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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기독교인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3. 6. 30. 11:11 Writer : 김홍덕

어느날 버스를 타는데 버스 기사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으니 기분도 좋고 속으로 '이런 분이 다 있네'하면서 나도 "네 안녕하세요?"하고 웃으며 승차했다. 그 이후에도 버스 기사는 타는 사람, 그리고 내리는 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보기 좋았다.


그런데 이 버스기사가 뭐라고 말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버스정류장에 진입할 때 마다, 이번 정류장과 연계된 시민들이 주로 찾는 목적지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좀 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육성으로 인사하듯 말하니 그것이 잘 들리지 않고 계속 들으니 소음과 같이 들렸다.


그러다, 정류장 사이가 긴 코스를 지날 때, 이 기사는 뭐랄까 오늘의 명언과 같은, 마음을 다스리는 글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정류장에 연계된 목적지 안내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사람은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이래야만 하는 일, '이렇게 해야된다'는 일을 하는 차원에서 말을 하고 있구나 !' 싶었다.


승차하는 승객들에게 인사하는 기사는 보기에 아름답지만, 성객을 가르치려하고 훈계하려는 사람은 피곤한 것이다. 교훈은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이 아니다. 교훈은 명확한 수요 앞에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선택의 여지는 늘 있어야 한다. 성경 잠언에는 "새벽에 큰 소리로 이웃을 축복하면 그는 저주로 들을 거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즉 "내가 잘 못했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소란은 "세상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고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운 법이다. 특히나  기존의 기독교인들이 이런 행동에 매몰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온 세상의 일을 다 고치려 든다. 그것 때문에 시끄럽다.


동성애가 어떻고, 북한 인권이 어떻고, WCC를 개최하느니 반대하느니 등등 시끄럽다.그렇지만 그런 문제들은 다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들이 있고, 교계에도 내가 볼 때 불필요한 조직이지만, 그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기독교인들이 만든 총회와 같은 조직도 있다. 그들에게 맡기면 된다. 그게 아니면 시끄럽게 외치지 말고 자신이 그런 일을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기 까지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그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면 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런 일에 그렇게 시끄럽게 굴고, 마치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세상이 망할 것 같이, 때로 교회가 망할 것 처럼 떠드는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다. "너희 천부께서 다 아시느니라"한 예수님의 말씀은 버리고, 자기가 생각할 때 의로운 것만 남은 머리없는 열열투사들인 것이다.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지만 그것 때문에 세상이 망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교회가 망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한국교회가 망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것에 휘둘릴 신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전지 전능한 하나님이 아닌가? 그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세상 일을 그렇게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그것은 선악과를 먹고 의로움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제법 시끄럽다. 세상을 바꾸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믿는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이 세상의 주인으로 믿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믿음에 충실하면 된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일로 손상 당하는 그런 신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섭리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성품 아래 순종하고, 정말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 대하여 묵상함이 옳은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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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지창조는 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가에 대한 말씀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는 인간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 할 때 어떤 것을 물과 같이 취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궁창 위의 물,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갈증을 해갈해야 했고, 궁창 아래의 물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궁창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셨다 했다. 그렇게 땅이 드러나듯 사람이 궁창 아래의 물을 마시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낮과 밤에 관하여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은 어떤 세계를 하나님의 영역 밖으로 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는 악한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세상의 어떤 일부라도 하나님이 싸워야 할 대상, 하나님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부정하고 어둡고 한 것은 다 사람의 관점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하셨다. 어둠이라고는 전혀 그 분의 정체성 안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악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관점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이 사람 안에 들어간 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사건인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못되는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한다. 즉 밤이 오는 것을 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신앙 안에서도 늘 밝은 날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낮과 밤이 공존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드신 과정을 말씀하신 것이, 사람이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의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삶 안에서 낮과 밤이 공존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과정이요,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인생사도 그렇거니와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날은 영광스럽다가 또 어떤 날은 찌그러지듯 힘들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밤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발악하듯 기도하고 몸부림치고, 또 때로 삶이 곤고해지면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밤과 같은 시절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노하심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피하려 하고 부정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밤과 낮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은 우리 삶의 여정 그리고 또한 신앙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좋은 일과 힘든 일을 어떻게 받아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제대로 받아들여서 하나님과 같이 그런 일이 있음이 좋은 것이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 살아 있다는 증거로서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바로 네 번째 창조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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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이야기 하기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3. 6. 29. 01:26 Writer : 김홍덕

얼마간 블로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이때껏 개인사업이랍시고 판 벌려 놓고 놀다시피 하다가 회사에 들어가게 되어 이전과는 주어진 시간이 좀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글을 써내려가고 싶고, 그렇게 할 생각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정상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 사는 이야기일까? 엄친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대화하는 두사람 중 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다른 한 사람의 아는 사람이 성공한 이야기, 복권 당첨류에 해당하는 이야기, 아니면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이야기일까?


언젠가 공부하는 교회 청년 격려 차원에서 점심을 대접하러 간 식당에서 보니, 우리 옆에 식탁에 4명의 남자가 앉았는데, 앉자마자 바로 각자의 스마트폰에 열중하느라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먹던 반찬이 모자라니 식당 아줌마 부른다고 한사람이 폰이 아닌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외에는 식사를 마칠때까지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는 폰으로 딴데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듯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실례인 세상이다. 심지어 그것은 법제화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온 세상이 그런 것은 다행이 아니다. 내가 속한 교회의 성도들은 왠만한 집의 디지탈키 번호를 다 알고 있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도 예삿일에 속한다. 어떻게 보면 무례한 일이고 시대적 상황에 역행하는 짓 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는 <사생활 보호>가 예의라 여기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평안이 있다.


교회는 그래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같이 살려는 사람들의 신앙 공동체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그리스도는 고상한 분이 아니다. 그 시대로 보면 개판 5분전의 생활을 하신 분이다. 세리와 창년 죄인들과 밥 먹고 놀고, 안식일에 남의 밀이나 까 먹고, 성전에서 상을 엎고, 세금도 안내고, 뭐 하나 고상한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분이셨다. 그리고 그 고상하지 않음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지금의 많은 교회들, 직장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서는 사적인 이야기가 없다. 서로 고상해진 모습으로 만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전혀 고상하지 않다. 집에서는 발가벗고 쫓아 다니는 것이 더 편한 그냥 그런 사람들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자유를 억제하고 자신은 절대 똥도 안누는 사람처럼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예의가 된 세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 좋은 것이라 여기는 교회가 된 세상이다.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 그것은 어쩌면 어디서나 똑같은 인간을 이야기하고, 너와 나 모두가 다 그냥 화장실가서 똥 싸는 그런 고상하지 않는 삶도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를 편히 나누며, 사람이 사람으로 안식하는 것 그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어디 교회만의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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