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은 의외로 빈약하다. 이는 성령의 정체성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인식이 뿌리 깊고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령을 기적의 아이콘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성령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다. 이 그릇된 인식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에 기인한다. 성령의 기적은 자기가 존재라는 걸 인식하면서도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인간에게 있어 스스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존재의 목적을 알게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사람에겐 가장 큰 기적이다.
성령은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분
성령 하나님의 가장 근원적인 직임이자 능력은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성부, 성자 하나님과 불가분의 관계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즉 사람이 거듭나면 성령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다. 거듭났다면 성령을 만난 것이고, 성령이 오셨다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알게 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특히 중요한 것이 있는데, 성령께서 깨닫게 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의 지면을 할애해서 부연하자면, 신앙인들은 이걸 믿는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잘 되는 게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이건 완전히 상충되는 논리로서 그런 신앙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게 아니다. 당연히 그런 신앙에는 성령도 오시지 않는다.
신앙인들은 쉽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사실 존귀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가장 천한 십자가에 달린다는 건 세상의 가치와 상식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걸 인정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성령이시다. 즉 내가 세상의 세상 가장 천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믿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성령 하나님이 되신다.
이 성령님의 기적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즈음의 제자들이 잘 보여준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것이라는 말씀을 도저히 용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고도 ‘어떻게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전혀 떨치지 못했다. 그런데, 오순절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임하시니 베드로가 일어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라고 설교했고, 그 설교를 듣고 3,000명이 회개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성령의 직임은 바로 이것이다.
성령은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가장 천한 십자가를 지심을 믿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위의 한 위인 성령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알려면 나에게 성령이 임하셔야 한다. 내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며 간구한 것이 얼마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모독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고, 낮고 천한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내 육신을 내어 주는 십자가를 진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통해 표현하시고자 한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걸 시인할 때 성령이 오셔서 그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내 생명이 되게 하신다. 성령을 체험해야 성령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이런 역사를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안에 심겨야 한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다. 하나님의 아들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기준으로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달리는 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리스도가 놋뱀처럼 들리고 그걸 본 사람이 ‘저렇게 세상 가치 앞에 육신을 내어 주는 것이 그리스도고, 내 인생의 목적이구나!’라고 고백할 때 성령께서 그 심령에 심긴 그리스도의 말씀과 모습과 인식을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우리는 이 법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영이신 하나님은 유일하시며 존귀하신 만유의 주재시다. 그림자도 없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와 성품을 표현할 물리적인 실체인 육신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뜻과 성품을 표현하시겠다는 것이다. 피조물인 사람이 자기 존재의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의 이 계획에 순종하면 그는 하나님의 의를 육신으로 표현하는 아들이 된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아버지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이 된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가 아들이 되도록 잉태케 하신다. 그렇게 아들이 되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걸 믿게 된다. 이때 그 사람은 삼위의 하나님을 모두 만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다.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에 있어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 곧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 계획과 뜻)이 육신이 된 존재기에 하나님의 아들 성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또한 우리가 되어야 할 모습이다.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의 사람 모습을 보이셨으니 우리에게 빛인 동시에 우리가 어떤 하나님 아들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이신 것이다. 그것도 십자가를 지시면서. 그래서 하나님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이런 법 안에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내 인생의 목적이구나!’ 라고 깨닫고 고백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심기게 되어 거듭난 생명, 곧 아들이 되는데, 이렇게 우리 안에 심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잉태케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이를 정리하면 사람을 통해 그 성품을 표현하시고자 사람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그 뜻이 육신이 된 아들(의가 육신으로 된 존재가 아들)로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의를 육신으로 표현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이시고, 성령은 그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바꾸어 거듭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뜻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성령께서 생명이 되게 잉태케 하시므로 예수님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아들이 되니 그 사람에겐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이 되신다. 이 과정이 한 사람 안에 다 있을 때 그 사람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삼위는 내가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지가 명확한 사람 안에 한 하나님으로 계신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과 자신이 그 아들이자 형제라는 걸 깨닫게 되고, 이런 과정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일어나니 그 사람 안에 한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 되시고, 삼위로서 함께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할 때 언급했듯이 삼위일체를 학문, 특히 신학이나 머리로 이해하려는 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창조한 목적을 듣고 순종하고 믿으면 성령께서 그 믿는 말씀이 생명이 되도록 잉태케 하셔서 거듭나게 되고, 그렇게 거듭나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깨닫게 되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다. 즉 거듭났다면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삼위로 다 함께 거한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어느 모로 보나 신학이나 지식이 아니라 간증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은 거듭난 간증으로 체휼하는 것이다. 이것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이걸로 삼위일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직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휼한 진정으로 거듭난 신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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