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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만 치던 수련회 속의 기적?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8. 23. 12:12 Writer : 김홍덕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수련회는 덕이에게는 추억이 될 수 있지만, 교회로 봐서는 엉망인 수련회였다. 덕이와 친구들은 수련회 출발 전에 장난을 위하여 많은 준비를 했다. 밤에 숙소를 돌아다니며 얼굴에 낙서할 준비와, 음식에 탈 소금과 식초 등등... 그리고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수련회의 어떤 저녁, 덕이와 친구들은 자진해서 식판을 나르겠다고 나서서는 식판 몇개 건너 하나씩 소금이나 식초를 국에 탔다. 그날 저녁 메뉴는 미역국이었는데, 식사시간이 거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구는 짜다고 소리치고, 누구는 시다고 소리치는 난리가 난 식사시간이었다. 더욱이 덕이와 친구들은 식수 주전자 3개 중의 하나에도 식초를 타 두었기 때문에, 짜거나 시다고 물을 마신 이들조차 소리를 치고 난리였다.


수련회 마지막날 덕이와 친구들은 대학생 형들의 삼엄한 경비 속에 정해진 자리에서 잘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숙소를 돌며 얼굴에 낙서를 하겠다는 꿈이 조각이 난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다음날 일어나서는 세수하고 오는 사람들의 머리와 얼굴에 치약을 바르고 다녔다. 당시 막 크로즈업이라고 녹색과 빨간색의 색상 있는 치약이 나왔기 때문에 학생들은 머리에 무스를 바른 것 처럼 하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장난을 하는 동안 중요한 일이 있었다. 물놀이를 갔었는데, 고3 누나 하나가 물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물은 겨우 무릎이나 허벅지 정도의 깊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 누나는 실제로는 물에 빠진 상태였던 것이다. 다들 웃고 있었는데, 덕이의 친구 하나가 이상하게 여겨 들어가보니 놀라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그 친구가 그때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지경이었다.


수련회 오기 전, 기도로 수련회를 준비하는 것이 너무 부족하다며 덕이를 비롯한 몇명이 모여서 수련회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었다. 덕이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3명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다. 그래서 덕이는 더 큰소리로 기도했고, 말 그대로 펄쩍펄쩍 뛰면서 기도를 했었다. 그러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덕이는 기도로 악령을 이긴 것이라 생각했고 너무 기뻐 눈을 떠 보니, 기도하던 사람들이 제법 큰 원을 그리고 앉아서 시작했는데 다들 머리를 맞댈 정도로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이긴 느낌을 그 모두가 느꼈던 것이었다.


당시 덕이에게 그런 경험은 흔한 경험이었지만, 그날은 그래도 좀 달랐다. 모두가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고, 또 모두가 간절함으로 기도함으로 그것을 이겼다고 느끼며 즐거워하고 일부는 춤도 추었던 경험이었다. 그 구성원 중의 하나가 바로 물에 빠진 누나를 물에서 건진 것이었다. 그리고 덕이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날 기도회때 마귀를 이기지 못했다면 누나는 죽었을거야"라고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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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것이라도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 최종 목적인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다 마지막 목적 안에 수렴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에는 아무 것도 만들지 않으셨다. 오히려 쉬셨다. 그것은 목적하신 바가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 천지 창조의 과정은 계속 이야기 해 왔듯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는지를 설명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마지막 최종 창조물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을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어떤 창조물도 사람이 인지할 때 창조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그 누구라도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세상이 수 없이 창조되었다 해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을 기준으로 볼 때, 태어나는 시점이 천지가 창조된 시간인 것이다. 이런 주관적인 해석을 배척하면 성경은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도올 김영옥 교수의 말 처럼 그냥 이스라엘 역사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의 최종 결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어떻게 정립되는 과정이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의미 없는 세상이 태어남으로서 시작되었고,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가 쟁점이 아니라 태어나서 어떻게 인식해 가느냐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그것이 천지창조라는 것이다.


