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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 - 두 종류의 사람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7. 5. 04:00 Writer : 김홍덕

이 글은 아래에 있는 책 "질그릇의 선택"을 연재하는 글입니다.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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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성경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육신으로 산 사람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보실 때 산 사람이다. 이것을 육에 속한 사람(고전 2:14, 유 1:19)과 영에 속한 사람으로 표현하 기도 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영에 속한 사람은 육으 로도 산 사람이나 육에 속한 사람은 육신은 산 사람이나 하나님의 목적을 기준으로 보면 죽은 자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영지주의적 발상에 대한 차단을 위해 이것을 미리 밝혀 둔다.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도록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이 살았다고 인정하시는 사람이 따로 있구나!”라는 것을 아는 것에 그치면 그 역시 모르는 것만 못하다. 그 어설픈 지식으로 이곳저곳을 어지럽게 하는 것 외에 자신이나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 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하심이 바로 그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성경을 보는 사람, 또 이 책을 보는 우리 각개인이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시는 사람의 자리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성경의 본질적인 목적이다. 그 목적을 기준으로 산 사람과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분한다. 분명하게 두 종류의 사람을 성경이 제시했다는 것은 “너는 그 둘 중에 누구냐?”라는 것을 물으시는 것이다. 마치 선악과와 같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물으시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만 하나님이 가진 생명의 관점이 이해된다.


하나님께서 성경과 만물을 인지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육신을 가진 사람에게 일차적으로 “죄와 사망에 빠진 자”라고 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신다고 하시는 것은 분명히 육신의 호흡이 있는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라는 의미다. 육신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삶을 주신 이유를 알 기회로 주신 것이다. 물론 기회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경영하시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아들을 직접 보내시기까지 그것을 사람에게 설명하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은 그 호흡이 있는 동안 하나 님께서 자신에게 호흡과 삶을 주신 이유를 알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기 전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자신이 창조된 목적,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을 알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것조차 아니므로 삶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그것 알기를 소망하고 간구하여야 한다. 이는 굳이 성경 말씀이 아니어도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기까지는 삶을 살아 있는 삶이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하여 전도자는 말하기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 12:1)

라고 하였고,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기를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25장(5절)의 말씀 으로 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주 저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이 모든 것으로 볼 때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의 뜻, 사람인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그 뜻을 아는 것이 가장 먼저고,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랑이란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되는 것)


그러므로 사람은 육신이 살았다고 하나님 앞에 산 것이 아니므로 그 육신의 삶이 주어진 목적과 의미,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과 의미를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죽은 것은 물론 철학 적으로도 의미 없는 인생이므로 하나이자 전부인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기 위해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야 한다.


육신의 호흡이 있는 동안 하나님이 뜻하신 인생의 목적을 알도록 모든 것을 쏟아야…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든 목적을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로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하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만물과 세상의 모든 일로 우리에게 존재와 정체성을 보이셨고 그뿐 아니라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그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육신은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또 스스로 선택할 수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선택해야 해야 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예비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을 보지 못하고 선택하지 않아 하나님의 의가 삶을 주관하지 못하면 그것이 소경이고 중풍병자며 문둥병자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선택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한 그 선택에 책임이 따르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심판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으로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생명이 있는 자리로 옮겨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이 순종이고 거듭남이며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것이 육신으로 살 동안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The Man이 하나이니 그 존재 목적도 하나다. 사람을 질그릇이라고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 께서 정한 목적과 뜻을 선택하여 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른 선택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에 대하여 강제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선택에 맡기셨다. 선택과 순종 없이, 또 의식 없이 하나님만 찬양 하는 존재를 만들 이유는 없다. 그건 하나님 스스로도 충분하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다. 고백은 새로운 시작(The Beginning)을 선택한 사람이 이전에 자신이 있던 자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음을 시인하는 것이 다. 그것이 바로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담을 그릇 으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의 의를 선택하지 않은 상태로 사는 것은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罪)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육신이 살아 있을 동안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시는 자리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창조목적과 사람에 대한 뜻을 가장 기본적으로 설명하는 책으로 성경을 주시고 무엇보다 가장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바로 육신이므로 예수님을 우리와 동일한 육신으로 보내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에 살 동안 하나님의 의가 아닌 죄의 자리에서 하나님 의의 자리로 가서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것이 영생으로 옮기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