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 이후에 받으신 시험은 말씀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네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시험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 역시 끊임없이 시험을 받는다. 이렇게 끊임없이 지속된 시험은 십자가에서 끝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니 "저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사람의 고백이 나왔다.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가정이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고백이 되어 모든 시험을 이긴다.

 

"네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시험은 십자가를 지므로 완전히 이긴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시험의 마침표인 십자가는 쉽지 않다. 엄청난 고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다는 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이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는 존재라는 걸 밝히셨을 때, 세상 사람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제자들조차 혼돈에 빠졌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자기 죄가 사해지는 혜택을 중심으로 보기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건 정해진 당연함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며 세상에서 영광 얻기를 구하는 자신을 투영해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서 실패 그 자체인 죄인 그것도 사형수가 된다는 게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여기고 은혜라고 말한다. 이런 건 사실 십자가를 욕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으로 십자가를 진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마귀의 시험은 그리스도(메시아)라면 가난과 질병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문제와 로마의 속국인 상태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로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그리스도가 아니냐는 그리스도를 향한 본질적 시험이다. 그러나 금식 후 받은 시험에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게 하나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게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셨듯, 오히려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 아들과 그리스도라는 존재에 대한 세상과 마귀의 모든 시험을 물리친다. 십자가가 모든 시험에서 이김을 얻게 한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란 시험과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질 수 없다>라는 생각은 같은 DNA

 

그렇다면 십자가는 어떻게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관해 유혹하는 시험을 이기게 할까? 그건 그리스도는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의 형상이자, 표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육신을 가진 사람을 통해 낮아지므로 영광스러워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셨는데, 그 뜻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육신의 삶으로) 표현하는 본능을 가진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다. 십자가는 그 본능에 이끌려 간 낮고 천한 자리다. 따라서 십자가는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게 드러나는 자리다.

 

십자가는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게 드러나는 자리

 

마귀의 모든 시험을 진정한 하나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시며 물리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는 유혹과 시험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물리쳤다. 십자가에 달리시니 사람이 예수님이 진정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 아들은 십자가를 지는 존재임을 보이시므로 마귀와 세상의 모든 시험, '하나님 아들이라면?'이라는 논쟁과 시험을 종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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