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빌립보 성도들에게 전하는 바울사도의 서신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 엄청납니다. ‘세상이 이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싶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사람의 육신을 인간 정체성의 본질로 보고 그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고 하면 역사 이래 어떤 사람도 바울사도의 말씀과 같이 모든 일에 참되고 사랑할 만한 사람은 없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많이 봅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같은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와 같은 말씀들은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 성경에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 앞에서 우리는 대부분 ‘이런 말씀은 그렇게 노력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일축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노력하는 것에 자위하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맘대로 성경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 그 의문 앞에 서면 우리는 정말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심지어 계속 이 예수를 믿을 것인지 까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는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하나님께서 창조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비롯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과 사랑하신다는 것,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절대로 단 한 명의 예외 없는 모든 인생이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오셨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이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자기 생각이 부딪히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든지 아니면 신앙을 버리든지 해야 합니다. 그냥 그 앞에서 자기 맘대로 바꾸는 것은 믿지 않음만 못합니다. 어차피 지옥 갈 것 맘대로 살기나 하는게 나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모든 일에’라는 부사가 붙은 말씀을 만나면 ‘나는 이것이 되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주셨을까?’ 아니면 ‘하나님은 사기꾼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만드셨으니 내 능력을 분명히 아실 텐데 내가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을 주셨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성령이 주시는 근심이고 합리적인 성경공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사도가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모든 일에’라는 말씀을 들으면 이것이 우리가 익숙한 관점, 모든 행동과 모든 객관적 시간에 ‘항상’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생각이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입니다. 바로 그 생각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밝히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항상’과 같은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삶에서 성경이 지키라고 한 것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서 성경을 생각해 내서 지켜내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가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재가 그러하면 모든 상황 모든 순간 모든 행동이 다 하나님의 의를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지금까지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해 온 권면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 어떤 행동을 자기 안에서 각성하듯이 자아내라는 것이 아니라 늘 그런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복을 입어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군인이라서 군복을 입는 것이 그것입니다.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면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참되는 것과 경건한 것과 옳은 것과 정결하고 사랑할 만한 것 그리고 칭찬할 만한 것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참된 것이나 경건한 것이나 사랑할 만한 것을 다 육신의 어떠함, 형식과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참되고 산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옥에 갇혀서 할 소리는 아닙니다.
사람은 행동과 겉모습을 의의 기준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것은 다 알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경건이 행위의 경건이 아니라 심령의 경건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면 ‘행동으로 못하니 마음만 그러면 된다고 변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말이 회칠한 무덤의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심령이 경건한 사람은 그 심령에 있는 것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그 육신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알지만 부자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4: 8-9) Whatsoever things
Finally, brethren, whatsoever things are true, whatsoever things are honest, whatsoever things are just, whatsoever things are pure, whatsoever things are lovely, whatsoever things are of good report; if there be any virtue, and if there be any praise, think on these things. (Philippians 4: 8)
It is the conclusion of the letter of the apostle Paul preaching to the Philippians. But the contents are huge. 'Where is the world like this?' Obviously, if we regard the human body as the essence of human identity and judge the person by its actions, it is true that no one has ever been true and loving in all things as the apostle Paul has said.
We see many such words in the Bible. It is not easy for people to say such things as "Always rejoice, thank every thing, pray without rest," and "Love your enemies." In some ways, it may be harder to always rejoice than to love an enemy. However, there are many such words in the Bible.
In front of these words, we most dismiss them as 'God's will to do so.' And I do my religious life by masturbating on my efforts. But this is changing the Bible at will. When we say such a thing, we must really ponder. Even until I believe in this Jesus.
There is something absolute about what we do in our faith life. God's omnipotence, God's creation, and God's knowing and loving all things, including our limitations, that Jesus came to this earth is the Word of God That you have come to preach. So, no matter what a person thinks, if his or her thoughts come up before this absolute proposition, he must change his mind or abandon his faith. Just changing his mind in front of him can not be believed. I'm going to go to hell anyway.
Therefore, when you meet the word "always" or "affixed to everything", you have to think about "I am this?" And if not, you should think, 'Did God give you something I can not do' or 'Is God a fraud?' But if God has loved me and made me, and has given me a word that I know I can not do but know my power, I should be able to think, 'Is not it different from what I think?' It is a grief by the Holy Spirit and a reasonable Bible study.
Therefore, when we hear the words 'on all things' as the Apostle Paul spoke to the saints of Philippi, we can imagine that this is not about what we are familiar with, all the actions and not always 'always' at all objective times Must be. That is the thought of the Holy Spirit. The very idea is that when Jesus comes to the Holy Spirit, he will know everything.
To be a person who keeps the word 'all' and 'always' is not to think and keep the Bible in a situation where it can not keep what the Bible says in his life. What you always do is that person's presence should be like that. If that is the case, then at every moment in every situation, all actions are to be the ones who keep God's righteousness.
This is all the counsel that the Apostle Paul has done to the saints of Philippi so far. At some point, you are not always waking up as you awaken in yourself, but always be. Life is what it is. It is not to be a soldier in a military uniform, but to wear a military uniform because it is a soldier. When you become such a person, whatever is true, godly, and right.
And most important of all is to be true here, to be pious and right, to be clean and lovable, and to be praiseworthy in God's sight, with one exception. Man is based on what is true, what is godly, what is visible, what is true, godly, and lovable. From that point of view, you are not talking about true, mountain, and loving things. This is entirely God's perspective. If it is not, it is not a sound to be trapped in jade.
One sees behavior and appearance as a standard of righteousness, but God sees the center. It is not knowing that the piety God speaks is piety of the act, but piety of the psyche. It is said that even if you say this, 'you can not act and you just have to do your mind'. But that is the heart of the whitewashed grave. For a person who is godly in the spirit that God sees is in his spirit that he is conceived by the Spirit and is expressed in his flesh. So this is something you can not know unless you are born again. Lazarus knows, but the rich man is unknown.
'평교인의 성경 보기 > 빌립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립보서 4:8-9) 바울사도가 전한대로 행한다는 것 (0) | 2017.09.10 |
---|---|
(빌립보서 4:8-9) 무엇에든지 (0) | 2017.09.08 |
(빌립보서 4:1-7)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0) | 2017.09.05 |
(빌립보서 4:1-7) 우리의 구할 것 (0) | 2017.09.04 |
(빌립보서 4:1-7) 염려하지 말라 (0) | 2017.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