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인의 성경 보기/빌립보서' + 61

빌립보서를 마칩니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빌립보서 Date : 2017. 9. 23. 21:41 Writer : 김홍덕

빌립보서는 참 은혜로운 성경입니다. 전편에 흐르는 <기뻐하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또 바울사도의 다른 서신서에 많이 나오는 책망의 부분도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그렇습니다. 물론 바울사도와 빌립보 성도들의 돈독함도 참 보기에 좋은 성경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모든 것에 흐르는 것,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그 마음을 가졌기에 앞서 언급한 은혜로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사도가 옥에 갇혀서 쓴 편지라는 것입니다. 옥에 갇힌 사람이 뭐 그리 기쁜 일이 있다고 자신은 물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기뻐하라고 말했는지를 아는 것이 빌립보서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사도가 말하는 기뻐하라는 것은 육신의 어떠함과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교인들처럼 억지로라도 기뻐하면 ‘좋은 일(육신의 좋은 일)’ 생긴다고 하는 것에 이 빌립보서를 인용하는 것은 빌립보서를 모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말하는 기쁨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으니 그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푯대)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것이 기쁨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분명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이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면 압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니,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잘 살게 하시고, 하는 일도 더 잘되 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육신이 잘 되어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협상을 합니다. 거의 위협 수준입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마지막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 형편은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좋게 지어져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싶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업가들이 성공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야 기뻐할 수 있거나, 하나님의 일이 되거나,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에 기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육신이 살 동안 표현되도록 자기 삶을 순종하는 것을 푯대로 또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칭하여 그렇게 되기까지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만드신 뜻이고 목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인생의 어느 한 구석이 허전하고, 또 ‘내 신앙이 온전한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당하여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지위가 전혀 의심이 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든 목적 안에서 사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님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도를 조금 안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의심합니다. 그런 것은 모두 행위에 기반을 둔 신앙입니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신앙이 약해진다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로 하지 않으면 재산상에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 신앙인들이 억지로라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일부러 웃는 연습을 합니다. 심지어 설교시간에 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권면은 그것이 아닙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것이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그것이 없으면 억지로 기뻐하려고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아니 어떤 성경을 대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의가 나의 존재 목적이 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시작하신 하나님의 착한 일이고, 그 의로 인하여 육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는 것이 우리 삶의 푯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을 위하여 우리는 이미 풍족하게 다 가졌습니다. 이 육신이 그것을 위하여 지음 받아서 지으신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기에 그렇고, 또 목적을 주신 이는 그 목적을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셨기에 그렇고, 무엇보다 그의 능력이 그렇게 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호와이시기에 그렇습니다.



(Translation by Google)


I finish the Philippians.


Philippians is a gracious Scripture. There is the saying "please rejoice" flowing in the first part. It is also true that there are very few parts of the rebuke that appear in other Epistles to Paul. Of course, the strength of the Apostles and Philippians is also good. And above all, flowing in all of these things, being a man of Christ's heart, enabling the gracious things mentioned above in the mind.


Philippians is an oxford letter. It is a letter written by the apostle Paul in prison. It is to know Philippians that knowing that a prisoner told them that there is something pleasant and that they should rejoice even to those who love themselves as well as themselves. So the revelation of the Apostle Paul does not have anything to do with the flesh. It is to ignore Philippians that quoting this Philippians in saying that "good works (good works of the flesh)" occurs if you are forced to do so like the present members.


The joy of the Apostle Paul is rooted in Christ's heart. We have the heart of Christ, so please rejoice. It is the root of joy that the one who has begun to do good in you will fulfill the day of Christ (the mark). When Christ's heart is in man, it is a life whose purpose and meaning is clear. This is because the Bible says that the person whose life purpose is clear is the Son of God with the identity of Christ.


All the Bible, but the Word of God is not about the flesh. However, the reality is not so. I know what people see as praying to God. We must do the work of God, and we must live well as Christians in the world, and we are glorified in God. God makes us live better than those who do not believe in Jesus. It is said that the work of God is good if the body is good. Negotiate with God. It is almost a threat level.


