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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1-4) 구원의 가치와 보응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히브리서 Date : 2019. 12. 29. 04:00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천사들을 보내셨다고 하신 것을 강조하는 것은 구원의 가치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전 장을 통해서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간절한 문제라는 것을 일관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구원을 받고 구원의 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아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이 구원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선택하고 순종해야 하는 명제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강제하시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즉 사람에게 절대적인 문제인 구원을 사람의 결정에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악과 앞에선 아담부터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들에게 주어진 선택사항이다. 형식은 선택적이지만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구원인 것이다.


여기에 흔히들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다. 분명히 사람에게는 선택의 자유와 그에 대한 의지와 본능이 있다. 그러나 그 자유와 의지는 육신이 사는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행사하는 것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든 목적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리고 존재가 자신의 존재목적을 아는 것에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하고 근원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이다. 존재 목적을 아는 것이 자신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로 선택하는 것 중에서 가장 절대적인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이다. 설사 그것을 하나님께 찾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목적이다. 어떤 물건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면 사람은 버린다. 그것처럼 사람도 피조물이니 마찬가지다. 창조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진화? 진화론 좋다. 진회론의 논리가 그럴듯하다고 치자. 그런데 도대체 진화의 목적이 무엇인가? 자기보다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 진화인데, 자기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이미 자기 안에 자기보다 나은 것이 있으니 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없는 것으로 어떻게 진화하며, 또 자기보다 나은 것을 향해가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있느냐의 문제다. 그 목적 없는 진화의 결말이 결국 더 고등 생명체가 되어 죽는 것 외에 다른 진화의 목적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다.


어쨌든 사람은 자신의 존재목적을 알아야 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존재로 자아를 인식하게 되었는데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스스로 죽을 고생이라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것을 두고 살아 있다고 말하고 하루라도 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서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그 지극한 상식 위에 서서, 그러면 왜?, 누가? 존재하게 했는지 그것을 알려고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그것이고, 최우선적 선택이 그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구원은 가치가 바로 그것에 있는 것이다. 존재로서 존재의 목적을 아는 것. 더욱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를 표현하는 존재로서 창조하셨다는 그 감사한 사실이 자신의 존재 목적임을 아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주인의 가장 가치를 부여한 것에 자신이 속했는데 그것 이상의 가치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떠난 자리에서 회복된 구원의 자리는 사람의 선택에 달렸다. 그 선택하고 순종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예비하셨다. 그 예비하심은 놀랍다. 천지만물과 천사까지 모두가 그것을 위하여 예비되었다. 심지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우리와 동일한 육신으로 오셔서 몸소 보이셨다. 모든 것은 다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에 딱 하나 없는 것,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사람의 순종, 오직 그 하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이로 말미암은 세상을 살지만 하나님의 세계가 아니다. 아직 태초에 이르지 못한, 흑암이 혼돈한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인생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는 그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 사람 앞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모든 것을 말씀하셨고, 아들이 오시므로 이제는 모든 것을 아들로 말씀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으로 그 뜻을, 순종했을 때 인생이 온전해지는 그 뜻을 전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행하심에 인생이 마땅히 들어가야할 자신의 존재 목적 안으로 들어가는 순종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는 예삿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그 존재의 목적을 알리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하셨다. 인생에게 원래부터 손해란 없었다. 자기 힘으로 나지 않은 인생의 목적을 창조주가 모든 것으로 전하시고 설명하셨는데 인생이 손해 볼 일은 원초적으로 없는 것이다. 딱 하나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으로 창조한 목적을 보이신 것이 자신의 자리임을 깨닫고 순종하는 그 하나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등한시하면 되겠느냐고 히브리서가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힘으로 나지 않은 인생, 알고 보니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세상을 창조주의 뜻에 따라 살기만 하면 너무 단순하고 쉬운 것만 하면 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걷어차고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니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고난이라고 뇌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사가 밉고 심술이 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만든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그 자체가 고난인 것이다. 하나님이 굳이 능동적으로 징계하시지 않아도 하나님의 의를 떠나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징계가 되는 것이다. 여기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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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4-14) 구원을 얻을 후사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히브리서 Date : 2019. 12. 28. 04:00 Writer : 김홍덕



성경은 천사를 보는 관점으로도 충분히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다. 천사를 어떻게 보는지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이것은 비단 천사를 보는 관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을 보는 관점이 그렇다. 그것은 보는 주체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종속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난 하나님의 아들은 모든 것을 그 아들의 생명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이고 본성이다.


