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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성경) 결론은 거듭남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회색성경 Date : 2025. 6. 24. 05:47 Writer : 김홍덕

회색 성경이라는 아주 생소한 단어로 제목을 정하고, 그래도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도전을 받았던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왔다. 대충 정리하면 선악과와 천지창조에서 재림과 부활까지 다루었다. 굳이 말하자면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이야기한 셈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성경 전부를 깔끔하게 설명했다는 뜻은 아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 언급한 세 가지 말이 있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 <방 안의 코끼리>, <낭패를 당하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우리가 성경과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흐릿하게 믿고, 큰 문제인 줄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괜찮을 거라고 믿고 기대하는 신앙은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할 것임을 경고하는 말들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흐릿하고 경계가 없거나 경계가 허물어진 교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다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다룬 주제 모두를 관통하는 교리 혹은 개념 아니 신앙이 있다는 그건 바로 <거듭남>이다. 말씀대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여기서 다루지 않았고, 또 지금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시대에 따라 어떤 게 새로운 문제가 된다고 해도 생명으로 난 이상 더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야 성경을 온전하다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생명이 되기를 바라시는지를 분명하게 알면 성경은 참 단순하고 명료하다. 세부적으로 우리가 알기 힘든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사람 창조의 목적, 곧 하나님의 의와 뜻의 설명과 표현이다. 당연히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면 그 하나님의 모든 의도가 이루어진 사람이 된다. 이게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게 거듭남이고 구원이며 복음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많은 의문과 불확실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와 뜻은 단 하나고 그 하나는 복잡하지도 않으며 예수님께서는 그 짐이 쉽고 가볍다고 하셨으며 또한 인생의 길과 빛이며 생명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분명한 복음을 들고 신학이다 교리다 하며 어려워하는 건 섭리나 이치에 전혀 맞지 않다.

 

성경이 이렇게 복잡하고 의문투성이가 된 건 성경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어렵다거나, 하나님께서 뜻을 숨기시고 사람이 하기에 따라 조금씩 적선하듯이 알려 주시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은 성경을 어려워한다.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이 성경과 하나가 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경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고 하니 별스러운 거 같지만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게 바로 이 말이다.

 

우리의 표상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건 우리 역시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게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이다. 이렇게 거듭난 새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이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이 자기 안에서 생수처럼 흘러넘치는 사람이다.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자기를 인하여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거듭난 사람은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기 신앙에 모순적인 요소가 있다면, 예를 들어 거듭났다면서 끊임없이 회개한다거나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된다고 하신 성경을 학문으로 공부하고 있다면 거듭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지만 이걸 인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예수를 오래 믿었을수록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살았다는 걸 돌아봐야 할지 모른다. 아니 그게 정상이다.

 

우리는 거듭남을 교회에 출석하면 얻는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거듭남은 교리문답 시간에 ""라고 대답한다고, 초신자 교육 때 머리로 이해했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렇게 거듭났다고 믿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행여 자기 구원이 없어질까 염려하기도 하고, 자기의 어떤 행위로 인해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하는 일이 어려움을 겪지나 않을지 염려한다. 그러니까 확신이 부족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생명이 바뀌었다면 염려하지 않는 것들이다. 자기 생명이 바뀌어 이전과 다른 본성으로 살아가는데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노력하고 공로를 쌓고 그런 노력의 실패로 인한 징계를 두려워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생명이 바뀌었다면 이전 것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자주 비유한 대로 늑대가 양으로 거듭나면 고기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건 거듭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이 명확한 상식적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 새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고, 의문 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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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성경) 부활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회색성경 Date : 2025. 6. 23. 08:26 Writer : 김홍덕

부활은 정말로 다른 종교나 신앙에는 없는 아주 독특한 섭리다. 기독교라는 종교 전체로 보면 자부심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건 내가 부활할 수 있는지, 나에게 확고한 부활 신앙이 있는지일 것이다. 이런 흐릿함을 해결하기 위해 이 장에서는 부활은 필연적인 섭리라는 걸 이야기할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아주 특이하고 명료하게 말씀하시는데, 특히 부활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설명하듯이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무덤에 가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어서 살리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활은 부활할 수밖에 없는 생명이기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24) (feat. 시 16:8-11)

