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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는 표현을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창 1:26)라고 하셨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단연 <우리>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하나님께서 누구와 함께 계셨기에 <우리>라는 표현을 하셨는가? 또 하나님이 <우리>라고 하는 대상들은 곧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그것은 이내 <삼위일체>라는 개념을 떠 올리게 된다.


물론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형상대로>라는 복수의 인칭으로 표현하시는 것이다.(이것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하지만 여기에 눈에 띄는 표현이 또 하나 있는데, 형상이라는 것에 대한 영어 단어이다.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imag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이것은 형태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타난 형태적 모양의 원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미지(image)라는 것은 어떤 표현된 것의 원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진이 있다면 그 사진 속의 원 피사체가 사진의 이미지인 것이다. 네오나드로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를 위해 그린 부인 엘리자베타(Elisabetta)를 그린 초상 이미지이다. 즉, 모나리자의 이미지는 엘리자베타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이미지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표현된 것이 없으면 알 수 없는 것을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지에 대한 개념을 설명할 때, "그 무엇에 대한 이미지"라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지는 어떤 실체로 현상화 되었을 때 비로서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엘리자베타(Elisabetta)의 이미지가 형상화 된 것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기시 때문에, 인지하거나 느낄 수 없으나 실존하는 분이기에 마치 이미지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미지라는 것은 사진이 되었던, 그림이 되었던, 시가 되었던 간에 표현 되었을 때 그 실존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미지 이듯이 하나님 역시 어떤 실존을 통해 표현되었을 때 비로소 인지할 수 있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에 관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이미지가 실존화 된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사람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실존하지만 알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상계에서는 의미가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치 사진이 있어야 이미지가 표현되고, 옮겨지고, 만져질 수 있듯이 말이다.


이는 천지창조의 전과정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적인 하나님을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상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지 않은 태초 이전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그 이미지를 따라 사람을 만드심으로 하나님이 나타난 바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태초인 것이다. 그리고 하루 하루 창조되는 과정이 그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인식해 가는 과정이고, 또한 그 이미지를 인식해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떤 현상과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이미지라는 것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말씀 중의 하나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요한 복음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라는 표현이 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는 "원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즉 이미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미지가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존재이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표현된 존재를 성경은 <그리스도>라고 하며,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바로 그 사람이며, 결정적으로 우리가 바로 그들과 같은 성정을 가진 동일한 사람이라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이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바로 하나님의 이미지가 형상화된 사람이요,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을 표현한 존재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그런 천지창조, 곧 하나님께서 온전히 사람으로 나타나신 첫 열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그 예수께서 그리스도 되심을 보고, 나 또한 그리스도와 동일한 격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나의 천지창조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나와 같은 육신, 나와 같은 연약한 육신, 나 처럼 화도 내고, 찌르면 피나는 육신을 가진 종일한 분이셨기 때문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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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만 치던 수련회 속의 기적?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8. 23. 12:12 Writer : 김홍덕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수련회는 덕이에게는 추억이 될 수 있지만, 교회로 봐서는 엉망인 수련회였다. 덕이와 친구들은 수련회 출발 전에 장난을 위하여 많은 준비를 했다. 밤에 숙소를 돌아다니며 얼굴에 낙서할 준비와, 음식에 탈 소금과 식초 등등... 그리고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수련회의 어떤 저녁, 덕이와 친구들은 자진해서 식판을 나르겠다고 나서서는 식판 몇개 건너 하나씩 소금이나 식초를 국에 탔다. 그날 저녁 메뉴는 미역국이었는데, 식사시간이 거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구는 짜다고 소리치고, 누구는 시다고 소리치는 난리가 난 식사시간이었다. 더욱이 덕이와 친구들은 식수 주전자 3개 중의 하나에도 식초를 타 두었기 때문에, 짜거나 시다고 물을 마신 이들조차 소리를 치고 난리였다.


