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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4:1-7) 율법 아래 나신 예수님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갈라디아서 Date : 2021. 7. 22. 16:37 Writer : 김홍덕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 율법 아래에서 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던 우리가 속량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속량은 우리가 율법에 속했던 세월을 유업을 이을 자가 후견인 아래 있던 것 같은 시간과 상태라고 정의한다.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었다는 말씀의 연장이다. 그러나 범법자를 위한 것이라고 한 율법 아래서 예수님이 났다는 것 우리에게 쉬운 이야기는 분명 아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율법 아래 났다고 하심은 우리 역시 율법 아래에서 나고 사는 세월이 있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것이 우리가 육신을 가졌기 때문이듯,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나셨다는 것은 우리 역시 율법 아래 났음을 말씀하시고자 함이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범법자를 위하여 주신 율법의 세월을 지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말씀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전 과정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이 육신으로 나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세월이 가진 의미,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온전한 의미,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우리 인생의 목적을 보이시기만 하시고 사람이 그 보이신 목적에 순종하는 선택을 할 때 구원을 얻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법부터 자신의 이야기여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강제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성경에서 다양한 말씀으로 설명되어 있다.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 그 천지창조의 말씀도 이 과정이고,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과정도 사람의 신앙 여정의 모형이자 본질이다. 아브라함의 여정이나 야곱의 여정도 그렇고, 심지어 요한계시록의 모든 묵시도 이것이 바탕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육신으로 날 때는 그 누구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인생의 존재 목적이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를 인지하지 않은 상태로 난다. 사람은 살면서 그것을 스스로 선택하여 자기 안에 담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도록 하나님께서 지으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선택이나 순종 없이 강제적으로 아바타처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대로 사람이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창세기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야 한다.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땅 곧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흙으로 창조된 사람의 인생에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지 않은 때가 있다는 의미다. 이 시간이 바로 율법의 시간이자 믿음이 오기 전의 시간이다. 그리고 범법자 곧 죄인으로 사는 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기 전까지 예수님이 죄인이었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죄인인 예수님을 보고 광야에 들린 놋뱀을 보았을 때 자신도 뱀으로 비침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함께 그렇게 육신의 삶이 세상의 가치로 죄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육신을 주신 목적대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을 발견하므로 믿음이 온다. 십자가 아래 있던 백부장이 죄인으로 달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발견하고 고백하므로 이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사람의 세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되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사람이 되며,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께서 의도한 존재가 그리스도이므로 이런 천지창조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세계가 열린 사람을 그리스도로 거듭난 것이라고 한다.

 

이같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교육받고 고민하며 사는 인생의 여정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났을 때까지의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이 창세기 1:2절이 말씀하시는 혼돈의 시간이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말하는 후견인 아래 있는 시간이고 율법이 관장하는 시간이다. 율법의 시간인 셈이다. 그러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자신의 삶이 죄인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 온다. 이 기회는 반드시 누구에게나 온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인하여 심판을 받는 이유다. 모든 인생이 위로 올라가는 것에 한계를 반드시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누구도 핑계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20)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범법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모습을 설명하신다는 말씀이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들린 놋뱀이 이를 설명한다. 놋은 당시 거울의 재료인데 그 놋으로 뱀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것을 보고 자신이 뱀 곧 죄인인 것을 고백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영생을 위해서 자신도 이렇게 들려야 한다고 니고데모에게 십자가를 설명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여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