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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성경) 전도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회색성경 Date : 2025. 6. 6. 23:50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당부한 말씀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육신으로 이 땅에서의 마지막 당부가 복음을 전하는 것, 곧 전도다. 굳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전도라는 중요성을 부각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근본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시는 것인 만큼 복음을 전하는 건 거듭난 사람의 근본적인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의무지 사실은 본성이다.

 

우선 기독교인들에게 전도는 하나의 과업 혹은 달란트처럼 인식되고 있다. 거듭났다면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본성이 아니라, 특별한 열심과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각인되어 있다. 전도 성과에 따라 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게 전도를 특별한 달란트로 생각하는 증거다. 하지만 이건 이상하고 잘못된 현상이다.

 

모든 생명은 종족의 번식이 본성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이라면 복음을 전하는 건 본성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걸 재능 취급한다는 건 생명을 모르는 무식과 어두움이다. 생명이 있다면, 또 생명이 무엇인지 안다면 이럴 수 없다. 어떤 생명이 자기 종족의 번성을 상 주는 일이나 재능으로 여기겠는가? 오히려 어떻게든 주체가 되려고 하는 게 생명의 근원적 본성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말씀이고 생명인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전하는 건 근원적 본성이다. 사람이 성욕을 억제하는 게 힘들 듯,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말하고 외치는 건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다. 전도를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한 성과나 재능으로 여겨 수건이나 치약을 상으로 줄 일이 전혀 아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전도는 본능이고, 욕망이다.

 

이 같은 생명의 법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제 올바른 전도의 개념을 이야기해 볼 것이다. 먼저 복음은 생명을 전하는 것이므로, 전도하려면 생명이 있어야 한다. 있지도 않은 생명을 전할 수는 없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도 여기 있다. 세상에는 빛도 생명도 없었다. 따라서 빛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야 했다. 이것 외에 사람에게 생명의 하나님 말씀과 뜻을 전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전도의 법은 하나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통해 생명을 전해 주신 법 외에 다른 전도는 없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 역시 이 모델을 벗어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신 법 외에 다른 법으로 생명이 전해질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을 전할 방법은 없다. 예수 외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는 말씀은 이게 유일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법이 전도의 본질적 모델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음을 강제하지 않으셨다. 그러시면서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다. 이건 모순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장 강한 강권은 마음이 동하게 하는 것이므로, 스스로 결정하고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본을 보이는 것보다 강한 강권은 없다. 사람이 보고 "저것이 나의 모습이고 하나님 아들이다"라고 깨닫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의 본을 좇아 사람이 감동하도록 삶을 보이는 것, 이게 전도의 본질이다.

 

삶의 모습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거듭나게 하는 것, 이것이 전도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육신을 가진 사람에게 보여 주시려고 직접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자 사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 중에 낮아지고, 겸손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성품을 표현하고자 하셨다. 예수님은 이를 표현하셨는데, 그 총화가 바로 십자가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내 말을 안 들으면 혼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처럼 협박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제자들에게 과히 책망하시지도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본이 되시는 법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표현해 주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육신으로 그대로 표현하셨다.

 

다윗의 후손이지만 왕궁에서 나지 않았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랐으며, 낮고 천한 자들과 먹고 마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아들이신데 사람들이 "너같이 낮고 천한 신분이 하나님 아들이라니? 그건 신성모독이야!"라는 심판에 자기 육신을 내어주시는 낮아짐을 보이셨다. 이는 그리스도라는 본성에 이끌리심인데,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셨다.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자기의 존재 목적을 발견하도록 본을 보이신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 15)

 

예수님께서는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영생을 얻도록 인자가 놋뱀처럼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모세 당시에 놋은 거울이다. 뱀 모양의 놋을 사람이 본다는 건 자기를 비추어 보니 뱀같이 악하다는 걸 보게 된다는 뜻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 사람이 자기 죄를 깨닫게 되고, 마음을 돌이키게 되는 법을 말씀하심이다.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백부장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며 십자가에 못 박은 건 죄라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전도의 진정한 본질이자 교본이다. 십자가의 도를 벗어난 전도는 없다. 즉 전하는 육신을 내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의 도는 전해지지 않는다. 자기 육신을 내어주는 사람이란 낮아지고 겸손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이다. 신념이 아니라 거듭난 본성이 그런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육신을 내어주는, 그러니까 육신으로 수고하고, 낮아지는 본을 보이는 사람 없이 전해지는 복음은 없다. 빌립 집사에게 에디오피아 내시장이 한 말만 들어도 이를 알 수 있다.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행 8:31)

 

복음은 하나님이 살았다는 사람, 하나님께서 뜻하신 사람,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의 목적이 육신이 된 사람이 있어야 전해진다. 낮아지고, 겸손하며, 섬기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본성이 된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 "네가 옳다"라며 육신으로 수고하고, 섬기는 본을 보일 때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진다. 이게 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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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4일 토요일 오후 서울역에서 만나요!