However, the Apostle Paul said that he was not in need of his preaching the Gospel at the end of Philippians. Money does not mean that you can do God's work. It is not that when the church is built well, it becomes a glory to God and that people in the world want to go to church. If the businessman believing in Jesus succeeds, then it is not that people will believe in God more. It does not mean that it can be rejoice, that it is God's work, or that the gospel is delivered.


It is a pleasure to have the heart of Christ to be glad to be called the subject of Philippians. It is the will of God to live by faith in the obedience of his life so that his heart will be expressed during the flesh of the flesh. It is the meaning and purpose of God making our people.


Many people believe in God, and one corner of their lives is lost, and there is doubt that my faith is perfect. At any moment, under any circumstance, it is difficult for you to become a son of God without any doubt, even if something happens to you or is committed to you. There is only one way to do this. It is only that God lives in the purpose of making Himself.


Otherwise, a person who has the same mind as 'We must pray diligently so that faith in Jesus Christ will not weaken' doubts himself when he does not pray a little. It is all faith based on conduct. If you do not go to church, your faith will be weak. If you do not pay tithing rightly, you will also lose property. When such believers feel compelled to do so, they practice deliberately, saying that God will bless them. I even give it to the sermon.


But it is not the counsel of the apostle Paul. "Bear this heart in you, the heart of Christ Jesus." This is the essence. If there is a mind of Christ, there will be joy, and if it does not exist, it will be a force to rejoice. Therefore, the first thing to do is to have the righteousness of God as my purpose, not as a Philippian or any Bible.


That is the good work of God that has begun in us, and because of it, it will be the goal of our lives to live to the day when the life of the flesh is full. And we have already done enough to live that way. This flesh is very good for the sight of God made for it, and he has prepared all things for his purpose, and above all, because his power is not so short as to be so.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의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신 29:5)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회고록과 같이 한 말의 일부입니다. 이 성경 구절은 사실 그렇게 유명한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주 의미 깊은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길,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라고 해서 떠난 길을 가는 여정에 옷이 낡지 않고 신이 해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천부께서 너희 쓸 것을 아신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주셨는데, 그 뜻하신 바를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하니 이것저것 달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그런 기도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를 더 화려하게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목사들은 하나님의 종인(물론 자칭) 자신들의 모습이 볼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선교사나 나름 주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살려고 하니 먹을 것은 좀 책임져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참 좋은 신앙 같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시고 인생으로 보내셨는데 그 뜻을 위하여 필요한 것도 준비하지 않고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것 이야기하면 주겠다는 식으로 우리를 인생으로 보내실 리 없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졸렬하게 보거나 모독하거나 믿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궁핍함이나 부요함이나 다 만족할 수 있는 것은 바울사도가 남보다 강인하거나 금수저거나 아니면 믿음(신념)이 강해서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단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아래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니 그 형편이 어떻던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뜻 안에 사는 한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선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궤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풍족하다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위한 재화가 풍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온 돈이 설사 풍족하다고 한들 옥에 갇혀 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바울사도의 풍족함은 육신의 쓸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에 필요한 비용이 풍족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단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과 그 의와 그리스도의 마음이 풍족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40년 동안 옷도 신발도 낡고 해어지지 않았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은 그것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모든 풍족함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광 가운데 풍족히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복음을 전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나 예수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는 오직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만 있으면 됩니다.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만드신 형식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그 목적 안에 살면 그 육신을 가진 삶이 하나님의 뜻하신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것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신다는 것 정도는 믿어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려니 이것저것 필요할 것 같고 그래서 그것을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일을 시키면서 밥도 주지 않는 악덕 사업주와 같이 보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이미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들풀이나 공중 나는 새까지도.


