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 13

그럼 지옥가야지 뭐…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7. 6. 4. 12:51 Writer : 김홍덕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 신앙을 가진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따지고 들면 단 하나 죽어서 천국 가겠다는 목적이 핵심이다. 아니다고 우기겠지만, “너 그래 봐야 죽어서 지옥 갈 거야!”라고 증명한다면 아무도 교회에 다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다들 성경을 몸으로 지켜내려고 열심이다. 성경에 ‘분 내지 말라’하니 화 내지 않고 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너나 나나 다 알다시피 우리가 화를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적어도 인두껍을 쓰고 있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단지 남 앞에서 얼마나 그 마음에 있는 것을 들키지 않는지에 대하 능력과 기술이 그 사람의 고상하게 만들거나 별종으로 만든다.


하지만 내면은 어차피 같다. 껍데기가 다르다고, 그것도 정확히는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척 하는 그것으로 좀 달라지긴 하지만 모두 화를 참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평온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기 원한다. 행여 화를 내다 죽음을 맞이하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할까 해서 말이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행위로 지은 죄가 남아 있다면 천국 가는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신학이란 괴변으로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사람들이 그 신학에 의존해서 죽음 직전에 어떤 불의한 행위로 인하여 천국 가는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근심을 지워버리지는 않는다. 그냥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정도지 그 신학의 이론에 자기 운명을 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걸 뭘로 증명할 거냐?’는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자기 행위가 자기 사후의 어떤 신에게든 심판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틀림없다. 그건 아마 모든 종교와 신앙의 공통된 관점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천주교의 고해성사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의 회개기도도 그렇다. 일단 기도한다 치면 회개부터 해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행위에는 늘 자신이 없다. 다만 남에게 얼마나 들키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믿는 것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신앙의 매커니즘이 다른 신앙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위와 그것에 대한 회개, 즉 죄의 관점이 행위에 있다는 것과 그 회개의 루틴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방법과 색깔이 다르긴 하지만 골격이 같다. 이것은 정말로 의심해야 할 부분이다. 정말로 성경을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한 번 이야기 해 봐야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그렇게 우리가 행동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제시한 회개의 행위를 하므로 용서를 받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가야 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서 제시된 것은 다른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신은 다른데 요구하는 패턴은 비슷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하나님이 가장 뛰어 나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독교 신앙이 다른 종교와 비슷한 패턴으로 행위를 인간 죄의 본질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세상의 학문이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된 탓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를 삼았다는 노아 홍수 원인에 대한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행위를 본질로 보시는 문이 아니다. 행위는 어디까지나 그 존재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존재론적 신앙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있다’는 여호와라고 하신 의미인 것이다.


존재론적 신앙이라는 것은 행위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행위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질은 어디까지나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물으신다. ‘네가 어디(정체성의 자리)에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정체성과 그에 따른 관계가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위를 본질로, 또 심판의 기준으로 보는 이들의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행위를 본질로 보고, 행위가 심판의 기준이 된다고 여기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훔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이면 그 신앙의 결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열심히 평생을 수고해도 천국에 갈 수 없다. 천국은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나라다. 하나님과 관점이 같아야 한다. 하나님은 정체성과 존재를 기준으로 보시는데 행위를 본질로 보는 이가 그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행위가 온전치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떼를 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설사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치자.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 말을 듣지 않으면 나와서 신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네 갈 길을 가라.’고 그런데 행위의 신앙에 매몰된 사람들은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의 집에 불을 지르려 한다. 


남의 삶과 의견에 침입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고 한다. 침략하는 자들이다. 자신들의 주장이 있다면 그것을 자기의 장을 만들어 설명하면 된다. 그것에 대한 평가는 듣는 이의 몫이다. 그럴 자신이나 용기가 없으면 닥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십자가를 안다면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순종의 십자가를 믿으면서 능동적인 도전을 한다? 그게 바로 천국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행위와 형식을 본질로 보는 이들 중에는 그런 몰지각함을 무릎 쓰고서 존재의 신앙을 심판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신앙은 잘 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행위는 맘대로 하면 되느냐고 묻는다. 자기 안에서 본성이 나와서 행동을 지배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마련함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투덜댄다. 지옥에 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 할 수 없다. 존재의 신앙을 가진 나로선 그렇게 주장한다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난 행위로는 아무리 해도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죄를 자백까지 했으니 여지가 없다. 난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화를 낸다. 변명이 있다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훼손당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그래서 이 글도 쓰고 있다. 성경을 보니 다윗도 그랬었다. 예수님? 말할 것도 없다.


