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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5-10절) 어두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9. 15. 17:00 Writer : 김홍덕

하나님이 가지신 사람의 존재 목적, 그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는 사람의 존재 목적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의>다. 그 하나님의 의가 사람에게 없다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존재의 목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어두움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앞이 안 보인다.’ 라는 말은 시야 확보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자기가 하는 일의 과정과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어둡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삶의 어떤 한 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전반적인 삶의 전부에 대하여 볼 때 많은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며 살아간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서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에 대하여 어둡다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께는 그런 어두움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빛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목적, 즉 빛이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하셨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임을 고백하는 것에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없는 어두움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어두움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어두움도 없으시지만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는 어떤 어두움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분명히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다고 되어 있다. 그 창조는 세상의 어떤 창조와 구별이 된다. 사람의 창조에 대한 말씀에는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분명한 창조 목적과 의도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여섯째 날 (7) - 하나님의 형상 = 이미지(image)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여섯째 날 (8)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여섯째 날 (9) - 사람은 하나님의 이미지



즉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존재로 지으셨다고 하셨다. 이 형상은 하나님의 image라고 영어 성경에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이미지가 사람을 통해서 표현되었다는 의미이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 성품과 의와 같은 하나님을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분명하게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있어 분명한 빛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빛은 모든 것은 인식하도록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어두운 곳에 빛이 비취면 모든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컴퓨터에 대하여 모르던 사람에게 컴퓨터를 알게 하는 빛과 같은 가르침이 있으면 컴퓨터에 대하여 어두운 컴맹에서 벗어나서 아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빛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떤 어두움이 있다는 것은 삶의 목적을 모른다는 것을 말한다. 살아가면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것과 같은 행동과 방법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존재 목적을 모르는 어두움에 있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방법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하기는 한다. 남부지방에서 서울로 갈 때, 서울이 북쪽에 있고 서울로 가는 것이 분명하다면, 어떤 사거리, 어떤 선택의 순간에도 선택할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서울 가는 길에 비친 빛이다. 즉 서울이 북쪽에 있고 내가 그곳에 가야한다는 목적이 있으면 어두움은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안다면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 어두움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것이다. 물론 방법론과 형식에 관해서는 고민할 수는 있지만 삶의 목적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 결혼이나 직장을 얻는 것이나 다 그 목적 안에서 결정하게 된다. 그 결정의 색깔이나 형식은 달라도 무관하다. 연어가 짝짓기 하는 상대가 달라진다고 태어난 강으로 가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삶의 마디마디에서 어떤 결정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어쩌나 맘 조리는 것은 삶의 존재 목적을 모르는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삶의 모양이 어떠하든 그 목적대로 살게 된다. 개가 태평양 바다 위에 있다고 짖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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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5-10절) 하나님의 빛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9. 14. 15:37 Writer : 김홍덕

앞에서 우리는 요한 사도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하나님과 사람의 사귐이라고 했다. 바로 그 사귐이 빛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빛이라는 것이다.


