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많은 구절에서 예수님이 오시는 때를 '도적같이' 온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오시는 때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적절한가 싶은데, 데살로니가 전서를 보면 이게 아주 적절한 표현이란 걸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다른 사건이 된다.
도둑은 어두울 때 다니고 누구도 원치 않는 존재다. 그런 도둑같이 예수님의 재림이 사람은 주님이 임하시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이고, 또 주님이 오실 때 상태가 어두운 사람이다. 해가 없는 어두움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이 없는 어두움을 말한다.
예수님이 도적같이 임하는 사람은 재림을 원치 않고 그리스도에 관해 어두운 사람이다.
주님의 재림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 정한 하나님의 일인데, 그 일이 도둑이 드는 것처럼 원하지 않는 일이고,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어둡다는 건 심판이 임한 것이다. 돌이킬 기회도 없다. 아니 기회를 다 소진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라면 재림은 앙망하고 원하던 일이므로 그때가 언제여도 상관이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재림은 도적같이 임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하나님만이 아시는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겠지만, 그때가 언제여도 도둑의 방문 같은 느낌이 아니라 군에 간 아들의 기대하지 않았던 휴가 같아야 한다. 어차피 재림의 때는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라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핵심은 그때가 언제여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 재림에 관한 핵심은 그때가 언제인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사느냐다.
재림이 언제여도 상관없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뻔한 교과서적인 답이 있다.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다. 바울 사도는 이를 낮의 아들이며 어둠에 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들이 되었으니 예수님에 관해 어둡지 않고,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거듭났으니 또한 빛 가운데 있다.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거듭난 사람에겐 낮에 오시는 게 된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위로한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 낮의 아들이요, 어두움과 술 취함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은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 언제 오셔도 반갑고 기쁜 만남이 된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에 이어 성도의 삶의 모습을 권면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기쁜 사람으로 살 것을 권면한다. 이런 삶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생명이 바뀐 사람이고, 생명이라면 본성이 있어 그 본성대로 산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리스도라는 본성대로 산다. 그렇게 바뀐 존재로 살아간다면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상관없다. 더 본질적으로 보면 그런 사람은 이미 예수님이 다신 오신 사람이다. 결국 낮에 속한, 거듭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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