또 나는 돈에 대하여 그렇게 청렴할 수 없다. 십일조도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렵고, 돈 없을 때는 사람 만나서 밥값을 내는 것에 눈치도 본다. 이런 비겁함은 어쩔 수 없다. 없는데 어쩌라고? 그래서 지옥 가야한다면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가야지.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도 난 이 존재의 신앙에 목 맬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화내는 본성은 하나님이 주셨다. 내가 나를 만들지 않았고, 적어도 난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다고 믿는다. 그러니 내가 화 내는 본성을 가진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다. 다만 나는 내 의를 주장하기 위하여 화를 내는 것을 자제한다. 때론 실패하기도 하나 내 삶의 골격은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훼손당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몸의 피가 끊어 오른다. 때론 생명을 얻기 위해 참기도 하나,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당하는 것을 보고 분개한 소년 다윗의 마음 정도는 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화를 내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본능으로 인하여 지옥에 가야한다면 가야지. 잘 차려 입고 갈란다. 난 하나님께서 존재의 신이시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30년간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수 믿었다. 그런데 해도 해도 안 되더라.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결정했고, 그 결정으로 인해서 지옥 간다면 갈 각오로 나섰다. 존재의 하나님을 좇아서. 


그런데 이 길을 가면 갈수록 이것이 참 지리임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이 모양으로 사는 것은 행위를 심판의 기준으로 보는 이들에겐 가관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예수님을 보는 바리새인도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나 역시 너무 많은 바리새인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난 지옥 갈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야한다면 가야겠지. 그런데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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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6. 11. 15. 17:19 Writer : 김홍덕

몇몇 분들이 '덕이의 신앙 이야기' 연재를 요청하셨지만 다른 글들을 쓰기에 바빠서 죄송하게도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이번 주는 대입 수능이 있는 주간이고 저의 둘째 아들도 이번에 수능을 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이전 생각에 대하여 정리해 봅니다.


사설이 길게 느껴지실지 모르지만 이 카테고리는 지극히 저의 사적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본다면(덕이의 신앙이야기와 금방 밀접하지 않더라도) 이제 블로그를 운영함에 있어 매일 7시에 글이 게시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블로그는 알람 기능이 없기 때문에 제 블로그의 새 글이 올라왔다고 여러분께 알려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물론 페북 친구로 등록하신 분은 예외지만)


아울러 이 <덕이의 신앙 이야기>는 페북이나 다른 SNS로 발행하지 않고 저의 블로그에 직접 접속하시는 분들만 보실 수 있도록 간혹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대하여 글을 쓰는 저도 여러분과 같이 인생의 희노애락을 가지고 있으며 아마 대부분은 여러분과 비슷하고 또 많은 것에서 여러분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마음들 이야기 하고 싶은데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디다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늘 카페를 잘 운영해볼까? 하니면 이 블로그를 완전히 홈페이지로 만들까 생각한답니다.



정말로 사설이 너무 길었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세상에 저보다 더 어른이나 똑똑한 사람 없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오직 교회에서 잘난 인간으로 인정 받는 것 뿐이었고, 그런 저의 기준으로 볼 때 저의 바람은 충분히 충족되고 있다고 착각 아니 완전한 망상 속에 살았습니다.


이제 저의 둘째 아들이 수능을 치고 나면 저희 집의 애들도 어느 정도 다 자란 시대로 저의 삶이 접어 들겠군요. 그래서 오늘 저의 그 시절을 돌아보니 정말로 철도 없고, 아무 개념도 없이 살았습니다.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는 그저 다른 학교에서 치는 모의고사 정도로 생각했고, 학력고사로 인생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이나 중압감 같은 것은 엿바꿔 먹은지 오랜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내가 늘 하고 있는 이 신앙생활이 저를 인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딱히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는데 그런 개념과는 독립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 안에는 그렇게 공부하지 않고 살아도 하나님께서 먹여살리실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적어도 결과적으로 볼 때 삶의 겉모습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대학생활은 그야말로 더 개판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교양 영어 교수님이 부친의 제자였는데, 동창회에서 저의 아버지를 만난 그 교수님은 다음 수업시간에 저를 호출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대출을 시키고 교회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대출한 친구는 처음 출석 부를 때 대답을 한 죄로 출석을 다 부르고서야 저를 부른 교수님께 불려 나가서 저희 아버지께 전해달라는 인사말을 듣고서 그날부로 저의 아바타가 되었습니다. 1년간.


