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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2:9-14) 물이 바다 덮음 같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하박국 Date : 2021. 2. 20. 07:57 Writer : 김홍덕

하박국을 통하여 심판을 선언하시는 하나님께서 몇몇 부류의 사람에 대하여 특정하시듯 말씀하신다. 먼저는 교만한 자였고 다음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 높은 곳에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라고 특정하시고 불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들은 피로 읍을,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들과 함께 동일한 심판을 받는다고 하신다.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2:9)

 

이 심판은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한 이방에 대한 심판이라는 점과 이방인이란 하나님과 의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방인이란 하나님과 다른 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을 믿노라 하지만 율법을 해이하게 만드는 사람이나 그런 그들을 심판하는 이방인이나 하나님과 의가 다르다는 점에서 같은 종족이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일부의 모습들을 특정하고 분류하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성령의 다양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다른 의를 가진 사람 역시 다양한 악함으로 하나님과 다른 의를 가진 본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양하게 특정되었다고 해도 그 뿌리는 이방인 곧 하나님과 의가 다르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소멸된다는 점에서도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먼저는 교만에 대하여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재앙을 피하려고 높이 오르려고 하는 것과,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를 행하는 것, 피로 읍을 쌓고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들은 모두 화를 당하고 불로 소멸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생각하는 재앙은 모두 육신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 누구도 죽어서 지옥 간다는 것을 심판으로 여기지 재앙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람은 재앙을 육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재앙을 피하려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한다는 것은 육신이 평안해지려면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높은 곳에 이르려고 한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사람의 본질적 모습의 하나다.

 

또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를 행한다고 하셨는데 사람에게 자기 집은 평안의 터전이다. 자기 집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육신의 삶의 평안을 위한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를 행한다는 것은 육신의 평안을 위하여 하나님과 다른 의를 추구한다는 말씀이다. 성경이 말하는 불의는 세계를 정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의가 다르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피로 읍을 건설하고 불의로 성을 건축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읍과 성 역시 육신의 평안과 삶의 안보를 위한 것들이다. 피로 읍을 건설한다는 것은 일면 특이한 것 같지만 결국 같다. 피는 생명이기에 피로 육신의 평안을 도모한다는 것은 자기 삶, 자기 생명을 모두 육신의 평안을 담보하는 것에 쏟는다는 의미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을 주신 의와 반대이므로 이 또한 불의한 것이다. 불의로 성을 건축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된다.

 

이렇게 사람의 모습을 특정하여 말씀하심은 특정한 사람, 사람들 중 어떤 부류를 구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본성에 관한 말씀이다. 재앙을 피하려고 높이 오르려는 사람이 따로 있고, 피로 읍을 건축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의를 저버린 사람의 삶이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 특정한 부류가 형성되기도 하는 것은 사람 안에 그런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매개로 모이는 것일 뿐이다. 초식동물이 썩은 고기가 있는 곳에 모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에 소비하라고 주신 육신을 보전하고 그 평안을 도모하는 불의를 좇는 사람은 모두 이방인이기에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이 오르려 하고 자기 집을 위하여 또 성을 건축하기 위하여 불의를 행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다하며 살아간다. 자기 생명이 다하도록 하나님의 의와 반대로 산다는 의미다.

 

이런 사람의 모습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한다. 사람도 자기가 목적하고 의도한 것이 있어 만들고 구매한 것이 목적대로 되지 않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데, 그런 본성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서할 리 없다. 더더욱 사람이 가진 본성은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대로 주어진 특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사람이 하나님의 의가 아닌 눈에 보이는 육신의 일을 본질로 추구하는 것을 용서하시지 않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불심판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하박국을 통해 말씀하신다. 불로 사른다는 것은 재기 불능의 소멸상태가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다시 할 필요가 없는 심판이란 의미다. 다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반복성이라는 관점이 주된 관점이 아니라 그것이 유일하게 정해진 것이라는 점이 주된 관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하신 의가 아닌 것을 좇는 모든 이들에게 정해진 것은 소멸되는 것이 유일하게 정해진 것이라는 것은 사람이 추구하는 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사람이 육신의 평안을 위하여 도모하는 모든 것은 불로 살라지는 것일 뿐인데 사람이 그렇게 무의미한 것을 도모하며 인생을 보내는 것은 그 자체로 끔찍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받는 것이 된다. 굳이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화학적인 불로 사르지 않아도 하나님의 의를 떠나서 산다는 것 자체가 자기 스스로 인생을 불살라 소멸시키는 심판 속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살 뿐인데 그 자체가 소멸되는 심판이 되도록 하셨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고 사는 것을 헛되고 소멸되는 심판에 스스로 들어간 것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경영하신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이 다스리는 곳이니 하나님의 의와 다른 뜻으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소멸될 수밖에 없는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족들이 불 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2:13)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생들이 추구하는 것이 불로 소멸되는 것같이 헛된 것이 되도록 하심은 이 세상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넘치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의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눈에 보이는 육신을 본질로 보고 그 평안을 좇는 마음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 각 개인 안에 있는 불의함을 소멸하시고 각 개인의 심령 안에서 여호와를 인정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이다. 한 마디로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소멸되는 헛된 것임을 각 개인이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인정하게 하심이라는 의미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12:8)

 

앞서서 재앙을 위하여 높은 곳에 오르려는 것이나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그런 부류들이 있다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저버린 각 사람 안에 그런 모든 불의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의 연장선에서 한 사람 안에 있는 헛된 본성들이 심판을 받아 소멸되게 하신다는 의미다.

 

여호와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각 사람 안에 있는 불의함,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목적을 정하고 추구할 바를 정하는 교만과, 육신의 평안을 위하여 높이 오르려는 세상의 가치관에 매몰된 불의함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조성하신 목적에 순종하는 것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여호와를 인정하게 하심이 바로 하나님 심판의 목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렇게 한 개인의 심령 안에서 육신의 평안을 위하여 추구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불의한 것으로 드러나 심판을 받고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 죄를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그러므로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심은 한 사람 안에 자신의 존재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함이 시작되면 그 사람의 모든 심령, 그 사람의 모든 세계가 물이 바다를 덮은 것과 같이 여호와 영광, 곧 여호와의 성품과 의와 뜻이 드러나는 것이 그 사람의 세상에 가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2:14)

 

아울러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요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상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넘쳐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사람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