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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지각 않기...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10. 1. 13:34 Writer : 김홍덕

덕이는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교회 학생회 임원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덕이는 그 한 해 고등부 예배에 지각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덕이의 집은 가깝지 않았다. 버스만 25~30분 걸리는 거리였다. 물론 초딩때 부터 그렇게 다녔지만, 중학교 시절 교회를 땡땡이 치기도 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도신경 외울때 도착하는게 부지기수 였는데, 지각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이채로운 것이었다.


한번은 정말 지각할 뻔 했는데, 버스에 내려서 부터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교회 정문까지 빨리 달려가서 교회 정문을 통과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학생회 예배도 교회 정문에서 주보를 나누어주었는데, 그렇게 주보를 받는 순간이 9시 조금 전이었다. 그래서 덕이는 마음 속으로 자신은 지각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는 지각 없이 전출을 했다.


근데, 왜 그랬을까? 지각이 무슨 문제라고? 하다못해 그런다고 상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스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력서에 한 줄 넣으려고......"라고 말이다. 덕이에게 그것은 그런 것의 하나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차별성이었으니까? 아니 적어도 덕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별다른 재주가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하나님을 한번 제대로 믿어보고 싶어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덕이는 교회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마음 하나로 1년간 지각도 없이 교회에 출석했다는 것이 대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은 덕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교회가 무엇을 좋게 여기는 것인가에 대하여 덕이는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다 바로 알아 듣고 해석했다고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교회라는 곳이 교회가 정한 어떤 규칙을 잘 지키면 그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받아 들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교회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물든 덕이는 그것을 벗어 버리기 위하여 자기의 역량이 미치는 삶의 범위 안에서 늘 사투를 벌이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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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천지창조는 한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가? 아니 정확히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모든 말씀과 사건과 이야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경은 지구상에서 오직 사람에게만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인지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이라는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기에, 그 시작이 천지창조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물리적이고 지구과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창조되는 과정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성경의 시작이 당연히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컴퓨터 사용법에 관한 책의 첫페이지를 넘겼다는 것이 컴퓨터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듯이 말이다.






사실 이 물리적인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어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덩어리도 아니고, 모든 사람은 그 세계 안에 들어 왔다가 나가는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에게 있어 천지창조는 세상을 인식할 때 시작되는 것이고, 세상의 종말은 더 이상 세상을 인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가 이 세상의 시작과 종말인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을 아무리 학문적으로 탐구해도 그것 이상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것은 한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로 살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므로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 그리고 천지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고, 그것은 한 개인이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어두웠던 상태에서 알아가게 되는 것, 즉 밝아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밝아져서 결국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을 안식하게 하는 정체성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안식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게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회복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목적이 이루어졌으므로 안식하시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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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하면, 그리스도라는 것이 사는데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그것을 꼭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것은 제쳐 두더라도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종교를 떠나서 국적을 떠나서 사람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고, 또 <나는 누구인가?>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외에도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을 다 가지고 살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하여 어느 누구하나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론 상황에 따라서 개인별로 그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인생을 격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지만, 사람이라면,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의 정체성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뭐 중요하겠는가 싶겠지만 모두가 사람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살면서 그 공통분모인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것은 삶의 근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한 혼돈은 없다. 과학적인 혼돈이 아무리 심하고 그것에 대하여 명쾌한 답이 없어도 어떤 뛰어난 학자가 나와서 말을 하면 그 학설이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아무도 광속으로 날아 본 사람은 없지만, 광속으로 날면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정설이 된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는 어떤 학자가 나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물리학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세계의 용어 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분야의 학자가 있다면 그 말을 듣는다. 반면에 인생이라는 것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누구나 <'너나 나나 다 인생인데 너라고 특별할 것 있나?'>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광속으로 날아본 사람이 없고 이론만 있어도 아이슈타인의 말이 정설이지만, 누구나 살고 실증하는 것이 있지만 정답이 없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즉 아무도 실증해보지 못한 광속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이론 하나로 논란이 없지만 사람이라면 다 실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인생이라는 것은 전문가도 없고 해답도 없다. 너나 나나 다 그 세계 안에 있으니 다 전문가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누구나 인생에 대하여 정의를 내려보지만 그것은 그 사람 혹은 그 사람과 세계가 많이 공유된 사람들의 정의와 가치관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인생의 정의는 아닌 것이다. 이것은 매우 혼돈스러운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다 자기 말이 맞고 자기 세계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인생관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런 가치관은 아예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바로 창세기에서 말하고 있는 땅이 혼돈하는 상태인 것이다.


바로 그런 상태에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인간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인간을 만드신 목적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창조목적이 사람에게 열리는 그것이 바로 천지 창조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니까? 다시 말해서 사람이기만 하면 그 목적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 무엇인가?>하는 것에 대한 해답인 것이다.


바로 이것을 알게 하시는 과정이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상태를 "땅이 혼돈하고"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육신으로 100년을 살았어도 그것이 열리지 않았다면 적어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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