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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1)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16. 16:02 Writer : 김홍덕

천국에 대한 잘못된 개념



천국이라는 것은 비단 성경적인 개념은 아니다. 수많은 영화 제목과 극락과 같이 다른 말로 여러 종교에서 사용하고 있기도 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 <천국>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이 되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이것은 세상이 살기 힘든 이유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의 대칭점이기도 하다. 즉 세상은 사람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아 힘든 곳이고, 천국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되는 곳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과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세상 살 동안 고생했으니 천국에서는 그것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물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하는 단서가 있다. 이 단서가 속된 말로 종교가 먹고 사는 기반이기도 한 것이다. 


“세상 살기 힘들지?, 그래 힘들어. 그러면 우리 종교가 원하는 이런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 봐. 그러면 내세에서는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되는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거야.”라는 것이 종교의 마케팅 전략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믿는 기독교의 신앙은 어떤가? 사실 신(神)이 하나님이라는 것 이외에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뭐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믿는 신이 하나님이라는 차이, 그리고 기독교가 요구하는 것이 다른 종교와 다르다는 정도의 차이 아닌 차이를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잘 놓고 보면 천국에 대한 개념의 구조는 전혀 다르지 않다. 결국 세상은 맘대로 되지 않는 곳, 천국은 마음대로 되는 곳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기 힘든 것은 앞에서도 한번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다른 이유가 아니다. 세상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떤 것이라도 자기 맘대로 되는 일로 힘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얻으려 한다. 돈이 그렇고 권력과 신분이 그렇고 육체적인 능력과 역량이 그렇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생각대로도 못하는 이 몹쓸 육신 같으니라고…”라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 부끄러움이 바로 아담이 가졌던 것이다. 선악과를 먹고 나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가진 기준으로 사람을 보니 부끄럽더라는 것이다. 즉 맘대로 되지 않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것은 맘대로 되어야 선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무엇이든 맘대로 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던 것이고, 그러고 보니 육신이 부끄럽고 숨어야 해서 숨고 율법(무화과)의 옷을 입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기 삶을 구성하거나 세상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힘으로 존재한 세상이 아닌데, 왜 자기 맘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또 그렇게 되어야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듯 자신이 존재하게 된 경위를 오판하고 있으니 자신의 존재 정체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세상이 아닌 곳에서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죽을힘을 다해 살기 때문에 세상이 너무 힘든 것이다. 그러다, 이 고생에 대한 보답이 있을 것이라는 타협이 있고 그것이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나 극락으로 수렴한 것이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천국이라는 개념은 사람의 존재 경위와 목적을 망각한 것에서 비롯된 허상일 뿐인 것이다.


천국이라는 것이 나라라면, 당연히 그 나라에는 법이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그 나라는 하나님의 의가 법인 나라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의 뜻대로 되는 나라다?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나라이지 사람이 자기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자기 정체성을 망각한 사람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심이 여기서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당연히 하나님의 의와 뜻이 이루어진 나라, 하나님의 의와 뜻대로 통치되는 나라, 하나님의 의와 뜻대로 살 때 자유롭고 행복한 나라이다. 이것이 아닌 천국은 자기의 천국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만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천국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이 육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사람은 육신으로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의 실체가 부끄러웠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사람의 본질이 보시기에 좋았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에 너무 적합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사람을 이렇게 지으시고 또 그렇게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즉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천국이 하나님의 의와 뜻이 주관하는 나라라는 것을 아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보상해주고 또 누리면서 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천국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맘대로 되는 나라이지 사람 마음대로 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하나님 마음대로 되는 곳이라는데 그곳이 자신이 가야할 곳, 또 가면 기쁠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이지, 세상에서 자기 맘대로 못 살았던 사람이 보상차원으로 가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천국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맘대로 되는 나라다. 그것이 좋은 사람, 하나님 맘대로 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사람, 그런 사람만 갈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천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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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하나인 삶 (3)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16. 11:50 Writer : 김홍덕

