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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 구원은 어떤 변화인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출애굽기 Date : 2023. 6. 10. 12:17 Writer : 김홍덕

출애굽 과정은 크게 3단계를 거친다. 애굽-광야-가나안. 그리고 하나의 전환마다 큰물을 건넌다. 이 과정이 바로 우리 구원의 과정, 단계를 설명한다.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던 우리의 삶이 세례를 받고 광야를 지나듯 율법적인 신앙 여정을 거치고, 율법적인 삶의 끝에 자유의 복음을 누리게 된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건 광야의 삶이다. 출애굽기 분량 대부분이 광야 생활이라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된다.

 

 

이런 출애굽의 과정은 다시 크게 보면 2단계다. 복음 전의 삶과 복음 후의 삶. 애굽이나 광야는 어차피 가나안이 아니다. 복음의 삶이 아니란 의미다. 이 둘의 차이는 나를 움직이는 이유, 목적, 동기, 의미가 내 안에 있는지 아니면 내 밖에 있는지의 차이다. 애굽에서는 애굽 병사의 신호에, 광야에서는 불기둥이나 구름 기둥의 신호에 맞추어 살았지만, 가나안에서는 자의로 움직이고 결정하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본성에 이끌려 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건 정체성이 다른 존재다. 외형적으로 노예에서 자유인이란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광야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또 너무 추운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그늘과 온도라는 생존의 절대 조건을 제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갔다. 구름 기둥, 불기둥이 길라잡이였고, 이동과 멈춤의 신호였다. 이걸 벗어날 수 없다.

 

구름 기둥, 불기둥은 율법적 신앙의 본질적 모습

 

구름 기둥, 불기둥과 함께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 모습이 율법적인 신앙의 모든 걸 보여준다. 율법적인 신앙은 구약성경을 지키려는 신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일요일이 아닌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때까지를 안식일로 지킨다는 것이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신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율법적인 신앙은 신구약을 가리지 않고 해야만 한다. 그래야 복을 받는다 혹은 벌을 받지 않는다는 신앙이다. ‘기도해야 복을 받는다봉사해야 복을 받는다같은 사고나 말, 반대로 주일날 예배 빠지면 벌 받는다는 사고나 말이 율법적인 신앙이다. 당연히 그런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행여 어겨서 벌을 받을까 염려하는 것 역시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하는 걱정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아니 일반적이고 심지어 그런 걱정을 깨어 있는 신앙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의 신앙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벗어날 수 없는 이스라엘처럼 성경대로 살지 않았을 때 벌어질 일들을 감당할 수 없어 어떻게든 성경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신앙이다. 심지어 자신도 자신의 행위와 본심이 일치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행한다. 벗어나면 일어날 큰일이나 바라는 평안과 복락을 얻을 수 없게 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어서가 아니라 밉보이면 불행한 일을 당할까 염려함이 신앙의 동력이다. 이런 마음으로는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행위로 의로워져 이득을 구하기 때문이다.

 

구원, 진정한 구원은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다. 광야의 삶과 같은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존재에서 자기 안에 성경을 지킬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거듭나는 게 구원이다. 불행을 당하지 않으려, 세상에서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성경을 지키고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성경을 지키지 않으려 해도, 그냥 살 뿐인데 모든 삶이 가나안의 삶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냥 사는 것 같은데도 성경을 다 이루고 지킬 수밖에 없는 생명이 되는 것, 이게 구원이다. 당연히 오늘 나의 삶이 이렇지 않다면 구원받은 게 아니다. 이것이 출애굽기를 통해 발견될 때 구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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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구원을 말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구원을 얻는다는 건 죽을 지경에서 건져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구원받기 전 기독교인들의 삶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면 구할 수 없을 정도의 위험에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면 그 위험은 무엇인가?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은 이걸 분명히 알고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사실 이걸 잘 생각해보지도 않아 보인다.