 

성경의 이런 말씀은 부활이란 독립된 기적이나 섭리가 아니라 죽을 수 없는 생명을 대하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구원을 얻는다는 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기도 한데, 어떤 이유로 사망에 머물게 둘 수는 없는 게 맞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천국에 가는 것도 같은 이치인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 사람이어야 천국에 가는 이치를 말한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함에 있어 거듭남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거듭남은 하나님이 약속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섭리고, 부활은 그 영원한 생명은 다른 존재나 이유로 죽음이나 사망 가운에 거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섭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듭남과 부활을 연결하고 관통하는 하나의 열쇠가 있는데 바로 <생명>이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거듭남과 부활은 모두 <생명>에게 일어나는 일로 거듭난다는 건 생명이 바뀌는 일이고, 부활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명은 육신의 호흡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이자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생명이 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육신이 멀쩡해도 죽은 것이다. 거듭남과 부활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는 데 바로 생명의 본성이다. 생명은 고유하고 거스를 수 없는 본성이 있다. 이 본성이 생명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DNA가 이를 설명할 수 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주는 고유한 본성이 있는 생명이다. 이 생명의 정체성이 바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준으로 보시는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곧 이 생명의 본성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 하나님의 뜻인 목적대로 사는 삶이다. 성경대로 사는 삶은 노력으로 성취되는 게 아니라 거듭난 생명으로 날 때 본성으로 타고 난다. 거듭난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나는 것이다.

 

거듭남을 생명이 바뀌는 것으로 안다면 성경대로 산다는 건 생명의 본성대로 산다는 것도 알 것

 

그리고 오늘의 주제 '부활'은 거듭난 생명은 하나님께서 사망에 두시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적인 섭리다. 특별히 죽은 사람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으로 하나님의 우월성을 표현하시려는 게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아 있는 생명을 사망 가운데 두실 하등의 이유가 없으므로 배고프면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살리시니 그게 부활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맥락 없는 기적이 아니다. 부활은 살아 있는 생명에 관한 자연스럽고 적절한 대처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하나님이 살았다고 하는 생명은 사망 가운데 있을 수 없기에 일어난 일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생명이 되면 부활하기 싫다고 해도 부활하게 된다. 여긴 마음의 의심을 물리치려 힘쓰며 부활을 믿겠다는 신념이나 노력 같은 건 없다. 생명의 본성, 생명 정체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 그게 부활이다.

 

부활은 거듭나는 순간 확정된다.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목적, 그 목적이 삶이 된 하나님이 생명으로 여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거듭나는 순간 영생을 얻고, 그렇게 하나님의 영생을 사는 존재는 사망 가운데 있을 수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고, 권능이자 섭리다. 그리고 우리에겐 은혜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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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성경) 종말과 재림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회색성경 Date : 2025. 6. 21. 11:37 Writer : 김홍덕

성경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아주 많이 하고 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나 에스겔, 다니엘 등에도 종말론을 생각할 수 있는 말씀이 많이 있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세상이 망하고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볼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하였다고도 하셨다. 다시 오신다고 하셨고, 또 이미 왔다고 하셨고, 함께 있던 사람 중에 그걸 볼 사람이 있을 거란 말씀도 하셨다. 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시는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맞지 않다.

 

먼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있을 종말과 심판을 이야기해 보자. 사람들은 종말과 재림을 이 물리적 세상, 그러니까 지구라는 행성에 임하는 재앙과 심판이라 확신하고 있다. 이는 천지창조를 물리적 우주와 세상 창조로 보는 것과 같은 시각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본질로 본다.

 

하지만 종말과 재림은 물리적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 게 본질이 아니라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사람의 심령에 오시는 일과 그 일이 있기 위해서 자기 세상이 심판을 받아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는 게 말씀의 본질이다.

