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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 기독교인의 자격?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교회 Date : 2013. 8. 12. 13:05 Writer : 김홍덕

십일조 안 내면 교인 자격 정지 <-- 기사 원문

 

인터넷 뉴스를 보다 보니 정말 표정 관리가 안되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십일조 안내면 교인 자격 정지">라는 기상천외한 제목을 보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저런 발상을 한다는 그 <천재성>에 찬사를 보낸다. 실로 대단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표현하자면, '하나님도 생각할 수 없는 대단한 발상'이라고 하고 싶다. 저건 실로 그 정도의 발상이다. 이것은 시행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것, 저런 생각을 하는 가치관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신앙이라 할 수도 없지만 그 발상의 뿌리가 기성교회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에 교회가 어떤 상태이고 어떤 모습인지를 잘 말해주는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발상의 근원은 교회를 하나의 조직으로 보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조직이라는 것은 구성원간 역할이 있고, 그에 따르는 업무와 권한이 있고, 무엇보다 업무에 따르는 자격과 결정적으로 권력이 있다는 증거이다.

 

십일조가 되었던 기도가 되었던 어떤 것이라도 <자격>이라는 개념으로 논제가 된다는 것은 이미 그 교회가 조직체로서의 면모를 완연하게 갖추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교회는 생명 공동체이다. 우리가 공동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곳은 <가정>이다. 가정의 구성은 생명의 법칙에 따라 구성된 것이다.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 위하여 어떤 자격을 검증하거나 자격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가족의 구성은 본능과 생명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조직체일리가 없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기도나 전도나 십일조가 의무나 본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개가 <멍멍>하고 짖는 것과 같은 본능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으면 개가 <멍멍>하며 짖듯이 본능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교회는 그런 것을 해야만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인이니 해야 한다(Have to)고 한다. 이런 모든 생각은 다 교회를 조직체로 인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십일조와 교인의 자격을 논하는 것이다. 교인은 자격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존재인 것을 이미 까맣에 잊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발상을 할 도리가 없다. 백번 물려 교인의 자격을 가지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돈 낼 자격을 준다는 것 밖에 더 되는가?

 

이런 모든 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아버지라는 것만 알아도 이런 발상을 할 수 없다.(욕 나오려는 것을 참고 쓰자니 힘들다). 게다가 교계의 지도자가 모인 총회에서 그렇게 논의 했다는 것은 그 총회에 속한 모든 교회 어느 곳 하나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대표니까? 그것이 조직의 논리 아닌가? 그들이 전부 그런 조직을 구성하고 있으니 조직체 다운 발상을 하는 것이다. 그나마도 엉터리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주)예수그리스도라">는 것 보다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지금의 교회는 조직체다. 예배시간에 앉아서 그들이 경계하자고 말하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의 법을 그대로 좇고 있는 조직체다. 한마디로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면죄부도 곧 나올 것이다. 어쩌면 이게 면죄부를 준다는 기사이기도 하다. 교회가 세습되는 마당에 뭐가 안되겠는가? 이미 교회는 세상과 다를 것이 없다. 그저 단계적으로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 그 뿐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하나님을 모르니 말이다.

 

교회가 온전히 하나님을 전하고 나누면 자격과 같은 것은 전혀 필요없다. 저런 짓거리를 하는 목사나 장로들의 가정에 자녀들은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번도 생명 공동체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럴 수 없다. 생명의 하나님을 나누는 것은 성경에 있는대로 거듭나기만 하면 된다. 그것 뿐이다. 그리고 그 생명의 본성을 따라 살면 기도하할 때 기도할 것이고, 성경이 필요할 때 볼 것이고,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 증거로 십일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맇지만 그 어느 것 하나 표현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 났다면 그것으로 족한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 발상은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놀랍지 않다. 이미 한국 교회가 하나님을 모르고 떠나 있었는데 이 정도에 놀라서는 안된다. 교회를 조직체로 보고, 그들이 경계하는 세상과 100% 일치하는 가치관으로 교회를 운영(조직체 용어)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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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보다 만화방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8. 10. 15:46 Writer : 김홍덕

그러던 덕이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께서 원래 다니던 교회로 다시 나가게 되면서 원래 다니던 J교회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덕이에게 그 교회는 재밌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교회였다. 아는 사람도 없고, 또한 아주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개척교회보다 훨씬 큰 교회라 사람도 많은데 그곳에서 뭔가를 인정 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니 누구 하나 덕이가 왔다고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덕이는 중등부 예배에 흥미를 잃었었다. 덕이는 그때 자기의 신앙을 <사주신앙>이라고 했다. 예배 순서 중 <사도신경> 외울 때 들어가서, <주기도문>외울 때 집에 가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덕이는 그랬다. 집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교회에 가는데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렇게 멀리 중학교 1학년이 다닌다는 것이 재밌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서 천천히 나서서 사도신경 외울 때 들어가서 뒤에 조용히 있다가, 다들 일어서서 주기도문을 외울 때, 나와서 집으로 가 버렸다.

