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법궤는 사사시대에 실로에 머물렀다가 블레셋이 침공하여 빼앗기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에 머무는 동안 역병이 도는 등 재앙이 이따르자 블레셋 사람들이 사람 없이 새끼 있는 암소가 끄는 수레에 태워 보냈는데 하나님의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이르러(삼상 4~7) 다윗이 다시 시온성으로 가져오기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 볼 것은 하나님의 궤가 있었던 땅의 이름(지명)충돌이라는 단어다.

 

바알의 성읍에 머문 하나님의 언약궤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온성을 세운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가지러 간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궤를 가지러 바알레유다로 갔다고 했다. 정확한 기록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아비나답의 집이 있는 곳의 지명은 기럇여아림(숲의 성읍)인데 이방인들의 영향을 받아 바알레유다(유다에 있는 바알의 성읍)라고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름에서 보듯이 가나안의 이방신 바알과 연관이 있다는 건 한 눈에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건 다른 지명이 있는데 굳이 바알과 관련된 이름을 지칭하여 그곳에 하나님의 궤가 있다고 설명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겠다고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방인의 가치 속에 있었다는 의미다.

 

사실 하나님의 궤는 이스라엘 영내에 있었다. 그런데 사울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순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법보다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을 섬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법궤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해석해도 사울은 할 말이 없다. 사울은 하나님의 법궤가 빼앗기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성경에 기록이 없다. 반면에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전황이 급박해지자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게 해서 전쟁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뿐이다. (그 전쟁은 이긴다) 사울에게 하나님의 법은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법보다 중요하지 않았고,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법궤에 대한 그의 인식을 확정할 수 있다.

 

 

하나님의 법궤가 바알의 성읍에 있었다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실제 그 땅은 이스라엘의 땅인데 성경이 굳이 바알의 성읍이라는 뜻의 바알레유다에 법궤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 사울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법은 바알의 정체성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말씀하시는 것이다. 과도한 알레고리컬한 해석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실제로 그렇게 취급하고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바알이 약속한 풍요를 얻기 위함이라는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법은 바알의 성읍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바알의 가치관 아래 두고 있다.

 

글을 이어가면서 사울을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짓만 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울이 오늘날 신앙인들이 비난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어 출세하고 평안을 누리려는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알라딘의 램프 속 요정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 속 사울이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교회에 다니는 게 곧 천국에 가는 자격을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을 마치 자기 필요한 것 뱉아 내는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할 대상은 아니라는 걸 밝혀둘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많은 세월을 하나님께 육신의 복락을 구하는 믿음으로 산다. 그게 옛사람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는 그 가치관 안에 있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통일 이스라엘, 그러니까 내 인생이라는 세계와 나라를 하나님의 의로 다스리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바알의 가치관 아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된다. 다윗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의가 주관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은 세상의 풍요를 위해 주신 게 아니라는 게 본성과 DNA가 된다. 그게 거듭남이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바알의 가치관이 아니라 시온의 가치관으로 가져온다. 하나님의 언약은 세상의 풍요를 약속한 게 아니라 내 인생을 주관하는 존재의 목적과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다윗이 바알의 성읍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찾아오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을 세상에서 출세하고 평안을 누리는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내 인생의 목적과 나를 주관하는 의로 여기고 순종하여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세상의 성공을 약속하신 말씀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나의 인생이라는 나라를 다스리는 의와 가치로 여길 것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만약 나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바알 아래 있다면 다윗처럼 시온으로 가지고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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