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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4)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19. 13:55 Writer : 김홍덕

교회



이 글의 기본 주제는 <내용과 형식>이다. 이것은 성경의 일반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성경의 기본 구조를 보편적인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성경의 기본 골격이고 법칙이기도 하다. 영이신 하나님과 그 영이신 하나님을 표현할 형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창조의 섭리가 그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사람의 내용, 곧 본질은 하나님의 의다. 그 하나님의 의는 사람에게 있어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의미이다. 성경은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형상은 이미지다. 즉 사람은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누군가 자신을 볼 때, 혹은 그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그 사람에게서 이루어졌으므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산 사람이다. 그것을 성경은 구원, 거듭남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하는 생명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즉 세상의 모든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의와 성품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지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성품이 표현된 것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서 깨달아진 사람은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사람이고 그렇지 않다면 물리적 세상을 아무리 잘 알아도 하나님의 세상이 그 사람에게 열리지 않은 것이다. 즉 흑암과 혼돈 가운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이 자기 안에서 열리지 않으면 인생을 왜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흑암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그림자다. 즉 이 세상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그렇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것이라는 것이 열린 사람, 즉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태초가 있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하나님의 세계이다. 그런 사람에게만 이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나 신념으로 의심을 물리치고 믿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듯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내용 – 육신을 가진 삶은 그 형식>이라는 구조와 같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삶을 살던 사람들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서 들어가는 곳이라면,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곳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예표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를 삶으로 표현한 사람들이 모이는(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교회도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같은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라는 내용이 교회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 이전에 이 세상이라는 것이 전부 하나님의 의가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라는 내용이 이 땅에서 형식으로 표현된 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장 먼저는 교회가 설립되는 과정부터 설명하고 있다. 즉 교회가 건물을 세우고, 세상의 법칙대로 시험 쳐서 설교 면허를 얻은 목사가 있고 난 다음에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인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이 삶이라는 형식이 된 사람이 모임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렇게 모인 교회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라는 내용을 표현한 형식, 즉 하나님 나라의 예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는 너무 많은 성경의 말씀들이 있다. 먼저는 예수님께서도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분명히 모인 다음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사람이란, 그냥 육신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곧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의 목적임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에 사람이라고 나온다고 육신인 사람이 그것에 해당된다고 믿는 것은 난센스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삶, 곧 하나님의 의가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상식적인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모이면 대한민국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교회는 그냥 사람이 모여서 예배드리면 모인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는 터미널과 같은 곳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생명을 가진 이들,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모인 곳이라는 것이다.


많은 교회가 문제를 일으키고, 사람들이 교회에서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을 알지 못하고 방향을 거꾸로 해서 일단 모으면 교회가 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안식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일단 건물과 목사라는 설교 면허가 있으면 교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형식이 있으면 내용이 찰 것이라는 거꾸로 된 방향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형식이 본질로 아는 가치관의 산물일 뿐 온전한 하나님의 법이 아니다.


교회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사람이 모일 때 이미 하나님의 의를 자기 삶의 목적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는 것은 세상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든지(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도다.), 육신이 교회에 와서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삶을 보고서 감동하든지 간에 먼저는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의를 자기 삶의 목적으로 삼기 위한 순종의 세계가 시작되어 모이는 곳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예표이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로 통치되듯이,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의를 육신으로 표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법인 공동체인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이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당연히 몸이 머리에 순종하듯 그리스도의 의에 자기 삶이 순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아주 자연스럽고 안식할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심판이 없듯이 교회에는 심판이 없다.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곳이듯, 교회는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육신의 다양한 성향대로 마음껏 자신의 육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표현함에 있어 심판도 거리낌도 없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형식이고 예표며,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교회에 가는데 의무감이 있고, 또 가면 사람들의 눈치 보이고, 또 신앙 없다고 심판 받고 한다면 그곳은 온전한 교회가 아니다. 또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고, 교회를 아름답게 지어 놓으면 사람이 온다고 하는 것 역시 온전한 교회가 아니다. 하물며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싸우는 교회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교회를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우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기 때문에 사람의 외모와 행동을 기준으로 심판하고,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중심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이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라는 것 자체도 모르기에 하나님의 의가 온전한 삶의 내용으로 있어 그것을 삶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할뿐더러 그런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을 심판하고 다투고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며 쫓아다니는 것이다. 그러한 곳은 교회 노릇을 하는 곳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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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3)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19. 11:51 Writer : 김홍덕

천국, 과연 있기는 한 것인가?



