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7:15-27)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7장에서 마무리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에서 시작한 말씀은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에 이어 열매와 나무의 관계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시면서 이 말씀을 잘 듣고 이행하면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든든하여 세상의 모든 풍파를 잘 이겨내고 평안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마무리 정리에서 먼저 열매와 나무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열매는 나무가 결정한다는 것과 나무가 온전하면 열매는 절로 맺는다는 것을 압니다.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열리고, 나무가 온전하면 열매는 저절로 얻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열매를 키우는 게 아니라 나무를 키우고 돌봅니다. 열매는 나무에서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나무와 열매의 관계는 너무나도 상식적인데, 놀랍게도 기독교인들은 이걸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성령의 열매’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설교자와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경우 정신차리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아무리 포장을 해도 행위로 열매를 얻어야 한다(의로워진다)는 뜻을 표백할 수 없는 말입니다. 성령의 나무기만 하면 성령의 열매는 열립니다. 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성경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해석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마음에 그 말씀을 심어두면(묵상하면) 성령께서 그 말씀이 나의 생명, 나의 육신, 나의 삶이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성령으로 잉태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고, 그 생명의 본성으로 살아가면 성령의 열매는 절로 열립니다. 거듭난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삶, 그 삶이 바로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라는 예수님 말씀도 성령의 열매와 뜻과 맥락이 같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열매가 아니라 나무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나타나는 것이지 목적이나 목표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면 성령의 열매는 거저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의도 역시 이것입니다.

 

이건 우리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어쩌면 많은 성도들이 푯대를 잘못 정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일깨우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이는 근원적으로 나타난 것을 본질로 보는 신앙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행함으로 의로워질 수 없다고 하시는 건, 행위는 의와 생각이 표현된 것이지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나무와 열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나무, 어떤 생명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는 결정됩니다. 어떤 열매를 맺기 위해 내 신앙을 묵상하고 노력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앞에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걸 지나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보고자 하시는 것은 어떤 나무인지, 즉 어떤 생명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 생명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기에 열매를 보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바라는 성경대로 사는 삶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성경대로 사는 삶은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사는 삶입니다. 여기에는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삶의 모양을 단정하게 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졌다면 삶은 당연히 그 본성대로 살 것입니다. 성경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과 본성은 그런 관계입니다. 이 표현이 과하다고 생각되면 생명의 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하기 전에 좋은 나무, 좋은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좋아집니다. 이게 생명의 법이고, 우리 신앙이 살아있고 생명 있는 세계인 증거며, 하나님이 생명의 주님이신 증거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되는 게 거듭남입니다. 그냥 교회에 가면 사용구처럼 말하니 생각 없이 거듭남을 뇌까릴 게 아닙니다. 거듭난다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하고 좋은 생명으로 다시 난다는 뜻이며, 그게 바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좋은 생명, 거듭난 생명은 바로 십자가를 지는, 아니 질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그걸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데 십자가를 지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본성이었기에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 안에 있는 낮은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된다는 건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고 그 말씀이 내 본성이 된 생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그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이치임을 생각하면 우리도 성경대로 살 수밖에 없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내 육신, 그러니까 내 삶이 되었는데 어떻게 성경을 벗어나 살겠습니까? 이 온전함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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