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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신앙의 내용, 그리고 형식 (2)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21. 10:46 Writer : 김홍덕

하나님을 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씀은 아주 핵심적인 말씀이다.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것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의 많은 본성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법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법과 성품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에 많이 베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만난 것 같다.’고 한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신 것이 그것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7)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라는 말씀인데, 그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에 관한 말씀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정말로 더 이상 말하기 입 아플 정도로 명확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니 예수님을 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본 것임이 당연한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이 있으신 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몸이 하나님이라는 것인가?’ 하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보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서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깨닫게 되는 과정에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즉 성부께서 가지신 의가 육신이 되어 나타나니 그분이 아들이시고 그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를 본 것 같이 아버지의 존재와 성품과 뜻을 알게 되는 감동을 주시는 분이 성령이신 것이다.(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라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라는 말씀이 가진 정말로 놀라운 의미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과 같이 육신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본 것과 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살고, 그 삶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각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사람의 존재 목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것도 우리 사람과 같은 육신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모든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과 같이 예수님을 볼 때 하나님을 만난 것과 같았듯이 다른 사람이 자기 삶을 볼 때 하나님을 알고 깨닫고 만날 수 있게 되는 그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의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그야말로 내용이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이것을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할 것이라고 하셨다. 즉 우리의 삶으로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이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그 영광스러움이 소름 돋을 정도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 것이지 세상에서 상 받고 성공한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영광이 오염된 것은 정말로 통탄할 일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로 감동스러운 일이고 몸 둘 바를 알 수 없는 그런 일이다.(이런 말씀을 생각하고 글을 쓰고 말을 할 때면 가슴 벅찬 감동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가 또 내가 지어졌고, 이를 위하여 부르셨고, 또한 불러서 이렇게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정말로 이 인생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은혜이기 때문이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그러므로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식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이신 하나님이 실존하심을 증거하는 증거가 사람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하는 존재가 또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으로서의 삶을 눈에 보이는 형식을 본질로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을 위하여 인생을 사용하지 않고, 내용 없는 인생의 겉모양에 일어나는 일에 관하여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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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신앙의 내용, 그리고 형식 (1)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20. 11:22 Writer : 김홍덕

너무 간단한 인생의 정의



<내용과 형식>이라는 관점으로 성경을, 신앙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생소한 관점일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 밝힌바와 같이 이는 성경의 법칙을 종교적인 색채가 없는 일반적인 용어와 관점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정확한 관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내용과 형식이 하나로 합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이동이라는 내용과 바퀴 달린 몸체라는 형식이 하나가 되어 존재한다. 칼은 그 날카로운 모양인 형식이 자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자르는 것이 본질이고 칼의 내용이다. 내용이란 다른 말로,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목적이다.