우리가 육신의 안위와 복락, 육신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의 것을 탐낼 이유도 없고, 어디 쓸지도 모르고 자신이 정말로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돈을 모으려 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부요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만든 목적, 예수님을 보내신 그 마음을 알고, 그 뜻을 이루는데 우리가 가진 것이 이미 풍족함을 아는 것이면 인생은 충분히 풍족하기 때문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4: 10-20) Everything is supplied for life


And I have led you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your clothes are not axen old upon you, and thy shoe is not waxen old upon thy foot. (Deuteronomy 29: 4)


This is a part of what the people of Israel said like a memoir before Moses entered the land of Canaan. This Bible passage is not so famous. But if you think about it, it is very meaningful. The way to go to the way of the wilderness, the land to which God will direct,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is not outdated and the gods are not broken.


This is the same meaning that the Heavenly Father knows what you are using. God gave us life, and will not give us what we need to accomplish what He means? I will give you everything. But people are asking for something that is necessary to do God's work. It does not depend on God, but on God.


The churches should also make the church brighter for the glory of God. The ministers claim that the servants of God (as they are, of course) must look at themselves. Missionaries and those who want to do the work of the Lord are going to live for the work of God. They pray to God for some responsibility. It is a good faith. It seems to depend on God.


But this is not believing in God. God does not believe that He will send us into life by sending His will to life, not preparing anything for that purpose, living the world and telling us what is necessary. In other words, it is a violent, disrespectful, or unbeliever to God.


The Apostle Paul can be satisfied with both poverty and richness because Paul is stronger or weaker than others, or he has a strong belief. The apostle Paul is saying that because he believed in God. I know that because I knew that I am a person who lives in the purpose of God's creation and is living in the will of God,


It is also a sign that telling the saints of Philippi that they are not seeking gifts. It is also true that everything that is in you is abundant. It is not that there is a wealth of goods for the gospel. If the money sent from the Philippian church is abundant, but is in jail, what good is it?


The abundance of Paul's apostles is not about the use of the flesh. Nor does it mean that the cost of delivering the Gospel is abundant. He only has the abundance of God's purpose, His righteousness, and the mind of Christ, who He created Himself. The Israelites' wilderness life For 40 years, their belief in God that God's will gives them everything they need to do, just as clothes and shoes are old and unfinished, is the substance of all abundance. That is the fullness of glory.


But my God shall supply all your need according to his riches in glory by Christ Jesus. (Philippians 4:19)


Only the identity of a person is required to communicate the gospel, to live as a son of God, or to believe in Jesus and glorify God. Man is to know that God is the form He has made to manifest His character, and if He lives in that purpose, He believes that the life of the flesh will fulfill all that is necessary to fulfill the purpose of His intended Creation. is.


So it seems to be necessary to do the work of God, so praying it is not trusting or believing in God. It is just to look like an evil employer who does not give food while doing God's work. God has already given man everything he needs to express God's righteousness when he makes man. Even grass and flying birds.


If we do not think of the gladness of God in the comfort, body, and well being of the flesh, we will have no reason to covet anything in the world, nor will we live to raise money that we might not be able to write anywhere. We do not need the riches of the world, but because God knows the purpose of making me, the heart that sent Jesus, and knowing that what we have is already sufficient to fulfill that purpose.



(빌립보서 4:10-20) 진정한 능력과 기적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빌립보서 Date : 2017. 9. 17. 08:12 Writer : 김홍덕

