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는 성경 속 진짜 의미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념 사이에 가장 큰 간극을 보이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대개 우리는 온유하다고 하면 성품이 착하고 부드러우며 유연한 모습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경이 모세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걸 들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온유와 성경의 온유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성경 속 모세는 우리가 아는 온유와 달리 부드럽고 순한 인물로 생각하기 어렵지만. 성경은 모세를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애굽 관원을 쳐 죽이고, 백성들의 범죄 앞에서 돌판을 던져 깨부수었던 거친 모세를 우리가 일반으로 가진 온유의 개념으로 가장 온유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민 12:3).

 

산상수훈을 비롯해 성경이 말씀하시는 온유는 헬라어로프라위스(πραΰς)’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고난을 통해 낮아진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좀 더 의역해보면 자기 맘대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된 상태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이 어떤 걸 말하는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를 알아야 성경을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오히려 율법주의가 되겠지만, 이렇듯 성경의 행간에 부합하는 단어의 의미는 찾아서 보면 분명 유익합니다.

 

사람이 자기 존재의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가만히 멈춰 서 있는 정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렸기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 생각과 고집으로 인생의 목적을 임의로 정의하고 그것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선악과를 먹은 상태이기도 한데, 사람이 스스로인생은 이렇게 사는 게 옳은 것’, ‘이렇게 살아야 행복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태도가 선악과를 먹은 상태라는 증거입니다. 창조주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과 악을 스스로 정의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상태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선악과를 먹은 상태입니다. 많은 곳에서 설명한 선악과를 조금만 더 설명하면, 사람(the Man)의 근원적인 죄는 악한 열매(악과)을 먹어서가 아니라, 자기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리로 가버렸다는 게 사람의 원죄인 선악과를 먹은 상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상실한 채,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추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이 맡기신 인생을 태연하게 자기 소유로 착각(도둑질)하고, 자기가 가진 선악의 기준으로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며 살아가는 게 바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입니다. 바로 이 교만의 상태에서 벗어나, 마침내 하나님의 통치와 뜻 아래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온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 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이 복된 사람이 얻게 되는 보상 아니 받는 복은 다름 아닌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이 본래 흙으로 지어진 성도 자신을 의미한다는 사실과, 그 땅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이치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말씀의 진짜 행간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흙으로 지어진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 충성스럽게여겨 청지기로 온전히 맡기신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여기서 말씀하시는 기업은 세상의 사업체나 부동산 같은 물질적 자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이루라는 거룩한소명(Calling)’입니다. , 내 인생을 내 고집대로 낭비하지 않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청지기로 세워 하나님의 성품을 이 땅에 온전히 표현해 내도록 내 삶을 온전히 맡기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존재를 인식하는 존재인 사람이 누리는 복입니다.

 

자기 뜻대로 날뛰며 인생을 내 소유라 여기며 자기가 하나님인양 선과 악을 마구 판단하는 선악과를 먹은 상태의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 것으로 착각한 절도 상태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사람으로 몰라 심령이 가난했고, 그래서 애통했으며, 그 뜻을 알기까지 야곱처럼 곤고한 삶을 살고, 양을 치며 낮아진 모세 같은 사람, 즉 온유하게 된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맡기십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1, 2, 3복은 모두 하나의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실의 터에서 우리를 불러내어 위로하신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닌 하나님의 '청지기'로 세우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위임받은 진짜 기업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수행하는 사명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어갈 4복에서 8복까지의 모든 말씀 역시, 정확히 이 하나의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존재의 목적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기반으로 팔복을 풀어가는 것은, 남달리 성경을 풀어가는 특별한 열쇠나 자의적인 관점이 아닙니다. 성경 창세기 1장에서 분명하게 밝히신 하나님의 뜻이자 우리를 창조한 목적은 분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품과 형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므로 팔복이나 산상수훈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구절은 마땅히 이 관점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수학의 정석을 붙잡고 영어 문법을 깨우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이 성경의 주제를 벗어나서는 성경의 단 한 구절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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