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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물을 마시고 떡(음식)을 먹는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떡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늘로 부터 온 떡이라고 하셨다. 하늘은 곧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먹거리라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먹거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출애굽때에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심으로 예표된 것이기도 하다. 즉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먹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사람에게 알려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나온 땅이 내는 식물을 사람이 먹게 하셨다는 것은 결국 이 땅에서 난 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먹거리는 사람이 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통해서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신비로운 기적으로 내려주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어떤 재화와 용역에 관한 것 까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다고 생각할 만큼 하나님께서 바로 주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궁창 위에 있는 물, 즉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땅이 바다에서 드러남과 같이 고백한 사람이 내는 것이 바로 사람의 먹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 부터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삶과 말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표현이 <교회에 사람보러 가나 하나님 보러 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오셨고, 천지창조 과정을 통해서 땅이 내는 식물, 바다에서는 살 수 없어 드러난 땅과 같이 세상에서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을수가 없음을 고백한 사람의 말과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식물로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낼 수 있는 땅과 같은 존재이신 것이다. 그렇듯 사람에게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먹거리로 삼는 사람, 또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내는 사람, 그 모두가 다 그리스도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a Christ(Christian)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천지창조의 과정이 시작되고 나면 그 사람은 궁창 위의 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고, 바다 같은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는 살 수 없다는 고백을 함으로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분되는 삶을 살게 되고, 그로 인하여 풀과 씨 있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과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이라 인정하는 사람들이 먹을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을 내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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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례는 형식적인 세례에 관한 것은 아니다. 논산 훈련소에서는 해 마다 수 많은 훈련병들이 세례를 받는다. 집례하는 물을 트럭으로 퍼 날라 가면서 세례를 주고 받고 있다. 하지만 세례는 신앙 고백이다. <"인간은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자기가 마실 물로 삼을 수 없구나!">하는 것을 깨달은 후 하나님께 자신도 그런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이 세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물로 세례를 집례하는 것, 그것이 침례든 세례든 그것은 의미 없다. 다시 말해서 그런 형식만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 형식에 걸맞는 내용인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례 의식은 그런 고백을 하고 듣는 사람들의 옷이고 보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라는 형식이 신앙의 증표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내용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세례증서가 세례의 본질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세례고 그런 고백을 한 사람이 보여주는 삶이 바다에서 드러난 땅이 내는 식물이다. <사진 출처:m.jlbook.co.kr>



이디오피아 내시장이 집사 빌립을 만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었을 때,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행 8:36)라고 한 사건이 있는데, 여기를 봐도 이 내시가 이사야서의 말씀이 그리스도에 대한 것임을 알고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무엇이며,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았다는 것은 이 이디오피아 내시장에게 하나님의 천지가 열렸다는 것이고, 바다에서 뭍이 드러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의 사건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사람들의 먹거리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다에서 드러난 땅이 낸 식물이란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사람의 먹거리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하신 것이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다. 즉 궁창 아래의 물속에서는 살 수 없고, 궁창 위의 물이 있어야 산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먹는 하나님의 말씀은 땅이 낸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낸다는 것이다. 사람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그것은 환청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런 관계를 중재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러니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상태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일과 말과 행적을 보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에 대한 말씀 말고 어떤 말씀을 하시겠는가?


이디오피아 내시장의 일을 우리가 볼 때, 지금 이 시대에 이디오피아 내시장이나 빌립 집사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사를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성경에 있고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말씀, 즉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는 일을 하고, 말을 하고, 삶을 사는 사람의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낼 수 있는 삶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본 받아 살게 되어 그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모든 사람의 정체성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고, 이런 사람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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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육신이 섭취하는 것으로 공기와 물과 음식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의 유지와 직결된 요소들이다. 이것은 또한 이 모든 것은 영적으로도 각각 다 대응되는 것이 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하여 육신의 것을 그림자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먹어야 사는 것은 영적인 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사람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갈증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육신의 갈증을 해갈하기 위하여 물을 마시듯이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궁창 위의 물을 말한다. 궁창 아래의 물은 세상의 학문과 사람들이 <"사람은 이래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이다.


천지창조의 과정에서 물에 관한 것이 구분되고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면 그 다음은 먹는 것에 관한 것이다. (호흡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나온다.) 그래서 천지창조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은 어떤 물은 마셔도 되고 어떤 물은 마시면 되지 않듯이 먹는 것 또한 그렇다.





물이 자아 정체성에 대한 해갈이라면, 먹는 것은 자아 정체성의 실현과 그 실현을 위한 에너지의 섭취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먹을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에 대하여 셋째 날과 여섯째 날에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먼저 셋째 날에 궁창 아래의 모든 물이 모인 바다에서 드러난 땅에게 하나님께서는 <풀과 씨 있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식물로 주신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사람의 먹거리라는 것이다. 즉, 이것이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식물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땅이다. 그 땅이라는 곳은 궁창 아래의 모든 물이 모인 바다에서 드러난 땅이다. 이 땅은 세례를 설명하는 것으로 사람이 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으로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해갈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먹는 모든 식물은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식물 곧 사람이 먹는 것은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구분하고 세상의 가치관 안에서 살 수 없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을 식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먹거리고, 그것을 먹는 이가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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