바울사도가 전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은 그 능력과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각자 가진 신앙관과 가치관에 따라 범주를 달리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은 사람이 이전에 하지 못했던, 어쩌면 하지 않았던 것을 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행하게 하는 기적에 관한 말씀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많은 아니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자기 육신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나 육신의 한계 이상으로 자신이 본질로 보고 있는 육신의 삶의 어떤 것(성경이 육신의 정욕이라고 말씀하는)을 더 이룰 수 있게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일이 평안하고 잘 되는 것,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위하여 바라는 바램들이 육신의 능력 이상으로 효율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여러 번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정체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육신을 만들어 놓고 만들 때 만족하신 육신의 능력 그 이상을 이루도록 도깨비 방망이나 램프의 요정처럼 우리의 시중이나 드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런 신앙을 가질 수 없을 것인데, 사람들의 눈이 자기 육신의 일을 본질로 또 육신의 평안을 인생의 목적으로 보는 어두운 눈을 가졌기에 오늘도 교회에 모이면 그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바라고 그것을 미끼로 사람들의 헌금과 헌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과 안목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인생의 목적, 하나님께서 사람을 또 자신을 지은 목적 안에서 이 말씀을 보면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으로 또 육신의 평안을 누리도록 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이전에 육신을 사용하지 않던 것에 나의 육신을 소비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이 주는 진정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기적은 진정한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남편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 받은 짐캐리에게 <진정한 기적은 두 가지 일에 허덕이는 엄마가 아이를 축구 수업에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짜 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과 같은 것입니다. 





즉 육신을 평안하게 만드는 것이 기적이나 능력이 아니라, 자기 육신을 소비하지 않던 이가 육신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모든 기적보다 십자가에 육신을 드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기 육신을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에 드리도록 만든 것, 그것이 진정한 기적이고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그것이 유일하게 보여줄 (요나의) 기적이라고 하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고 하니 하나님의 능력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 즉 하나님의 의와 성품을 이미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그게 진정한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그 불어넣으신 생기가 우리로 하여금 이 육신을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에 소비하도록 만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바램을 간단하게 말하면 <귀찮지 않는 것> 즉 육신을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는 것입니다. 밥 하기 귀찮은 주부는 말이나 생각이면 밥이 다 준비되는 것이 기적 같고, 몸이 아픈 사람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병이 낫는 것이 기적 같고, 시험을 앞둔 사람은 공부하지 않아도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기적 같습니다. 여기에 기독교인들은 밥할 시간에, 공부하는 시간에 교회에 가서 봉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느라 낭비한 것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채워주시는 것이라고 교묘하게 생각하는 것을 더합니다. 결국 귀찮지 않고 자기 육신의 바램이 이루어지는 것,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능력이고 기적이라고 여깁니다. 그런 신앙 안에서 교회의 목사와 같은 이들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 은혜롭지 못한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막말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진정한 기적은 사람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 아내의 심부름이라고는 화성의 이야기로 알던 남편이 기꺼이 들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 기적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요구와 때로 의를 주장하는 것 앞에 자기 육신을 소비하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것이기에 그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속 심령의 본성이 되어 그 본성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것 그것이 능력을 주시는 것이고 그 마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의를 행하게 하는 것에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 바울사도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다(빌 4:16)”이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알 듯 육신을 본질로 알고 육신이 귀찮지 않게 되는 것을 기적으로 안다면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진정한 능력은 우리의 존재 목적대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망치는 치고 못 박는 것이 능력이고, 잔은 물을 담는 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그 능력, 곧 목적 안에서 망치도 잔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 그것이 능력이고, 그 목적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옥에 갇힌 것도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임을 알기에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 한 것과 같이.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4: 10-20) True power and miracles


The words of the apostle Paul, "I can do all things in the one who gives me power," will have different categories according to their own beliefs and values ​​about their power and what they will do. It is clear that God's power to do what he has never done, and perhaps did not, is a word about miracles that people do.


But many and most believers believe that God helps them to do more than what they can not do in their own flesh, or anything in the physical life that they see in their nature beyond the limits of the flesh (what the Bible says is the fleshly lust) Will be. That the work of the flesh is peaceful and well, and that the hope of the one who believes in Jesus is fulfilled in the world, that God gives power so that it can perform more efficiently than the power of the flesh.


However, this is to blaspheme God's identity as we have said many times. We can not have such faith if we do not think of God as a fairy or a lamp fairy to accomplish anything more than the ability of the body to be satisfied when we make and build our bodies. Having dark eyes to see the nature of work as well as the peace of the flesh for the purpose of life, we are asking for the offer and dedication of people by telling it to the church and hoping for it and bait it today.