그렇게 교회에 몰입했던 저의 생활은 교회 안에서 당연히 눈에 띄는 존재였고, 군에 갔다 온 선배들까지 위로 최대 7,8년 선배들이 있는 대학부에서 저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 그 자체였습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둥이였습니다. 욕을 하고 다녀서가 아니라, 다들 예수 믿겠다고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것에 대한 지적과 예수 믿는 것에 대한 잘난 체에 쩔어 있는 저의 모습이 좋게 보일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당한 부분의 행위 규범을 지켜내는 저의 모습은 달리 역공할 수도 없어서 오히려 사람들을 약 오르게 하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당시 대구에 막 태동하기 시작한 IVF가 교회에 들어오게 되고 저도 초기에는 수련회도 같이 가기도 했는데, 왠지 저는 주일까지 겹쳐가며 수련회를 해대는 IVF를 용납할 수 없었고, IVF방식으로 대학부를 이끌어가는 세력에게 대항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 1학년 여름, 대구, 경북 및 울산지역 전체 IVF 수련회를 대구 가창의 한 수련원에서 가졌는데 그때 강사로 나선 간사라는 선배(지금으로 보면 그냥 고참)가 구원에 대하여 말하면서 '흔히들 천국에는 면류관 구원과 개털모자 구원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강의하는 것을 듣고, 평소 교회에서 듣는 것과 다른 소리를 한다 싶어 강의 중간에 손을 들고서 '그러면 한 달란트 받은 자의 한 달란트를 뺏어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준 것은 어떻게 해석하냐?'고 물어 강사를 당황(답하지 못했음-정확히는 '성경을 그렇게까지 상세히 볼 필요는 없다'고 함)하게 하였고, 저희 교회 리더들이 저를 그 강의장 밖으로 끌어내기도 했었습니다.


저의 그 싸가지 없었던 대학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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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퀴즈 대회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4. 7. 14. 21:07 Writer : 김홍덕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덕이가 고등부에 다닐때는 학생들이 총회를 해서 임원을 선출하면 그 임원들은 이듬해에 행사를 계획하고 시행했다. 전도대회, 수련회, 성가경연대회, 성경퀴즈대회 같은 것들이다. 그때는 월례회라고 해서 매월 행사와 재정 보고를 정기적으로 학생회 자체적으로 하기도 했다.


여러 행사 중에서 덕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성경퀴즈대회였다. 그건 덕이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 덕이는 지금도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신학생 아니면 왠만해선 지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좀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덕이는 어쨋던 어지간한 성경퀴즈대회에선 늘 1등을 했다. 고 3이 되었을 때, 성경퀴즈대회 전날 2학년 임원들이 상품을 구매하러 갔었는데, 그때 덕이의 친구 하나가 이번에는 자기가 우승할 것이라면서 임원들이 책정한 1등 선물비인 2,000원에 500원을 자기가 더해서 상품을 샀다.


당시에 짜장면이 500원정도 했기 때문에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지금 그 상품은 아쉽게도 덕이네 집에 있다. 그때 덕이는 친구가 속한 부서 전체가 맞춘 것 보다 2개 적게 맞추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대회 중간에 사회자가 '덕이형은 남은 문제 다른 사람이 다 맞춰도 1등이니 손들지 말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행사 후반에 손드는 것 조차 저지 당한 일은 대학부때도 있었다. 그만큼 덕이에게 성경퀴즈 대회는 자기의 능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덕이는 성경을 아는 것은 늘 자랑거리였다.


덕이는 제법 성경을 많이 읽었다. 당시에는 어지간한 구절은 성경의 어디에 있는지 제법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특별히 그 성경이 자기와 어떤 상관인지는 몰랐다. 상관이 있다면 자기를 있어 보이게 해 주는 지식의 일부라는 것 정도?


