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3:1-5) 룻의 안식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룻기 Date : 2019. 11. 18. 00:30 Writer : 김홍덕

룻의 시모인 나오미는 룻이 안식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보아스와 동침할 것을 권한다. 서구화된 오늘날 문화로 보면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을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는 책이지 세상의 풍습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가이드가 아니다. 그리고 나오미의 이러한 권면은 모압에선 어떨지 몰라도 추후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는 것에 있어 다말의 일을 인용하는 것에서 보듯 유대 땅에서는 평번하고 보편적인 문화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와 동침하게 되는 것이 룻의 평안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나오미의 여정, 그리고 그 여정을 보고 자신도 하나님의 의를 좇아온 룻에게 있어 안식이란 아들을 낳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여자와 같은 모든 인생에게 안식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람, 아니 모든 피조물에게 있어 안식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뜻대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 정체성이 가진 본성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서 맘 편히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조성했을 때 이야기다. 자기가 조성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은 인생의 평안과 안식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상태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를 지으신 자신의 소유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삶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본질적인 도적질이기도 하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안식은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후에 안식하셨다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표현할 형식 곧 육신을 가진 사람을 지으시겠다는 뜻인 내용이 창조된 사람으로 나타나므로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것이다. 창조주이시자 사람의 내용이자 존재 목적인 그 하나님의 이미지가 육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 곧 아들이다. 의가 육신이 된 존재가 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육신의 삶이 되는, 말씀이 육신이 될 때 안식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룻에게 아들, 하나님 백성의 아들을 낳는 그것이 룻의 안식이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생들은 육신의 평안에서 안식을 찾을 것이 아니다. 죽도록 고생했다고 여기는 인생을 뒤로하고 죽음을 맞이하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고 하는 그런 개념의 안식을 하나님 앞에서의 안식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안식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안식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육신의 평안을 안식으로 믿는 이들에게 사는 동안 안식은 없다. 자고 일어나며 일하는 모든 것이 다 고생이고 오히려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나님을 믿고 도움을 구하고 있는데 육신의 평안이 어디 있겠는가? 평안을 얻으면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 없어지는 것인데 그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으로 믿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안식으로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안식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속에 없는 것이다.


나오미가 룻에게 말한 그 안식,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룻이 하나님의 은혜를 좇는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나라로 와서 내용 없이 과부로 사는 것에서 의요 내용인 남편과 그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는 아들을 얻는 것이 안식이듯, 이 룻기를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리스도로 거듭난 아들로서의 삶이 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안식이고 룻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