사람들의 삶은 정신없다. 그리고 늘 불안하다. 사람들이 불안한 것은 내일 자신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지만 아주 명백한 가정 하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정확하게 뭘 모르는지 조차 모른다. 살아가기 힘든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지만, 그렇게 두렵고 대비를 해서 죽지 않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게 불안해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불안해할까? 정말로 그냥 안 좋은 일이 일날까봐? 아니면 아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그 자체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에, 그러니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미친 듯이 대비하면서도 떨쳐지지 않는 불안감의 원인은 사실 다른데 있다. 사람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의 모든 불안의 원인은 <왜 사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왜 사는지를 안다면, 내일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도 분명하고, 더 나아가서 왜 사는지 목적을 주신 분이 누군지 알면 그 목적대로 사는 것에 필요한 것도 다 준비되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을 믿는 망치는 주인의 공구함에 들려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아니 뭘 할지도 알뿐 아니라, 가면 못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자신이 망치라는 것을 아는 이상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것은 내일 먹을 양식이 아니라, 내일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도 같은 의미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는지 그 의도와 그 의가 다스리는 나라를 알게 되면 그 의를 표현하기 위한 형식들은 다 주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이라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 그 마음에 합당한 제물이 예비 된 것이다. 이런 모든 말씀들은 결국 사람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면 그 존재 목적을 이루면서 살기 위한 육신의 모든 것은 다 예비 되어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즉 내용이 무엇인지 알면 형식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있으니 그 형상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이라는 내용을 표현할 형식인 사람을 예비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으로 볼 때 사람이 내일을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이 존재의 목적을 알면 삶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려워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존재 목적을 알려주러 오신 분이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예수 믿으면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사람이라는 존재의 본질, 곧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육신을 가진 형식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사람의 내용만 알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 하나뿐인데, 왜 그렇게 성경을 어렵게 보고, 신앙생활 힘들다며 쟁쟁거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얼토당토않게 신앙을 학문으로 만들어서 신학이라고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공부한다고 알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의 사람 어느 누가 태어나서 호흡법을 배워서 숨쉬기 시작했는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그 어떤 것도 그렇게 익히는 법은 없다. 그냥 생명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그것이 사람의 내용이라는 것, 그 내용은 곧 인생의 목적이고 의미라는 것, 그리고 육신의 삶은 그 목적을 표현해내는 형식이요 도구라는 것, 이 얼마나 간단한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줄이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게 다다. 성경을 왜 연구하고 앉았는가? 이것이면 족하다. 단 하나 이것이 자기 안에 없고, 성경이 이것 하나라는 것을 믿지 못해서 다들 부산을 떨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표현하시겠다는 것이 인생의 모든 내용이고 본질이고 의미다. 이것을 믿는다면, 이 육신의 삶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인지 너무 분명한 것이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부께 다 아시느니라” 그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자기 삶에 대하여 그렇게 걱정하고, 뭔가를 해야 하나님께서 반응하실 것이라고 난리를 떨고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본질이 자기 육신의 삶, 곧 눈에 보이는 것, 그 형식을 본질로 보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그래서 육신이 하나님 앞에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선과 악을 규정하고 육신이 선한 것을 행하기 위하여 심지어 남을 죽이기도 하고 난리도 아닌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용이고 내 존재의 목적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이 육신의 삶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임을 안다면, 이 육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누가 준비하겠는가? 당연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이 자기 삶을 대비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곳간을 새로 지은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딴 게 아니다. 바로 이것이지.


인생과 신앙은 간단한 것이다. 스스로가 이 인생을 시작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아님을 알 것이고, 그러면 누가 시작했는가를 알면 그 시작하신 분이 나의 존재 목적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삶의 주인이고 내용이고 목적이고 의미이신 것이다. 그러면 육신의 모든 것은 그 뜻에 맞게 예비 되고 사용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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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소리

Category : 잡동사니 Date : 2015. 10. 19. 14:38 Writer : 김홍덕

<바람의 소리>라는 영화가 있다. 2009년 영화로 알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항일 운동을 하고 있는 중국의 항일 조직을 밝히려는 일본이 첩자를 밝히기 위하여 첩자로 의심이 되는 사람들을 어떤 성에 가두고서 밝혀 내려고 하고, 성에 갇힌 사람 중에 있었던 첩자들은 자신들이 세운 거사가 일본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외부로 알려야 하는 두뇌싸움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정말로 잘 만들어졌다. 중국의 항일 스토리 중에 이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는 결국은 성에 갇힌 첩자들이 외부로 작전 취소를 알림으로 이를 계획한 일본이 실패하고 주도한 장교는 일본 항복 후에 당시 성에 갇여 있었던 첩자의 대장에게 살해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죽어서라도 성 밖으로 작전 취소를 알리려 한 한 젊은 여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남긴 메세지를 같이 성에 갇혀 있었던 암호 전문가 언니에게 남긴 메세지를 전하면서 끝난다. 그 메세지가 참 감동이어서 남겨 본다.


메세지를 전할 수 있을지는

오늘에 달렸어

죽는 건 무섭지 않지만

날 사랑하는 이들이 내가 죽은 이유를 모를까봐 무서워

난 지옥에 있겠지만 메세지는 여기에 남길게

우리 가족들과 언니가

나의 이 결정을 용서하길 바래

그렇지만 나중에 나의 이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믿어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내가 이렇게까지 무정하게 한 것은

민족이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 여러분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육체는 이렇게 사라지겠지만

영혼은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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