 하지만 무엇을 구하라는 건지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찾아야 할 것도, 두드려야 하는 문이 무엇인지도 선명하게 말씀하시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이 말씀을 설명하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깊은 속까지 어떻게 알 것이냐고 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감추는 분이 아니시며,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친구라고 하시며, 친구는 감추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생선과 떡을 주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구하라고 하니 그 대상에 한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으로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자기가 필요하고 소망하니 그냥 아무 거나 구하면 다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장난 같아도, ‘아무 것무엇이나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무엇이나 주신다는 말씀은 이미 그 안에 어떤 세계 안에서 구하는 무엇이든 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반면 아무 거나 구해도 다 준다는 것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고, 이건 구하고 주시는 분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장사처럼 거래가 주 목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는 아버지가 없다는 말씀으로 무엇을 구해야 하는 지에 관하여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구하여 얻을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과 나는 어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지에 관해 분명한 정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관해 요한 사도는 세상에 왔지만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빛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자녀>라는 말씀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예수님께서는 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떡을 달라는 데 돌을 주는 아버지가 없고, 생선을 달라는 데 뱀을 주는 아버지가 없다는 말씀으로 설명하십니다. 먼저 이 말씀은 육신의 양식인 떡이나 생선, 그리고 우리가 산에서 볼 수 있는 뱀을 한정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금식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육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의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돌은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목적과 성능(능력)을 가장 분명하게 아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돌에 새겨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돌은 율법의 상징입니다. 돌로 쳐 죽이라는 잔인한 형벌도 여기에 투영하면 법으로 죽이라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신을 아시기에 율법과 행위로 사람이 의로워질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아십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율법이나 행위로 의로워질 수 없음을 말씀하시면서 나는 주심을 본다라고 상기시키십니다.

 

그러니까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지 않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데 행위로 의로워질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가 먹어야 할 떡은 행위로 의로워지는 말씀이 아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는 점도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명을 살았다고 하십니다. 생명의 떡은 우리가 먹어서 우리 육신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곧 나를 창조하시고 삶을 주신 목적입니다. 바로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떡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

 

생선과 뱀의 관계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생선의 대칭점에 뱀이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뱀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타락하게 만든 유혹의 시작점입니다. 뱀의 유혹은 선악과를 먹으면, 즉 네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게 되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율법에서부터 생선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먹어도 된다고 한 생선은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비늘은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와 큰 물과 자신의 경계입니다. 구분되었다는 의미이고, 지느러미가 있다는 건 방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세상의 가치와 구분된 양식이 생선이라면, 뱀은 세상의 가치로 자기가 선과 악을 판단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자기 것으로 여기며, 자기 인생을 하나님처럼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뱀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인데, 역설적으로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삶, 그 기준마저 세상에서 온, 그래서 자기가 자기 인생을 하나님처럼 다루는 그런 삶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칭점에서 우리가 구하는 생선이 정의가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는 오늘 말씀의 처음으로 가 보겠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열어야 할 세계가 무엇과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 거나 구하면 다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 우리를 창조하시고 인생을 주신 목적을 구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면 공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 부모처럼 무엇이든 주신다는 게 성경을 전체에서 간구하면 주신다는 말씀의 본질입니다. 짧게 정리하면 인생의 목적을 구한다면 나는 받드시 준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간혹 사람들이 제기하는 의문의 답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구원이 있었느냐?’, ‘혹은 물리 지리적인 한계로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서 들을 수 없는 위치나 시대에 살았던 사람에게 구원이 있느냐?’라는 질문의 답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면 <반드시> 듣고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로서 그 목적을 구한다면, 인생의 목적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어떻게든, 반드시 그 간구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고, 그걸 믿는 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다는 건 우리가 알지 못하고 확인할 수 없는 시대와 공간에서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을 것이라는 것 역시 믿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얻을 대상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을 표현하는 삶을 구하고, 그 삶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그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창조주시기에 자동차를 사람이 자동차에게 기름과 정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듯이 이미 다 아십니다. 그것이 여호와 이레,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려 들어갈 세상과 삶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랑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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