But those who see the heart, not the discernment, come to the Word differently. It is not the power of God that enables us to enjoy the peace of the flesh, the success of the world, and the peace of the flesh, when we see these words in the purpose of life, I know that it is the true power of this Word to consume my body.


A miracle in a person's life is a real miracle that a person changes. This is like a husband who does not throw away food waste becomes a person who throws away food waste. To Jim Carrey, who has been granted the power of God in Bruce Almighty, the real miracle is the same as saying that a mother who is stuck in two things is giving time to send her child to soccer classes.


In other words, it is not miracles or powers that make the body peaceful, but it is a miracle that the one who has not consumed his body consumes the body. It is a true miracle and the power of God, that by giving the flesh to the cross and giving it to the manifestation of God's righteousness, than all miracles before Jesus was crucified on the cross, The miracle of Jonah)


People think that God gives us power because God gives us power. So the ability to cause miracles, such as moving a mountain. But God made man, and gave life to man, that is, the righteousness and character of God. That's true. For it is the ability of the infused life to make us consume this body in expressing God's character.


Simply putting all the desires of the people is something that does not bother you, that is, it moves the body a little bit less. It is miraculous that a housewife who is troublesome to cook is a miracle that all the rice is prepared if it is a horse or an idea, and it is a miracle that a sick person heals a sickness without going to a hospital. . Here, Christians add to what they think is a filling of what God has wasted doing at the time of a meal, at the time of study, in church, in service, and praying to God. In the end, it is not a nuisance but a feat of self-flesh. In such a faith, it is also said that it is not gracious to bother those who are pastors of the church, and that it should not be done.


Indeed, a true miracle is that people change. Previously, the errand of his wife is miraculous, as the husband, who was known by the story of Mars, is willing to listen. It is a miracle that we consume our own bodies before claiming others' demands and sometimes righteousness. Because the cross of Jesus is the one who has imitated the mind of Jesus, it is because the mind of Christ becomes the nature of the spirit of the inner heart, so that the nature is to act accordingly.


It is the apostle's confession that Jesus, the Son of God, comes into us, that it gives power, and that his heart is not capable of us to do God's righteousness. If it is not, one who is trapped in jade can not confess, "I have everything and abundantly (Philippians 4:16)." If you know miraculously that many people know that the flesh is the essence and the flesh is not bothered, it can not be done.


The real power in our lives is to live according to our being. The hammer is nailing and the cup is the ability to hold water. That ability, that is, the hammer and the rest in purpose, can do everything. Likewise, man is God's power for man's purpose, and for that purpose he can do all things. Just as Paul's apostle said that being imprisoned in jail is also an expression of God's righteousness, everything is abundant.

