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유명한만큼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을 심판하기도 한다. 물론 신앙인들은 이 말씀으로 자기가 심판받고 있다는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가 성경을 다 지키면서 살 수 없다는 건 알고 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님과 달라서 노력할 뿐"이라며 그 심판을 회피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기가 그렇다는 걸 고백하지만, 신앙에 열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마음의 의도와는 달리 삶이 그렇지 않음에 고민한다. 그런 고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씀 중 하나가 바로 '항상 기뻐하라'다. 인생은 항상 즐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바울과 같은 사도들도 화를 내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완연한 사실들 앞에 '항상'이라는 빈도 부사를 준수하는 건 안 될 일로 여긴다.
그렇다고 성경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성경대로 살지 못한다는 건 당연히 불순종과 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성경대로 살지 못했는데 천국에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분명하지만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에 기대어 구원의 요행과 하나님의 자비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그게 통할 리는 없다.
거듭난 생명,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삶은 항상 기뻐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고, 이 분명함은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 신앙의 열매로 요구하신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대로 살아야만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과의 괴리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선명한 문제를 덮어두고 요행으로 구원을 바랄 수는 없다.
성경대로 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방치하고서 천국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성경대로 살 수 없을까? 사람들의 말대로 예수님은 되는데 나는 되지 않는 건 괜찮은 것인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예수님과 다른 존재, 즉 다른 DNA를 가지고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들이 될 수는 없다. 성경대로 살지 못한다는 건 이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겸손으로 해결된 문제 역시 아니다. 이걸 해결하지 못한다면 구원도, 천국도 없다. 이것마저 인정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가망조차 없다.
사람이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건 근본적으로 성경의 의를 모르기 때문이다. 방정식 풀이법을 읽고도 방정식을 풀지 못하는 건 책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어두움'이다. 내가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건 예수님과 달라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걸 인정하면 희망이 보인다. 예수님은 이 어두움을 물리칠 빛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씀을 바로 알면 방정식이 풀리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을 행동 강령으로 여겨 행위로 성경을 지키려고 하지만 성경 말씀은 행동 강령이 아니라 존재를 정의하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존재에 관한 말씀을 행위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어두움과 오류에 빠져 있다.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성경의 전부로 여기는 행동은 존재가 정의되면 자연스레 정해지므로 존재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이걸 몰라 성경대로 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네가 누구냐?', '네가 어디에 있느냐? (어떤 존재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를 물으시는데. 사람은 성경을 읽고서 '나는 이렇게 행동했습니다'라는 대답을 내어놓는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너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는데, "부끄러워 숨었나이다"라고 행동을 고백한 아담처럼 행동한다.
성경이 물으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는 비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대로의 사람이다.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피조물이 의도한 목적 안에 있기를 원하신다. 이건 당연한 권리고 이치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원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그 존재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시고, '너는 그런 존재냐?'라고 물으신다. 그 존재는 바로 하나님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이다. 이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가 되어야 할 본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 한다. 말씀, 곧 의와 뜻이 육신이 되면 그 의와 뜻을 표현하게 된다. 이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다. 그런데, 그 목적이 이루어진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존재다. 성경이 육신이 되었으니 그 삶의 모양은 성경대로 일 수밖에 없다. 이게 성경대로 사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면, 그 육신은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관한 말씀이다. 어떻게 행동해야 그리스도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존재의 삶은 이렇다'를 보여 주는 말씀이다. 존재의 신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은 이런 삶을 산다는 걸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뜻하신 사람이 되면 성경은 그저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이유다. 우리는 먼저 이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 5:17)
사람이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지 않아서다. 하나님이 뜻하신 존재,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의 사람이 되면 성경대로 살게 된다. 더욱이 그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인만큼 육신이 된 본성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다. 성경은 이 존재를 그리스도라고 하고, 거듭난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성경대로 살 수밖에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거듭남이 거짓이거나 거듭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예로 든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으로 이 주제를 마무리해 보자.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행위 규범으로 지키려고 하면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설명한 대로 성경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원하신다. 항상 기뻐하는 존재,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시는 존재가 된다면 이 성경을 이루는 것이다. 이게 더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자녀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의외로 어렵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녀와는 다투기도 하고, 자녀로 인해 화가 나고 걱정이 넘치긴 해도 자녀는 항상 기쁨을 주는 존재고, 자녀는 본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다. 이럴 수 있는 건 서로 의미 있는 존재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이라는 정체성과 관계는 항상 기쁜 상태다. 이 사이에 기쁨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 간의 관계성에 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 역시 이런 관계가 되는 걸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고, 언제나 어떻게 행동할까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그래야 성경을 바로 알고, 무엇보다 성경대로 살 수 있다. 성경대로 살지 못하고 늘 반성만 하는 신앙은 아무 소용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면 성경은 다 이루어진다. 이걸 믿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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