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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짐승과 육축과 땅에 기는 것을 만드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에 대하여는 다음에 이야기 해 보기로 하고, 짐승은 뭐고 육축은 무엇이며 땅에 기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자.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성경에 아무리 많은 짐승이나 식물이 나와도 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것이 다 사람에게 뭔가 말씀하시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내용은 사람이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표현된 것들은 다 형식이라는 것이다. 심청전에 아무리 많은 글자가 있어도 다 뭐를 이야기 하는 것이냐 하면, 그것은 오직 <효(孝)>를 이야기 하는 것이듯이 성경의 모든 이야기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창조의 과정 역시 사람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해도 어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짐승과 같고, 어떤 인간은 벌레와 같고, 어떤 인간은 죽은 것과 같으며, 어떤 인간은 다섯째 날에 나오는 바닷 속의 생명, 곧 세상의 법으로 성공하며 사는 물고기 같으며, 또 어떤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새와 같이 근거 없이 신비한 것만 좇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각양의 인간들이 다 천지창조의 과정과 같이 각 과정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하나님께서 안식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창조해 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섯째 날에 동물을 크게 세 종류로 나누신 것도 다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먼저 땅에 기는 것을 보자. 땅에 긴다는 것은 땅과 별다른 구분이 없는 모양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셨다. 땅은 흙으로 되어 있는데, 흙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땅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땅과는 구분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기는 것이라는 것은 아직 흙이 사람이 되지 못한 존재를 말하는 것으로 아직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지 못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대표적으로 뱀을 말하는 것으로 뱀은 가장 간사한 것이라고 했다. 즉 흙이 하나님의 호흡을 받아 땅과 구분되지 않은 상태, 즉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지 않은 상태일 때는 가장 간사한 존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 간사함이 결국 선악과를 먹도록 부축이게 된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처럼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려 한다는 자체가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악과는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이것은 선하다 저것은 악하다 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의 일을 보고 이것은 선하다 저것은 악하다 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아직 땅에 기는 뱀과 같이 간사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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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는 총 6일간 이루어졌다. 이 하루 하루는 달력에서 보는 그런 하루로 국한해서 볼 것이 아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그것이 천년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 생각 역시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루 만에 모든 짐승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려니 뭔가 부족하니 천년이 하구 같다 했으니 24시간인 하루 * 365일 * 1000년이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해도 생각의 기본 개념은 하루 = 24시간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그것은 시간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이 천지창조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천체물리학적으로 이 지구가 또는 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기록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데, 사람에게 굳이 그것을 이리 강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역시 그런 객관적인 시간 개념에 입각한 말씀이 아니다.

 

천지창조의 과정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것을 기록하셔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하루 하루의 창조 내용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한 과정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한 과정 과정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도 자기 정체성도 모르는 혼돈의 세계에 있다가 하나님에 대하여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 세계에 대한 태초가 열리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지한다는 것은 빛이 비추어져 어둡던 세계가 밝아지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즉 컴퓨터에 대하여 어두운 컴맹이 컴퓨터에 대하여 밝아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빛이라고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자기 정체성과 하나님에 대하여 어두운 사람이었다가 알게 되는 과정을 빛의 창조라고 하고, 그것이 처음 과정 즉 첫째 날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 천지창조의 과정은 다 그렇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어진다는 둘째 날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아 정체성의 갈증에 대하여 어떤 물을 먹어야 하는지를 구분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즉 생활용수도 상수와 하수가 있듯이, 자아 정체성의 갈증을 해갈하기 위하여 하늘에 있는 물,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실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학문으로 자아 정체성을 찾을 것인가를 구분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런 것을 알게되는 과정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에 있는데 이것이 빛을 만나고 나면 연이어 거치는 과정으로 이것을 둘째 날이라고 하신 것이다.

