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실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합니다.그리고 이 일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 것이라”라고 하신 말씀에 베드로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맹세하였기 때문에 더 드라마틱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라고 답하신 말씀과 함께.

 

상황에 대한 사실적 기록을 바탕으로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맞습니다.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 모두에 이 사건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와 누가복음에 “그 당”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예수님을 지목한 사람의 질문은 “너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였습니다. 웬지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베드로의 대답은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 “네가 말하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마태,마가복음 1차 부인, 누가복음 3차 부인), 
  • “(맹세하며) 나는 저사람을 알지 못한다”(누가복음 1차, 마태복음 2차 부인), 
  • ”나는 아니다” (누가복음 2차), 

그리고

  • 마가복음의  2차 부인 마태복음의 2, 3차 부인은 저주하고 맹세하므로 자기 부인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쉽게 베드로가 자기 살려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것으로만 생각합니다만 사실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베드로를 잘못 보는 것이거나, 베드로가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의 충성스런 모습이다가 자기나 살자고 배신하는 이중적인 사람이 됩니다. 베드로가 모른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이지 예수님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베드로의 고백은 그리스도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있지 않다는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었다는 걸 알게 됐다.

 

베드로는 단 한번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저렇게 매를 맞는 그리스도와는 같이 있지 않았다”, “나는 매맞고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는 알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지 배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솔직한 고백입니다. 바로 여기가 기독교인들이 베드로를 크게 오해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사람들은 그냥문자 그대로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고 하면 자기도 곤혹을 치를까봐 비겁하게 배신한 것으로 읽습니다. 

 

베드로가 몰랐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이지 예수님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그렇게 본다는 건 성경을 문자대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한번도 깊은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로 사람이라면 해야하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관해 솔직하게 모른다고 고백한 베드로 사도를 배신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인들의 기묘한 편리함이 수반되기도 하는데, 베드로의 말을 문자 그대로 보면 안 된다고 하면, “그럼 어떻게 봐야 하나?”라고 하면서도 또 자기가 지키지 못하는 말씀 앞에서는 “성경을 문자대로 보면 안 된다.의미를 봐야한다”라고 기준점 없는 이중적 편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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