빌립보서 마지막을 보면 바울사도와 빌립보교회의 돈독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 동안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바울사도를 많이 도왔다는 것을 바울사도가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의 그런 헌신을 ‘잘한 일’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의 쓸 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이나 말은 누구의 말이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했다는 것도 같습니다. 바울사도의 신앙이 육신의 평안과 성공이 하나님 앞에 인생의 목적이고 복이라고 여긴 사람이라면 이 말씀은 분명히 사람이 그 육신으로 성공하자함에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순간 바울사도는 세상에서 육신의 성공은커녕 옥에 갇힌 신세라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에게 도움을 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사도가 먹을 것이 없는 노숙자나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라서 도움을 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존재로서 의롭게 되어 그 존재가 가진 본성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빌립보의 성도들이 헌금을 했다는 것은 헌금의 반대급부로 세상에서 복을 받으려고 한다거나 바울사도의 육신의 삶과 형편이 불쌍해서 도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말씀이 그렇게 해석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쓸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하니 사람이 자기 마음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의미로 받습니다. 물론 그것은 맞지만 그 사람의 필요가 어떤 정체성에서 비롯되었느냐가 본질입니다. 육신의 복락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그것을 위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에게 ‘필요’란 언제나 육신의 정욕에 관한 것이겠지만,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사람에게 ‘필요’는 항상 어떻게든지 자신을 하나님을 위하여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의 말씀은 물론이고 성경의 모든 말씀이 어떤 사람이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본질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어떻게 되느냐에 목적을 둡니다. 육신이 잘 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교회에 가야한다거나 회개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그렇게 나타나게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본성이 무엇인지, 목적과 의가 무엇인지가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고 있는 형태가 목적이나 본질이 아니라 존재하게 된 목적과 의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존재로서의 자신도 어떤 목적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목적과 의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하면 주신다는 것’, ‘너희 필요’와 같은 것이 눈에 보이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고 성경에 구하면 주신다고 했으니 자기 육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사람은 구원도 없고 복음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고, 그들 신앙의 목적은 신앙 자체가 아니라 금도끼 은도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외식하는 자요 회 칠한 무덤과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 값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빌립보서에서도 자신은 궁핍하거나 부유하거나 그 어떤 상황도 자기 육신을 드려서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보증하십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의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곳이나 하나님의 나라는 당연히 하나님의 의로 다스려지는 나라고 그 나라를 구한다는 것(속하여 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필요한 것은 나라가 다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삶에 관해서 말입니다.


바울사도와 빌립보 성도들의 관계에서 우리는 헌금과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에 있어 육신의 필요를 어떻게 보고 살 것인지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그런 본성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본성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우리 육신의 삶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는 것(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셨으니)을 알고 어떤 상황이나 어떤 형편 그리고 어떤 지출도 다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을 위하여 살게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다 아시고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그렇게 살기 바라시며 만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는데 당연히 예비하시고 충족히 채우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믿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4: 10-20) What do you need (all you need)?

At the end of Philippians, we can see the intimacy of the Apostles and Philippians. Paul's apostle mentions that the Saints of the Philippian Church have helped Paul so much in both ways. In addition, the Apostle Paul praised such a commitment of the Philippian church as "a good thing". And the apostle Paul blesses that God will fill the needs of the saints of the church in Philippi.


Some words or words have different meanings depending on who you say. It is also true that the Apostle Paul said, 'Fill your things for us.' If Paul's apostle's faith is the peace and success of the flesh, which is the purpose of life before God, and the blessing, then this word will surely fulfill the need for man to succeed in the flesh. But Paul is not such an apostle. Above all, it is true that at the moment of saying this, Paul's apostle is imprisoned in jail, not merely of physical success in the world.


And so are the saints of the Philippian church who have helped the apostle Paul. The apostle Paul is not a homeless person or a socially poor and weak person and has not helped. They are those who think that the mind of life is justified as being in the presence of God, and that the nature of that being represents God's righteousness. The reason why the Saints in Philippi did the offering was that they did not want to be blessed in the world or to help the suffering and suffering of the body of Paul in the world.


But now this is not so interpreted. God will fill you with what you need. If a person needs anything in his or her mind, it means that God is filling it. It is true, of course, but the identity of the identity of the person's needs. The blessing of the flesh is God's blessing, and for those who are the purpose of life, 'need' is always about the lust of the flesh, but the purpose of life is 'need' to someone who expresses God's righteousness. It is to be able to consume for God.


Therefore, not only the words of Paul's apostle, but all the words of the Bible are interpreted differently according to what one sees. The person who sees what is visible is aimed at what is visible. If the body is good, God blesses you, and if something bad happens, you have to go to the church or say you have to repent.


But on the contrary, a person who knows who he is in front of God is not because of what he sees but because he is a person who can see what the essence is, what nature is, what purpose and righteousness are . In other words, all that exists knows that the existing form is not purpose or essence, but purpose and righteousness that existed. And of course, knowing that purpose and righteousness are with God and come from God.