천국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누가 갈 것이며, 천국이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가장 먼저 정리가 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천국이 사람 마음대로 되는 나라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나라든 과연 있는가? 하는 문제일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천국에 가면 72명의 신부가 평생 모신다고 하니 자살 폭탄테러도 하는데, 그렇게 죽었는데 막상 가보니 ‘아무 것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여담으로 대부분의 남자에게는 한 명의 부인도 힘든데 72명의 처녀가 좋은 것인가 싶기도 한데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있느냐 아니냐가 아닌 어디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천국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집합의 어느 쪽이 큰 것인가?


사람의 마음이나 눈은 생각보다 크다. 사람의 눈으로 온 우주를 담을 수 있고, 마음으로 온 세상을 담을 수도 있다. 반대로 멀쩡한 눈으로 뻔히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기도 하고, 온 우주를 담을 수도 있는 마음으로 단 한사람의 한 순간을 담아내지도 못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과 눈이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천국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앞에서 우리는 천국이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의 내용이 되어 그 하나님의 의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표현한 사람들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서 가는 곳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나라이고, 그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서 삶으로 표현되는 의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의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 있을 때와 천국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하나님께서 항상 변하지 않고 가지고 계신 의가 사람 안에서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의미가 되어 삶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는 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나 ‘저기’와 같은 지리적, 물리적인 장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안에 있다고 하신 것은,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으면 그 사람은 이미 천국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의 집 안에 있지 않고, 학교나 군에 가 있어도 아들인 것과 같고, 대한민국 국민이 다른 나라에 가 있어도 대한민국의 헌법 아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도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어 그 의가 그 사람이 세상을 살 동안 모든 삶의 이유와 목적과 의미인 사람은 이 땅에 살 동안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이 땅에서부터, 아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았던 사람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 들어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있는 나라고,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없는 사람은 ‘사람이 죽으면 정말로 천국이 있을까?’라며 살면서 수시로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천국은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인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 안에 천국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의심스럽지만 신념을 가지고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그냥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억지 같지만 실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 안에 있어서 자기 삶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의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의인데, 마음 안에 그 하나님의 의가 있는데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있겠는가?’, ‘천국이 어디에 있냐?’ 같은 의심이나, 특히나 ‘이렇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겠나?’와 같은 의심과 걱정이 반이고 억지로 믿어보려는 의지가 반인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없다. 이 또한 당연한 것이다. 마음에 없기에 자기 삶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나라에 대하여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통성기도로 ‘주여!’ ‘주여!’외쳐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2차 방정식 공식을 모르는데 풀게 해 주실 줄 믿는다며 소리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실존과 나라의 법과 의가 너무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는 곳이다. 반대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의가 없기에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내서 영혼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나라에 맞게 바꾸어 보겠다는 사람에게는 너무 의심스러운 곳이다. 즉 그들에게는 없는 곳이다. 그렇다는 것은 천국은 어떤 이에게는 있는 곳이고, 어떤 이에게는 없는 그런 곳이다. 사람에 무관하게 있거나 없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있는 곳이고, 들어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있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는 곳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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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2)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17. 12:16 Writer : 김홍덕

누가 천국에 가는가?



어떤 나라에 이민을 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민을 가서 살겠다는 것은 가고자 하는 나라의 통치에 자신이 순종하겠다는 것이고, 또 자기가 살던 나라를 떠나서 그곳이 좋아서 가는 것이라면 그 나라의 통치가 지금 사는 나라보다 좋다고 여기기 때문에 가는 것일 것이다. 천국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라는 것이 인정되어야 가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천국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게 아니라 자기가 뜻하는 것이 뭐든지 다 되는 나라가 천국이라고 한다면 그건 자기의 천국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라고는 보기 힘들다. 아니면 자기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전혀 다르지 않는 존재이든지. 그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면 설사 천국에 간다고 해 본들 자기 생각처럼 해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고? 그건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살 때처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의가 다스리는 나라인가? 그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라고 말씀을 하셨다.


