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죽었다는 선언으로 시작한 ‘사무엘 하’ 1장에는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역시나 다윗은 한결 같은 모습이었다. 한 아말렉 사람이 사울의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들고 다윗의 진영에 찾아와서 자기가 사울을 죽였다고 말한다. 이 시점은 다윗이 아말렉을 크게 도륙한 직후다. 그 시점에 아말렉 사람이 다윗의 진영에 왔다는 건 상당한 모험이다. 우리는 이 아말렉 사람이 평소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사울을 죽였다고 하면 보상을 얻을 것을 기대했다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의 반응은 아말렉 사람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다윗은 옷을 찢고 슬퍼하며 금식하고 노래를 지어 사울과 요나단을 기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말렉 사람을 죽였다. 여화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를 죽였다는 게 보상을 바랬을 법한 아말렉 사람을 죽이는 명분이었다. 돌아보면 다윗은 자기가 직접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에서도 같은 이유로 사울을 죽이지 않았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경외하는 한결 같은 본성이 있었다.
‘사무엘 하’는 거의 다윗의 일생을 기록한 성경이다. 초반부에는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그리고 이후에는 밧세바의 일과 아들 압살롬의 복수와 반란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구 조사로 역병을 초래하는 굵직한 일들이 기록되었다. 오늘날의 관점, 아니 어떤 시대적 관점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건을 마무리하고,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을 대하는 다윗의 모습은 보통의 사람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그의 모습은 모두 그리스도의 혈통이 가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앞서 설명한 바 있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대하는 그리스도의 본성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도 다윗은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혈통이 가진 본성이 드러났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름 부은 자’가 누구인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름 부은 자라고 하면 당시 기름을 부은 세 직분, 왕, 제사장, 선지자를 생각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구분된 특별한 선택으로 여긴다. 그래서 ‘기름 부은 자 = 특별한 선택’이라고 공식처럼 암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름 부음을 받는 특별한 직분인 왕, 제사장, 선지자는 모두 그리스도의 본분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거듭난 우리의 영적 신분이다. 거듭났다면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선지자, 고후 5:20)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다. 아니 정확히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는 건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기름은 직분을 완수한 사람에게 붓는 게 아니라 앞으로 직분을 수행할 사람에게 붓는다는 것이다. 예정적이란 것이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곧 성품과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예배하고, 뜻을 전하는 일을 수행하라고 기름을 붓는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인생을 주신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은 자인 셈이다. 아니 그렇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자기 삶을 다스리는 왕이 되기를 바라시고, 모든 사람은 산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기를 바라시고, 모든 사람은 그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를 원하신다. 모든 사람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다.
이 이치를 안다면 다윗이 사울을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로 여긴 건 그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다윗의 그리스도의 혈통이므로 그리스도의 본성과 가치관에 따라 사울을 대했다. 그러니까 다윗에게, 또 그리스도라는 본성을 가진 사람에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기름 부은 자라는 게 보이고,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은 기름 부은 것이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특별함으로, 그래서 사울을 특별한 존재로 여겨 그를 존중한 게 아니다. 다윗은 또 그리스도의 본성은 하나님께서 삶을 주신 모든 사람을 기름 부은 자로 받는다. 이건 우리 신앙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쯤 되면 아마도 여러, 아니 많은 사람이 ‘그럼 모든 사람, 특히 하나님께 범죄하는 사람도 그렇게 대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만약 그런 생각이 든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라는 본성에 이끌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게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 23:34)
생각해보면 기름 부은 자로서 사울을 대하고 죽이지 않은 다윗의 마음, 아니 본성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는 말씀을 비롯하여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성경을 관통하는 말씀들과 궤를 같이한다. 그리고 이런 말씀들은 모두 하나 같이 그런 행동을 보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자아내는 본성을 가진 생명이 되라는 말씀이다. 거듭남으로 구원을 말씀하신 이유다. (하나님의 의도를 이렇게 볼 수 있어야 성경의 행간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모독한 골리앗에 맛서는 다윗의 행동을 본받기 원하셔서 다윗의 일들을 오늘 우리에게 전하신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윗을 그렇게 이끄는 본성을 가진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로 거듭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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