 

중학교 시절 덕이는 중등부의 예배는 자기가 참석하는 것이 다 인줄 알았다. 보통은 예배를 마치고 성경 분반 공부가 있었는데 덕이는 그런 것이 있는 줄로 몰랐다. 사주신앙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 간을 다녔지만 아무리 애쓰도 재미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개척교회에서 비록 방언을 받는 것에는 실패했었지만 그래도 인정 받는다고 생각하며 다니다가 투명인간 처럼 왔다갔다 하는 교회가 재미있었을리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덕이는 일탈을 하게 된다. 교회에 간다고 나서서는 엄마가 헌금하라고 준 돈을 가지고 만화방으로 간 것이다. 처음에는 엄청 간 떨리는 일이었지만 한번 두번 가다보니 이내 익숙해졌다. 그러자 덕이는 일요일이면 아예 교회 대신에 만화방으로 갔다. 하지만 그게 오래 갈 일은 아니었다. J교회의 중등부 전도사님은 덕이 엄마와 아주 친한 관계였다. 덕이 엄마는 가난한 신학생을 위한 장학회 임원을 맡고 계셨는데, 중등부 전도사님은 그 장학금의 수혜자였던 것이었다. 덕이는 그것도 모르고 아무 일 없겠거니 하고 만화방을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느 날, 교회에서 전도사님은 덕이의 엄마에게 덕이가 교회에 안오는 이유를 물었고, 덕이의 엄마는 그럴리 없다며 한 주도 그러지 않고 일요일마다 교회 간다고 갔었다고 알고 있었던 덕이의 엄마는 결국 교회에 다녀온 날 덕이를 불러서 다그쳤고, 덕이는 모든 것이 들통 나서 엄마에게 종아리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덕이는 두꺼운 양말을 올려 신고는 매 맞는 것을 감해보려 했다. 덕이의 엄마는 그것을 몰랐을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덕이는 교회에 안간다는 이유로 맞아야 하는 것이 나름 억울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덕이는 만화방을 갈 수 없었다. 교회로 돌아간 첫 주일, 전도사님은 덕이를 따뜻하게 맞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주기도문을 외우고 집에 가려는데 전도사님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웃으면서 "성경분반 공부 하고 가야지" 하며 성경공부 반에 데려다 주었는데, 덕이의 마음에는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면 됐지, 이건 뭐하는거야?" 했지만, 지은 죄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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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짐승과 육축과 땅에 기는 것을 만드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에 대하여는 다음에 이야기 해 보기로 하고, 짐승은 뭐고 육축은 무엇이며 땅에 기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자.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성경에 아무리 많은 짐승이나 식물이 나와도 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것이 다 사람에게 뭔가 말씀하시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내용은 사람이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표현된 것들은 다 형식이라는 것이다. 심청전에 아무리 많은 글자가 있어도 다 뭐를 이야기 하는 것이냐 하면, 그것은 오직 <효(孝)>를 이야기 하는 것이듯이 성경의 모든 이야기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창조의 과정 역시 사람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해도 어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짐승과 같고, 어떤 인간은 벌레와 같고, 어떤 인간은 죽은 것과 같으며, 어떤 인간은 다섯째 날에 나오는 바닷 속의 생명, 곧 세상의 법으로 성공하며 사는 물고기 같으며, 또 어떤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새와 같이 근거 없이 신비한 것만 좇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각양의 인간들이 다 천지창조의 과정과 같이 각 과정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하나님께서 안식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창조해 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에 동물을 크게 세 종류로 나누신 것도 다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먼저 땅에 기는 것을 보자. 땅에 긴다는 것은 땅과 별다른 구분이 없는 모양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셨다. 땅은 흙으로 되어 있는데, 흙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땅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땅과는 구분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기는 것이라는 것은 아직 흙이 사람이 되지 못한 존재를 말하는 것으로 아직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지 못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대표적으로 뱀을 말하는 것으로 뱀은 가장 간사한 것이라고 했다. 즉 흙이 하나님의 호흡을 받아 땅과 구분되지 않은 상태, 즉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지 않은 상태일 때는 가장 간사한 존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 간사함이 결국 선악과를 먹도록 부축이게 된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처럼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려 한다는 자체가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악과는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이것은 선하다 저것은 악하다 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의 일을 보고 이것은 선하다 저것은 악하다 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아직 땅에 기는 뱀과 같이 간사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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