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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가 열렸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 세상의 어떤 일부에 국한된 세계로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로마신화처럼 바다에는 포세이돈이 있고, 술은 박카스가 관장하듯이 이 세상의 일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관장하시고 그것에 대하여 눈을 뜨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라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은 논제로도 삼지 않을 정도의 기본 베이스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어떤 안목으로 보게되는가 하는 것이 천지창조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어떤 안목으로, 어떤 가치관으로 보게 되는 것인가 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 바로 창세기의 <천지창조>인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지관과는 좀 다른 가치관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어떤 차별성이나 특이함이 하나님의 세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잘못된 것에 대한 바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땅이 혼돈하고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하신 것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 그러니까 하나님의 천지창조 전,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관을 가지기 전의 사람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땅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창조 전 땅의 혼돈은 그 가치관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가 땅이 혼돈하는 상태


그 잘못되었다는 가치관의 본질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관인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어쩌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무슨 상관성이 있어, 그 가치관의 차이가 천지창조의 차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라는 가치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혼돈스럽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의 가치관이 바로 정립되는 과정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다(히브리어로는 메시아). 그 의미는 <기름 부은 자>라는 의미이다. 옛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직임에 임명을 하는 자리는 왕,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 이렇게 세 종류가 있었다. 왕은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고, 제사장과 선지자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교통하는 사람을 말한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하는 직분이다.(그런 측면에서 선지자는 제사장 직임의 일부이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낼 때, 왕이요 제사장이라는 표현으로 함축적으로 표현된다.)


왕이라는 것이 사람이 무엇인지, 사람의 대표성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고, 제사장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무엇이지를 말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혼돈 가운데 있다는 것은 사람이 무엇인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이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창조라는 것은 한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하는 과정이 바로 천지창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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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성경의 창세기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 안으로 들어 오는 것,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천지가 창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가 그 사람의 삶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이미지가 삶으로 녹아난 사람, 그 사람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이미지요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표준이요 첫 열매이자 표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이 바로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태초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이미지를 만난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이미지가 그 안에 열렸다는 것은 천지창조의 과정이 그 사람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사람을 보고 그리스도를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창세기의 천지창조이다.


이는 비단 창세기만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삶을 기록한 4복음서의 시작은 이런 면에서 창세기와 동일한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삶을 기록한 성경의 모든 처음이 마치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시작하고,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시작하며, 누가복음은 "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가 되고"라고 시작하고 있으며,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시작하고 있다.






각 복음서의 시작에 <세계>, <시작>, <처음>, <태초>라는 도입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어떤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 새로운 세계와 안목이 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성경들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예수님의 생애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어떤 세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라고 전제하고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요한복음의 경우 이것이 태초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것이 태초이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1장에 보면 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즉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태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는 이 예수님이 인생들이 복음으로 여기는 소식의 시작이라고 하고 있으며, 마태복음은 이것은 하나의 세계인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의 세계라는 것이며, 누가복음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우리 중에 이루어졌으며 우리가 그 말씀의 목격자라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태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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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한 사람이 하나님 세계의 안목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그 사람을 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를 보고 과학이라는 이미지를 알게 되고, 수학자를 보고 수학이라는 이미지를 알게 되듯이 말이다.


성경은 그렇게 한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존재가 있으니 그 존재를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 첫 그리스도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 이신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그를 볼 때 하나님의 누구신지를 알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안다는 것은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알아 들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트>라는 영화가 있다. 안젤리나 졸리라는 유명한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다. 그녀는 어려서 부터 소련의 스파이로 자랐지만 오히려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는데, 어떤 만남을 가지게 되면 자신이 소련의 스파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날 부터 소련의 스파이로 살게 된다는 것을 그린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솔트(안젤리나 졸리 분)라는 여자는 자신의 교관을 만나자 그가 누구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어 자신의 정체성인 스파이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암호나 비밀 같은 것이다. 그냥 평범한 말과 같지만 그것을 알아 듣는다는 것은 그 암호나 비밀의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 듣는 것이다. 즉 그것은 그 말을 들을 때에 내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바로 인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법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다 생물학적인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어떤 이들은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세계가 자기 안에 열려서 이 세상을 보는 안목과 가치관을 하나님의 법에 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사건이 바로 <천지창조>의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창조는 한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이고, 한 사람의 안목이 하나님의 안목과 같아지는 것고, 한 사람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가치관과 동일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지창조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과 가치관과 안목이 같은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라고 하고 그 첫 열매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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