그렇지만 그것이 덕이에게 의미 없는 것 만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꼴불견이었을 수 있었지만, 그 성경에 대한 기억들은 나이가 들고 생각이 좀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터 진정한 의문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성경의 말씀들, 그저 자기가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게 하는 것 만이었던 성경 말씀들이 하나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덕이에게 있어,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것, 또 어떤 때는 부모를 버리라고 했다가 또 어디서는 공경하라고 하는 반대의 표현들 같은 것들이 왜 그런지에 대하여 궁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저 "성경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읽고 공부했던 것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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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 작정기도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4. 7. 13. 09:22 Writer : 김홍덕

덕이의 고등학교 시절에서 부터 1,000일간 빠지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계힉했었다. 그리고는 기독교 서점에 들러서 다이어리를 하나 구입한 덕이는 매일 매일 기도한 것을 간략하게 기록했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다보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도 어쩌다 끼니도 건너뛸 수 있는데, 1,000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를 하겠다고 맘 먹고 그것을 일일이 기록하였다는 것은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어려운 일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덕이가 볼 때는 기도했다고 기록한 다이어리의 기록들이 정말로 기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기억해 보면 그때의 기록들은 어쩌면 기록 달성을 위한 노력에 불과했다. 즉 기도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1,000일을 채우려는 기도였다고 할까? 그리고 그 마저도 채운 것으로 간주하고 싶은 것일 뿐이었다.


그 다이어리의 기록으오만 본다면 분명히 1,000일을 달성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완주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양심이 없는 것이다. 그냥 그건 실적을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기도가 되었든 어떤 것이든 그 본연의 본질적인 목적이 있고 그리고 그 다음에 형식이나 성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 마음에 정말로 기도하는 본성이 있어서 하루 하루 기도하다 보니 1,000일이 되고 하는 것이지, 1,000일을 작정하고 기도한다고 뭐 특별한 것이 없는데도 그것을 꼭 달성하고 싶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1,000일만 기도하고 말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도 그런 보여주기식의 쇼를 했던 것은 신앙의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쩃던 그런 눈 가리고 아웅식의 신앙적 업적이 뭐 대단한 자랑처럼 생각했던 덕이였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제법 피곤한 모양이었을 것이다.


신앙은 내용이 있으면 형식은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모양으로 자연스레 따라온다. 즉 개로 태어났다면 절대로 짖는 것을 금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 마음 안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면 1,000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는 것인데, 그 시절의 덕이는 그런 비밀을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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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지각 않기...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10. 1. 13:34 Writer : 김홍덕

덕이는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교회 학생회 임원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덕이는 그 한 해 고등부 예배에 지각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덕이의 집은 가깝지 않았다. 버스만 25~30분 걸리는 거리였다. 물론 초딩때 부터 그렇게 다녔지만, 중학교 시절 교회를 땡땡이 치기도 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도신경 외울때 도착하는게 부지기수 였는데, 지각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이채로운 것이었다.


한번은 정말 지각할 뻔 했는데, 버스에 내려서 부터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교회 정문까지 빨리 달려가서 교회 정문을 통과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학생회 예배도 교회 정문에서 주보를 나누어주었는데, 그렇게 주보를 받는 순간이 9시 조금 전이었다. 그래서 덕이는 마음 속으로 자신은 지각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는 지각 없이 전출을 했다.


근데, 왜 그랬을까? 지각이 무슨 문제라고? 하다못해 그런다고 상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스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력서에 한 줄 넣으려고......"라고 말이다. 덕이에게 그것은 그런 것의 하나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차별성이었으니까? 아니 적어도 덕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별다른 재주가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하나님을 한번 제대로 믿어보고 싶어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덕이는 교회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마음 하나로 1년간 지각도 없이 교회에 출석했다는 것이 대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은 덕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교회가 무엇을 좋게 여기는 것인가에 대하여 덕이는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다 바로 알아 듣고 해석했다고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교회라는 곳이 교회가 정한 어떤 규칙을 잘 지키면 그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받아 들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교회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물든 덕이는 그것을 벗어 버리기 위하여 자기의 역량이 미치는 삶의 범위 안에서 늘 사투를 벌이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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