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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정리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1. 22. 07:38 Writer : 김홍덕

사람은 그릇과 같아서 자기 안에 늘 어떤 것을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돈과 명예와 같은 것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그것을 해갈하기 위하여 열심히 살다가 문득, "나는 누구인가?(왜 사는가?)"하는 질문에 맞닥드리게 된다. 그런 질문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런 질문은 삶을 시작하기 전에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모든 인생은 한참을 살고 난 후에, 또는 즉을 때가 다 되어서야 그런 질문을 해 보게 된다.


<왜 사느냐?>,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을 다시 표현해 본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창조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삶은 나를 중심으로 한 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들이 한참을 살고서 근원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는 것이 된다. 그때 쯤이면, 이미 자신만의 세계가 단단히 구축되었을 그 때 생각해 보는 셈이다.


사실 천지창조는 자기 세계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던, 이 사회와 문화가 어떻던, 창조에 대하여 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천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에 대하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도 보기에는 물리적인 세상의 창조과정 같지만, 그 물리적인 세상 조차도 <나>라는 자아가 인식하지 못한다면 논제 자체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지창조는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의 시작에 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어떤 세계가 열리는 것에 대하여, 내가 어떤 세계의 시작을 인식하는 것에 관해서, 내가 어떤 세계에 들어가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이 말씀에 대하여 바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The Fourth Day
The Fourth Day by snowpeak 저작자 표시



그리고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 천지창조는 결국 하나님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의 시작에 관한 말씀이므로, 이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과정에 대하여, 한 개인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에 관해서,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와 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에 관하여 물리적인 세상의 창조과정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 왜 물리적인 세상의 창조과정을 통해서 설명되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시작이 없고, 이런 상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실 때,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설명하기 떄문이라고 하심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그 표현양식을 가지고 설명을 해 가야하기 떄문인 것이다. 


실재로 우리는 수의 개념을 배울 때, <1+1=2>라고 배운다. 하지만 숫자 "1"은 "하나"라는 개념의 표현 양식인 것이다. 이와 같이, 천지창조의 과정에서 인용된 물리적인 세상의 창조과정 역시 다 하나님 세계의 의와 품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용된 표현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라는 형식이 없으신 신의 의와 품성이라는 내용이 세상과 사람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물리적인 세상은 하나님의 품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표현 양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표현 양식을 내용을 알게 하시기 위한 말씀으로 받지 않고, 그냥 문자 그대로, 또한 사실 여부로서 연구하고 믿으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물리적인 세상의 시작 과정에 대하여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을 알면 형식은 따라 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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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1. 20. 12:36 Writer : 김홍덕

성경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관점은 그냥 보면 <남존여비>의 사상으로 일관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육신의 안목으로 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성경을 그렇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오랫동안 여성들이 힘들었고, 중동의 국가들은 아직도 미련하게 그러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Adam & Eve
Adam & Eve by Lawrence OP 저작자 표시비영리


그런 문제나 관점에 관하여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육신의 성별로 차별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남자와 여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영적으로 의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이 육신으로 여자라 할찌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남자인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다 하나님 앞에서는 또 여자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존재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하신 것이다. 즉 영이신 하나님의 의가 사람이라는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 사람을 만드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와 여자로 설명한다면,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육신이 어떻든 영적으로 남자고, 그것을 표현하는 존재는 여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육신의 남자와 여자에 대한 말씀을 하기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어떤 형태로 표현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생기는 아이에 대하여 전통적으로 부계에 귀속 시키는 인류의 역사가 그냥 남자가 힘이 세고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섭리의 그림자와 같은 현상인 것이다. 즉, 영이신 하나님, 내용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신 것이 남녀의 관계에 투영된 것이다. 우리나라 말에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육신으로 남자의 가치를 드 높이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남자의 격을 가진 사람의 의가 육신으로 표현되는 현상이 바로 그런 것이다.(이것을 주기도문에서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셨다.)


성경에서는 또한 하나님께서는 농부로 땅에 씨를 뿌리시고 가꾸시는 분으로 많이 묘사되는데, 우리가 흔히 아이를 잉태하는 과정에서 남자의 유전자를 <씨>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그런 하나님의 섭리가 투영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의 삶의 방식에 깊게 투영된 하나님의 섭리의 근간은 바로 천지창조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에 기인한다.


즉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것이 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영적인 성품을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그것이 나타난 존재를 <그리스도>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 그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 첫 열매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또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이 또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본 성품이신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고 표현한 것이 남자와 여자라는 존재인 것이다. 그 육신적인 삶와 관계성 안에는 그런 하나님의 섭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남여의 관계성을 가지고 남자가 더 나은 존재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각은 처음에 밝힌 바와 같이 이생의 자랑과 같은 집합인 육신적인 안목이다. 자동차를 보고 그 목적이 <이동>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미련함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를 보면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남자인가를 아는 것이 핵심이지, 육신으로 남자와 여자를 나누고 기능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미련의 극치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늘 상대적으로 남자와 같고, 그것을 듣고서 그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잉태하게 되는 사람은 육신의 성별에 무관하게 늘 여자와 같은 것이다.


바로 이것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한 이유이다. 왜냐하면 의는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씨앗은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되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즉 언제나 내용은 형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보는 관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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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1. 18. 08:19 Writer : 김홍덕

남자와 여자는 그 차이가 분명하고,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주제가 될 법한 이야기이다. 또한 일상적인 언론이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유머를 양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여자의 말에 대한 해석>과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다. 그렇듯 다른 것으로 어려워하고, 그 어려운 것들은 문학이나 유머로 승화시키기도 하지만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은 서로가 서로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언제나 여자에 대한 욕심이 있다. 한번씩 생각해 보면 이 사회의 모든 법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결국 여자를 보호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법은 남자들이 여자만 보면 자기 유전자를 남기려는 본능에서 여자에게 선택권을 죽, 그런 본능을 통제하는 것에 법의 존재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절대적 공존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하나의 개념 마저 사라지는 관계라는 것이다. 남자라는 단어조차 여자라는 존재 때문에 있는 것이다. 여자가 없다면, 남자라는 단어나 말이나 개념 조차 필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이 둘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또한 이런 절대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만드셨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과 사람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하나의 놀이나 옵션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괜히 만들어서 늘 하나님을 속 시끄럽게 하는데, 그럴 줄 알면서 왜 이것을 만드시고 생고생을 하시는가 싶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하나다. 그것은 하나님을 몰라서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한 필연적인 것이었고,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고, 이 세상은 현상계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접근해 본다면, 사람이 만드는 모든 물건은 다 이유가 있다. 적어도 그것을 만든 사람의 능력을 입증하는 이유라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용과 형식도 남자와 여자의 관계처럼 하나가 없으면 하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 없는 내용이 없고(존재해도 없는 것과 같이 의미가 없다), 내용 없는 형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물질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보관될 용기가 없는데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사람을 만드신 것은 어떤 선택이 아니라,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나도 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천국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 그것을 봤다는 것은 다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에 한번 밝히도록 하겠다.) 하지만 난 천국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고 만지면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내용과 본질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할 것인데,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떄문이다. 즉, 이 세상의 내용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위하여 베필을 만들었다고 하셨다. 베필이라는 것은 짝이 서로의 모습을 투영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라는 내용이 이 세상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사람 역시 하나님의 성품(image)이 사람이라는 존재로 성육신 된 것이다. 이것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이다. 즉 남자와 여자라는 서로 다른 존재의 관계성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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