수련회 마지막날 덕이와 친구들은 대학생 형들의 삼엄한 경비 속에 정해진 자리에서 잘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숙소를 돌며 얼굴에 낙서를 하겠다는 꿈이 조각이 난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다음날 일어나서는 세수하고 오는 사람들의 머리와 얼굴에 치약을 바르고 다녔다. 당시 막 크로즈업이라고 녹색과 빨간색의 색상 있는 치약이 나왔기 때문에 학생들은 머리에 무스를 바른 것 처럼 하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장난을 하는 동안 중요한 일이 있었다. 물놀이를 갔었는데, 고3 누나 하나가 물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물은 겨우 무릎이나 허벅지 정도의 깊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 누나는 실제로는 물에 빠진 상태였던 것이다. 다들 웃고 있었는데, 덕이의 친구 하나가 이상하게 여겨 들어가보니 놀라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그 친구가 그때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지경이었다.


수련회 오기 전, 기도로 수련회를 준비하는 것이 너무 부족하다며 덕이를 비롯한 몇명이 모여서 수련회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었다. 덕이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3명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다. 그래서 덕이는 더 큰소리로 기도했고, 말 그대로 펄쩍펄쩍 뛰면서 기도를 했었다. 그러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덕이는 기도로 악령을 이긴 것이라 생각했고 너무 기뻐 눈을 떠 보니, 기도하던 사람들이 제법 큰 원을 그리고 앉아서 시작했는데 다들 머리를 맞댈 정도로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이긴 느낌을 그 모두가 느꼈던 것이었다.


당시 덕이에게 그런 경험은 흔한 경험이었지만, 그날은 그래도 좀 달랐다. 모두가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고, 또 모두가 간절함으로 기도함으로 그것을 이겼다고 느끼며 즐거워하고 일부는 춤도 추었던 경험이었다. 그 구성원 중의 하나가 바로 물에 빠진 누나를 물에서 건진 것이었다. 그리고 덕이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날 기도회때 마귀를 이기지 못했다면 누나는 죽었을거야"라고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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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것이라도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 최종 목적인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다 마지막 목적 안에 수렴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에는 아무 것도 만들지 않으셨다. 오히려 쉬셨다. 그것은 목적하신 바가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 천지 창조의 과정은 계속 이야기 해 왔듯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는지를 설명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마지막 최종 창조물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을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어떤 창조물도 사람이 인지할 때 창조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그 누구라도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세상이 수 없이 창조되었다 해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을 기준으로 볼 때, 태어나는 시점이 천지가 창조된 시간인 것이다. 이런 주관적인 해석을 배척하면 성경은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도올 김영옥 교수의 말 처럼 그냥 이스라엘 역사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의 최종 결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어떻게 정립되는 과정이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의미 없는 세상이 태어남으로서 시작되었고,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가 쟁점이 아니라 태어나서 어떻게 인식해 가느냐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그것이 천지창조라는 것이다.


천지창조는, 한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정립되는 과정


물론 객관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어떤 시점에 이 물리적인 세상의 시작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시작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하다못해 100년 전의 일도 나에게 오늘 저녁 메뉴보다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시간의 시작은 없다고 봐야 한다. 시간을 객관적으로 본다고 할 때, <시작>이 있다면 단순하게 생각해도 <시작 그 이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객관적인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시작의 시점이 언제인지 밝혀서 그것을 <태초>라고 규정하려는 관점은 자신이 정체성인 객관성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시간의 시작이 그 세계의 <태초>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것과 같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지는 한 단계 한 단계가 바로 천지창조의 하루 하루인 것이다. 바다가 어떻게 형성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다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기준이 무엇인가 할 때, 하나님의 세계로서 나에게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천지창조인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이 나에게 하나님의 의미로 다가 올 때, 그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시작과 창조과정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빛이 내게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어둡던 곳에서 빛을 만나 인식을 가지게 되듯, 하나님을 모르는 어두움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는 시점이 바로 첫째 날인 것이다. 성경이 이렇게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면 단언코 내가 믿을 경전은 아니다. 경배할 경전일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천지창조는 사람을 만드신 과정이다. 아니,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를 인식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끝이 무엇인가 할 때, 사람이 사람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지창조인 것이다. 사람을 바로 안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무엇으로 부터 만들어졌고, 무엇을 위하여 창조되었는지를 아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천지창조이듯이 사람을 바로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여섯째 날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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