 

종말과 재림의 본질은 자기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께서 심령에 다시 오심이다.

 

천지창조가 한 사람 안에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일이듯 종말 역시 한 사람이 가진 자기 세계의 종말이다. 선악과를 먹고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거나 예수님이 거하실 수는 없다. 자기 세상이 멀쩡하고, 자기 의가 충만하고, 자기 기준으로 세상의 선악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세상이 멸망해야 예수님이 오실 수 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 24:29-30)

 

하늘의 권능이 떨어진다고 하신 건, 자기 의와 가치관이 무너진다는 것이고, 이를 인해 땅, 곧 사람인 자신이 흔들린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사람이 그렇게 자기 가치관이 무너지는 걸 보실 것이며, 이렇게 자기 의로 살았던 삶을 뉘우치고 통곡하며 자기 가치관의 종말을 맞아야만 예수님께서 그 사람 안에 임하시게 된다는 걸 말씀하심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의 종말은 본질적으로 자기 세상의 종말이다. 자기 의가 죽지 않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오시지 않는다. 그렇게 예수님이 오시는 일이 바로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보게 될 거라고 하신 예수님의 재림이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1)

 

사람들은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때가 당장 지금이라고 해도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나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오늘 내가 예수님이 오신, 임재하신 사람이라면 죽어도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걸 볼 사람이 있다고 하신 말씀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재림의 본질은 내 안에 예수님이 오심이다. 2,000년 전에 육신으로 오셔서 복음을 전하신 주님, 그때 전한 복음이 나에게 다시 임하여 예수님이 그랬듯 그 말씀이 나의 육신()이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재림이다. 이 재림이 임하기 전에 나의 세상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한다. 자기 죄를 시인하는 게 이것으로, 자기가 옳다고 믿었던 세상과 그 옳음을 지탱하던 하늘과 같은 의로움이 다 무너지고 떨어져야 예수님이 오신다. 이는 거듭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증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시는 동안 예수님의 실체를 본 사람들이라고 해도 예수님이 자기 심령에 온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여기 있는 자 중에'라는 단서를 붙이신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난다고 오시는 게 아니다. 이는 성경에 이른 대로 자기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 의로 주관하던 세상을 살았다는 고백과 시인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 세상은 종말을 맞고 예수님이 오신다. 이게 예수님 재림의 본질이다.

 

물론 어느 날에 예수님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형이상학에 머물지 않는다. 영이시기에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하나님의 자기 존재를 실증하고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 세상과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다. 사람에게 구원을 하늘에서 신비한 기적으로 전하지 않고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전하신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하나님은 반드시 실체로 임하신다. 다만 그건 형식이고 내용인 본질은 그게 아니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림이 분명 어느 날에는 있겠지만, 그건 우리 심령에 예수님이 오시는 재림의 형식이다. 본질은 어느 시대가 되었던 사람이 자기 의로 똘똘 뭉친 자기 세계가 무너지고 그 심령에 예수님이 오시는 일,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재림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한 사람에겐 재림도 천국도 없다.

 

하나님 나라인 천국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던 사람이어야 갈 수 있다. 자기 의로움과 선악의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면서 살던 자기 세상이 멸망하지 않은 사람은 이 땅에 살 동안 하나님 나라에 속할 수 없다. 두 개의 나라와 의를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았는데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다. 한 번도 야구 선수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1군 무대 경기에 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내용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선 이걸 흔히 "행간을 봐야 한다"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실체로 임하신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건 성경이 객관적 사실이냐를 논할 때도 반드시 배경으로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섭리다.

 

재림과 종말은 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의 일이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은 아니다. 더욱이 그 사건은 본질이 아니라 재림을 설명하는 형식이다. 진정한 재림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오늘 나에게 임하셔서 내가 예수님과 같은 생명이 되는 일이다. 이게 진정한 재림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임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어야 주님 다시 오시는 날 함께할 수 있고, 죽어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재림은 우리 신앙의 근간이다. 더불어 이 재림, 예수님이 내게 오시려면 내 세상이 끝장나야 한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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