또 무엇이 아버지의 뜻인지에 대하여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요 6:40)

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보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더욱이 영생에 관하여는 아주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정리하신 것이 있는데,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즉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이다.


이 “안다”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안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를 때로 ‘남자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 안다는 것은 그 이미지(형상)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이 자기 삶의 내용이요 의미인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은 하나님을 아는 이가 가는 곳인 것이다. 즉 자기 삶의 내용이 하나님인 사람, 자기 존재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사람 만드신 목적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삶의 내용인 사람, 자기 모든 삶의 모양을 표현하는 생명인 사람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그런 사람이어야 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자신의 존재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 가는 나라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실 때 “하늘의 뜻이 땅(사람-흙)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시고,”라고 하신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이 육신을 가진 삶을 주신 이유, 곧 사람 지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이 육신의 삶이 하나님의 형상(이미지)을 나타내게 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즉 이 육신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관철시키기 위하여 만드신 것이다.


즉 사람이라는 몸을 가진 이 형식 안에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이 있어서 그것이 온전히 표현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이고, 우리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며, 우리의 삶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주관하는 삶이 되는 것을 산제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육신을 가지고 그렇게 산 사람이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그 내용이 내용의 본질이신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프로스포츠를 생각해보자. 한 번도 해당 종목을 해 보지 않았던 사람, 또 해 봤다 해도 감독과 구단과 팬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자기 몸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는 선수가 1군 무대나 경기장에 설 수는 없다. 모든 프로선수에게 1군 무대 경기장은 그들의 모든 바람과 꿈이 서린 목적이다. 즉 그들이 바라는 천국이다. 그러하기에 그곳에서 경기를 하려면 그 이전에 자신이 구단과, 감독 그리고 팬들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 곧 그들의 의와 뜻을 자신의 몸으로 표현해 내는 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이 육신을 가진 삶을 주시면서 이 육신으로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고자 하셨는데, 그것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이 천국에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것은 생명의 세계이니,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생명이 되어 모든 행동과 삶이 그 생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 사람이 천국에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 주여 주여’ 외치고, 성경에 전도하라고 해서 전도 했다고,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했다고, 십일조 하라 해서 했다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단언컨대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은 그렇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 곧 그 심령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 이 땅에서 그렇게 산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 그것이 천국에 가는 조건이나 자격은 아닌 것이다. 유일한 자격과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의와 지으신 목적이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로서 자기의 모든 삶을 주관하는 생명이 된 사람이냐? 아니냐? 그것이 유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명이 있으면 그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자신이 신앙 생활하는 결과가 누구에게 유익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누구에게 유익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기도가 또 신앙적으로 바라는 것이 남보다 나은 삶이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그러면 그건 자신의 뜻이다. 그리고 바라는 천국 역시 자신의 뜻대로 되는 나라다. 남보다 신앙이 좋아지는 것을 구했다고? 남보다 더 도덕적이고 본이 되는 삶을 구했다고? 그래도 소용없다.


남보다 나아진 신앙이, 더 도덕적인 삶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나타는 효과로 그렇지 못한 사람과 구분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아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나타내기(하나님의 성품과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람들을 섬김으로 감동을 주고,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자신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주장에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심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면, 한 평생 수고는 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방향이 다르지 않는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가르치니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리스도인의 삶,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부러움을 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섬기는 모습으로 인하여 성령의 감동이 있게 하는 삶이다. 이건 전혀 다른 것이다. 수혜자가 자신이 되느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느냐? 하는 말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천국에 누가 가느냐를 가르는 기준이기도 한 것이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살 동안 이 육신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형식과 도구로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입 안의 혀와 같이 산 사람이 가는 나라다. 이 땅에 ‘나는 이것 하고 싶은데 성경이 저것을 하라고 해서 저것을 했습니다.’하면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주여 주여’하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이 땅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천국에서 보상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천국은 이 땅에서 하지 못한 것을 죽어서 맘대로 하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던 것을 계속 하는 나라다.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지고 나타내던 하나님의 뜻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서 하나님의 품에 하나가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천국에 누가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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