히브리서는, 천사는 부리는 영이요 구원을 얻을 후사를 섬기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존재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원을 얻을 후사’다. 구원을 얻을 후사가 천사를 그렇게 인식할 때에 천사가 부리는 영이고 섬기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천사의 힘을 빌어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 천사는 부리는 종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존재이다. 이런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렇다는 것은 천사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사람이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쉽게도 육신으로 사람인 존재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사의 관점, 천사를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을 위하여 존재하고 만들었지만, 천사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되는지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 여부에 따르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그 하나님 계획의 한 부분인 천사도 존재 이유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천사는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 생사여탈권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이 왜 수동적이고 순종적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이 되면 하나님의 계획이 자기 것이 되고 모든 만물도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오지만, 순종이 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능동적으로 나서면 어떤 것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먼저 서술된 <욥기>에서 마귀를 설명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순종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자신에게 마귀의 역사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결국 천사나 마귀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에 딸린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한 사람은 모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천사와 같이 자신을 돕는 것이 될 것이고, 자기 의로 하나님을 믿으려 하면 세상은 언제 마귀의 유혹이 넘치는 것이다.



구원이 왜 확정적이지 않고 예정적인 것으로, 가능성만으로 표현되었는지를 알아야…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얻을 후사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나 여기서는 구원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예정된 것으로, 가능성으로 말씀하시고 있다. 이 말씀은 미래 시제로 말씀하셨는지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으면 언뜻 지나치기 쉽다. 구원을 얻을 후사라고 하는 것은 구원이 모든 인생들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는 의미인데, 이 평범하고도 교회 안에서 상용구처럼 사용하는 이 말을 정말로 믿는다면 창세기에 나오는 사람의 창조에 대하여 의문이 없어야 한다. 사람의 육신 창조에 관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뜻하신 사람이 나오는 것이 천지창조인지가 자기 안에 분명해야 하고, 성경의 시작인 ‘태초’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세계임이 자기 안에 또한 분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이 왜 타락했는지, 선악과는 왜 만들었는지, 하나님의 관점은 성선설인지 성악설인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런 것을 연구하고 있는 신학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만나서 시작된 태초가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온전하게 사람을 만들었는데 모든 인생을 위하여 구원을 예비했다고 하는 것이 시제상 얼마나 모순인가? 그런데 이런 깊은 뜻을 고찰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구원을 예비하셨다는 말을 마치 자기가 깨닫고 믿고 당연한 것으로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외식이고, 하나님의 의를 도적질한 것이고, 어두운 것이다.


구원을 얻을 후사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확정이 아니라 예정) 상태라면 하나님께서 처음 만들 때 왜 구원의 상태로 창조하시지 않았느냐의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더욱이 그 의문은 그 자체만 의문스러운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볼 때 분명히 확정적이지 않은 이 상황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사람과, 선악과를 먹기 전의 사람들과 충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구원을 얻을 후사라는 말은 정말로 아리송한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깊이 고찰하지 않는다면 뒤이어 히브리서의 기자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고 한 말씀에서 예수의 무엇을 생각하자는 것인지에 접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구원을 얻을 후사로 사람을 표현하셨다는 것은 육신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의 안목과 가치관은 창세기 이전의 상태이고 그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육신으로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그릇으로 창조된 형식이며 그 그릇은 하나님의 의와 성품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즉 육신인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 존재가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을 담기에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가 담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야기함에 있어 천사를 언급하신 것은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본성이 되는 것이 삶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천사에 대하여 숭배하듯 하나 그 마저도 하나님의 의를 사람이 자기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로 순종하는 것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히브리서 전반에 걸쳐서 히브리서 기자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바로 예수를 알고 순종하는 것을 계속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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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을 보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점> 전문을 일부 수정하여 pdf파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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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추후 출간되는 책의 일부로 편집된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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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 인쇄를 하시면 보시기 좋습니다.)




육신을 보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점(B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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