빛은 인식이다. 빛이 있으면 모든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존재 목적에 맞게 다스릴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자기 방이라도 어두울 때 들어가면 늘 사용하던 물건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되지만, 빛이 있으면 책상이든, 선풍기든, 심지어 송곳이나 칼이라도 다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삶에 주관자가 되어서 인생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빛을 만나는 것인데, 이 빛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은 내 삶의 내용과 목적과 의로 계시고 사람은 그것을 표현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빛에 관하서는 성경을 시작하는 창세기에서도 흑암이 혼돈한 가운데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흑암과 혼돈이 정리되었는데 그 시작이 바로 <빛>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빛이 있어야 하나님의 세계의 시작, 곧 태초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 요한 사도 역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한 사도의 이 서신을 받아서 읽고서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사귐이 있음으로부터 그 사람에게 생명의 말씀에 관한 태초가 시작된다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요한 사도는 이 하나님의 빛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에게 시작되는 새로운 세계의 태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식 표현이고,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표현한 것이다. 즉 구원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 구원은 어둠에서의 구원이다. 이 구원은 가난에서의 구원이나 병에서 구원하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요한 사도가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빛이신 것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 목적과 운명에 대하여 어두운 중에 있는 상황에서 비치는 빛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이 구원의 실체는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삶의 목적을 모르는 것은 존재 목적을 모르는 껍데기 밖에 없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의와 성품이라는 내용이 자신의 삶의 목적과 내용이 되는 하나이다. 이것은 로봇태권브이가 조종사 없이 강철덩어리로 있다가 조정사가 타면서 태권브이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조정자가 없는 수백억 달러의 첨단 전투기는 조종사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조종사는 전투기의 빛이다. 전투기는 조종사가 없으면 깡통으로 있는 어두움의 상태인 것이다. 그 값어치가 아무리 대단해도 전투기의 존재 목적은 조종사가 가지고 있다. 즉 조종사가 없으면 어두움이고, 목적을 가진 조종사가 타서 조종사의 목적과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존재 목적인 전투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고 그것이 빛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고, 사람의 빛이며, 바람의 존재 목적이고, 구원이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사귐이고, 요한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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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5-10절) 하나님의 빛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9. 13. 20:32 Writer : 김홍덕

요한 사도는 1장 3절에서는 보고 들은 바를 전한다고 하고 5절에서는 전하고자 하는 소식의 내용은 하나님은 빛이라는 것이다. 즉 요한 사도가 보고 들은 바는 하나님은 빛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를 2절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바 된 자>를 전한다고 했으니 요약하면 아버지와 함께 계시던 자를 듣고 보았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빛이신 하나님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나타난바 된 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 8:12)”라고 하셨으니 이러한 내용들은 다 하나와 같이 연결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빛은 어떤 빛인가? 형광등과 같은 빛인가? 아니면 태양광인가? 이 빛은 어떤 빛이란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예수님이 왜 빛인가?


컴맹이라는 말이 있다. 컴퓨터에 대하여 어둡다는 의미의 단어다. 그것은 눈을 뜬 사람이라도 컴퓨터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컴맹, 즉 맹인이 된다는 의미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세계에 대하여 어둡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컴퓨터 세계에 대한 빛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예수님도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그건 동일한 것이다. 빛이신 하나님이 가지신 의를 표현하는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빛이시면 그 빛이 표현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빛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컴맹이 컴퓨터 세계에 대한 밝음과 어두움에 대한 이야기이듯, 예수님은 이 세상과 사람의 존재 목적에 대한 빛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이 세상을 안다는 것이고, 예수님을 모른다는 것은 눈을 뜨고 있어도 컴퓨터를 모르면 컴맹이듯, 육신의 눈의 멀쩡해도 이 세상에 대해서는 맹인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육신의 눈이 어두우면 맹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어둡다고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하신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빛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빛이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있어 궁금하고 어둠과 같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도록 밝히시는 분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그냥 돈이 없고 세상에서 뭘 먹고 살지 막막할 때 예수님께 기도하면 해결된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빛이 없으면 늘 사용하는 자신의 방이나 사무실에 들어가도 머뭇거리게 되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용도대로 또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없다. 오히려 늘 마음껏 사용하던 것들에게 부딪혀서 다칠 수 있다. 빛이 없는 어두움은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의 삶이 우왕좌왕하고 심지어 자살을 하는 것은 인생에 빛이 없어서다. 이것은 광명이나 형광등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생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몰라서 그렇다. 즉 사람이지만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어둡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빛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맹인과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빛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빛이신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사람의 존재 목적과 삶의 목적이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빛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빛이신데, 이 빛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빛이다. 요한이 전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그것을 전한다고 했고, 전하는 내용이 하나님이 빛인 것을 전한다고 요한 사도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예수님께서 왜 그리스도이신가?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인생의 어두움을 밝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는 이 빛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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