So that person knows that what the Bible says is not something that is visible, such as 'if you ask,' or 'your need.' If you do not see this in the Bible, you will be given it. If you ask for what you need for your body, you have no salvation and no knowledge of the gospel. Because they seek for the lust of the flesh, and the purpose of their faith is not the faith itself, but the gold ax is in the ax. It is a person who eats out and is like a grave.


The Apostle Paul did not want to pay for his preaching. He knew and appreciated that he gave everything he needed to share the gospel. So when I wrote to Timothy, I said, 'All that God has given me is good. And in this Philippian book, he is poor or rich, or in any circumstance that he is not short of expressing the righteousness of God and preaching the gospel by giving his own flesh.


Of course, of course, Jesus also guarantees this. All we have to do is become a person who seeks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The kingdom is ruled by righteousness, but the kingdom of God is, of course, governed by God's righteousness, and that the saving of that kingdom is to live in obedience to the righteousness of God. Then what is necessary is that the country will solve it. Of course, not the flesh, but the life that represents God's righteousnes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postle Paul and the Philippians, we can know how to live and see the needs of the flesh in giving and living for God. You have to learn it. Learning to become a person with such a nature. And that nature has the mind of Christ.


The mind is a mind to know that our physical life is not inadequate in expressing the character of God (seeing it is very good in our sight), and that any situation, any condition, and any expenditure will live to show God's righteousness. And what is necessary for those who live with that heart is knowing and preparing by God. To do that, I want you to live like this, and the person who made it will live up to that, of course. To believe in God is to believe in these things.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가진 육신의 능력 그 이상을 신앙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것은 능력이라고, 또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난데없는 것은 아니고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그 안목이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육신이 잘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회개할 것이 없나 돌아보는 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는 안목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런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자신이 본질로 보는 세계의 바람은 하나님 안에서 다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세상에서 성공을 바라는 자신의 바람은 능히 이룰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육신 그 자체입니다. 육신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육신의 능력이 보다 효율적이 된다거나 아니면 아예 육신을 초월한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공부 안하고 시험 잘 치기를 바라는 것이나, 공부한 것 이상의 성적을 기도해서 얻기 원하는 것이나, 병원에 가지 않고 병이 낫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앞선 사례들은 보통의 신앙인들이라면 다 ‘그러면 안 되지’라고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증폭시키지 않으면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기독교인들끼리 교회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다 커피만 쏟아도 ‘그 봐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말 하니 그렇지’라는 흔한 농담을 하고 듣습니다. 그런 것은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낭중지추라고 그 마음에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의의 기준이 된다고 여기는 본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것은 아주 교묘하게 신앙 안에 침습해 있습니다. 육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룬 업적으로 목사가 되는 것이 그렇고, 돈이 없다면 장로가 되기 어렵다는 것은 이제 거의 불문율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있으면 된다는 말 앞에서 ‘그러면 예수만 믿고 행위를 막 해도 되느냐?’고 질문하는 무례함도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 마음의 본성으로 있는 사람이 행위를 막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 참 무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만 있는 것으로는 왠지 신앙이 온전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만 있어서 뭔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예수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라서 더 무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니 교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행위 기반이 아닙니다. 이것은 말로 뇌까린다고 또 머리로 안다고 자신의 신앙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성이란 숨길 수 없는 것이기에 존재의 하나님, 그 아들의 본성이 있다면 당연히 그 신앙도 존재만 온전하면 행위는 본성에 의하여 다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앙의 본질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바다를 가르고 산을 옮기시지만 그것에 반하는 것이라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해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최대의 능력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은 인생에게 가장 큰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은혜로 안다는 것은 적어도 자기 삶이 태어나지 않은 것 보다 더 감사히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이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다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바로 빌립보서를 쓴 바울사도의 신앙관이기 때문입니다. 본성에서 나오는 것은 상호 모순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불가능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이가 사람으로 사는 것에 능치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신의 생명과 삶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을 살았고 또 전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인생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바울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 그것이 육신이든 환경이든 상황이든 사람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유함도 궁핍함도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고, 형편이 나빠지면 하나님께서 채찍질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감사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육신의 삶과 환경 그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모든 것에 능치 못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그것을 고백하고 오늘 우리가 그것을 대한다는 것은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신 삶 안에 그 삶이 어떤 모습, 어떤 상황이어도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모든 것에 능치 못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된다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4: 10-20) Everything that is impossible


Those who believe in God think that it is power and grace to accomplish more than the ability of the body of oneself without knowing it by the power of faith. And that is what I think, but not all, there are reasons. This is because the nature of the eye is visible to the eye.


