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사함의 집합에는 예정론이 있다.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특정돼 있다는 식의 생각인데, 예정론이 이런 법이라면 죄 사함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굳이 어렵게 예수를 믿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정은 개인을 특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a man에 대한 예정이 아니라 the Man에 관한 예정이다. 하나님이 만든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아래에 있다.
하나님의 예정은 사람의 특정이 아니라 사람의 창조 목적에 관한 예정
예정론의 근거가 되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로는 로마서 8장 29, 30절에 나오는 '미리 아신 자', 에베소서 1장 4, 5절에 '창세 전에 택하사', 요한복음 6장 44절의 '하나님이 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께 올 수 없다', 사도행전 13장 48절 '영생을 주기로 한 자는 다 믿더라'라는 말씀들이 있다. 행간을 읽지 않고 이 말씀들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다 정해졌다는 느낌이 들기 십상이다.
예정론은 단지 사람에게만 정해진 것도 아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라는 개념도 나온다.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친 일로 베드로와 요한이 핍박받을 때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기 위해 성(예루살렘)에 모였다고 했다.(행 4:28) 교회를 향한 뜻도 예정되어 있다.
하나님은 분명 사람을 향한 뜻을 분명히 예정하셨다. 하지만 그 예정은 개인을 특정한 예정이 아니다. 사람이란 존재에 관한 예정이다. 그리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다. 그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뜻,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를 바라시는 뜻, 그 하나다. 이 뜻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면, 먼저 로마서 8장 29, 30절에 나오는 '미리 정하신 자'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미리 정하신 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순종한 사람이다. 사람이 되어야 하는 표상을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정한 건 사람의 창조 목적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사람의 모습과 정체성에 부합한 사람이 바로 미리 정하신 자다.
하나님이 예정한 건 사람의 정체성
그리고 어쩌면 예정론을 오해하게 한 에베소서 1장 4, 5절의 창세 전에 정한 사람은 건축에 있어 어떤 집을 짓겠다는 주인의 마음 같은 것으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모습이자 정체성을 말한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건 온전한 사람의 모습, 성품, 정체성이지 특정 개인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의 정체성이 자기 존재의 목적인지 순종하면 바로 예정된 존재가 되는 법이다.
이어 요한복음 6장 44절의 하나님이 정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께로 올 수 없다는 말씀과 사도행전 13장 48절의 '영생을 주기로 한 자' 역시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을 정의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구원받을 방법이 없다. 무엇이,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인지 미정인 상태에선 구원이 없는데, 그 기준이자 표상으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뜻이다.
사도행전의 영생을 주기로 한 자 역시 특정한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로 했다는 게 아니라, 누가 영생을 얻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성경에는 어떤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지 너무 많은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 바로 여기서 말씀하시는 영생을 주기로 한 자다. 영생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으니, 영생을 주기로 한 자는 바로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사람이 바로 예정하신 사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하나님의 예정이 사람의 정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예정이라면 그 예정은 곧 우리 구원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을 갖고 창조한 존재며, 그 목적은 곧 예정이기에 우리가 그 목적에 합당한 존재가 되는 것이 구원이고, 그 자리를 벗어난 상태는 죄다. 따라서 자리의 회복, 예정하신 존재로의 회복이 바로 죄 사함이다.
성경은 이 회복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얻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그러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무의식적 믿음처럼 노력이나 신념으로 되는 게 아니라 생명이 바뀌는 거듭남으로만 된다. 그렇게 바뀌는, 거듭나야 하는 생명,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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