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7장)
사무엘하 7장18절 이하에는 다윗이 나단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시작이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라고 시작한다. 사무엘 상에서는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한 번도 ‘다윗 왕’이라는 표현이 없다. 사무엘 하에 들어와서 5장과 6장에 한 번씩 ‘다윗 왕’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때는 모두 사람이 다윗을 왕으로 호칭한 것인 반면,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장면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칭하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부르신 것이다.
이는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왕이라는 하나님의 공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무엇을 보고 이렇게 인정하셨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하는 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의와 뜻대로 사는 삶을 사는 게 우리 인생의 존재 목적이고 또 신앙을 가진 사람의 영원한 소망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다윗의 기도를 대표하는 말은 “…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기도는 밥 달라, 돈 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다. 이걸 한 마디로 축약하면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 그대로 땅과 같은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를 순종하는 고백, 이것이 다윗의 기도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삼하 7:25)
기도라고 하면 사람들은 거의 자기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양심은 있는지 자기가 원하는 바가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기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기도는 내가 필요한 것이나,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기를 구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또 나를 창조하시고 인생을 주신 목적, 그것이 내 삶의 본질이 되기를 구하는 순종의 선택과 허락과 고백 그것이 진정한 기도다.
다윗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정립하면서 시작한다. 자신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는지 감사하고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를 알고 있으시니 자기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이건 하나님께 몇시간씩 얻을 구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도와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 방향이 다르다.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도는 자기가 필요한 것, 자기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구한다. 어설프게 아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주의 영광을 위하여 간구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의 신앙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주 여호와는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삼하 7:20)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가장 선행되고 중요한 건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바로 아는 것이다. 예수님의 잉태할 것이라는 걸 들은 마리아는 “주의 천한 계집종”이라고 하나님과 자기 관계를 분명히 했고, 우리가 아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도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고백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내가 구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관계’로 설정한 것과 사뭇 다르다. 일반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램프의 요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바로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믿음이 <크다>고 칭찬한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수로보니게 여인이고, 또 한 명은 병든 종을 고쳐 주시기를 구한 백부장이다. 이 두 사람은 자기와 예수님의 관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심지어 자기를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먹는 개라고 인정했고, 백부장은 자기 집으로 가겠다는 예수님을 만류하면서 자기도 남을 부리는 사람이기에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이라는 걸 고백했다. 예수님이 자기와 자기 종 또한 모든 사람의 주인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고백했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바로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 역시 그렇게 시작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시작하는 건 하나님께서 내 존재의 의를 가진 분이라는 고백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올바른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알고 있어야 무엇을 구할 것인지가 정해진다. 사람이 일방으로 하나님께 자기 필요한 것,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위한 것을 구하는 건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올바른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인식하고 있으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지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을 위한 것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상 하는 것 같은 기도의 출발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바로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건 내가 어디로, 무엇을 위해 길을 나섰는지를 아는 것과 같다. 그래야 종착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나는 그 뜻에 순종하는 관계라는 걸 알면 기도는 언제나 다윗처럼 “주의 말씀대로 행하사”라고 기도하게 되어 있다. 이게 온전한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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