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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사람을 만드시다 (8)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3. 12. 16. 06:22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이름을 <아담>이라고 하셨다. 아담이라는 말의 의미는 <"붉다">라는 뜻이다. 이는 흙을 의미하는 말로 <사람>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사람 = 흙>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흙으로 지으졌고, 또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있다>라고 할 수 없는 상태는 흙과 같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는 사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영과 정신이 없으지면 죽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으려면, 흙에 씨앗이 심기워져서 생명이 있는 나무가 되는 것 같이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서 심기워져서 그 씨앗의 이름을 가진 나무와 열매를 낼 수 있을 때 비로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 씨앗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그 육신을 단련하여 이전과 다른 강한 존재가 되는 것이나, 공부나 예절이라는 겉옷을 입는 것으로 그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는 것에 관하여 훈련하고, 노력하고, 성공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근간이 잘못된 것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기도는 호흡과 같은 것이라 할려고 한다고 되는 것이다. 호흡은 본능이다. 즉 호흡을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어서 호흡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라서 기도하는 것이다. 


즉 이는 사람이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흙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품어 생명이 되었을 때는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군복을 입어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군인이라서 군복을 입는 것이듯이 말이다.


또한 세상에서 성공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관점이 현대 기독교 특히 한국 기독교의 절대적 오류라고 생각한다. 단언컨데 세상의 성공과 하나님의 영광은 절대 무관한 것이다. 세상의 성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예수님은 그 당시에 반드시 사람들의 기대와 같이 왕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데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농부의 영광과 같다. 다시말해서 전혀 생명이 없는 흙에 씨앗을 심어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성품,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육신의 삶의 모양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있다면 육신의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삶을 나타내는 것에 사용되는 것 뿐이다. 육신은 형식이고, 형식은 내용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비로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육신이 숨쉰다고 다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 개인에게 있어 <천지창조>이고 이것을 아는 것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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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사람을 만드시다 (7)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3. 12. 9. 10:49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육신의 문제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함이 주류를 이룬다. 한마디로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보통의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그런 것을 다루지 않고, 고상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 같지만, 그 뼈대는 늘, <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이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명이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말이다. 정말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죽지 않아야 한다. 성공이라는 것이 뭔가? 다른 사람 못하는 것을 이루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다 죽는 세상에서 살아 남아야 성공인 것이다. 그게 아니면 결국 다 실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육신이 잘 먹고 잘 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육신의 범주에서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이다.


사람들이 육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 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이 있다면 그럴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모든 종교 단체의 설교 또한 결국은 육신의 문제를 얼마나 고상하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에 집약되어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육신의 삶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그러니까 이 육신에 깃든 자아 정체성을 밝히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자아 정체성에 대한 정의가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정체성은 위대해지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흙과 같이 씨앗을 품어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미지를 씨앗과 같이 받아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존재의 목적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그렇지 않다. 그저 강해지려 한다. 이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의 과정을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즉 사람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려야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 세계는 바로 그리스도의 세계이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 특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네피림과 같이 혼합된 종교관인 것은 분명하다. 


모든 것을 접어 두고, 더 좋은 건축 자재로 교회를 지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그 가치관, 세상에서 성공할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그 가치관, 그것 하나만으로 이미 흙으로 지으진 사람이 아니라, 흙으로 벽돌을 만드는 시날 광야의 사람들과 같은 모습인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인간의 본성을 감추고 훈련해서 고상하고 능력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훈련과 노력의 과정에 기도와 교회의 강령이 도구와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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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사람을 만드시다 (6)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3. 12. 6. 16:44 Writer : 김홍덕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사람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심이다. 다시말해서 스스로는 생명이 될 수 없지만, 어떤 씨를 받아서 생명이 되는 흙과 같이, 사람도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씨와 같이 받아 들이면 흙이 생명이 되듯,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이미지가 형상화되듯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사람의 위대함은, 흙이 강철보다 약하고, 금보다 천하고 보석 같은 아름다움은 없지만 생명을 낳는 능력이 그 최고의 경쟁력이듯이, 사람 역시 육체를 단련하여 강해지거나, 성형 수술을 해서 아름답게 되거나, 또한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그 정체성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흙이 씨를 받아 나무가 되듯,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나타내는 것에 그 존재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시대 아니,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사람에게 큰 시험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늘 강해지려해서 올림픽이 생기고, 아름다워지려 해서 미녀 선발대회가 생기고, 학식에 관해서 노벨상이 생겼는데, 이는 마치 흙이 철 처럼 되려하고, 흙이 다이아나 금이 되려 하고, 또 보석이 되려함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 자체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의 존재 목적이나 정체성이라고 여기는 것에 있다.


특히나 이러한 것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종교단체, 그 중에서도 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기독교 계통의 종교들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일반적인 종교는 그 근간이 사람의 수행으로 종교적 경지에 이르는 구조지만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소유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을 어느새, 세상에서 성공하는 바탕으로 삼아 버렸기 때문이다. 


즉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가르치는 그 가르침이 사람이 흙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바벨탑을 쌓을 때와 애굽이 피라미드를 쌓기 위해서 흙에 짚을 넣고 굽고 하듯, 흙으로 만드어진 사람을 훈련하고 가공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땅과 같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는데, 사람은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듯, 자신을 가공하고 훈련하면 강해지고 위대해져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신앙의 정체성이라고 또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을까? 왜 유독 사람만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사람으로 알게 하셨을까? 그것이 사람인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만약에 사람이 위대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님은 그야말로 십자가에서 자신의 힘으로 내려왔어야 했다.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정말로 사람이 위대해지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릴 것에 대비하거나 회피하거나 이기기 위하여 운동하고, 기적을 연마하고, 바리새인들에게 공손하셔야 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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