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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지창조는 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가에 대한 말씀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는 인간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 할 때 어떤 것을 물과 같이 취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궁창 위의 물,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갈증을 해갈해야 했고, 궁창 아래의 물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궁창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셨다 했다. 그렇게 땅이 드러나듯 사람이 궁창 아래의 물을 마시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낮과 밤에 관하여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은 어떤 세계를 하나님의 영역 밖으로 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는 악한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세상의 어떤 일부라도 하나님이 싸워야 할 대상, 하나님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부정하고 어둡고 한 것은 다 사람의 관점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하셨다. 어둠이라고는 전혀 그 분의 정체성 안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악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관점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이 사람 안에 들어간 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사건인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못되는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한다. 즉 밤이 오는 것을 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신앙 안에서도 늘 밝은 날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낮과 밤이 공존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드신 과정을 말씀하신 것이, 사람이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의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삶 안에서 낮과 밤이 공존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과정이요,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인생사도 그렇거니와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날은 영광스럽다가 또 어떤 날은 찌그러지듯 힘들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밤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발악하듯 기도하고 몸부림치고, 또 때로 삶이 곤고해지면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밤과 같은 시절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노하심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피하려 하고 부정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밤과 낮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은 우리 삶의 여정 그리고 또한 신앙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좋은 일과 힘든 일을 어떻게 받아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제대로 받아들여서 하나님과 같이 그런 일이 있음이 좋은 것이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 살아 있다는 증거로서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바로 네 번째 창조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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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이야기 하기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3. 6. 29. 01:26 Writer : 김홍덕

얼마간 블로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이때껏 개인사업이랍시고 판 벌려 놓고 놀다시피 하다가 회사에 들어가게 되어 이전과는 주어진 시간이 좀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글을 써내려가고 싶고, 그렇게 할 생각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정상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 사는 이야기일까? 엄친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대화하는 두사람 중 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다른 한 사람의 아는 사람이 성공한 이야기, 복권 당첨류에 해당하는 이야기, 아니면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이야기일까?


언젠가 공부하는 교회 청년 격려 차원에서 점심을 대접하러 간 식당에서 보니, 우리 옆에 식탁에 4명의 남자가 앉았는데, 앉자마자 바로 각자의 스마트폰에 열중하느라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먹던 반찬이 모자라니 식당 아줌마 부른다고 한사람이 폰이 아닌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외에는 식사를 마칠때까지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는 폰으로 딴데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듯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실례인 세상이다. 심지어 그것은 법제화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온 세상이 그런 것은 다행이 아니다. 내가 속한 교회의 성도들은 왠만한 집의 디지탈키 번호를 다 알고 있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도 예삿일에 속한다. 어떻게 보면 무례한 일이고 시대적 상황에 역행하는 짓 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는 <사생활 보호>가 예의라 여기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평안이 있다.


교회는 그래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같이 살려는 사람들의 신앙 공동체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그리스도는 고상한 분이 아니다. 그 시대로 보면 개판 5분전의 생활을 하신 분이다. 세리와 창년 죄인들과 밥 먹고 놀고, 안식일에 남의 밀이나 까 먹고, 성전에서 상을 엎고, 세금도 안내고, 뭐 하나 고상한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분이셨다. 그리고 그 고상하지 않음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지금의 많은 교회들, 직장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서는 사적인 이야기가 없다. 서로 고상해진 모습으로 만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전혀 고상하지 않다. 집에서는 발가벗고 쫓아 다니는 것이 더 편한 그냥 그런 사람들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자유를 억제하고 자신은 절대 똥도 안누는 사람처럼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예의가 된 세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 좋은 것이라 여기는 교회가 된 세상이다.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 그것은 어쩌면 어디서나 똑같은 인간을 이야기하고, 너와 나 모두가 다 그냥 화장실가서 똥 싸는 그런 고상하지 않는 삶도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를 편히 나누며, 사람이 사람으로 안식하는 것 그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어디 교회만의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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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한다는 것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교회 Date : 2013. 6. 21. 17:04 Writer : 김홍덕

난 어렸을때 별다른 꿈이 없었다. 뭐 애기들의 철모를 소리로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든가, 아니면 커서 의사가 되겠다든가 뭐 그런 공허한 꿈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딱 한가지 교회 다니는 일에는 참 열심이었다. 그러다가 지금 이 블로그에 글을 써는 철학과 같이 성경을 교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이야기와 사건이 나에 대한 이야기요 내게 교훈을 주는 사건이고, 어떤 사건이든 그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이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예수 천당"이라고 외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는 것이기에 생명은 안에서 밖으로 자라고 역사하는 것이지 밖에서 안으로 강제한다거나 생활의 패턴 속에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가게 하는 것으로 사람의 삶의 형태를 바꾸게 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나의 생명을 분화해 내는 것이다. 먼저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나를 창조하는 과정을 거쳐 하나님을 안식하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요 말씀이 육신이 된 모습으로 살게되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전해져서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명을 또 분배하는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분명히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또한 사람들에게 사명으로 주었지만 열정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한때는 큰 열정을 품고 있엇지만 아직까지도 별다른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떄를 기다리는 일이다. 가만히 잠복해 있듯이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오늘 하루 하루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이 복음을 자기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까지는 수 많은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런 과정을 바라보고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과정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듯이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창조되는 과정이 어디 쉽겠는가? 그것을 함께 한다는 것은 복음을 받는 사람이 그렇게 되기까지 각양의 일에 대하여 섬기는 디아코니아(섬김, 봉사)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나 역시 그런 수고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새벽에 큰 소리로 이웃을 축복하듯 하는 것이 아니다. 잠언에서는 그렇게 하면 저주로 알 것이라고 했다. 복음은 마치 땅에 심기운 씨가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안에서 밖으로, 씨 안에 있는 것들이 나무가 되기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많은 수고를 함께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그럴 수 있는 마음이 그 안에 싹 트고 숙성되기 까지의 세월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려 애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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