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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향한 진정한 핍박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스더 Date : 2025. 1. 31. 22:29 Writer : 김홍덕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행동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하만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빌미로 모든 유대인을 죽이려고 했다. 연좌제도 이런 연좌제가 없다. 그래서 이건 그저 옛날에는 있을 법한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왕의 권세를 훔친 하만의 모습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사람의 모습으로 하만의 핍박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향한 인생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태도이자 핍박이다.

 

우선 삶을 자기 것으로 여긴 사람은 세상의 가치를 따른다. 세상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서 신을 찾는다. 심지어 사회적 약속인 규범과 법을 어기면서 그 자리에 오르려 한다. 자기를 부유하고 평안하게 그리고 살찌우려는 의도의 저변은 인생은 자기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인생이 자기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처럼 맡은 것일 뿐이라는 걸 안다면 그렇게 자기를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늘 세상의 핍박을 받는다는 말씀이 아주 많다. 많은 기독교인은 이걸 오해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 바쁜 일이 있어 다른 직원들은 일요일에 출근해서 일하는데 주일 예배 드려야 한다며 동참하지 않는 상황에서 받는 직원들의 눈치 같은 걸 성경이 말하는 믿는 사람에 대한 세상의 핍박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완전히 괄호 밖 이야기는 아니지만 성경의 의도는 이와 다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유대인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향한 세상의 조롱과 손가락질 그리고 핍박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상은 모두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낮고 천한 십자가로 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을 살면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걱정과 조롱과 우려 모두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세상의 핍박이다.

 

진정한 핍박과 조롱은 가치를 뺏고 조롱하는 것

 

하만은 유대인들을 죽이려 했다. 지금은 일부 극단적인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면 그때처럼 목숨을 빼앗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에게 육신의 목숨이 중요하긴 하지만 삶의 가치를 육신의 목숨에 한정하지 않는 게 사람이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자기 목숨보다 귀하다. 결국 핍박의 극한은 가치를 빼앗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인 사람에게 십자가를 모욕하는 게 핍박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십자가가 귀하지 않은 사람을 핍박하지 않는다. 앞서 예로 든 일요일 특근의 경우 주일을 지키겠다는 교인을 비난하는 건 주일 성수를 하겠다는 사람은 세상의 경쟁을 편하게 하려는 얌체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다들 특근하는데 교회 가는 사람이 낮아지는 삶이라서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그걸 핍박으로 생각하는 건 기독교인들의 정신 승리일 뿐이다.

 

오히려 십일조 드리지 않으면 세상에서 실패할 것이란 설교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핍박이다. 여기서 실패는 세상이 모두 추구하는 성공과 부유함을 얻지 못할 거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낮아짐을 실패로 보고 있다. 하나님은 낮고 천한 십자가를 영광으로 여기는데 세상과 세상 가치를 영광으로 여기는 기독교인들은 높아짐을 영광으로 믿고 낮아짐을 경계하고 터부시하니 그것이 핍박이다.

 

하만이 핍박한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으로 충분히 치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절하지 않는다. 세상이 영광스럽게 여기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라는 생명 본성으로 거듭난 사람을 말한다. 노력으로 성경을 지키려는 사람은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본성과 노력은 근원이 다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18-19)

 

일제 강점기나 현재의 아랍권에서나 있을 법한 신앙에 대한 핍박은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큰 위험이다. 그러나 그것 혹은 그런 강도의 핍박이 핍박의 전부는 아니다.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일상에 있는데 핍박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핍박과 유혹은 일종의 배신과 같아서 아주 치명적이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평안하게 살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여겨 본받을 거라는 그럴듯한 말은 낮고 천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인생에게 진정한 시험이고 핍박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에 가서 불상에 절하지 않고, 초상집에 가서 영정에 절하지 않는 것을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모르드개와 같은 신앙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라도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신앙, 세상에서 성공하는 게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신앙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낮고 천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다.

 

세상의 성공과 귀한 게 하나님께도 귀하다고 생각하면서 비싼 악기와 재료로 예배드리고 교회를 건축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는 우상이나 세상에 절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건 명백한 착각이다. 더욱이 그런 착각은 자신만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고, 예수를 핍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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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지 않는 모르드개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스더 Date : 2025. 1. 21. 12:52 Writer : 김홍덕

왕의 권세를 업은 하만은 모든 백성이 자기에게 절하도록 하였으나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이 모르드개가 유대인이기에 절하지 않은 것이라 하만에게 고하였다. 이제 이건 민족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문제로서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니다. 유대, 곧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든 사람의 문제로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앞서 하만의 행태는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와 같은 것임을 설명했다. 아울러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고,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사탄(마귀)이라는 것 역시 설명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일이 그렇다. 기독교인 대부분은 자신은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질 수 없다고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에서 이겨 높은 자리에 올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낮고 천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믿는 신앙이다.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라는 하만은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의 모습 그 자체

 

절을 한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은 상대의 의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네가 옳다"라는 인정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세상 만국을 보여주며 나에게 절하면 이 영광을 다 주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껜 "하나님만 섬길 것"이라고 일갈했다. 세상 영광을 주겠다는 말에 절한다는 건 세상의 영광이 영광의 본질이며 사람이 추구할 영광임을 인정한다는 의미기에 예수님께서는 그게 아니라고 잘라 말씀하신 것이다.