천지창조는, 한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정립되는 과정


물론 객관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어떤 시점에 이 물리적인 세상의 시작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시작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하다못해 100년 전의 일도 나에게 오늘 저녁 메뉴보다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시간의 시작은 없다고 봐야 한다. 시간을 객관적으로 본다고 할 때, <시작>이 있다면 단순하게 생각해도 <시작 그 이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객관적인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시작의 시점이 언제인지 밝혀서 그것을 <태초>라고 규정하려는 관점은 자신이 정체성인 객관성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시간의 시작이 그 세계의 <태초>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것과 같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지는 한 단계 한 단계가 바로 천지창조의 하루 하루인 것이다. 바다가 어떻게 형성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다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기준이 무엇인가 할 때, 하나님의 세계로서 나에게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천지창조인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이 나에게 하나님의 의미로 다가 올 때, 그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시작과 창조과정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빛이 내게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어둡던 곳에서 빛을 만나 인식을 가지게 되듯, 하나님을 모르는 어두움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는 시점이 바로 첫째 날인 것이다. 성경이 이렇게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면 단언코 내가 믿을 경전은 아니다. 경배할 경전일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천지창조는 사람을 만드신 과정이다. 아니,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를 인식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끝이 무엇인가 할 때, 사람이 사람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지창조인 것이다. 사람을 바로 안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무엇으로 부터 만들어졌고, 무엇을 위하여 창조되었는지를 아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천지창조이듯이 사람을 바로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여섯째 날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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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이 이상한 자신감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8. 19. 00:00 Writer : 김홍덕

덕이는 그렇게 외형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내성적인 아이였다. 적어도 중학교 3학년때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교회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되면서 점점 외형적인 성향의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방언이라던가, 성경에 대한 지식과 같은 것에 대하여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부터 덕이는 이전과는 좀 다른 성향의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덕이는 중학교 3학년때 까지는 학교에서 크게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그러던 덕이는 교회에서 뭔가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가면서 그것이 사회에서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서의 경쟁력이 세상의 경쟁력과 같다는 착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기본적인 학력은 유지하고 있었기에 고등학교 입시 시험인 '연합고사'를 무난히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수준의 성적을 얻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방언을 하기 시작한 이후 덕이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방언이라든가, 성경 퀴즈 대회에서 입상한다는 것을 세상의 보편적인 경쟁의 승자와 같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덕이는 예를 들어 방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해도 되는 지위를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덕이의 착각은 사람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었었지만, 덕이의 착각은 그치질 않았다. 점점 더 그런 생각에 빠져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덕이가 말 끝 마다 방언을 들먹이거나, 말 끝 마다 성경을 들먹여서 사람들을 기죽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차별을 두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행동 양식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분명했다.


한때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덕이는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덕이가 그런 말을 하겠다 싶은 타이밍이 되면 주변의 사람들이 먼저 할 정도로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덕이가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가지고 살았던 것에 기인한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쨋던 이전까지 조용한 아이였던 덕이는 이때부터 어디가도 눈에 띠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덕이는 머리가 참 좋았다. 그리고 순발력이 대단했다. 그런 덕이의 능력은 순간적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말을 하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나타냈는데, 덕이는 그런 자기 모습을 좋아했다. 아니 그런 자기 모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덕이는 고 1 교회 수련회를 앞두고 수련회에 가서 수련활동을 열심히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장난을 준비했엇다. 친구들을 모아서 돈을 좀 모아서 당시 유행했던 산도 과자를 사서 중간의 크림은 발라 먹고 치약을 발라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돈이 모자라 산도가 아닌 작은 샌드과자를 사서 준비했다. 또 껌 뒷면에는 습자지를 붙이고, 교련복을 입고 가기로 하고 수통에는 보리차와, 식초 탄 물, 소금 탄 물을 따로 담아서 수련회를 출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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