 

천지창조의 6일은 이런 것이다. 그 5일간의 과정에 대하여는 앞에서 계속 이야기해 왔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에 나오는 하루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객관화된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한 과정 한 과정을 하루 하루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달력으로 단 하루 만에 이 천지창조의 과정이 다 열리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이가 백살이라도 이 천지창조의 첫날도 맞이하지 못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달력이 3,000년이 되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아직 태초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가 천년 같기도 하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천지창조에 나오는 하루의 개념이고 의미인 것이다. 그렇게 진행된 천지창조의 과정 그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은 어떤 과정인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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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을 받고 싶었던 소년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8. 8. 17:35 Writer : 김홍덕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제가 어떻게 이러한 신앙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처럼 소개하려 합니다. 그냥 저의 생각만 올려도 되지만,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조금이라도 소개해 간다면 이 블로그에 펼친 저의 신앙관과 신앙적 관점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이야기는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60년대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그냥 보통 사람의 신앙 여정입니다. 저는 그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사람, 또 거저 평범한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 그 누구라도 이러한 신앙적 관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78년 덕이의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은 교회의 <성경 하기 학교>와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 덕이의 부모님은 덕이의 증조모때 부터 다니던 교회를 떠나서 집 가까운 개척교회에 나가셨고, 덕이도 동생과 함께 그 개척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부모님이 이전에 다니시던 교회는 초등학생인 덕이의 집에서 제법 먼 곳에 있었다.

 

그 개척교회는 이제 막 개척한 교회이기도 했고, 또한 7,80년대 한국교회는 부흥회라는 큰 흐름이 있었기에 그 교회도 일년에 몇 번씩 부흥회를 했다. 지금으로 치면 길 가의 점포 1층에 난방 같은 것은 없고, 그냥 장판만 깔고 20여평 되는 공간에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는 것이 부흥회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덕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부흥회에 자주 가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교를 듣고는 같이 기도하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몇 십 분씩 기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눈을 뜨고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둘러보곤 했다.

 

사실 그 당시 중등교사였던 덕이의 아버지는 친척의 사업에 보증을 섰다가 큰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당시 덕이가 살던 20평짜리 아파트는 500여만원이었는데 아버지가 갚아야 할 돈은 3,00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5,6층짜리 건물을 하나 살만한 돈이다. 그런 상황에 있었으니 덕이의 어머니는 부흥회에 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 밖에는 대책이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덕이는 그때까지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냥 엄마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일 년에 몇 번씩 하는 부흥회를 계속 따라 다니다가 보니,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지만, 자주 가다가 보니 점점 그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설교를 듣다보니 그것을 <방언>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이가 다니던 교회에는 덕이의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여집사님의 딸을 비롯해서 학교에 등하교를 같이 하는 친구들을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작은 덩치의 덕이보다 더 커 보이는 그 아이도 늘 부흥회에 오곤 했다. 그 아이는 덕이가 사는 아파트 뒤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부친은 역시 교사였다. 덕이는 그 아이를 이성으로 까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교회를 같이 다니는 이상 교회에서 하는 일은 더 잘 하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같이 노는 친구들 보다 더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덕이는 그 방언이라는 것을 자기도 할 수 있게 된다면 아이들이 자기를 우르러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덕이는 통성기도 할 때 같이 목이 쉬라고 기도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그런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치고는 힘에 부치게 기도하긴 했지만, 뭐 그게 될 일은 아니었다. 또 한 가지 덕이는 엄마를 따라 새벽기도회를 가기도 했다. 그 마음에는 그 개척교회의 초딩들 중에서는 예수를 가장 잘 믿는 아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간절한 엄마를 따라 이것저것 교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것들을 그저 따라 했다.

 

나름 성과는 있었다. 어른들이 보기에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교회의 모든 예배와 부흥회에 다 와서는 설교도 듣고 있고, 같이 통성기도도 하고, 끝나면 엄마와 같이 집에 가고,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청년부 형들과 복조리 돌리는 것도 따라 다니는 모습은 작은 개척 교회의 어른들에게 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고, 덕이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방언은 도무지 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덕이는 부흥회에서 부흥강사가 교회의 작정 헌금을 받겠다고 하는 것을 듣고는 자기도 5,000원을 하겠다고 작정을 했다. 덕이의 부모님은 큰 빚을 지고 있어서 덕이는 용돈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작정을 했다. 그 당시 탁구장에서 탁구 한 시간 치는데 300원을 주었다. 지금은 5~6,000원 정도다. 그 당시 초딩에게 5,000원은 개념도 없을 정도의 금액이었는데, 덜렁 작정해 놓고 헌금은 내지 못했다.

 

덕이는 방언도 받지 못했다. 교회에서 칭찬을 듣기는 했지만, 마음에는 작정한 헌금 5,000원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면서 또래들보다 교회 생활 잘 하는 아이라는 소리 듣고 싶어서, 방언을 받고 싶어서 열심을 내어 본 교회 생활이 신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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