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는 건, 지금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짓궂은 여친이 남친에게 ‘뭐 달라진 거 없어?’라는 질문하듯이 사람에게 자기 뜻을 감추고 그 뜻을 알려줄 수 있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우리의 믿음이나 행동을 바라시는 분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정체성을 외면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을 감추시지 않는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향한 모든 뜻을 말씀하셨다.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 사람에게 사람을 창조하신 뜻을 성경을 통해서, 심지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면서까지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 우리를 창조하신 뜻을 말씀하셨다. 존재에게 존재의 목적을 알려 주었다면 그 존재는 자기가 존재하는 동안의 모든 것에 관한 뜻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께 뜻을 구한다는 건 자기 존재의 목적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말일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묻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양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자. 그 뜻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뜻인가? 그렇다면 그건 한심한 짓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을 통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면서까지 밝히 말씀하셨는데 그걸 묻는다는 건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뜻, 나에게 인생을 살게 하시고 하나님이라는 신을 인지하게 하신 뜻은 이미 널리 말씀하신 것이므로 ‘내가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하나님께 다시 물을 일이 아닌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5)
물론 존재의 목적이 분명해도 그 사용법에 비할만한 궁금증은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된 사람에게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순간,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를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는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라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한가지 쟁점이 있다. 바로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을 바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뜻이다. 내 안에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데 내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지를 모른다는 것도 쟁점이 된다.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그 영이 이끄시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알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건 사실 하나님의 뜻이라기 보다 내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동의 혹은 나보다 더 신앙이 있다는 신분이나 이력을 가진 사람의 명분일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제물로 내어주면서까지 말씀하실 정도로 뜻이 분명한데도 하나님께 뜻을 묻는다는 건 뭔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내가 남다른 일을 하기 원하시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뜻이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기본은 하나님께서 내게 인생을 주신 목적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은 나의 각오나 신념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본성으로 사는 것이다. 본성은 거듭나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는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아주 가끔씩 어디 선교를 하러 가겠다고, 또는 남다른 사역을 하겠다며 하나님을 묻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부터 순종하지 가긴 어딜 가려고 하냐?’라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영역에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하나님에 관해 그릇된 주장에도 내가 낮아지고 내 육신의 수고를 내어주는 삶이라는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기본적인 뜻을 외면한 체 다른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건 기초도 쌓지 않고 건물을 쌓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밝히셨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뜻을 알도록 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 정도로 간절하게 전하셨는데 정작 사람은 하나님께 뜻을 알려 달라고 하니 하나님도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이게 완곡한 표현이지 이건 명백한 불순종이므로 하나님께서 실망하고 분노하실 상황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뜻을 분명히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그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십자가를 지셨으며,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 뜻대로 사는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이 나의 본성이 되기를 순종하면 내 안에 하나님의 뜻이 생명이 되고 나의 삶을 이끄신다. 내가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내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뜻과 일이 된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걸 믿지 않는다는 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므로, 이걸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뜻을 구하는 건 믿지도 않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 14:10)
'김집사의 뜰 > 복음 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0) | 2025.11.26 |
|---|---|
| 하나님은 왜 죄를 허용하셨는가? (0) | 2025.11.12 |
| 신앙의 경계는 어디까지 인가? (0) | 2025.10.27 |
| 안락사 (1) | 2025.09.19 |
| 거짓말 (2) | 2025.08.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