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분명하게 “다시 죄를 위하여 드릴 제사는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서만의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도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겼다고 말씀하셨다. (요 5:24)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이렇게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는데 또 회개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사가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것인데 이 중차대한 문제를 기독교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죄 지으면 당연히 회개해야지’라고 생각한다. 그게 한 번이면 맞는 말이지만 두 번 이상이 되면 성경에 반하는 것이다. 이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고 그러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세상이 터부시하지만 자기 생각에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또 세상의 법과 도덕이나 시선 같은 것은 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대하여 죄의식조차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면 무시한다. 교회 세습과 같은 문제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가장 현란하게 보여주는 곳들은 대부분 이단이다. 뻔뻔하다. 자칭 정통의 옷을 입고 있는다고 이 뻔뻔함이 도덕이 되지 않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사람들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죄의식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심판과 정죄의 기준이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면서 운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동으로 죄를 범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거짓말은 어떤가? 거짓말에 하얀 거짓말이 어딨나? 하얗든 검든 다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이런 행위들을 가지고 죄를 논하는 이상 누구도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율법이라는 것이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생각이고, 본질 없이 형식으로 온전케 되려는 생각이기에 율법으로 온전케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위로 죄를 심판하고 정죄하므로 계속 그 죄를 해결해야하는 것은 율법 안에 있기 때문이다. 율법은 내용 없는 형식을 대변한다. 행위를 본질로 여기는 것을 인함이다. 겉모습과 행위를 본질로 여기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죄를 가늠한다. 행위를 정죄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그것은 반복되고 끊이지 않는다. 레위 계통의 제사가 그렇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온전하지 못함을 인하여 오셨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구원을 믿으면서 자신의 행위를 심판의 대상으로 보고 정죄하고 회개하기를 반복하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하고 또 한 편으로 죄 없다고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회 칠한 무덤의 모습에 불과하다. 외식 그 자체다. 예수님의 구원이 자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기 것인 양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욕 보이는 것이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6)


하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단 번에 드린 제사로서 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믿는다면 오늘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부인하려 해도 믿음이 상처 나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 이것은 이론이 상상의 경지가 아니라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구원을 얻고자 하고 얻었다고 믿는다면 이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오늘 나에게 다시 회개해야 하는 제사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죄와 불법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묵인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신의 사건이 된 사람은 더 이상 죄가 없기 때문이다. 기억할 것이 없어졌다는 말씀이지 뻔히 죄가 있는데 묵인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까지 가기도 전에 자기 자신이 이미 스스로에 대하여 죄 없다 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증거도 없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아니다. 죄가 있는 것이다. 구원받았지만 죄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을 정죄하는 기준이 행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이다. 레위 계통의 제사 속에 있고, 율법 안에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는데 그래도 스스로를 죄 없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불경스럽고,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니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양심이 없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하나님의 사하심을 받은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