Many believers say that if the body is well, God has blessed them, otherwise it is repetitious to look back, but it is typical of the eye to see what is visible. So, to those who have this kind of vision, the word 'I can do everything in the one who gives me power' is interpreted in the sense that the wind of the world that I see as the essence of myself is done in God. So if you pray to God, you will accept that your own desire for success in the world can be achieved.


But as I said in the previous article, the power God has given us is not out of the limits of the flesh but the flesh itself. Being out of the limits of the flesh is the ability of the flesh to be more efficient, or to cause miracles beyond the flesh. You do not want to study, you want to be good at examinations, you want to pray for your grades beyond your studies, you do not have the ability to go to the hospital and want your illness to heal.


Of course, the precedent cases are common believers, and I agree that they should not. But if you do not amplify it, the story is a little different. Christians talk about the problems of the church among themselves. Even when coffee is poured out, I hear a common joke: "See, God does not please me." It may seem that it does not seem to be a big deal, but it reveals the intention that the act of man is the standard of righteousness before God.


It is very cleverly invaded in faith that man is to act in righteousness before God by works. It is almost unheard of that it is difficult to become an elder if there is no money, not to be a minister in accomplishment in the work of the flesh and in hard work. And in the words of Jesus Christ, it is necessary to confess the faith that comes before God in the act of ridiculing the question, "Then can you believe in Jesus and stop the act?"


Even though Jesus, the Son of God, thinks that the person with the nature of the heart can be a person who blocks the conduct, even though it is rude to God, people are not believed to be faithful for some reason to have Jesus . It is more ignorant because he does not know that he is not lacking in anything but Jesus because he does not know Jesus right away. And it is arrogant to admit it. That is why God hates the proud.


It is not an act base that we believe in God. This does not mean that his faith is justified by faith. If the nature of the Son of God, the nature of the Son, is naturally concealed, it is to know that if the faith is perfect, the act is to be revealed by nature. This is the essence of faith that can do everything in a person who gives power.


God's power is ultimately to make our life a son of God. If it is necessary for it to remove the sea and move the mountain, but if it is contrary to it, it is God who does not pay any attention even if it gives fire to his body. The greatest power that God shows us and gives us is that we represent the character of that God.


Life that expresses the character of God is the greatest grace to life. Knowing this grace by grace is at least a person who is more appreciated than his own life was not born. Such a person is always someone who is pleased. It is because the life expressing the character of God is the heart of Christ itself. This is the ability. This is because all these things fit well like the cogs of the Apostleship of Paul, who wrote Philippians. What comes out of nature does not cause mutual contradictions. Naturally nothing is impossible. It is because there is nothing impossible for a person with a human gene to live as a person.


The apostle Paul lived and preached the life of the Son of God, the nature of Christ being his life and life. It was life. It is also the purpose and meaning of our lives. That is the way it should be. The Apostle Paul confesses that what is given to him, whether it is the body or the environment, the situation, or whatever, is nothing short of expressing God. Richness and lack of necessity are also irrelevant.


It is not God's blessing if he is better, but God's whipping, but everything God has given is grateful, and God's character, It is confessing that there is nothing impossible to express everything.


The Apostle Paul confessed it, and today we are about it, that in life that we also have given to us, that life must be someone who is not capable of expressing the character of God in whatever form or situation. If it does not, it is because it is a person who does not have the heart of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