생명처럼 자연스러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



하나님을 생명의 주로 믿는 신앙에서 생명의 본성을 잊는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생명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어떻게 해도 사람이고, 사람이 하는 짓을 하며, 개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바다에 던져 놓아서 죽게 되어도 개일 뿐, 수영을 가르치고 바다에 던진다고 물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생명이라는 것은 그 안에 그 생명 본성의 유전자, 곧 내용이 있으면 그 생명의 본성에 의한 모든 행동과 삶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이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이 된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하고 그것이 전부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가감이 있어서도 안 된다.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면 타락한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이 뭔가를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믿을 찐데 사람 자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서, 어떤 행동을 해야만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인을 도덕적으로 구속하여 도적적인 삶을 살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의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의 법과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내용이고 사람의 삶은 형식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신앙생활은 억지로 하거나, 안 하면 안 되는 규율과 같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 신앙생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 자체로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행동을 절제하고 금욕하며 도덕적으로 자신을 엄히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있으면 자연적으로 표현되는 것이지, 사람의 삶이라는 형식을 단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십자가의 삶을 사는 생명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의 삶이 그것을 보여준다. 마음에 분이 나지만 화를 내면 하나님께서 죄를 짓는 것이니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는 것과, 십자가의 도가 자기 안에 있어 그것이 생명이 되어 화가 날 이유가 사람 안에 없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화를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가치 기준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 되는 것을 수용하고 오히려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이 그런 일이 화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수고하는 삶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속에 밖으로 표현되는데 어떻게 화를 내겠는가?



(화내는 일에 관하여 언급해 본다면…)

그렇다고 십자가의 도를 가진 이는 화도 안 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도 화를 내신다. 즉 어떤 일에 화를 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사람들이 세상의 본질이 먹고 사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러한 일에 대한 손해를 보기 싫어 다투는 과정에서 화가 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화를 내는 본성을 두신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십자가의 도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잘 통제하지 못하여 화를 내는 것이 죄라고 가르치거나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는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 인생의 존재 목적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런 일에는 화를 내신 것이다.



모든 신앙의 패러다임은 사람 자체로는 되지 않으니 그 형식인 삶의 행동양식을 교회 안에서 바꾸어내는 것에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생명 있는 말씀이 사람 안에 심기도록 전하는 것이 신앙을 전하는 공동체, 복음을 전하고 공유하며 나누는 공동체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신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것은 사과는 사과 씨를 심어야 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온전한 생명이 있는 말씀을 들으면 사람 안에서 그 삶을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바꾸어내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러라고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말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연약하다’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교회도 별다른 것 할 이유가 없다. 전도대회니 부흥회니 사람을 들들 볶을 필요가 없다. 그냥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그 말씀이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어 말려도 기도하고, 전도야 그 사람의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이 붙을 것이고, 봉사도 십자가의 도가 섬기는 것이니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가지 행사를 꾸민다는 것은 말씀에 생명이 없다는 것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속에 내용이 없으니 형식으로라도 티를 내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생화대신 조화? 그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내용이 그 사람의 삶을 주관하는 것이다. 사람의 삶은 아무렇게나 주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스스로가 그것이 목적이고 그것에 의미가 있다고 하면 그렇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한다고 해도 억지로 하는 티가 나고 힘들다. 신앙이 힘들다면 억지로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생명이 되어 씨앗과 흙이 하나가 되어 나무가 되듯 하나가 되면, 나무가 그 씨앗의 이름의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의 열매, 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삶이다. 이것은 억지고 하거나, 사람의 행동을 단속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그 생명의 본성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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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하나인 삶 (2)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14. 15:35 Writer : 김홍덕

