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예배는 주객이 전도되어 형식이 본질을 주관한지 오래 되었다. 대세는 ‘예배 참석’이라는 사람이 정한 구원의 조건을 편리하게 충족시키기 위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예배 시간, 그 중에서도 설교 시간이다. “예배와 치마는 짧을수록 좋다”라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닐 게다. 이래저래 “주일날 교회 가나?”라는 기준이 구원의 기준이 되었다. 예배의 본질인 말씀의 선포와 화답이라는 기본 골격은 시간, 형식, 악기와 시설에게 밀려 뒷방 늙은이가 된 지 오래다.
값비싼 악기와 심지어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음악이 주도하는 예배에 관한 넘쳐나는 비판을 살짝 벗어나 오늘은 주로 장로들이 하는 대표기도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워낙 다른 잘못된 것들, 그래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많아서 오히려 도드라지지 않는 게 이 대표기도다.
대표기도는 말 그대로 ‘대표’다. 물론 주보에 그렇게 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예배 중에 성도들을 대표해서 기도하는 것이니 엄연히 대표기도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는 사람도 사람들의 제도인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힌 장로가 한다. 그리고 이 기도 자격은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엄격히 제한한다. 대예배는 장로, 주일 오후예배는 장립집사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한다고 해도 자리 값을 지불한 만큼 대우하는 모양새다.
다시 예배의 본질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의미의 예배는 하나님의 뜻에 나의 자아를 드리는 게 유일한 목적이다. 그렇게 보면 나의 자아를, 나의 심령을 하나님께 드리는 데 이제는 찬양도 대신해 주는 상태긴 하지만 어쨌든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드리는 예식이다. 그리고 대표기도는 나를 드리는 고백의 대표다. 많은 장로들이 무지해서 착각하는데 대표기도는 선포하는 자리가 아니다. 아니 기본적으로 기도라는 게 하늘의 뜻이 흙으로 만들어진 땅인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다.
갑자기 기도는 선포가 아니라고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주의 깊게 대표기도를 들어보면 그 장로가 교회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 지를 예상할 수 있다는 걸 아는가?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이해하려면 교회의 실세 중의 실세인 장로와 아웃사이드 장로가 있다면 그 둘의 기도를 들어보면 교회에 대한 자기 영역 표시와 권한이 기도에 엄청나게 배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말씀에 대한 화답이 아니라 장로라는 지위를 가지고 자기 뜻을 선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예전에는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예배 PPT에 띄우지만 않지 사실상 사전에 미리 작성해서 낭독하는 게 당연해졌다. 일주일 동안 기도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기도를 할까?’라는 생각이 결국 자기 철학을 선포하는 기도문을 만들게 된다. 왜냐하면 성도를 대표하는 기도는 선포된 말씀에 화답하고 간구하는 것인데, 선포된 말씀 없이 소설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말씀에 관한 화답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사람이 화답하는 예식이라는 걸 다시 상기하면 된다.
오늘날 예배 순서가 설교보다 앞에 기도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더 장로들의 개인 신앙이 들통이 난다. 평소에 말씀을 묵상하고, 지난 주 설교를 일주일간 되새김질을 했다면, 아니 원래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기도는 온통 하나님 말씀에 대한 고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장로의 기도를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실수도 않으신다고 찬양한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경영하시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맘대로 정의하고는 고쳐 달라고 기도하는 게 그들의 자랑이다.
큰 틀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제사다.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고 나를 드리는 화답이 예배의 본질이고 전부다. 오늘날 예배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건 설교와 대표기도다. 그렇게 보면 기본적으로 순서부터 잘못되었다. 물론 순서가 바뀐 건 문제의 일각도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예배와 신앙을 회복해야 하니 비록 형식과 행동을 바꾸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이 대세인 이 시대기는 하지만 그 신앙 방식에 맞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방법의 첫 걸음으로 대표기도를 설교 뒤에 하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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