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고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직접 봤고, 참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이건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과는 체감이 다를 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건 제자들의 믿음에 우리 믿음을 견주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일생 전체를 두고 보면 더욱 그렇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건 제자들의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걸 확신했다. 우리는 때로 간과하지만 베드로가 단검 한 자루로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 창과 뭉치를 가진 군인들에게 덤빈 일을 잊으면 안 된다. 제자들은 정말로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뿔뿔이 도망갔다.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자기 생업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엠마오로 도망가기까지 했다. 그들은 오늘날 신앙인들의 생각처럼 정말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했을까?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예수님이었는데.
빌리보 가이샤라 지방에서 십자가를 질 것이라는 것을 처음 말씀하신 이후 예수님은 두 번 더(총 3번)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셨고, 정말로 십자가를 지셨다. 흔히 빌라도의 뜰에 간 베드로를 비겁한 시각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더 용감했다. 그가 부인한 것은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였다는 게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어떻게 채찍질을 당하는지, 그걸 모르겠다고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한 게 아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건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냉정하게 보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그걸 이토록 쉽게 믿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제자들의 태도가 이상한 건 아니다. 오늘 우리가 그들이 예수님을 배반했다고 말할 게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이걸 이렇게 쉽게 믿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게 더 온전한 태도일지 모른다.
제자들의 낙심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어쩌면 이런 고민도 없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 더 이상한 것일지 모른다.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감옥에 있는 죄인이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걸 믿으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건 제자들의 상황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이 된다는 걸 믿을 수 있는 그 시대의 사람은 있을 수 없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그들의 낙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 제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부활하여 현현했을 때도 위로가 되지 않고,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아들은 낮아지고 십자가를 지므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낸다는 걸 믿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 진리에 하나 둘 목숨을 바치기 시작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을 때는 예수님이 잡히자 낙심했지만, 승천하셔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는데 그들은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실제로 순교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제자들이 변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못자국도,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때문도 아니었다. 차이는 단 하나 <성령>이다. 그래도 제자들이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했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자 제자들이 돌변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며 채찍질 당하는 그리스도는 알 수 없다던 베드로가 일어서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다”라고 외쳤고, 성령에 감동한 그 외침에 3,000명이 회개했다. 그들의 회개는 도둑질하고 음란한 마음을 회개한 게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믿음,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는 자기 믿음을 회개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에 대해 바로 알 수 있다. 사람들에게 성령은 기적의 아이콘이지만 성령의 직임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졌다는 걸 믿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자기도 낮은 마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이것이 성령의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을 얻은 우리 역시 이 성령의 역사하심이 삶에 있어야 한다. 낮아지고, 겸손하며, 내가 하나님에 대핸 더 온전하나 죄인들의 주장에 내 육신을 내어 주어 섬기고 수고하는 삶, 이것이 우리 구원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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