십자가의 의가 표현되는 삶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의 심령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것이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아니 이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이고, 하나님의 법이 표현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 사람이 삶의 행동 양식을 잘 다스리면 영혼이 천국에 살 수 있는 영혼이 된다고 여기는 것은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방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온전한 신앙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서 생명으로 거듭나서 그 생명이 그 삶을 주관하는 사람의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다. 반대로 마음에는 항상 갈등이 있는데 그것을 극기 훈련 하듯이 이겨내려 통성기도하고 행동을 경건하게 하려고 수련하듯, 금욕하듯 애쓰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은 아니다. 그런 것을 예수님은 ‘노릇하는 것’ 즉 흉내 내는 것이라고 하셨고, 또 외식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신앙의 훈련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영혼이 천국에 가는 영혼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훈련, 영성의 훈련은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표현되는 방법에 대한 훈련이다. 즉 생명이 표현되는 것에 있어 더 온전하게 표현되도록 하는 훈련이 영성 훈련이지, 사람의 행동 관습을 훈련으로 바꾸면 그 영혼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가능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으로 사람이 경건케 된다고 하면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 사람은 단 하나의 규율도 평생 한 순간 예외 없이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생명의 본성이 가진 호흡은 어떤 순간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없다. 훈련이란 그렇게 생명의 본성에서 비롯된 호흡을 온전케 하는 것을 훈련이라고 하지, 호흡이 없는 존재에게 호흡하는 법을 가르친다고 숨을 쉬게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적인 삶은 그 사람 안에 그 삶을 살게 하는 이유, 아니 본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짓이 아니다. 속에 그 본성이 없는데 그런 삶을 사는 것은 그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해도 결국은 소리 나는 꽹과리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겉과 속이 다른 거짓이라고 하시고, 외식과 ‘주여, 주여!’ 부르는 자들이라고 여기실 뿐이다.


그 생명,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은 삶,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이신 십자가의 삶이다. 예수님께서 사신 모습, 하신 말씀이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말씀을 행동으로 지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보니, 그 모습이 자기 모습이고, 그런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깨달음이 자기 안에 성령의 감동으로 씨가 심기듯 잉태되듯 자기 생명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감동은 세상의 시험이나 돈 문제나 결혼과 같은 것이 잘 될 것을 예수 이름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 존재의 목적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보이신 것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마치 사서 고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서울역에서 예수 믿으라고 고함치면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욕하는 것을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 아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간다는 것은 섬기는 것이지 그렇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삶이란, 예수 믿으라고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 사람이 볼 때 ‘너를 보니 나도 그 예수 믿고 싶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십자가나 신앙은 권력이 아니다. 즉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십자가는 보여주는 것이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강권하라고 하신 것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그것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 이상의 강권함이 없기 때문이지, 싫다는데도 교회에 데려다 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앙도 훈계하듯 가르치듯 또 심판하듯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어떤 삶을 보고 스스로 참회하게 하고,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신앙이다. 교육의 본질 역시 이끌어 내는 것이지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교육학의 기본 원론이다.


특히나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압박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간절함으로 사람에게 권하는 것 같지만 사람은 자기 마음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에는 “새벽에 큰 소리로 이웃을 축복하면 그는 저주로 들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는 것은 기존의 교회라 할지라도 신앙에 대하여 ‘have to’, ‘must’라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어떤 삶을 볼 때 그 마음에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감동이 있게 하는 것이 십자가의 삶이다. 그 감동이 성령의 감동이고, 그래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섬기러 왔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은 남보다 아래에 서고, 남이 감동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삶을 살게 하는 생명이 자기 안에 있어 그렇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삶은 기도도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무엇인가? 육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늘 안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을 받기 위함과, 그런 보장을 늘 받을 수 있는 신앙을 가지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예수 믿으니 남보다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은 ‘남을 위하여 이 육신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인 것이다.


기도가 그리스도를 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섬기러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분이시니,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남보다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섬기는 삶이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육신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고기 덩어리가 아니라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이것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오늘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면 자신의 삶이나 신앙이 유익해지는지, 아니면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 만드신 목적을 깨닫고 그것이 자기 삶의 존재 이유와 목적임을 알게 하는 성령의 감동을 일으키는 일에 자신이 소모되는 것인지를 가늠하면 된다. 그렇게 보면 십자가의 삶이 무엇인지, 자신이 십자가의 삶을 살고 있는지 구분하는 것은 너무 간단한 것이다.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 나의 정체성이 저것임을 성령의 감동을 깨달아서 십자가로 인한 생명이 자기 안에 잉태되고 거듭남으로 그 생명이 자기 삶을 주관하게 되면, 그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사람의 모습이 사람인 자신의 존재 목적이요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자기 삶을 주관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볼 때 그가 십자가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사람의 존재 목적이 자기 삶의 내용이 된 것과 같이 보는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즉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가 표현되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다. 그것이 사람의 존재 이유이고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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