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224

(창세기를 마칩니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6.11.24 07:00 Writer : 김홍덕

창세기는 세상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를 이 우주만물의 시작, 그 물리적인 시작에 대한 말씀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 창세기는 그것을 말씀하시고자 우리에게 주신 책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역시나 자신의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공치사나 하시자고 이 책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세계, 한 사람에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천지창조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말씀하신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서 ‘이 세상의 물리적 시작을 고찰하고, 이 신비한 우주를 창조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에 그친다면 참 아까운 일입니다. 1억을 주고서 커피 한잔 사 먹은 꼴보다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시작이 물리적 세상의 시작이라고 말하기에는 당장 창세기 1:2절만 해도 혼돈스럽습니다. 아직 빛도 창조되지 않았는데 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비단 그것이 아니라도, 물리적으로 어떤 시점을 시작으로 본다고 할 때 그 시작 전에 시간이 없었던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창세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천지만물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세상입니다. 이 두 번째 세상은 우리 사람들 사회에도 많이 있습니다. 컴퓨터의 세계, 인터넷 세상과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어떤 안목과 관점, 그리고 가치관으로 모든 것을 조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세계 역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안목과 특히 육신을 가진 인생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창세기의 핵심은 바로 그 세계인 것입니다.


물리적인 세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또 아담의 죄가 어떻게 나에게 유전되었는지? 와 같은 문제들은 성경의 형식만 보는 관점입니다. 책과 말 그리고 언어와 글자는 그 표현된 형식이나 문자가 본질이 아닙니다. 핵심은 그렇게 표현한 의도인 것입니다.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죽자는 이야기가 아니듯이 성경 창세기도 물리적인 세상의 시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육신으로 나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살거나 자기가 가공한 하나님을 믿다가 온전한 하나님을 만나서 공동체에 대하여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안목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하나님의 의와 경륜이 표현된 책이 바로 창세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객관적 사실로 믿는 것이나, 물리적 세상의 이야기나 또 혹은 아주 어리석게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것이라고 읽고 공부하고 이해했다면, 더 나아가서 그렇게 창세기를 껍질로만 보는 안목으로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복 받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이 또 야곱이 어떻게 부유하게 되고 인생의 위험을 이겨 내었는지와 같은 것으로 본다면 심청전을 읽고서 효도하려면 바다에 빠져야 한다고 이해한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는 야곱의 식솔들이 애굽에 정착하게 되므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들이 종살이를 하게 되므로 그 고통이 심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나타나서 출애굽하는 과정을 말씀하십니다. 이 과정은 창세기와는 또 다른 관점입니다. 창세기는 한 개인과 족장의 시대였다면 출애굽기는 민족과 나라의 시대이고, 창세기에는 율법이 없었지만 출애굽기에는 율법도 주어지고 심지어 출애굽 과정에서 걸어가는 대형조차 규정된 책입니다.


그렇게 이어진 출애굽기는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이 체계화되는 과정을 거쳐서 가나안 땅에 이르러서야 아브라함에게 또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 큰 민족이 되어 나라를 이루게 되는 과정을 보이십니다. 이러한 장대한 여정을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의가 한 개인에게 새로운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시작으로부터 그런 사람들과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수용해가는 안목을 가지므로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안목과 심령과 순종하는 마음을 주시는 여정을 말씀하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서 나라가 되기를 하나님이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나라라고 하니 어떤 정치적인 색채를 띤 조직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의가 다스리는 곳입니다.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어떤 의가 있고 그 의에 자신의 삶을 맡긴 사람들이 모일 때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하나님의 세계, 곧 창세기의 모든 말씀이 자신의 삶이 된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을 그렇게 이끄신 하나님의 의를 서로 나누므로 하나님의 의가 영광을 받는 세계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어떤 지역을 차지하고 설립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영토를 가지고 국가와 같이 되는 것이 아니듯 교회도 반드시 어떤 건물과 형식으로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에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두는 사람, 그들이 인생으로서 취할 수 있는 방법들 중에 삶의 조건과 형편에 맞게 모이고 하나님의 의를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구하는 곳이 바로 교회고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를 끝내면서 이제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나라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창세기, 곧 자기 신앙과 삶에서 하나님의 세계가 열린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어느 듯 그런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블로그도 개인의 시대에서 적지 않은 글에서 교회와 나라와 공동체의 글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이제, 이번 글을 끝으로 창세기에 대한 포스팅을 마칩니다. 창세기에 대한 첫 번째 글이 2013년 5월이었으니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올린 글이 오늘로 224번째입니다. 천지창조와 선악과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서울에서 천지창조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모임을 했었는데 3일째 정도까지 했었습니다.


창세기 다음으로는 구약성경의 한 권을 선택해서 계속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책이 정해질 때까지는 <십계명>에 대한 포스팅을 완료할 계획입니다. 그간 저의 글을 꾸준히 구독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저의 글을 통하여 하나님의 세계를 새롭게 보는 안목이 열리신 분들이 계셔서 큰 영광으로 여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