 

모르드개의 모습은 기백 있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르드개로 인해 큰 위험에 빠지게 되는 유대라는 한 민족의 이야기 역시 아니다. 이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모든 인류의 자세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뜻이 육신이 된 삶을 살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창조된 존재다. 당연히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사와 가치를 찬양해야 한다.

 

모르드개의 일로 보면 세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건 상당한 핍박을 마주하게 된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가 보여준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면 세상의 권세를 등에 업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아서 당하는 것과 같은 핍박을 당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를 표현할 존재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의와 가치에 순종해야 한다.

 

이후에 에스더를 통해 이 하나님의 가치를 지키고 순종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볼 수 있다. 에스더는 이걸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와 가치를 찬양하고 순종하는 건 세상의 큰 핍박을 받게 되나 하나님은 그 위험에서 우리를 구하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이 에스더서다.

 

그렇다면 우리가 순종하고 찬양할 하나님의 의와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다. 우선 세상의 영광이 영광의 본질이니 추구하라는 시험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일갈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려 십자가에 달리셨다. 우리가 거듭나서 얻어야 하는 새 생명의 본성인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란 게 우리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는 생각(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겠다는 생각)이 왜 사탄의 생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생각은 사탄에게 굴복하는 것이고, 하만에게 절하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하나님의 의와 뜻을 찬양하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므로 사람에겐 그것 외에 수용하거나 순종해야 할 것이 없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하나님이 사람의 유일한 신인 이유다. 모르드개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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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권세를 훔친 하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스더 Date : 2025. 1. 19. 21:09 Writer : 김홍덕

에스더는 왕후가 되었다. 왕후가 된 에스더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걸 숨겼다. 모르드개의 당부를 지킨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문제가 생긴다. 아하수에로의 총애를 받게 된 하만이라는 신하가 정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자기를 위해 절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았다. 당연히 하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절하지 않은 이유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유대인이란 말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넷째 아들 유다에서 비롯되었다. 유다는 '찬송하는 자'라는 의미다. 찬송의 대상은 당연히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민족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하만 같은 사람에게는 절할 수는 없다. 하만에게 절한다는 건 유대인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하는 말인데, 그렇다고 이 말이 육신의 혈통이 유대인인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혈통을 기준으로 구원을 정할 리가 없다. 이 간단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에스더서에 나오는 유대인이 우리 모든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없다.

 

더 나아가 우리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라는 게 성경의 본질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안 되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존재로 창조되었으니 다른 신을 섬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보여주는 하만의 태도는 옛날 오만한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인생을 자기 걸로 삼은 모든 사람의 태도다.

 

다음으로 갈등의 또 다른 축인 하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하만은 절대자인 아하수에로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신하다. 논리적으로 그는 찬양받을 대상이 아니다. 하만에게 절하는 이유는 아하수에로 때문이다. 호랑이와 함께 다니는 여우와 같은 지위일 뿐 사람에게 절을 받을 자기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지위를 망각했고, 자기 자리를 벗어났다.

 

성경에 이와 아주 똑같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사탄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세상을 주관하면서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자기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한 세 번째 시험은 이 오만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이 생각할 바가 있다. 영적 존재인 사탄만 그런가의 문제다. 십자가를 지러 가신다는 예수님을 만류한 베드로도 예수님께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사탄을 마냥 영적 존재로 생각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탄은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사탄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 가치로 위대하다고 믿는 사람은 모두 사탄이다.

 

세상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경영하신다. 하나님이 주인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자기 것으로 생각한다. 이게 도둑질 하지 말라는 여덟 번째 계명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뜻을 가지고 주신 인생을 자기 것으로 주관하려 하니 도둑질이다. 또한 하만 같은 오만한 마음이다.

 

그런데 그게 자기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그치면 다행인데 다른 사람에게 이걸 주장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하만이 자기 것 아닌 왕의 권한을 맡았는데, 그걸 자기 것으로 여기면 사람이 자기를 경배하게 했듯이, 사람도 하나님께 훔친 자기 인생을 자랑하고 남들에게 강요한다. 이 강요는 내가 옳다는 판단이 뿌리에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는 자기가 옳다는 걸 사람들이 찬양하기를 바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그런 평가를 얻으려고 인생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옳고, 그 옳은 가치로 이룬 성과를 찬양받으려 한다. 모두 하만과 같은 자세다. 세상에서 성공한 걸 찬양받으려 한다.

 

사람은 높아지려 하고, 높아진 후에는 찬양받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절을 받으려는 하만의 자세다.

 

이런 사람들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는 늘 핍박받는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 즉 낮아지는 본성으로 사는 걸 가장 귀한 가치로 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높아지려는데 낮아지려 한다. 이게 절을 받으려는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의 모습이다. 다음으로 그 모르드개를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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