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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냐? 존재냐?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3. 1. 9. 10:16 Writer : 김홍덕

난 군대를 대학을 졸업하고선 갔다. 군에서의 생활이란 남자들은 다 알겠지만, 사회에서 그 지위가 어떠하던 자기 계급에 맞는 행동양식과 정신을 요구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곳에 있으면, 자기가 사회에서 교회에 다닐 때에 리더를 했던 목사를 했던 상관없다. 오직 자기 옆에 있는 사람과 동일한 모양으로 살아야 한다. 그건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던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군에 있는 동안 그때까지 내가 입고 있던 모던 종교적인 옷을 벗고서(벗겨졌지만) 그 날까지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신앙적 측면에서 군을 잘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군 생활 속에서 심각한 의문이 생겼다. 기상시간 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하는 날은 저녁 시간에 집합이 덜 한 것 같고, 그렇지 않은 날이면 자주 저녁에 집합이 있곤 했는데, 난 그게 너무 이상했다.


그때 난 '이건 뭐 무당 굿하는 것과 비교하면 신만 다를뿐이지 같은 시스템이구만'하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 그렇다. 무당은 산신령께(?) 굿을 하고,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산신령<->하나님, 굿<->기도, 이렇게 딱 매칭이 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 그것이 동일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산신령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문제라고 볼지 모르지만 그 두 신앙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이 같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즉 신을 섬기는 목적이 같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좀 더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다면? 난 저녁에 집합이 없도록 해 달라고 아침 기도를 거르지 않으려 노력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땐 분명히 몰랐지만 그렇게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해당하는 문제일 뿐인 것이다. 





그것은 자유함의 문제로 다가왔다. 정말 자유하다면 기도를 하던 안하던 삶은 동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유가 육신을 얽매는 삶의 문제에 대한 자유라면 말이다. 참 하나님, 즉 존재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내 육신의 삶의 모양이 집합을 좀 당하던 좀 구속을 받게 되어도 난 하나님을 믿는 일에 의심이나 구속함이 없는 것이 정상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말씀이 생각났고, '난 진리이신 예수님을 아는데 내 모습은 자유하지 않구나 ?' 생각했다.


그 이후 내 신앙의 의문과 갈등은 절정에 달했다. 두 가지중 하나였다. 내가 이때까지 예수를 잘못 믿었거나, 예수가 희대의 사기꾼이거나, 그 둘중의 하나라 생각했다. 그 의문은 전역 후에도 가시지 않았고, 전역 이후에 내 친구가 '교회가 더 이상 가르쳐 주는 것이 없다'며 떠나갈때도 할말도 없고 붙잡지도 못하는 꼴이 되었고, 토요일이면 다음날 새벽까지 고스톱 치며 놀다가 부시시한 모습으로 교회에 가서는 고등부 교사를 하러 가는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난 그 날까지의 모든 의문을 질문 하나에 담아 질문을 했다.


"목사님!, 이 기독교 신앙이 Do에 관한 것입니까? Be에 관한 것입니까?" 라고


내심 나는 이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어쩌면 지금도 양심이 있고, 자기의 삶이 그 어느 것 중에 하나라고 확신하는 목사가 아니라면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내 질문이 끝나기도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간략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BE에 관한 것이다!!> 


그 순간은 내 일생 일대의 사건이었고, 내 삶의 절대 전환점이었고, 가장 잘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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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교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 Date : 2012. 12. 26. 14:44 Writer : 김홍덕

우리나라에는 큰 교회들이 많다. 어찌보면 규모에 관계 없이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교회는 다 큰교회이다. 왜냐하면 모든 교회가 교회가 커지는 것을 부흥이라 여기고, 또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축복하심이라 여긴다. 그래서 일단 교회라는 간판을 걸었다 하면, 다 큰교회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하기에 우리나라에 있는 거의 모든 교회는 다 <큰 교회>이다.





사실 교회가 크다거나, 부흥 할려고 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도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큰 교회와 큰 교회를 지향하는 모든 교회가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매주 최소한 3차례 정도의 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능력에 따라서는 자체적인 성경공부를 하는 교회도 참 많은데, 교인들은 늘 의문에 쌓여있고, 정작 뭔가 물어보면 신학을 했다는 사람들의 질문은 모호하며, 질문에 질문을 거듭해 보면 결론은 늘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만 돌아온다.


