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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1. 28. 07:01 Writer : 김홍덕

선악과라고 하면 언뜻, 종교적인 논제인 것 같지만, 사람들의 일상 속에 늘 있는 문제일 뿐 아니라, 알고보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일으키는 모든 갈등의 원인이고, 모든 갈들의 전반을 설명할 수 있는 논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종교적인 관점으로만 본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진정으로 선악과를 먹은 모습이다.


선악과라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사람의 마음이 모티브가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선악과를 먹은 존재로 보시는 것에 반해, 모든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생각과 동일한 논제의 반대편에 있다는 것은 결국 같은 링에 있겠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상대와 내가 같은 급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내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실재로 이 선악과는 사람이 일으키는 모든 갈들의 원인이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일으키는 모든 갈등과 죄악에 대한 해결 방안 역시 동일하게 선악의 관점에서 해결하려 한다. 한마디로 원죄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담과 하와의 생물학적 후손이라서 그들이 지은 원죄가 유전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의 방식 자체가 바로 선악과를 먹은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Serpent and Fruit
Serpent and Fruit by elycefeliz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그렇다면 도무지 선악과는 무엇인가? 정말 아직 확인되지 않은 에덴동산에 있는 한 과일 나무인가? 그것을 한번 이야기 해 보도록 하자. 


한 신혼부부가 있다. 신혼살림을 사러 갔는데, 평소에 삼성의 물건을 좋아하는 남편은 삼성의 물건을 사려하고, 평소에 엘지의 물건을 좋아하던 신부는 엘지의 물건을 사려했다. 그리고 이것은 크든 작든 다툼이 된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서 또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보통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는 누군가는 삼성을 사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엘지가 진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습은 아이폰과 갤럭시의 논쟁이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또 다나와 같은 가격비교 사이트의 사용 후기에서도 볼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이것이 맞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저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한 사람의 눈에는 이것이 선하게 보이고, 또 한 사람의 눈에는 저것이 선해 보인다는 것이다. 선해 보인다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존재라는 증거이다. 즉, 스스로가 어떤 것에 대하여 <"이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증거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명서 어떤 의사 결정에 있어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 것,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존재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하여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마음 안에 어떤 기준을 근거로 그 기준에 부합되면 선한 것(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악한 것(선택하면 안되는 것)이라는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선악과>의 정체인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것과 몸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먹은 것으로 영향을 받은 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채식 주의자들의 삶의 패턴은 당연히 채식이 용이한 삶의 패턴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을 볼 때, <"이것은 선한 것, 저것은 악한 것">이라는 논리가 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사람이 먹은 선악과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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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1. 27. 07:45 Writer : 김홍덕

성경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꼭 쓰고 싶은 내용들이 좀 있다. 빌레몬서, 요한일서와 같은 작은 성경에 관한 것과, 주제별로 본다면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 보고 싶었다.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던 것은 성경에서도 이 선악과로 말미암아 인간이 타락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실재로도 이 선악과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에 대한 오류가 크기 때문이다.


성경에 정확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되어 있는 이 선악과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사람에게 유일하게 <"하지 마라">라고 명하신 명령하신 내용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 선악과는 도무지 어떤 나무이고 그 열매는 무엇이길래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왜 온 인류의 원죄가 되었는가를 아는 것은 어쩌면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아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원죄 ; 사람이 범하는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죄악)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III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III by saikofish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사람들은 흔히 선악과를 먹은 것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사람의 삶이 크게 변하게 된(정확히는 타락하게 된) 이유를 <"불복종">으로 생각한다. 즉 하나님께서 하지마라고 한 것을 자기의 욕심 때문에 먹었기 떄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인류에게 동일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원죄라고 한다.(여러가지 이론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두 가지 의문이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지 마라고 하는 것에 대한 불 복종이 어디 그것 하나 뿐인가?'> 하는 것과 <'악을 알게 하는 것에 눈을 뜬 것은 잘못인줄 알겠는데, 선을 알게 된 것이 어찌 그리 큰 죄라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선과 악을 동시에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니 말이다.


첫번쨰 의문은 나름의 답이 있다. 불복종이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을 먹은 것이 습관이 되고 유전이 되었다면 뭐 개운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의 법에도 <정상 참작>이라는 것이 있는데, 악한 것만 먹은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먹었는데 그 죄를 좀 경감해 주는 것도 없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원인은 <선악과를 먹은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 이전에 선과 악에 대한 정의가 먼저 있어야 하고, 또 이 선악과를 먹으면 어떻게 되기에 하나님께서 먹지 마라고 하셨는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선과 악에 대하여 잘 안다. 영화나 소설도 그 구도가 선악간의 대결 구도일 때 사람들이 가장 쉽게 보고, 흥미를 가진다고 한다. 그만큼 선과 악은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과 악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군지는 몰라도 너무나 잘 알고, 그래서 남들의 삶과 행동에도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정의해서 가르치려 하고 교훈하려 한다. 그렇게 잘 아는 선과 악을 사람들이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바로 그것이 선악과를 모르는 것이고, 그것이 선악과를 먹은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누구나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가지고 남의 삶에 까지 영역을 넓혀서 살려고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뱀이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처럼 된 것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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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정리 (3)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1. 26. 08:31 Writer : 김홍덕

천지창조의 핵심적인 목적이자 목표는 사람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안식하셨다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다가 휴식이 아니라 안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일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안식하셨다는 것은 이 창조의 목적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천지창조의 시작이 <"빛이 있으라">이다. 다른 여타 창조의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첫째날에 <빛>이 있으라고 하신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물리적인 빛을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물리적인 빛의 특징들로서 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하게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by Luz Adriana Villa A. 저작자 표시



그러므로 이 <"빛은 곧 인식">이다. 즉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은, 한 개인이 하나님에 대하여 눈을 뜨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사람인 존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성경은 사람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생물학적인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에 관한 말씀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 곧 하나님의 빛이 없다면 적어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인정하시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이 성경이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또 의학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시작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세계가 그 사람에게 시작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 천지창조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성경이 나의 이야기가 되는 관점>인 것이다.


그헐기 떄문이 당연히 이 천지창조의 시작은 최종적인 목적인 사람의 창조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창조의 목적이 사람에게 있으니, 시작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빛>이 그 사람에게 있게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천지창조를 물리적인 세계의 창조에 촛점을 두고 있다 보니 정작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향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한다. 이것이 바로 <원죄>인 것이다.


천지창조의 목적은 사람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다. 이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사람을 얻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것이다. 이 부분이 천지창조의 목적이고 핵심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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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형체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표현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앞에서 좀 길게 포스팅을 했다. 이것은 아주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개념이 열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그리고 과정도 동일한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두고 요한 사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 곧 하나님이라는 내용이 육신을 가진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내면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천지창조의 과정이고, 또 그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는 외면적 관점에서 보면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또한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세상을 사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고, 사람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의 과정은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림으로 하나님의 형상(image)이 그 사람의 육신의 삶을 통하여 표현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이 자신의 삶이 되는 사람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하나님의 의가 표현되는 사람, 또 정확하게 말한다면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니, 이것이 바로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 처럼 살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천지창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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