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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5) - 선악과를 먹은 상태, 죽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2. 9. 11:49 Writer : 김홍덕

사람들, 특히 기독교 신앙 안에 있는 신앙인들은 선악과의 문제를 그냥 간과한다. 많은 경우 처음에 예수를 믿기로 하는 순간 그 문제는 그냥 과거의 한 모습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선악과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를 간택하는 삶을 사는 동안은 끊임없이 갈등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무엇을 선하게 여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에 다루겠지만, 그것이 바로 바벨탑이다. 사람들의 의가 개인별로 다 다르기 때문에 의사 소통이 안되는 것이고,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한민국 안에서 한글로 대화 한다고 대화가 다 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 관점의 다양성 만큼, 성경을 보는 관점도 다양한 것이다. 즉, 무엇이 선한 것인지에 대하여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선악과는 무엇이 선한지에 대하여 말씀하기 이전에, 사람이 스스로 어떤 것을 기준점으로 삼든 간에 무엇인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에 대하여 판단하는 그 자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모습을 한번 볼 필요가 있다.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 가장 먼저 나타난 아담의 반응은 자기가 벗은 줄을 알았다는 것이다.(창 3:7) 그런데 문제는 선악과를 먹고 나니 갑자기 몸이 홀쭉해져서 입고 있던 옷이 흘러 내려서 벗은 몸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먹기 전에도 아담과 하와는 벗고 있었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창 2장 25절에 기록되어 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벗은 것을 부끄러워 하여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었다는 것은 벗은 것이 악한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현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벗었다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선악과 인함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그 벗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벗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벗고 있는 것은 악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는 것인데, 선악과를 먹고 나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선악과로 인하여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을 이제는 문제가 있고,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창 2:17절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선과 악을 알고 판단하는 그 상태가 바로 죽은 상태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먹었는데 죽지 않았으니 그건 마귀의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신과 같이 되는 것이 싫어서 엄포를 놓으신 것으로 생각할 일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판단하게 되는 그 상태, 그 상태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죽은 상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면서 어떤 것을 보고, 그것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선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행동을 취한다면 그 사람은 육신이 의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무리 팔팔하게 살아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그저 예수 믿는다고, 혹은 나름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선악과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선악과의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나뭇잎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자기의 생명이 되는 사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악과는 성경을 보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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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4)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2. 3. 10:20 Writer : 김홍덕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사람이 자기의 주관을 가지고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에 대하여 판단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선악과에 대하여 블로그하는 서두에 제기한 선악과에 대한 의문 중에 "악과를 먹은 것도 아니고, 선도 같이 먹었는데 죄가 경감되지 않는가?"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모든 갈등은 사람들 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마다 생각하는 선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선이라고 할 것인지에 대하여 일치된다면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시끄럽게 하는 모든 주장과 사건의 뿌리는 다 "이것이 선이다", 혹은 "이렇게 되어야 선이다"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이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그것을 일으키는 범인의 마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이익이 최소한 자기 이익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이익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악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덧붙여 본다면, '내가 잘못했습니다'나 혹은 '내가 악한 사람입니다'라는 사람은 세상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 즉 모든 갈등은 <"이것이 선한 것이다">라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뿌리에는 스스로 어떤 것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는 마음이 있었기에 어떤 것에 대하여 선하다고 정의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선악과는 원죄가 맞다. 신학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선악과 사건을 원죄로 다루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또한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는 이유는 정말로 딱 한가지,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한지에 대하여 사람 스스로 판단하는 그 가치관 하나, 그것이 유일무이한 죄인 것이다. 


선악과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리고 내가 선악과를 먹은 것이라는 고백이 없다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선악과의 문제는 신앙의 전반에 있어 절대적인 명제이고, 이것에 대하여 명확한 깨달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이 선악과의 문제가 자기 안에서 확실하게 깨달아지는 것이 없다면, 순종이 무엇인지도 할 수 없고, 노아의 방주에 왜 부정한 짐승이 탓는지도 알 수 없으며, 또한 교회가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알 수 없다. 즉 이 선악과의 문제는 신앙의 모든 명제와 게시에 대한 근간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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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3)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2. 2. 10:26 Writer : 김홍덕

그러므로 선악과를 풀어서 정의해 본다면, <"이것은 혹은 이렇게 하는 것은 선한 것이고, 저것 혹은 저렇게 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라는 기준을 사람이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본성이 바로 <선악과>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하여 선하고 악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선악과의 실체인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보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얼핏 보면 좋은 일이고 당연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어떤 것은 악한 것이라는 것을 동반하여 판단해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선악과를 먹은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악한 과일을 먹은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어서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어느 것은 선한 것이고, 또 어느 것은 나쁜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그 중에 하나만 선택하는 것을 사람의 임무나 삶의 목적으로 주신 것은 아니라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고 삶을 순종적으로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존재 목적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가진 교리 안에는 금할 것과 권장하는 것으로 양분되어 있다. 어떤 종교든 그 안에는 금욕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권장 사항이 포함된 종교적인 선이 있다. 천주교나 불교의 사제급은 결혼을 금한다. 때론 고기와 같이 먹는 것을 제한한다. 이슬람은 여자의 격을 제한한다. 먹는 것도 제한한다. 그 뿐 아니라 현대의 기독교도 술과 담배를 금하는 등 금기사항이 너무 많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금하는 모든 것들은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를 배제한 것이다. 특히나 문제를 하나님을 믿는 종교 안으로 국한해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는데, 그것을 금하고 절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은, 다른 표현으로 보면 하나님은 불량을 만드신 분이라는 것이 된다.


실재로 이것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디모데 전서 4장에서 귀신을 좇는 자는 식물을 폐하라 할 것이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것은 악한 것이니 이를 금해야 한다고 하는 것의 뿌리는 이 세상의 어떤 것을 악한 것과 선한 것으로 분리 판단하는 것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런 판단과 분리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할 때, 그 모든 것은 다 <선악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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