대학에 다닐때 간호대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어머니는 무당이었고,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돌아가셨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간호대에 들어갔고, 기독교 계통의 학교의 영향 때문인지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나와 참 친하게 지냈다. 그녀는 복음에 대한 소망함이 아주 컸다. 그러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가게 되었고, 제대 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후 잠시 다시 교회를 나온 그 친구는 어느날 내게 다가와서 


"나 더 이상 교회에 못 나오겠다"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내가 알고 싶은 것을 교회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라며 교회를 떠나 갔다.


그리고 그녀는 몇 해 후 성당에서 결혼했고, 지금은 어떤 신앙도 가지지 않고 있다. 또 대학 당시 내가 회장을 할 때 정말 열심으로 돕던 부회장을 한 후배도 절에서 길혼식하고 시집 가 버렸다. 물론 아주 열심에 열심을 더해서 지금 큰 교회의 목사가 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교회가 가르쳐주는 것이 없다고 떠난 그 말은 나에게 있어서도 그 이후 신앙에 있어 큰 영향을 주었다.


만약 지금의 큰 교회가, 교회의 건물, 교회의 재정, 위엄있는 강대상, 웅장한 음향, 아주 관리가 잘된 조직력과 같은 구성요소를 다 제거했을 그 때도 그 안에서 모여서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나눌 수 있는가?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그런 것을 의탁해서 복음을 전하신 적이 없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지하무덤에서도 교회가 풍성했다. 즉 그것은 교회란 굳이 자본주의적 산물인 건물이나 재정이나 성도 수나 관리나 웅장한 음향이나 화려한 조명이 교회의 요소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건 그저 있으면 좋은 것일 뿐이다.


큰 교회는 그런 것이 다 있거나, 늘 추구한다. 아니 솔직히 그것 뿐이다. 교인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그것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늘 <하나님은 누구신가?>, 또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갈망과, 진정으로 나와 상관 있는 하나님, 도저히 떠날 수 없는 교회와 형제자매를 원할지 모른다. 그것은 한마디로 <<삶의 목적>>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원한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큰 교회는 하나님께서는 그저 말씀 만으로도 지으실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우주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는 교회의 화려함을 하나님의 영광이라 여기며 그것을 향해 질주 하느라, 물질이나 건물에 전혀 아쉬움 없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는지는 등지고 살아간다. 그게 <큰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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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관심을 가지다...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2. 12. 26. 14:10 Writer : 김홍덕

내가 신앙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때의 일이다. 그때 부모님은 집안이 줄곳 다니던 교회를 잠시 떠나 집 가까운 개척교회에 다니셨고 나도 덩달아 다니게 되었다. 그 교회는 개척교회이고 부흥의 시대 끝자락이던 70년대 후반이었던 탓에 부흥회가 잦았다. 그때 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부흥회에 가서 방언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도 그게 하고 싶었었다. 그것이 내가 신앙에 관심을 가진 첫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중학생이 된 후 집안이 다니던 교회로 다시 다니게 되었고, 중 3이 되어서, 여름수련회 때 성경퀴즈대회를 보고 나도 잘 해보고 싶어 가을에 있는 성경퀴즈대회 준비를 해서 2등인가를 하면서 성경을 알기 시작했었고, 친구들이 당시 대학생 선배들을 따라 저녁예배 마치고 통성기도 하는 것을 따라 가서 3년 전에 바라던 방언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아주 열성이 넘치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은 공부보단 교회가 좋은 삶을 살았다. 성경 퀴즈대회가 있다하면 시험보다 더 준비해서 1등을 하고, 행사가 있으면 온통 그것만 신경 쓰고, 어른들의 저녁예배도 빠지지 않고 참석함은 물론이거니와 마치고선 1~2시간씩 기도회를 하고선 목이 쉰채 집으로 향하곤 했다.


대학생활은 거의 학교를 다니는지 교회를 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첫번째 의문이자 반항이 생겼다. 나는 85학번인데 그 당시 대구지역에 IVF라는 선교단체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난 그것에 참여했다. 어느해 여름 경북.울산지역 대학 IVF 연합 수련회에 갔었는데, 특강을 하던 간사가 성경에 나오는 면류관 구원과 개털모자 구원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고린도전서 3장 참조)난 왜 성경에 나오는 것을 부인하지? 하며 질문하기를 


"달란트 비유에도 5달란트 받은 자에게 한달란트 받은 자의 것을 빼앗아서 주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설명하실 것입니까?" 했더니


나를 인도해서 참석한 형 한명이 와서 나를 조용히 데리고 나가서는 "성경을 그렇게까지 해석할 필요는 없다"라고 하며 답변도 없이 마무리 되었다. 그것이 지금 기억에 남은 첫번째 공식적인 의문이었다. 하지만 교회에선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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