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의 생명 본성이 증명하는 장로의 자격 (딛 1:6)
디도서 1장 6절에 제시된 장로의 자격, 즉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 믿음의 자녀를 두어야 한다는 조건은 사실상 하나의 본질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바울 사도가 서두에서 선언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으로부터 경건한 행실이 비롯된다는 원리가 구체화된 세부 사항이라 할 수 있다. 경건한 삶은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적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곧 본성이 된 생명, 즉 거듭난 생명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열매다. 따라서 장로는 그 본성이 자신의 삶과 결혼 생활, 그리고 가정을 거쳐 자녀의 믿음으로까지 투영되어 나타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성경적 기준은 오늘날 교회가 장로 후보를 선출할 때 적용하는 일반적인 암묵적 기준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많은 경우 교회 봉사 경력이나 헌금을 감당할 수 있는 재력, 세속적인 사회적 지위, 혹은 가문의 내력 같은 외적인 공로가 자격의 척도가 되곤 한다. 하지만 성경의 원리대로라면 비록 어제 새로 등록한 교인이라 할지라도, 혹은 나이가 마흔이 채 되지 않았더라도 이러한 신앙의 본성이 확고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장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오늘날의 교회를 비판만 하는 지나친 표현일 수 있지만, 우리 각 사람이 먼저 장로의 자격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교회의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논하기 전에, 그를 선택하는 기준은 그 기준을 가진 내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결국 성도들이 가진 장로의 기준에 따라 교회의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신앙이 바울 사도가 제시한 자격을 참된 신앙의 척도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경건한 장로가 세워질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기준으로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다는 건 우리 역시 바울이 말한 경건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디도서가 말씀하고 있는 장로의 자격은 임직식 때만 잠시 상고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신앙이 지향해야 할 본질적인 기준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경건의 사람을 장로로 세울 수 있는 경건한 신앙을 소유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청지기 –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을 맡은 자
7절에 들어서며 바울 사도는 앞서 언급한 '장로'를 '감독'으로 칭한다. 이러한 명칭의 변화가 훗날 교단 형성의 신학적 근거로 쓰이기도 했으나, 문맥상 5절과 7절을 잇는 접속사가 원어에 존재한다는 점을 볼 때 이는 동일한 직분을 다른 관점에서 서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여기서 등장하는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며 충성을 다하는 자의 대명사다. 이는 비단 장로라는 직분에 국한된 말씀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생’이라는 고귀한 삶과 기회를 위탁받은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감독’이라는 호칭은 장로의 직무와 역할에 관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독은 군림하거나 통제하는 자가 아니라, 청지기처럼 주인의 뜻과 방침을 따르는 관리자다. 비록 공동체를 이끄는 권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의 의로움이나 가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근거해야 한다. 바울 사도가 감독의 자격 중 가장 먼저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라고 명시한 것은 바로 이러한 청지기적 본분을 확정하기 위함이다.
사도 바울은 청지기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시는지를 근거로 감독의 기준을 제시한다. 성경은 장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맡은 자’, 곧 하나님의 청지기라 부른다. 그리고 우리가 위탁받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맡기신 명확한 뜻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나에게 생명을 맡기신 그분의 목적과 의도에 대해 거룩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바울 사도가 제시한 감독의 자격은 열거하자면 열세 가지 정도에 달한다. 얼핏 많은 조건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 모든 것은 거듭난 생명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의 본성이다. 성령의 나무에 성령의 열매가 절로 맺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이 수많은 자격은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이라는 하나의 조건으로 수렴된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과 인생에 충실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맡기신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이다. 창조주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이 목적에 충실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선언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맡은 자가 가야 할 충성의 길이 무엇인지 친히 본을 보이셨다.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이 육신 곧 삶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본성이 되고, 삶의 목적이 되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게 된다. 십자가를 진다는 건 낮아지고 겸손하며 섬기고 사랑하므로 나의 육신 곧 삶의 수고를 남을 위해 내어 주는 삶이다. 그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겸손과 사랑이라는 성품이 드러난다. 우리가 이걸 맡은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삶 이상의 경건한 삶은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이상의 경건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도서 1장에서 제시하는 감독의 직임은 ‘청지기’라는 한 단어에 모두 함축된다. 본문에 열거된 조건들은 결국 우리가 세상에 표현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모습이다. 바울 사도 또한 자신의 모든 사역이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맡기신 것"이라고 고백한다. 결국 장로와 감독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맡기신 그 거룩한 성품을 삶으로 증명하며 모범을 보이는 사람을 뜻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디도서가 권면하는 경건한 삶이 곧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사는 삶임을 알게 된다.
결론적으로 디도서 1장이 제시하는 지도자의 자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로 거듭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노력으로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생명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다. 장로와 감독이 공동체에 줄 수 있는 최고의 모범은 창조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선물을 맡은 청지기로서 충성해야 할 지점이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낼 때, 그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는 강력한 교훈이 된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말하는 ‘바른 교훈(딛 1:9)’의 실체다. 여기서 우리는 ‘책망한다’는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책망을 상대에게 능동적으로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의 원리는 다르다. 가장 강력한 책망과 교훈은 상대방이 스스로 돌이키게 만드는 힘이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에서 강한 바람은 오히려 옷깃을 여미게 했으나, 따뜻한 태양은 스스로 외투를 벗게 만들었다는 우화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가 세상을 가르치고 책망하는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공포스러운 위협으로 우리를 굴복시키지 않으셨다. 아담의 시대부터 일관되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법은 자비와 긍휼이다.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온전한 아들의 모습을 보이신 그 사랑이 우리를 스스로 뉘우치게 한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장로가 성도들에게 강압적으로 경건을 주입하는 것은 참된 책망이라 할 수 없다. 지도자가 청지기로서 먼저 경건한 삶을 살아내고, 성도들이 그 삶의 향기를 보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디도서와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의미의 교훈이자 책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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