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6. 11. 15. 17:19 Writer : 김홍덕

몇몇 분들이 '덕이의 신앙 이야기' 연재를 요청하셨지만 다른 글들을 쓰기에 바빠서 죄송하게도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이번 주는 대입 수능이 있는 주간이고 저의 둘째 아들도 이번에 수능을 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이전 생각에 대하여 정리해 봅니다.


사설이 길게 느껴지실지 모르지만 이 카테고리는 지극히 저의 사적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본다면(덕이의 신앙이야기와 금방 밀접하지 않더라도) 이제 블로그를 운영함에 있어 매일 7시에 글이 게시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블로그는 알람 기능이 없기 때문에 제 블로그의 새 글이 올라왔다고 여러분께 알려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물론 페북 친구로 등록하신 분은 예외지만)


아울러 이 <덕이의 신앙 이야기>는 페북이나 다른 SNS로 발행하지 않고 저의 블로그에 직접 접속하시는 분들만 보실 수 있도록 간혹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대하여 글을 쓰는 저도 여러분과 같이 인생의 희노애락을 가지고 있으며 아마 대부분은 여러분과 비슷하고 또 많은 것에서 여러분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마음들 이야기 하고 싶은데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디다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늘 카페를 잘 운영해볼까? 하니면 이 블로그를 완전히 홈페이지로 만들까 생각한답니다.



정말로 사설이 너무 길었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세상에 저보다 더 어른이나 똑똑한 사람 없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오직 교회에서 잘난 인간으로 인정 받는 것 뿐이었고, 그런 저의 기준으로 볼 때 저의 바람은 충분히 충족되고 있다고 착각 아니 완전한 망상 속에 살았습니다.


이제 저의 둘째 아들이 수능을 치고 나면 저희 집의 애들도 어느 정도 다 자란 시대로 저의 삶이 접어 들겠군요. 그래서 오늘 저의 그 시절을 돌아보니 정말로 철도 없고, 아무 개념도 없이 살았습니다.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는 그저 다른 학교에서 치는 모의고사 정도로 생각했고, 학력고사로 인생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이나 중압감 같은 것은 엿바꿔 먹은지 오랜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내가 늘 하고 있는 이 신앙생활이 저를 인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딱히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는데 그런 개념과는 독립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 안에는 그렇게 공부하지 않고 살아도 하나님께서 먹여살리실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적어도 결과적으로 볼 때 삶의 겉모습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대학생활은 그야말로 더 개판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교양 영어 교수님이 부친의 제자였는데, 동창회에서 저의 아버지를 만난 그 교수님은 다음 수업시간에 저를 호출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대출을 시키고 교회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대출한 친구는 처음 출석 부를 때 대답을 한 죄로 출석을 다 부르고서야 저를 부른 교수님께 불려 나가서 저희 아버지께 전해달라는 인사말을 듣고서 그날부로 저의 아바타가 되었습니다. 1년간.


그렇게 교회에 몰입했던 저의 생활은 교회 안에서 당연히 눈에 띄는 존재였고, 군에 갔다 온 선배들까지 위로 최대 7,8년 선배들이 있는 대학부에서 저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 그 자체였습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둥이였습니다. 욕을 하고 다녀서가 아니라, 다들 예수 믿겠다고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것에 대한 지적과 예수 믿는 것에 대한 잘난 체에 쩔어 있는 저의 모습이 좋게 보일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당한 부분의 행위 규범을 지켜내는 저의 모습은 달리 역공할 수도 없어서 오히려 사람들을 약 오르게 하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당시 대구에 막 태동하기 시작한 IVF가 교회에 들어오게 되고 저도 초기에는 수련회도 같이 가기도 했는데, 왠지 저는 주일까지 겹쳐가며 수련회를 해대는 IVF를 용납할 수 없었고, IVF방식으로 대학부를 이끌어가는 세력에게 대항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 1학년 여름, 대구, 경북 및 울산지역 전체 IVF 수련회를 대구 가창의 한 수련원에서 가졌는데 그때 강사로 나선 간사라는 선배(지금으로 보면 그냥 고참)가 구원에 대하여 말하면서 '흔히들 천국에는 면류관 구원과 개털모자 구원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강의하는 것을 듣고, 평소 교회에서 듣는 것과 다른 소리를 한다 싶어 강의 중간에 손을 들고서 '그러면 한 달란트 받은 자의 한 달란트를 뺏어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준 것은 어떻게 해석하냐?'고 물어 강사를 당황(답하지 못했음-정확히는 '성경을 그렇게까지 상세히 볼 필요는 없다'고 함)하게 하였고, 저희 교회 리더들이 저를 그 강의장 밖으로 끌어내기도 했었습니다.


저의 그 싸가지 없었던 대학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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