Category : 알리는 말씀 Date : 2025. 6. 5. 14:26 Writer : 김홍덕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만남의 자리를 서울역 옆 카페에 마련했습니다.

장소가 예약된 것은 아니라서, 그냥 오셔서 저를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저를 아시는 분도 오실지 모르지만, 만약 오신다면 처음인 분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소한 분들과의 만남이라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은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하시고

복음에 관해,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각은 오후 1시입니다.

 

인사 나누고, 평소 궁금했던 이야기들과

시간이 주어지면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하심에 관해

<하나님의 인기척>이란 제하의 말씀도

함께 나누면 어떨까 계획 중입니다.

 

모임에 참석하시려면 아마도 용기가 약간 필요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번 시간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6월 14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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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성경) 이단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회색성경 Date : 2025. 6. 5. 08:03 Writer : 김홍덕

신앙인들은 특별히 예수를 열심히 믿지 않아도 이단이라고 하면 심히 경계한다. 이단은 일반적으로 삶을 변형시킨다. 몰입하게 되고,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관계와 요소들을 하찮게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이단은 표면적으로 삶의 평안을 깨기 일쑤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확신이 낭패를 가져오는 어이없는 결과를 신봉하게 된다.

 

이단에 대한 정의는 과히 어렵지는 않다. 일반적으로는 사도신경의 일부 혹은 전부를 부인하면 이단이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종교와 무관하게 사회로부터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경우는 한 개인이 우상화되거나 보편적인 사회의 가치관을 벗어난 공동체 생활이나 규칙 등을 강요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과도한 헌금이나 모든 재산을 헌금하는 것과 같은. 하지만 포괄적, 아니 상식적으로 이단을 정의한다면 하나님을 바로 믿지 않는 것, 하나님의 뜻을 가감하여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가감하여 믿는 모든 건 이단이다.

 

성경은 의외로 분명하고 선명하게 이단을 정의한다. 사도 중 가장 오래 살면서 복음의 순도를 지키기 위해 애쓴 사도 요한은 당시 많은 문제를 일으킨 이단인 영지주의를 경계하는 말씀 속에서 적그리스도, 즉 이단을 구분하는 명료한 기준을 말씀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걸 부인하면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곧 이단이라고 정리했다. 이 적그리스도는 사탄과 같은 집합이라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2 1:7)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걸 부인하거나 가감하는 모든 생각과 믿음은 이단이다. 특히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책이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곧 구원받아 하나님 아들이 된 사람의 모습이다. 즉 육신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하나님 아들의 모습,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심을 부인하는 게 이단의 본질이다.

 

정통 교단이라는 교회들과 심지어 사회적으로도 이단에 관한 기준으로 제시하고는 있지만, 성경의 기준을 넘어설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게 뭔지만 알면 된다. 예수께서 육신을 오신 걸 부인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면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육신을 가진 우리와 같이 육신으로 오셨다는 건, 하나님의 뜻은 육신을 가진 사람에게 있다는 의미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라는 형식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그 성품을 표현하시겠다는 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가 육신으로 나타내어야 할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에서 몸소 보이셨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진 사람에게 뜻을 전하기려 하셨기에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 계획은 사람에겐 구원의 법이다. 예수님을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육신으로 오셔서 육신의 사용법을 보여 주신 것과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보여 주신 모습이 구원받은 사람이자 하나님 아들인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심을 부인하거나 가감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단에 관해서는 여러 측면으로 정의하고 판단하며 경계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 그래서 육신을 가진 나는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서 구원을 얻어야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뜻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의 어느 하나라도 부인하면 그게 바로 이단이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심을 부인하고 의심한다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반적인 신앙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걸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믿고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늘 지적하는 '우리는 예수님과 달라서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할 뿐'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모습은 과연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걸 그대로 믿는 신앙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오늘 나 자신이 그런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이단의 생각이라는 걸 반추해야 한다. 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구원은 없기 때문이다.

 

이단은 분명 인생과 영혼을 망친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믿는다는 건 그렇다. 더 큰 위험은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온전하고 정통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신앙에 관한 도전을 받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문둥병에 비유한다. 자기 영혼과 믿음이 병들었다는 데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나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게 이단의 근원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단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병으로 치면 증상이 완전히 드러난 것과 같다. 하지만 신앙인 대부분은 이단 잠복기 상태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걸 바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셨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확신 안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그런 상태가 아니라면 이단 잠복기에 있는 것이다.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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