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교회 중심적이다. 신앙의 시작과 전도를 '교회에 간다'라고 말하는 일반적 표현이 교회가 신앙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준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바울 사도의 말 역시 교회의 중요성을 한껏 강조한다. 그런데 기독교인 대부분은 교회에 크게 만족하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교회에 대한 만족과 신뢰가 부족하다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는 교인
신앙인들이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선악과를 먹고 만족의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같은 이유다. 하나님 나라인 교회에 대한 기준을 사람이 자기가 정하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다. 자기 맘대로 되지 않기에 만족이 없다. 세상이나 교회나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 만족스럽지 않고 불평한다.
교회에 불만을 가지는 건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교회를 심판하기 때문
그럼, 오늘날 우리가 아는 교회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가진 온전하고 제대로 된 교회인가? 아쉽지만 그건 또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게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설교하고, 성도들은 그걸 신앙하면서 모인 곳이 오늘날 교회인데, 각 사람이 바라는 성공과 평안의 기준도 다르고, 교회는 모든 이의 바람을 충족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온전하지 못한 건, 신앙의 지향점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필요로 알아보는 교회 정체성
우리는 교회의 정체성을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성도들이 모임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성도들이 소유를 팔아 사도들 앞에 두고, 사도들은 그것들을 <필요>에 따라 했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필요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부족한 필요를 뜻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그런 것들은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다 아시는 사항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교회나 성도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부족한 걸 채우는 것으로 생각한다. 교회는 예수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부자가 되게 하신다고 설교하고, 사람들은 그걸 신앙하면서 모인다. 하지만 그렇게 모인 성도들 각자가 생각하는 평안과 성공의 기준은 모두 다르므로 늘 불만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행 4:28)
초대교회 필요는 육신의 필요가 아니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 사람들이 모일 때 온전한 교회다. 교회는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를,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기를 위해 모인 공동체다. 교회의 필요는 오직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한 필요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겠다는 회칠을 하기 위해 교인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게 교회의 필요가 아니다. 오늘날 교회와 초대교회와의 근원적 정체성 차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보다 세상에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낮아지고 겸손하고 사랑하는 일도 그게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외친다. 교인들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평안과 성공을 얻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 교회와 성도가 서로 상생하는 관계처럼 보이는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그걸 바라시는 게 아니다.
온전한 교회의 시작은
이렇게 올바르지 않은 상황은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부터 어긋난 결과다. 마치 천로역정에서 담을 넘어 들어온 순례자처럼 시작이 잘못됐다.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있다고 하셨는데, 예수님 말씀의 의도는 두세 사람이 모이면 나도 가겠다는 게 아니다.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견해처럼 교회를 세워 사람이 모이면 내가 함께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막 18:20)
예수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내 이름>이다. 그리고 이름은 정체성이다. '사과'라는 이름은 사과라는 과일의 정체성, 유전자, 생명을 말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건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만남을 뜻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모여서 교회가 된다. 아울러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만남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만나는 만남이다. 이런 만남과 모임이 바로 예수님이 함께 하는 공동체다.
이런 만남은 앞서 설명한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이룬다는 초대교회의 정체성과도 일치한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은 오직 사람이 예수님이 보이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고,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 있는 낮아지고 겸손하며 섬기고 사랑하는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며,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보여 주신 우리의 정체성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한 생명 공동체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모여 교회가 된다. 목사나 건물보다 그게 먼저다. 거듭난 생명이 만나면 그곳이 어디든 거기가 교회다. 빌립 집사를 태운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장이 탄 마차도 교회고, 바울 일행이 탈출한 줄 알고 목숨을 끊으려던 간수와 바울 사도가 만난 감옥도 교회며, 예수님을 만난 세리 삭개오의 집도 교회며, 베드로를 초청한 고넬료의 집도 교회다. 이들 중에 시험을 쳐서 사도가 된 사람이 없고, 세상의 평안을 구하려 사도를 만난 이도 없다. 무엇이 교회인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예는 이렇게나 성경에 많이 있다.
온전한 교회는 오직 사람이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도록 하는 곳이다.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의 만남과 사람에게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걸 유일한 필요로 삼는 공동체가 교회다. 전자 오르간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성가대 가운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목사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오직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정하신 뜻, 그것이 이루어지는 공동체 그곳이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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