 

우선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이건 다분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 말을 진심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기도할 때는 회개로 시작해야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이처럼 분명한 모순에도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여러모로 죽음에서 건져진 사람의 태도로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구원받았다는 삶은 구원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구원 이전이나 받은 다음이나 추구하는 건 똑같이 세상 가치다. 성공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성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성공을 하나님의 은혜로 안다고 목적이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힘이나 다른 신으로는 안 되니 하나님으로 의지하는 대상으로 세탁했을 뿐 생물로 보면 같은 걸 양식으로 삼는 같은 생명이다.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구원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이 세상의 가치를 양식과 소망과 성공으로 삼는 이상 구원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구원은 어디서부터 어디로의 구원인가?

 

출애굽기는 이것을 우리에게 설명한다. 우리의 구원이 무엇으로부터, 어디로부터의 구원인지를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을 통해 말씀한다.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국고성을 쌓는 노예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세상 가치를 추구하고 굳건히 하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습이다. 세상 가치를 추구하면서 심지어 그것을 하나님을 통해 얻으려는 삶과 신앙이 구원받아야 하는 종살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게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는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러 가겠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가치를 쌓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자기를 희생으로 드리는 사람이란 의미다.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는 건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바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경을 지켜서 육신의 평안과 복락을 얻으려는 것과는 반대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한 목적,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일을 위해서 사람을 부유하게 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하나님의 주권이지 하나님 믿는 사람이 잘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건 아니다. 출애굽기를 주목해서 봤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구한 건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것이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의 약속이지 이스라엘 백성이 구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세상 가치를 좇는 삶에서 행여 뒤처져 육신이 더 수고해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히려 그런 가치관에 사로잡힌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 감춰진 세상 가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종살이, 행여 하나님을 진노케하지는 않을까 근심하는 마음으로 전전긍긍하며 성경을 지키는 노력에 숨겨진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종살이에서 벗어나는 게 구원이다. 하나님은 그런 걸 의와 영광으로 여기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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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나의 이야기 ‘출애굽기’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출애굽기 Date : 2023. 5. 30. 06:08 Writer : 김홍덕

성경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한 민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출애굽기는 모든 신앙인의 신앙 여정이고, 역사다. 한마디로 오늘 나의 이야기다. 정확히는 복음 전 단계에서 진정한 복음의 삶으로 가는 신앙 여정이 어떤지를 말씀하시는 성경이다.

 

우리 구원의 이야기다. 우리는 구원을 생명이 바뀌었다는 의미의 거듭남이라고 한다. 출애굽기는 이와 같은 우리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으로 설명한다. 지리적 이동으로 보이는 큰물을 건너서 젖과 꿀이 흐른다는 땅에 이르게 된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은 우리 각 사람이 어떤 존재로 변화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렇게 나와 상관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어리석은 누군가의 말처럼 출애굽기는 단지 딴 나라 역사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도 허구 혹은 신화적인 역사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 출애굽기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말씀이다. 형식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현재의 이스라엘 땅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 같으나, 본질은 우리의 본성이 바뀌는 과정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안목과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이 본질인지를 깨닫는 심령의 변화 과정, 거듭나는 과정을 말씀하시는 책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은 큰물을 건넌 자라는 의미 히브리인이라 칭하게 되었다. 이렇듯 큰물을 건넌 일은 우리에겐 세례를 의미한다. 물에 잠겼다가 나온다는 의미의 세례는 물속에서 살 수 없는 생명이란 고백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는 고백적 예식이다. 그건 다시 말해서 이전에는 물속에서 살려고 노력했다는 의미다. 물속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건 성경 말씀을 행위로 지켜내려고 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성경은 십계명 같은 구약성경에 한정하지 않는다. 성경의 어떤 말씀, 심지어 복음의 말씀도 '~해야 한다'가 되는 순간 행위로 지키는 말씀, 곧 율법이 된다.

 

출애굽기는 바로 그런 신앙을 벗어 버린 생명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관한 말씀이다. 따라서 오늘 출애굽기를 읽는다는 건 오늘 나의 신앙이 율법을 지키는 신앙이 아닌지, 거듭난 생명이 가진 본성대로 사는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그리고 그에 합당한 신앙 여정을 거쳤는지 살피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출애굽이 내 이야기가 된다. 내가 세상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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