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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17 다윗의 자손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3. 5. 14. 17:59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개인의 구원 그 자체에 머물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계보를 소개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다. 즉, 한 개인의 신앙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열리는 태초가 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다윗이 왕이었던, 다윗이 가진 마음과 의가 나라의 의가 되었던 것 같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의로 가진 사람들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의를 의로 삼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이 마태복음에는 유독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많고, 또한 이 땅 위의 하나님 나라인 교회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왕이요 제사장이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다. 왕이 있다는 것은 나라와 백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나라와 같은 조직체와 정치가 필요한 나라를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시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기 안에서 시작된 사람들이 그 백성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시작이, 자신에게 태초가 하나님인 사람들이 모인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땅의 교회다.


이 교회는 사울이 왕인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사울과 같이 세상적인 경쟁력이 이기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나라는 다윗과 같이 그 육신의 아버지 조차 내어 놓기 꺼려하는 그런 모양을 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것이 다윗이 왕인 이스라엘의 모습인 것이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과 같이 세상적인 경쟁력을 가진 골리앗을 하나님의 이름(생명)으로 이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왕인 나라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들이 교회 건물이 세상의 건물보다 좋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서 다투듯이 좋은 건물로 변하고 있고, 교회 안에 세상에서 경쟁력 있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어리석음도 모자라서 교회 안에서 그들을 그 지위 하나로 인정한다. 재산의 정도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이제 고전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가 그런 모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사울의 나라이다. 사울이 다른 사람보다 어깨 하나 더 있을 정도로 경쟁력 있는 사람이었듯, 교회도 세상의 경쟁력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고 지칠 줄 모르고 그것을 향해간다. 하지만 그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단언코 교회가 세상의 경쟁력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이미 버림 받은 교회이다. 그런 교회는 세상의 조직체일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게 될 때 시작되는 세계고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고 그것을 누리는 세계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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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17 다윗의 자손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3. 5. 14. 10:44 Writer : 김홍덕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의 세계라 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며, 수동적인 것이 믿음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는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세계라는 것이다. 세계라는 것이 혼자일 수는 없다. 뭔가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의를 지향하는 것을 나라라고 하고, 세계라고 한다. 수학의 세계라고 한다면 수와 논리라는 의를 지향하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나라라는 것 역시 민주주의와 같은 하나의 의를 표방하여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 왕의 자손이 이루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이방 나라의 왕을 보고 부러워하여 하나님께 왕을 세워 달라고 했다.(삼상 8장)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옳다고 여기지 않으셨지만 백성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왕을 세웠는데 그 초대 왕이 사울이다. 이 사울 왕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어깨 정도에 밖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한 눈데 보기에도 뛰어난 용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육신으로서 경쟁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왕의 정체성이 사울과 같이 사람들 중에 위대함으로 경쟁력이 있는 왕이 나타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가 옳지 않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셨으나, 사울 왕은 결국 사람이 생각하는 위대함을 좇아가다 망하고 만 것이다.


이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세계라 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사울은 그렇지 않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함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말렉을 치고 난 다음에 모든 것을 죽이라고 한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좋은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좋은 양과 염소를 남겼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순종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7)


사울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와 나라의 왕이 아니었다. 즉 사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왕이 통치하는 나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의를 그 나라의 의로 삼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볼 때 좋다고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공동체의 의로 삼으면 그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교회가 추구하는 발전이라는 것이, 사람이 볼 때 좋은 건축물을 가지는 것과, 사람이 이긴 것,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수의 많음이 교회의 발전이라 여기고 그것이 하나님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나 공동체는 사울이 왕인 나라요 세계일 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반면에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사울과 같이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집에 가서 그 형제들을 모았을 때,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는 다윗을 부르지도 않았다. 즉 아비가 볼 때에도 어디 내세울 것이 없다 싶은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그런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나, 또한 사람이 좋다는 것을 다윗을 가졌기 때문에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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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나의 태초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3. 5. 13. 14:52 Writer : 김홍덕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시는 것은 만드신 세상이 하나님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 세계가 천체 물리학적으로나 아니면 생물학적이거나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이 세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세계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라는 것은 만들어진 것이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을 알 때, 그 만들어진 것이 하나님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때 그 세계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학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입학할 때, 나에게 대학이라는 세계가 열리는 것이며, 무엇보다 대학을 세운 사람이 붙인 그 대학의 이름의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마치 그것과 같이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에 대한 태초가 열린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던 내가 하나님의 세계로 인정할 때, 하나님이 의도한 하나님의 세계가 받아들여질 그 때가 바로 나에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초가 열리는 것이다.



입학한다는 것은 새로운 학문의 태초

<사진은 영남이공대 2013년 입학식>


세상은 어떻게든 만들어졌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믿는 것은 중요한 믿음의 뿌리지만,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대한 태초가 적어도 나에게는 열리지 않았을 것인 것 같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더라도 내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으로,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의도를 알기 전 까지는 물리적인 세상을 아무리 숨쉬면서 인지하고 있어도 나에게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태초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창세기 1장 1절은 물리적인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선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읽는 사람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목적을 알아 하나님의 세계가 자기에게 열리는 그 때가 바로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태초가 시작된다는 것을 세상을 만드신 사건을 가지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는 그 물리적인 창조의 형태가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록하여 우리로 읽게 했다는 것은 각 개인에게 있어 하나님을 믿는 세계인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심이 그 주 목적이고, 이 내용을 말씀 하시기 위하여 물리적인 세상을 만드신 것이다. 즉,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형식이고 본질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을 믿는 세계가 한 개인에게 열리는 그 때가 그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태초라는 것이다.


이는 이 세상이 있다 해도 내가 태어나서 인지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어떤 분으로 계시든지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길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세계가 나에게 열리는 태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에 대한 개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신앙 안에서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원론적 가치관이 생겼다는 것이고, 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 대한 시간 개념이 생겼다는 것, 즉 태초가 열렸다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창조라는 것을 물리적인 세상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것을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서 그것을 믿는 믿음이 믿음이라 여기는 것이 창세기 1장 1절을 믿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어떤 말씀이라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공부다. 이 성경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게 되는 그 시점이 생기기 시작하는 그것이 바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시간에 관하여 크로노스적인 개념을 적용하듯, 또한 세계를 천지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물리적인 세상이 세상이라고 여기는 관념을 가지고 본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이 객관적으로 사실임을 믿는 것이 믿음으로 여긴다. 그런 믿음은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지키기 위하여 배가 고프지 않아도 또 아무리 배가 고파도 12시가 되어야만 점심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회사가, 혹은 조직이 정한 것을 지킨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의 시간, 자기의 형편에 맞춘 것은 아닌 것이다. 즉 나와 상관없는 성경인 것이다.


성경에 어떤 말씀이 기록되었다고 해도 오늘 나와 상관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12시 점심시간을 지키는 것은 신념이지 자신의 생명에 맞춘 것은 아니듯이, 성경을 객관적인 사실로 믿는 것은 신념일 뿐,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세계가 나에게 열리는 태초는 성경의 말씀이 나와 상관이 있는 말씀으로 들리는 그 시점이 바로 나에게 있어 하나님의 태초가 시작되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창세기의 시작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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