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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이 이상한 자신감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8. 19. 00:00 Writer : 김홍덕

덕이는 그렇게 외형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내성적인 아이였다. 적어도 중학교 3학년때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교회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되면서 점점 외형적인 성향의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방언이라던가, 성경에 대한 지식과 같은 것에 대하여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부터 덕이는 이전과는 좀 다른 성향의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덕이는 중학교 3학년때 까지는 학교에서 크게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그러던 덕이는 교회에서 뭔가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가면서 그것이 사회에서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서의 경쟁력이 세상의 경쟁력과 같다는 착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기본적인 학력은 유지하고 있었기에 고등학교 입시 시험인 '연합고사'를 무난히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수준의 성적을 얻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방언을 하기 시작한 이후 덕이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방언이라든가, 성경 퀴즈 대회에서 입상한다는 것을 세상의 보편적인 경쟁의 승자와 같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덕이는 예를 들어 방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해도 되는 지위를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덕이의 착각은 사람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었었지만, 덕이의 착각은 그치질 않았다. 점점 더 그런 생각에 빠져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덕이가 말 끝 마다 방언을 들먹이거나, 말 끝 마다 성경을 들먹여서 사람들을 기죽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차별을 두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행동 양식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분명했다.


한때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덕이는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덕이가 그런 말을 하겠다 싶은 타이밍이 되면 주변의 사람들이 먼저 할 정도로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덕이가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가지고 살았던 것에 기인한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쨋던 이전까지 조용한 아이였던 덕이는 이때부터 어디가도 눈에 띠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덕이는 머리가 참 좋았다. 그리고 순발력이 대단했다. 그런 덕이의 능력은 순간적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말을 하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나타냈는데, 덕이는 그런 자기 모습을 좋아했다. 아니 그런 자기 모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덕이는 고 1 교회 수련회를 앞두고 수련회에 가서 수련활동을 열심히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장난을 준비했엇다. 친구들을 모아서 돈을 좀 모아서 당시 유행했던 산도 과자를 사서 중간의 크림은 발라 먹고 치약을 발라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돈이 모자라 산도가 아닌 작은 샌드과자를 사서 준비했다. 또 껌 뒷면에는 습자지를 붙이고, 교련복을 입고 가기로 하고 수통에는 보리차와, 식초 탄 물, 소금 탄 물을 따로 담아서 수련회를 출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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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 선악과를 먹다..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8. 17. 22:28 Writer : 김홍덕

방언을 받은 덕이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나름 교회라는 공간이 요구하는 몇가지 자격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신앙을 논하는 것에 있어 기준이 되는 것들에 있어 앞선 사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뒤쳐진 사람이라거나 모자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은 덕이도 그렇게 느꼈지만 교회라는 공간이 사실 그런 곳이기도 했다. 신앙적인 자격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는 없지만 불문율 처럼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나,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신앙이 좋다는 인식이 있다.


덕이는 이제 방언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교회에서 표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거나 아니면 덕이의 실제적인 입지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덕이 스스로가 느끼는 자부심도 있었고, 또한 아닌 것 같아도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어린 학생이 방언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훈장과 같은 것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교회가 그래서는 안된다. 교회는 사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듣고 배우고 나누는 곳이지, 한 사람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주제가 되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실제로는 그런 곳이 또한 교회이기도 하다. 겸손한 사람보다는 돈 많고, 교회 안에서 세력이 많은 사람이 장로가 되기 쉬운 곳이 교회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도 없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렇다는 것이다.


덕이는 스스로도 잘 느끼지 못했지만 마음에 자부심이 커져만 갔다. 몇번 참석하지 않은 성경공부로 실제로는 아는 것도 없었지만 자신이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도 우스운 모습이지만 자부심을 가진다는데야 뭐 할 말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다가 어른들도 하지 않는 기도회를 해 가면서 방언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선민 의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덕이의 마음에는 자신이 4대째 예수를 믿는 집안의 아들로서, 이 교회가 세워질 때 부터 다니고 있는 집안의 사람으로서, 또한 남들 못하는 방언을 하고, 성경도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다 자신의 공로나 유전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처럼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유전이나 자기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방언도 하고 성경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덕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수련회때는 성경퀴즈 대회에 1등을 했고, 2학년이 되어서는 성경 전체를 통독했다. 그 이후에도 성경퀴즈 대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하는 족족 거의 1등을 했다. 이런 덕이에게 교회 생활은 그야 말로 물 만난 고기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누가 뭐래도 자기가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키우는 것이었지만 덕이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덕이 안에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방언을 할 줄 아는 사람과 아닌 사람, 성경을 한번이라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저녁 예배를 나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같이, 덕이 자신은 하고 있는데 하지 않는 사람을 명확히 구분하는 마음이 서서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선악과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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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목적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기를 구하고, 평안하게 되기를 구하고, 또한 이 땅에서 영광을 얻게 되기를 구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다 존재와 신앙의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 아무리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라고 교묘하게 변론해도 다 그것은 속이는 것일 뿐, 자신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공식을 가진 모든 이들은 다 짐승과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한다. 물론 기존의 교회에서도 기복신앙을 떨치려 하지만 실상은 그 중심에 있다. 교회에서 장로가 되려면 세상적인 조건이 좋아야 한다. 이것의 뿌리는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이 결국은 기왕이면 좋은 것일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교회도 화려하게 짓고, 자신의 삶이 윤택해 질수록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자신의 삶을 윤택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즉 자기 신앙의 목적이 자신에게 있는 사람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 두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짐승이 초원을 자기의 집으로 삼듯이 말이다. 좋다는 모든 것이 다 세상적 기준으로 좋다는 것 아닌가? 좋은 자재로 교회를 지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서 좋다는 자재를 말하는 것이고, 내가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여긴다는 것은 더 적날한 것이다.


또한 신앙을 가졌다 하면서 사람이 가진 육신의 어떠함에 대하여, 또한 육신의 행동에 대하여 어떤 것은 선한 것이고 어떤 것은 악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마음을 가진 모든 신앙은 땅에 기는 뱀의 마음을 가진 것이다. 싸가지 없다고, 교회에서 인사하지 않는다고, 또 헌금 많이 하지 않는다고, 지각한다고, 또는 세상에서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는 모든 것은 다 육신의 행위를 보고 선하다 악하다 판단하는 것이다.


사람이 싸우고 다투는 이유는 딱 한가지라 했다. <너는 틀렸고, 나는 맞다> 이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다툼 가운데, 또는 갈등 가운데 있다는 것은 다 이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과 악에 대하여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땅에 기는 짐승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천지 창조의 과정에서 옆길로 간 것이다. 결국 땅에 기는 것과 짐승들과 육축 중에서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은 육축이기 때문이다. 이는 육축은 자기 정체성을 주인에게 맡기는 존재이고, 이것은 하나님께 사람이 자기의 정체성을 의탁하는 것에 대한 예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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