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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 순종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3. 4. 12. 08:40 Writer : 김홍덕

좋은 것을 누리기에
형편이 충분한데 그러지 않는 것은
불순종의 마음이요,


좋은 것을 누리기에
형편이 되지 않는데 누리려는 것도
불순종의 마음이다.


좋은 날을 누리지 못함은
그렇지 않은 날을 두려워함이니
어떤 순간은 회피하려 함이니
순종하지 못함이고,


좋지 않은 날 과욕 하는 것은
오늘의 형편에 순종하지 않음이니
이 모든 것은 교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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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다. 이는 목적에 관하여 말씀하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 그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표현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듯 누군가를 표현 하는 것, 특히나 그것이 그 본성에 관한 것이라면 그 존재를 우리는 아들이라고 한다. 아들이라는 존재는 물론 물리적으로 남자로 태어난 아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들이라는 진정한 의미는 아버지 안에 있던 본성이자 유전자가 육신이 된 존재가 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신 것이다. 즉 이 말씀은 로고스(LOGOS)다. 즉 하나님 안에 있는 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가지고 계신 말씀, 곧 그 뜻이 육신으로 나타난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즉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육신을 가진 우리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같이 우리가 가진 육신으로 말씀을 표현하는 존재, 즉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육신 가운데 두셨다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이 가진 육신은 하나님의 품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창조된 존재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은 우리가 제어하고 단련시켜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가운데 거하는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들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육신을 가진 인생은 다 이 육신으로 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품성과 말씀을 육신으로 나타내었을 때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종교가 한결 같이 가르치듯이 육신을 제어하여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종은 빚을 지고 있는 존재이다. 종이 난데없이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고 있으면 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종이라는 말과, 빚이라는 말과 죄라는 말이 다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빚을 졌다는 것은 채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구매하는 모든 물건들도 그와 같은 빚이 있다. 구매한 주인이 그것을 구매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에 대하여 빚을 진 것이다.

 

형광등은 불을 밝히기 위하여 주인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광등은 주인이 원하는 때에 언제나 빛을 밝히는 목적 아래 빚이 있다. 그와 같이 세상의 모든 만물도 그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다 빚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빚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 아래 지음을 받아 하나님을 위한 목적을 가진 모든 존재는 다 종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종이기도 하고, 또 그 목적이 바로 아들이 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하나님 앞에서 아들이기도 하고, 종이기도 한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께 빚을 진 종이었다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성하신 목적을 깨달으면 그 목적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한마디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아들로 살아야 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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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는 아주 짧은 성경이다. 그 내용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아주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단순하게 보면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난 종이 바울을 만나서 예수를 믿기로 했으니 지난 날을 용서해 달라는 탄원서와 같은 것이다. 그 종은 오네시모다. 바울이 감옥에서 만나서 복음을 깨닫고 그 심령이 변한 종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가 용납하여 주기를 바라는 탄원서 성격의 옥중 서신이다.

 

하지만 이 빌레몬서는 절대 단순한 성경이 아니다. 아주 짧은 편지 속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복음의 능력, 즉 두나미스와 같은 능력을 증거하는 말씀이기도 하고, 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또한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성경일 뿐 아니라, 그 복음으로 인하여 공동체가 생성되었을 때, 아니 어떤 놀라운 변화를 겪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와 같은 교회를 이루었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성경이기도 하다.

 

우선 이 빌레몬서의 배경을 보면,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데, 이 오네시모가 주인인 빌레몬의 재물을 가지고 도망을 갔다가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서 그 마음에 변화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고, 바울이 이 오네시모를 그 주인인 빌레몬에게 이 용납해 주기를 청하는 내용이 바로 빌레몬서이다. 그리고 이 빌레몬서는 골로새서와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실 예전에 이 빌레몬서를 읽을 때는 별로 눈에 띄는 성경이 아니었다. 학생시절 레위기를 읽던 것에 비하면 나았지만 나와 상관이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거나, 읽으면서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 장면 같은 그런 감동을 주는 성경은 아니었는데, 다시 알고 본 빌레몬서는 아주 놀라운 성경의 한 부분이었다.

 

이 빌레몬서의 구도는 주인인 빌레몬, 그리고 그 앞에 죄를 지은 종 오네시모, 그리고 이 오네시모를 구명하는 중보자 바울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 구도는 참 놀라운 구도이다. 빌레몬이라는 이름의 뜻은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은 ‘이익’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큰 자’라는 의미를 가진 사울이 ‘작은 자’라는 의미의 바울로 개명한 사도이다.

 

이 구도는 마치 하나님 앞에서 그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그 목적을 버리고 죄 가운데에 가서 사는 것이 옥에 갇힌 것과 같은 삶인데, 그 인생의 삶으로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힌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인생들과 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바울이 오네시모를 신원하듯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우리를 중보하시는 모양과 동일하다.

 

이 빌레몬서가 이렇게 읽혀지지 않는다면 분명히 그저 2,000여년 전에 있었던 감동적인 내용의 편지로만 보일 것이다. 그것에 기독교 신앙이 더해진다 해도 예수 믿으면 자기 재물을 가지고 도망간 종도 용납하게 되는 것이라는 정도로 받아 들여질 것이다. 사실 그 이상의 설교를 들어보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성경을 자기와 상관이 있는 오늘 나의 이야기로 읽지 않고는 그런 깨달음이 있을 수 없고, 깨닫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이 빌레몬서는 빌레몬과 바울 그리고 오네시모를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과,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종의 모습으로 감옥 같은 세상에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중보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고 그 뿐 아니라 아들로 또한 신실한 형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이야기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요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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